나는 지금까지 유로 2012에서 보여준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의 모습에 굉장히 큰 인상을 받았다. 그는 내가 정말로 좋아하는 유형의 미드필더이다.

 

슈바인슈타이거는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는 선수다. 강한 태클과 좋은 수비력을 지닌 선수이면서 동시에 공격 상황에서는 좋은 슈팅을 시도할 줄 아는 선수며, 공을 상당히 잘 다루는 선수이다.

 

어떤 면에서 슈바인슈타이거는 나에게 로이 킨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만든다. 아마도 슈바인슈타이거가 로이 킨보다 더 많은 득점에 성공했을 것이며, 그가 내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대결에서 만났던 로이 킨처럼 강력한 태클 능력을 갖추진 못했을지라도 이 글을 읽는 당신들은 그가 진정한 독일 대표팀의 리더라는 것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나는 미드필더의 역할이 변했다고 생각했었기 때문에 슈바인슈타이거 같은 유형의 선수가 이번 대회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 상당히 기쁘다.

 

한 때 나의 대표팀 파트너였던 디디에 데샹같은 선수들이 지배적이던 시대가 있었다. 선수들은 데샹처럼 포백을 보호하면서 공격을 위해 전진하는 모습을 보였었다. 데샹은 정말 대단한 선수였고, 프랑스가 1998년 월드컵과 유로 2000에서 우승하는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던 선수였다. 선수들은 데샹을 모방해나갔지만, 나와 로이 킨처럼 박스 투 박스 유형의 선수들은 점점 줄어들고 있는 추세였다.

 

많은 팀들이 이제는 그런 부류의 선수들을 미드필드에 두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수비도 잘하고 공격에 가담하여 골을 넣을 줄아는 미드필더를 좋아하고 있다.

 

스티븐 제라드는 지난 몇 년간 리버풀과 잉글랜드에서 그러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에는 슈바인슈타이거와 야야 투레가 가장 최정상의 기량을 뽐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독일은 정말 특별하고 강한 미드필더진을 구축한 팀이다. 슈바인슈타이거의 실력에 사미 케디라와 메수트 외질까지 더해졌다. 외질은 대단한 실력을 지닌 선수지만, 독일이 다른 팀과 구별되는 차이점을 만들어내는 선수는 슈바인슈타이거라고 생각한다.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가 팀에서 선수들을 독려하고 팀의 밸런스를 잡아주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독일은 전통적으로 강력하고 지배력있는 미드필더를 중심으로 팀을 형성해왔다. 로타르 마테우스, 마티아스 잠머, 미하엘 발락에 이어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가 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27살인 슈바인슈타이거는 독일 대표팀으로 93번의 A 매치 경력을 지니고 있다. 슈바인슈타이거의 경험과 팀에서의 중요성이 만들어낸 결과라고 생각한다.

 

독일에서 뛰어난 실력을 뽐내는 슈바인슈타이거와 더불어 나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준 선수는 바로 이니에스타이다.

 

이니에스타는 슈바인슈타이거와는 완전히 다른 유형의 선수이다. 이니에스타는 스페인에 굉장히 중요한 선수임에도 받아야할만큼의 찬사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바르셀로나에서 챠비와 리오넬 메시에게 이니에스타에 대한 질문을 던지면, 이니에스타가 얼마나 대단한 선수인지 알 수 있다. 그는 득점력도 갖췄고 드리블 실력도 갖춘 선수이다. 패스 능력과 키핑 능력도 있는 선수이며 상당히 열심히 뛰어다니는 선수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이니에스타는 신체적으로 강한 선수다.

 

이니에스타의 축구 지능도 정말 대단하지만, 나는 그가 굉장히 겸손한 선수라는 것이 마음에 든다. 그는 항상 경기장에서 훌륭한 경기를 펼치는데 집중하는 선수이기 때문이다.

