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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와 전술은 어떤 관계인가?

The Question 2016. 6. 4. 16:42 Posted by Seolskjaer



by Jonathan Wilson (이 글은 2013년 4월 10일에 작성되었습니다.)


선수들은 전술로부터 자유로운 것일까? 아니면 선수들이 감독의 전략에 의해 지배당하는 것일까?


몇 주전에 밀란에서 나는 이탈리아 축구협회(FIGC)의 고위 관계자로부터 질문을 하나 받았다. 그의 질문은 '과연 우리가 선수들이 전술로부터 자유로운 환경에서 뛸 수 있는걸 다시 볼 수 있는가'였다. 굉장히 머쓱한 순간이었다. 나는 통역기를 통해 의사소통을 하는 상황이었고 맨 앞줄에 있는 데메트리오 알베르티니, 페란 소리아노, 아드리아노 갈리아니 등이 나를 쳐다보고 있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그의 질문을 정확하게 이해했는지를 확신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 기회에 한 언어가 다른 언어로 옮겨지는 과정에서 아주 정확하게 의미가 전달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한 준비된 상태가 아니었다는 것이 나를 당황케 만드는 또 다른 요인이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어떠한 이야기를 했는지 잘 기억하지 못하는 것 같다. 그렇지만 그 고위 관계자가 나에게 던졌던 질문은 참 적절했던 질문이었다. 사실 그러한 것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다. 그렇지만 너무나 막연했던 주제였다. 직접적으로 이야기하기에는 굉장히 꺼려지는 주제인건 사실이다. 아마 오늘은 굉장히 기본적이고 기초적인 질문을 던져야할 것 같다. : 과연 전술이란 무엇일까?


지난 화요일 밤 말라가를 상대로 보루시아 도르트문트가 아주 멋진 역전을 이뤄내는 것을 보았다. 이 경기는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작용한 경기였다. 전술은 혼란으로 이루어진 축구에 질서를 부여하기 위한 시도이다. 그래서 전술이라는 것은 어느 정도 언어적인 축구라 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전술이 적용되는 범위는 어느 정도인 것인가?


사실 이 날 도르트문트는 자신들이 보여줄 수 있는 최선의 축구를 보여주지 못했고 말라가는 수비적인 부분에서 아주 훌륭한 팀이었다. 후반전에 도르트문트는 2번의 기회를 잡았지만 말라가의 윌리 카바예로 골키퍼가 도르트문트의 기회를 무산시켰다. 도르트문트의 슈팅은 아주 정교하게 시도된 슈팅이 아니었고 동물적 감각이나 팔을 정확하게 뻗어 막은 방어보다는 윌리가 슈팅을 방어하기위한 최적의 위치에 서있던 것이었다. 마르코 로이스의 슈팅은 윌리를 맞췄고 골문 밖으로 나갔다. 물론 공이 윌리를 맞고 골이 되지않았기 때문에 윌리가 칭찬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렇지만 상당한 운이 작용했던 세이브였고 기회를 살리지 못한 로이스의 실수도 조금은 가미된 장면이었다. 


마지막 10분은 정말 정신이 없는 수준이었다. 득점이 절박했던 도르트문트는 역습에 쉽게 노출될 정도로 공격을 시도했다. 그러나 훌리우 밥티스타의 도움을 받은 엘리세우가 득점을 기록하면서 말라가가 2:1로 앞서나갔다. 결국 도르트문트는 패스 플레이를 포기하고 무작정 공을 박스 안으로 집어넣는 시도를 할 수 밖에 없게 되었다. 경기 내내 성공적이었던 말라가의 오프사이드 트랩은 서서히 무뎌져갔다. 도르트문트의 롱볼 공격은 공격에 가담한 네벤 수보티치에게 연결되었고 수보티치에게 공을 연결받길 기다리고 있던 필리페 산타페를 헤수스 가메스가 아주 대담한 태클로 저지했다. 그렇지만 공은 로이스에게 연결되었고 로이스가 골로 연결시켰다. 도르트문트의 결승골 과정에서 처음 크로스가 올라오는 과정에서 4명의 선수가 오프사이드 위치에 있었다. 엄청나게 혼란스러운 와중에 산타나가 결승골을 만들어냈다. 산타나의 결승골은 대혼란 그 자체였다. 80분 이후에 터진 3번의 득점은 전부 승리를 향한 열망과 실수에 의해서 만들어진 골이었다. 사실상 전술이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굳이 전술적인 표현을 하자면 아주 기본적인 것만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도르트문트는 역습에 취약한 구조를 선택했고 말라가는 오프사이드 트랩을 적극 활용했으며 수보티치가 더 이상 수비수가 아닌 공격하는 역할로 활용되었다는 것 정도로 말이다. 