 

나는 클로드 마켈레레와 함께 챠비와 이니에스타를 막아야했었다. 나와 마켈레레는 경기 도중 서로에게 '대체 어떤 방법으로 막야하는거야?'라고 말했다. 우리가 얻어낸 해답은 그들에게 공간 자체를 허용하지 말자는 것이었다. 챠비와 이니에스타가 공을 잡은 이후에 막으려하는 것은 뒤늦은 행동이다. 만약 프랑스가 스페인을 꺾고 싶다면, 이니에스타와 챠비가 공을 잡고 질주하는 것을 막아야만 할 것이다.

 

그러나 수비적인 자세로 나섰던 이탈리아와 아일랜드를 상대로 이니에스타는 좋은 활약을 선보였다. 따라서 강한 압박이 들어오더라도 이니에스타는 그것을 이겨낼지도 모른다.

 

 

 

출처 : http://www.telegraph.co.uk/sport/football/teams/germany/9347685/Euro-2012-Germanys-Bastian-Schweinsteiger-is-a-midfield-colossus-in-the-mould-of-Roy-Keane.html




by Jonathan Wilson (본문은 2009년 4월 22일에 작성되었습니다)


이번에 우리는 현대 축구에서 브라이언 롭슨, 로이 킨, 로타르 마테우스가 무슨 이유로 사라졌는지 밝혀내보고자 한다.



최근 1990년 월드컵에 대해서 조사를하던 중 나는 당시 잉글랜드의 감독이던 보비 롭슨(Bobby Robson)의 인터뷰를 발견했고 그 인터뷰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당시 잉글랜드의 주장은 브라이언 롭슨(Bryan Robson)이었고 네덜란드와의 0:0으로 끝난 경기에서 아킬레스를 다치면서 월드컵 출전에 비상이 걸렸었다. 당시 브라이언에 대해서 보비는 이렇게 말했다 : 브라이언은 잉글랜드가 여지껏 배출해낸 최고의 선수다.


여태껏 잉글랜드가 배출해낸 최고의 선수! 보비 롭슨의 발언의 맥락을 확대해서 해석해보면, 그의 인터뷰는 중요한 시기에 팀의 주장을 잃게된 것에 대한 상실감을 표편한 것일거다. 그래도 '그의 부상은 우리에게 큰 손실이다' 혹은 '지난 몇년간 브라이언은 우리의 핵심과 같은 선수였다'가 아닌 '여태껏 잉글랜드가 배출해낸 최고의 선수'라고 말한 것은 의미하는 바가 크다고 본다.


보비 롭슨의 잉글랜드 대표팀에서 브라이언 롭슨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는 것은 통계 자료를 통해서도 드러난다. 보비 롭슨은 잉글랜드 대표팀을 이끌고 88경기를 치렀는데 브라이언은 그 중 62경기를 뛰었다. 브라이언이 뛴 경기 중 잉글랜드가 패한 경기는 10경기이고 그가 뛰지 않았떤 26경기에서 잉글랜드는 7번의 패배를 기록했다. 브라이언 롭슨은 그만큼 중요했던 선수였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렇게 생각해볼 수 있다 : 보비 롭슨의 주장처럼 브라이언 롭슨이 잉글랜드가 배출해낸 역대 최고의 선수라면, 현재의 잉글랜드에 브라이언 롭슨이 끼어들 자리가 있을까?


여기에 대한 대답은 '아니오'이다. 만약 잉글랜드가 (각 포지션간의 경계가) 느슨한 형태의 4-2-3-1 포메이션을 활용하지 않는다면, 브라이언 롭슨에게 알맞는 자리가 없을 것이다. 이처럼 위대한 선수를 우리가 하나의 시스템이라는 틀에 박아놓고 평가하려는 것은 무례한 행동일지 모르나, 나는 그가 공격적인 3명의 미드필더로 뛸 수준의 기술력을 갖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동시에 브라이언 롭슨의 득점력을 고려했을 때, 그를 홀딩 미드필더로 활용하는 것도 재능의 낭비일 것이다. 어쨋든 커리어 막바지에 롭슨의 스피드가 줄어들기 이전까지 롭슨이 홀딩 미드필더로 뛸 수 있을 정도의 충분한 훈련을 받았는지도 의문이다.


슬로바키아, 우크라이나전에서 프랭크 램파드가 그랬던 것처럼 가레스 배리같은 선수를 옆에 둔 자유로운 홀딩 미드필더로 타협점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롭슨이 이 위치에서는 뛸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강력한 스태미나와 투쟁심, 공수 완전성을 갖춘 롭슨을 이토록 제한적인 역할의 틀에 넣어두는 것은 끔찍한 일이다. 가레스 배리같은 홀딩 미드필더 옆자리에는 공을 가지고 끊임없이 이동해줄 수 있는 선수보다는 사비 알론소나 마이클 캐릭처럼 지능적인 패서(intelligent passer)가 위치하는 것이 낫다.


그러자 문득 이러한 생각이 들었다. 득점을 할 수 있고 태클을 시도하며 팀을 이끌어가는 그런 완성형 미드필더들(complete midfielders)이 쇠퇴하고 있다는 생각이 내 머릿 속을 스쳐지나갔다. 롭슨 이후로 로타르 마테우스(Lothar Matthaus), 데이비드 플랫(David Platt)이 등장했고 그 이후로는 로이 킨(Roy Keane)이 있었다. 그 다음은? 없다! 그렇다면 왜 이런 부류의 선수들이 사라졌는가?


 

첫번째 이유 : 4-4-2의 쇠퇴 그리고 홀딩 미드필더의 등장


여기서 우리가 짚고 넘어갈 포인트는 '더 이상의 완성형 미드필더가 없는 것'이 아니라 '더 이상 완성형 미드필더로 뛰어야할 필요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미하엘 발락, 세스크 파브레가스, 마이클 에시엔처럼 홀딩 미드필더와 공격형 미드필더를 모두 소화할 수 있는 선수들도 특정한 임무를 부여받은 롤에서 경기를 소화하지 단순한 '미드필더'만으로는 경기를 뛰지 않는다.


이는 스티븐 제라드와 프랭크 램파드, 이전 세대의 박스-투-박스(box-to-box) 미드필더로 뛰었을 롭슨 스타일의 활동 범위를 가진 두 명의 미드필더가 같이 중앙 미드필더로서 조화를 이루며 뛸 수 있느냐는 논쟁에 대한 핵심적인 이슈이기도 하다.


문제는 해답에 있다기보다는 질문 그 자체에 존재한다고 봐야한다. 질문에서 빠뜨린 것이 무엇이냐면, 우리는 이 선수들을 4-4-2 포메이션의 중앙에서 기용한다는 것을 이미 전제하고 있다는 것이다. (파비오 카펠로 감독이 우리의 눈을 뜨게 해주기 이전까지, 과연 우리 선수들은 정통 4-4-2를 제외하고 뛰는것을 생각이나 해보았을까?)


이것이 잉글랜드의 골든 제너레이션이 그저 선수만을 모아놓은 효과만 보여준 가장 주된 원인이기도 하다 : 잉글랜드는 재능있는 선수들을 배출시키는 축복받은 국가지만, 문제는 마이클 오언과 데이빗 베컴에게는 4-4-2 시스템이 필요하고 프랭크 램파드와 스티븐 제라드에게는 한 명의 홀딩 미드필더가 더 필요하다는 것이다. 스벤-고란 에릭손, 스티브 맥클라렌 감독 모두 두가지 시스템 중 하나를 선택하여 선수를 그 시스템에 맞춰서 선수를 추려낼 생각은 해보지도 않았다. 이는 잉글랜드가 전술적 교양이 부족하다는 것과 동시에 스타 선수들(celebrity player)를 향한 잉글랜드 축구계의 광신도적인 경의를 보여주는 것이며 이것은 정말로 비웃음거리가 될만한 일이다.


두 선수가 국가대표가 아닌 클럽에서 이러한 공존의 상황을 맞이한다면 매일 같이 훈련을 하기 때문에 결국에 서로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4-4-2에서 중앙 미드필더로 같이 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국가대표팀에서는 그것이 불가능하다. 2004년 9월에 있었던 오스트리아와의 월드컵 예선전 경기는 두 선수가 중앙 미드필더로 짝을 이루었을 때 어떠한 문제를 야기시키는지를 보여준 경기였다. 램파드와 제라드의 골로 잉글랜드는 20분까지 아주 편하게 경기를 진행했다. 그러나 램파드가 내준 프리킥을 롤란드 쾰만(Roland Kollmann)이 골로 연결시켰고 안드레아스 이반슐츠(Andreas Ivanschitz)가 제라드와 데이빗 제임스를 제치면서 동점골을 만들어냈다.