(말라가가 앞선채 경기가 진행되고 있는) 90분이 되자 나는 위르겐 클롭 감독이 안쓰러워졌다. 도르트문트가 자신들만의 기준에 걸맞지 못하는 경기를 펼쳤기 때문이다. 1,2차전 내내 긍정적이지 못한 경기력이었고 사실 말라가보다 도르트문트가 4강에 올라가는 것이 4강전을 더욱 박진감 넘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도르트문트가 경기를 역전한) 93분이 되자 마누엘 페예그리니 감독이 안쓰러워졌다. 2차전에서만큼은 전술적으로 말라가가 더 좋은 팀이었고 말라가의 강한 압박은 도르트문트가 실수를 연발하도록 만들었다. 아니면 도르트문트가 그 날 굉장히 무뎠거나. 경기 후 수보티치는 (말라가에게 지고 있는) 상황이 만들어내는 압박감이 도르트문트를 뭉치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 날 도르트문트의 패스가 경기 결과만큼 썩 좋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경기에 영향을 주는 것은 전술적 책략인 것인가? 아니면 선수들을 향한 동기부여인 것인가?


정답은 두개 모두라고 말하고 싶다. 나딤 아슬람의 <헛된 기다림>이라는 책에는 이러한 구절이 있다. '여기서 실타래를 풀게 되면, 전 세계를 돌아 다시 시작하는 곳에서 만나게 될 것이다' 이것이 내가 밀란에서 말한 것이고 여기에 답이 있다고 생각한다. 전술이 선수를 만들고 선수가 전술을 만든다. 고로 둘 사이의 관계는 굉장히 소중한 것이다. 간단한 예를 들자면, 선수의 상태가 완전치 못하고 훈련되지 않았다면 우리는 압박하는 경기를 펼칠 수 없다. 그러나 이것만이 완전한 사실이 아니다. 이건 극도로 단순화된 하나의 사례일 뿐인 것이다.




윌리를 예시로 들었던 것과 그가 후반전에 보여준 세이브를 예시로 들었던 것은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설명하기 위해 아주 중요하다.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선 두가지 단계가 필요하다. 골키퍼는 경기를 읽어내는 개인의 능력과 신체적 능력을 종합해 상대의 슈팅을 막아낼 수 있는 최적의 위치를 결정해낸다. 이는 아주 기초적인 사항이다. 윌리는 트레이닝에서 자신이 교육받았던 것을 그대로 이행한 것이고 자신이 슈팅을 막아낼 수 있다고 생각한 최적의 위치에 있던 것이다. (기초적 사항을 기반으로하고) 그 다음은 미리 계획하기 불가능한 것들 : 굴절, 행운, 상대의 공격수가 공을 어디로 보낼지 같은 것들에 의해 상황이 결정된다. 


바로 위에서 언급한 사항은 전반적으로 경기 자체에도 비슷하게 적용된다고 볼 수 있다. 아주 근원적인 것 : 피치 위에 선수를 어떻게 배치시킬 것인가. 선수 개개인이 맞딱뜨리는 상대와의 관계 등이 기본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기본적인 것들이 한 팀이 점유율을 지배한다던지, 왼쪽 풀백 때문에 오른쪽 윙어가 고립된다던지 등의 상황을 야기시킨다. 아주 근원적인 것이 경기의 양상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제는 이에 대한 대응이 나온다. 그렇다면 윙어는 기술과 속도를 활용해 풀백을 뚫을 수 있는가? 정확한 크로스를 시도할 수 있는가? 그가 득점 기회를 만들어낼 수 있는가?


그 이후엔 다음 단계가 이어진다. 센터포워드가 그 기회를 잡아낼 수 있는가? 그가 자신의 마크맨을 따돌리고 헤더를 따낼 수 있는가? 그가 직접 득점으로 연결시킬 수 있는 헤더를 시도하는가? 그렇다면 그 헤더의 파워는 어느 정도인가? 물론 여기에도 센터포워드가 기회를 감지한다는 기본 전제가 깔려있다. 크로스를 받아낼 수 있는 적절한 위치에 있는가? 자신보다 큰 센터백과 경합할 것인가 작은 센터백과 경합할 것인가? 같은 사항들 말이다.