오스트리아의 득점은 모두 제라드와 램파드가 과도하게 전진하면서 미드필드 라인과 수비 라인 사이에 광대한 공간이 발생했기 때문에 만들어졌다. 수비 라인과 미드필더 라인 사이의 공간은 전통적으로 잉글랜드 축구가 상당한 약점을 보인 구역이다. 1932년 스탬포드 브릿지에서 오스트리아가 잉글랜드에게 3:4로 패배했을 때 마티아스 진델라르(Matthias Sindelar)에게 내준 공간이며, 첼시가 1945년 디나모 모스크바와 4:4 동점으로 경기를 마쳤을 때도 프세볼로드 보브로프(Vsevolod Bobrov)가 휘젓고 다니던 공간이며, 1953년 그 유명한 잉글랜드가 헝가리에게 3:6으로 박살이 났을 때 난도르 히데쿠티(Nandor Hidegkuti)가 활약했던 그 공간이다. 심지어 1990년대에도 에릭 칸토나(Eric Cantona)와 지안프랑코 졸라(Gianfranco Zola)가 잉글랜드의 자연스러운 4-4-2 포메이션 배치에 따른 라인 사이의 공간에서 큰 이점을 누렸다.


전방에 한 명의 공격수를 배치하는 것이 흔해지면서 이제 상대의 뒤로 쳐진 공격수(withdrawn forward)를 상대하기 위해서 각 팀들은 한 명의 홀딩 미드필더를 기용할 필요성을 느끼기 시작했다. 적어도 최상위권 레벨에서는 4-2-3-1로의 변화가 빠르게 이루어졌다. 일단 포메이션이 정해지니 미드필더들은 각자가 수비형인지 공격형인지 완성형인지 구분지어졌다. 완성형 선수들은 두가지 역할을 모두 소화할 수 있지만 이전 세대의 유산으로 여겨졌다. 



두번째 이유 : 현대 축구는 스페셜리스트의 경기다


오늘날의 경기는 선수들에게 다양성을 요구하고 있다. 이제는 단순히 윙어일 수만 없고 플레이메이커만일 수 없으며 골 사냥꾼(goal-poacher)일 수는 없다. 풀백도 공격을 할 수 있어야한다. 그런데 이렇게 다양성이 추구되는 시기에 다재다능한 만능형 미드필더들이 쇠퇴하고 있는 것은 굉장히 모순적인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발레리 로바노브스키(Valeriy Lobanovskyi)와 더불어 강력한 압박 축구를 선호했던 아리고 사키(Arrigo Sacchi)는 4-2-3-1을 선호하지 않는다. 사키는 오늘 날의 축구에 대해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오늘날의 축구는 선수 개개인의 특성을 다루는(Today's football is about managing the characteristics of individuals)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이 오늘날 축구에 스페셜 리스트들이 넘쳐나는 이유다. 개인이 집단을 이겼다. 그러나 이것은 팀이 약해졌다는 암시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스페셜 리스트에게 의존하는 축구는 수동적인(reactive) 축구를 펼치는 것이다."


사키는 2004년 레알 마드리드 스포팅 디렉터(sporting director)로 일하면서 레알 마드리드의 갈락티코 정책에 대해서 자신의 주장을 펼쳤던 바 있다 : "이건 절대 하나의 프로젝트일 수가 없다. 갈락티코 정책은 정책이 아니라 퀄리티 높은 선수들의 과잉 현상일 뿐이다. 우리는 지단, 라울, 피구가 수비하려 내려오지않는걸 알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백4 앞에 수비해줄 수 있는 선수를 스타팅 라인업에 집어넣어야한다. 이러는건 수동적인 축구고 이 방식으로는 선수들의 퀄리티를 모아서 증폭시킬 수 없다. 전술을 통해서 선수들의 능력을 극대화시키는 것이 바로 내가 추구하는 전술의 핵심 포인트이다. 내 축구에서 공을 가지고있는 선수는 플레이메이커인 레지스타(regista)가 되어야한다. 그게 누구든 상관없이 다 그럴 줄 알아야한다. 그러나 마켈레레는 레지스타가 될 수 없는 선수다. 마켈레레는 그럴 능력도, 그럴 생각도 없는 선수다. 물론 그는 공을 뺏어내는데 아주 특출난 능력을 가지고 있는데 그건 스페셜리스트일 뿐이라는 것이다."


사키는 AC 밀란을 지휘하면서 1989년, 1990년 연속으로 유러피언 컵에서 우승을 거두었고 특히 4-4-2의 신봉자로 널리 알려져있다. 그가 기용했던 미드필더 듀오인 카를로 안첼로티(Carlo Ancelotti)와 프랑크 레이카르트(Frank Rijkaard)는 롭슨과 마테우스처럼 득점력을 갖추진 못했지만, 두 선수 모두 상대를 파괴할 수 있는(수비적인) 선수였으며 동시에 창조적인(공격적인) 선수였다. 사키에게 피지컬과 기술력을 모두 갖춘 제라드와 램파드가 있었다면, 그는 분명히 두 선수를 4-4-2에 맞춰 기용했을 것이다. 물론 두 선수가 사키가 선수들에게 요구하는 지적 능력을 갖추고 있을 때에 한정해서 말하는 것이다. 특히 사키의 경우는 제라드에 대해서 확신하지 못하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그는 제라드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 이렇게 대답했었다.


"레알 마드리드의 풋볼 디렉터로 나는 유스에서부터 성장해오는 선수들을 평가할 기회를 가지게 된다. 우리에게는 아주 우수한 축구 선수(very good footballers)들이 있었다. 기술력도 있고 열정, 활동량, 승리에 대한 굶주림 모두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내가 생각하고 있는 '축구를 어떻게 해야하는가?'라는 노하우가 없었다. (But they lacked what I call knowing-how-to-play-football) 판단력이 부족했고 위치 선정도 미숙했다. 한 선수가 집단 안에서 어떻게 움직여야하는지 (how a player should move within the collective) 에 대한 축구에서의 그 미묘한 감수성이 없었던 것이다."


"당신들도 알다시피 열정, 기술, 체력, 활동량 모두 중요하다. 그러나 이런 항목들은 목표를 향한 수단에 불과할 뿐 목표 그 자체는 결코 아니다. 이런 능력들은 팀에 재능이 기여할 수 있도록 도우며 궁극적으로 팀과 선수를 더욱 강인하게 만들어준다. 이 상황에서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제라드는 위대한 축구 선수지만, 아마 위대한 선수는 아닐 것이다.(he's a great footballer, but perhaps not a great player) 


잉글랜드 축구계에서 가장 사키스러운(Sacchian) 감독이던 라파 베니테즈 역시 제라드에 대한 비슷한 의구심을 품었던 것 같다. 베니테즈는 두차례나 리버풀의 캡틴을 첼시로 이적시키려는 움직임을 보였었고 (첼시에서는 마켈레레가 있었기 때문에 4-3-3 포메이션에서 램파드와 공존할 수 있었을 것이다) 제라드를 오른쪽 미드필더나 왼쪽 미드필더로 사용하는 경우도 있었다. 베니테즈의 이러한 제라드 활용법은 제라드에게 중앙 미드필더로서의 책임을 부여하길 주저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2005년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에서는 하만을 홀딩 미드필더로 기용하면서 제라드의 중앙 미드필더로서의 책임감을 어느 정도 줄여줬으며 그 이후 베니테스는 4-2-3-1 포메이션을 접목시키면서 제라드가 2명의 홀딩 미드필더와 같이 뛰어 조금 더 자유로운 플레이를 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제라드가 전진성을 갖춘 홀딩 미드필더가 되는 것이 바람직했지만, 제라드는 이상한 태클을 시도하는 공격형 미드필더로 변화하면서 완성형 미드필더가 되어버렸다.