조금 더 쉽게 생각해보자. 기본적인 사항들은 어느 팀이 더 많은 기회를 만들어내고 그것이 어떠한 기회인지를 결정짓는다. 그 다음으로 따지게 되는 기본적 사항보다 위에 있는 가치는 그러한 기회를 잡느냐를 결정 짓는다. 물론 언제나 그 전 단계들이 존재한다. 그 기회를 만들어줄 기회를 잡을 수 있느냐부터 시작해서 똑같은 질문을 계속해서 반복하는 것이다. (어시스트를 하면 어시스트 이전의 패스는 누구이며, 그 이전의 패스는 누구이며를 따지는 것 같은 것들 말이다) 무한히 뒤로 향할 가능성이 있다. 이렇게 복잡하게 따지고보면 모든 것이 다 연관되어져있다. 멋진 플레이는 항상 어떤 주체를 통해 시행되는 것이고 이러한 이유에서 축구가 항상 단순히 데이터를 기반으로한 분석을 한사코 거절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다시 선수와 전술간의 관계라는 주제로 돌아오자 : 전술은 기본적 사항들에 영향을 받는 것이고 선수들은 그보다 더 상위에 있는 개념에 영향을 받는다. (물론 두가지 사항이 굉장히 밀접하게 연관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를 구분한다는 것은 아주 학문적인 것으로 느껴질 수 있다) 감독들은 전술을 수정하면서 경기에 영향을 주는 아주 기본적인 요소를 수정할 수 있다. 선수들에게 영향을 끼치는 더 상위 요소에 대해 감독들이 할 수 있는건 선수들이 최상의 몸상태와 심리적 상태를 유지할 수 있게 돕는 것이 전부다. (그리고 이는 전술에 영향을 주는 기본적 사항에 해당하지만, 최고의 선수를 최적의 위치에 배치시키는 것도 감독이 할 수 있는 것이다.)


정형화된 방식을 만들 수 없지만, 경기를 지배했다는 것을 평가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방법은 득점 기회를 얼만큼 만들어냈는지를 체크하는 것이다. 물론 이것도 완벽한 가이드라인은 아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기준으로만 따질 경우 모든 기회가 동등한 득점 확률을 가졌다고 전제를 깔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예를 들어서 한 번 생각해보자. 만약 20번의 기회를 만들어낼 것이라 예상되는 A팀과 10번의 기회를 만들어낼 것으로 예상되는 B팀이 서로 맞대결을 펼친다고 가정하자. 만약 B팀의 감독이 20:10의 싸움을 14:8로 만들었다면 경기 결과에 상관없이 그는 자신의 일을 잘 수행한 것이다. 이 결과가 선수의 영향을 받았던 받지 않았던 그건 크게 중요하지 않다. A팀의 센터포워드가 아주 멋진 활약을 펼쳐 4:0으로 승리를 거두건, B팀 골키퍼의 멋진 플레이로 1:0으로 승리하건 감독이 시도한 전술적인 업무에 있어서 경기 결과는 대체적으로 무관한 입장을 지닌다. 후안마 릴로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목적(경기 결과)은 하나의 과정이고 여정입니다. 경기 결과라는 것을 쟁취하기 위한 노력의 과정이 중요한 것 입니다. 단순히 이겼다고 좋은 경기를 펼친 것이 아니고 이기지 못했다고 나쁜 경기를 펼쳤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경기를 감상하는 당신들에게 영감을 불어넣는 것은 결과가 아닐 것 입니다. 결과는 일종의 데이터일 뿐입니다. 무엇인가를 해낸다는건 과정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경기 결과는 논쟁의 거리가 되지 못합니다. 당신은 경기 결과를 나열한 것으로 가득찬 신문을 월요일 아침에 1유로를 지불하면서 살 것입니까? 축구장에 경기가 끝날 즈음에 들어가서 스코어보드만 확인하고 다시 경기장을 나올 것 입니까? 경기장에 들어간 당신은 90분 경기를 지켜보며 그것이 바로 과정인 것 입니다. 사람은 본래 잘한 무언가보다 잘 마무리된 무언가를 좋아합니다. 우리는 나쁘게 시행된 것을 질타하지 않고 나쁘게 끝났다는 것에만 초점을 두고 질타하죠."


다시 원래 우리가 처음에 던졌던 질문으로 되돌아가자 : 과연 선수들이 전술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필자의 대답은 '아니오'다. 노동자들이 마르크스가 주장한 생산관계에서 벗어나지 못하듯이 선수들 역시 전술에서 완전히 분리된 별개의 존재로 있을 수 없다. 심지어 '자유'라는 말까지 오류가 존재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선수들에게 별다른 지시를 내리지 않거나 '프리 롤'을 부여해도 선수들은 여타 다른 선수들과의 관계 속에서 뛸 수 밖에 없다. (포지션은 동료와의 관계, 상대팀, 공의 소유권, 공간을 고려하지 않는한 의미가 없다라고 주장하는 아리고 사키의 위대한 통찰력이 다시 한 번 주목받는다) 과연 선수들이 전술적 시스템으로부터 보다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절대적으로 아니다. 결코 선수들은 경기의 가장 기본적인 조건(전술)을 피할 수 없다. 말라가와 도르트문트 경기의 마지막 10분처럼 아주 혼돈 그 자체의 순간에도 선수들은 전술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출처 : http://www.theguardian.com/football/blog/2013/apr/10/th-question-players-tactics-jonathan-wils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