램파드는 제라드와 달리 딥-라잉(deep-lying) 역할을 소화하지만, 그럼에도 램파드는 홀딩 미드필더가 옆에 있는 상황에서 더욱 편하게 경기를 펼치고 있다. 그가 카펠로 감독이 잉글랜드 대표팀에서 주문할 지금보다 수비적인 역할을 충분히 수행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문제는 제라드와 램파드에게 더욱 수비적인 미드필더가 필요한 것이 '축구를 어떻게 해야하는지에 대한 노하우'와 어느 정도의 연관성이 있는가와 축구 전술의 발전이 두 선수가 뛰는 포지션에 어느 정도의 영향을 주었는가이다.


2004년 오스트리아에서의 잉글랜드 대표팀과 사키의 팀을 비교하는 것은 말도 안되는 일이다. 사키가 감독이었다면, 비엔나에서 수비 라인과 미드필더 라인 사이 간격이 그토록 벌어지게 절대 내버려두지 않았을 것이다. (간격이 벌어진 것은 일정 부분 데이빗 제임스의 탓도 있다. 계속해서 실수를 범하는 제임스 때문에 잉글랜드 수비진들은 박스에 계속 머물러 있어야 했다.)



세번째 이유 : 오프사이드 규정의 완화


사키의 주장에 따르면, 강한 압박 게임을 펼칠 수 있는 촘촘한 구조를 형성하기 위해서 수비와 공격 라인 사이의 거리는 25m 내로 유지되어야한다. 이렇게 플레이하기 위해서는 상당히 높은 수비라인이 요구되어지는데 오프사이드 규정이 완화된 지금 더 이상 수비라인을 높일 수 없게 되었다.


증명할 수는 없으나, 오늘날의 수백만 축구 선수들이 현대 축구의 오프사이드 규정에서 사키의 주장은 통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은 합리적으로 보인다. 이전보다 완화된 오프사이드 규정은 경기장 활용폭을 넓혔으며 따라서 우리는 4선 포메이션이 하나의 트렌드가 되버린 것을 목격하고 있다. 이는 자연스럽게 완성형 미드필더를 필요없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한다.


역사적으로도 이러한 현상(4선에서 완성형 선수가 필요 없다는 것)은 지속적으로 발생해왔다. 축구 역사 내내 완성형 미드필더에 관한 개념이 잡혀있던 것은 아니다. 비슷한 개념은 1880년대 대세를 이루었던 2-3-5 포메이션의 센터-하프(centre-half)에서 등장했다. 센퍼-하프는 다양한 기술력을 갖춘 올라운더(all-rounder)였다. 수비수이자 공격수였고 리더이자 선동하는 선수였다. 골스코어러이자 상대의 골을 막아내는 선수였다. 그러나 이런 유형의 선수들도 1930년대 초반 W-M 시스템이 대세를 형성하자 사라져버렸다. (과거 센터-하프의 마지막 유형인 선수는 오스트리아의 에른스트 옥위크(Ernst Ocwirk)일 것이다. 1950년대 초반까지 이 선수는 센터-하프 역할을 소화했는데 당시 사람들에게는 상당히 시대에 뒤떨어진 선수로 여겨졌을 것이다)


공수 양면성을 지녔던 센터-하프는 스토퍼(stopper)와 인사이드-포워드(inside-forward)가 후방으로 내려와 전진된 미드필더 역할을 수행하면서 사라졌다. 3-2-2-3 포메이션은 미드필더를 수비적 책임을 가진 선수와 공격적 책임을 가진 선수로 구분지어버렸다.


60년대 중반 4선 시스템인 W-M은 3선 시스템인 4-2-4로 대체되었다. 그리고 4-3-3과 4-4-2가 등장하면서 경기장을 쥐어짜듯이 활용하고 강한 압박을 추구하는 경기가 펼쳐지면서 다시 완성형 미드필더가 등장하게 되었다.


지금은 3선에서 4선의 시대로 옮겨졌고 다시 미드필더는 전문화되고 있다.




출처 : http://www.theguardian.com/sport/blog/2009/apr/22/where-have-box-to-box-midfielders-go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