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Jonathan Wilson (본문은 2009년 3월 25일에 작성되었습니다)


잭 찰튼(Jack Charlton)은 처음으로 풀백이 11명 중에서 가장 중요한 포지션이라고 주장했던 사람이다. 팀의 공격을 이끌어가는 선수중 가장 핵심적인 선수가 풀백이라는 찰튼의 주장은 당시에 굉장히 이상한 소리로 받아들여졌다. 받아들이는 입장에선 너무나도 터무니없는 소리였다. 그런데 우리는 월드컵에서 우승하는 국가들이 공통적으로 굉장히 공격적인 풀백을 보유했다는 것을 기억할 수 있다. 1994년 브라질에는 조르지뉴(Jorginho)와 브랑코(Branco)가 있었고 1998년 프랑스에는 릴리앙 튀랑과 비센테 리자라쥐가 있었다. 2002년에는 호베르투 카를로스와 카푸가 있었고 2006년에는 지안루카 잠브로타와 파비오 그로소가 있었다.


월드컵 우승 국가에 공격적인 풀백이 좌우로 있었다는건 어쩌면 단순한 우연의 일치겠지만, 전술 싸움에서 풀백이 차지하는 중요성이 증가하고 있다는 것은 하나의 트렌드임이 분명하다. 유로 2008에서 스페인이 러시아를 상대로 승리를 거둔 경기를 기억해보자. 지금 이 경기를 기억하는데 있어서 '3:0 스코어와 안드리 아르샤빈의 부진'이 가장 많이 언급된다. 그러나 이 경기의 시작은 생각보다 팽팽했다.


러시아의 에이스였던 아르샤빈은 스페인의 마르코스 세냐의 압박으로 힘든 경기를 펼쳤다. 그러나 경기의 판을 뒤흔들었던 결정적인 순간은 34분에 있었던 다비드 비야의 부상이었다. 비야의 부상으로 비야가 빠지고 세스크 파브레가스가 투입되었으며, 스페인은 4-1-3-2 포메이션에서 4-1-4-1 포메이션으로 전환했다. 러시아의 유리 지르코프와 알렉산더 아뉴코프는 유로 2008 대회에서 적극적인 공격 가담으로 많은 찬사를 받았던 선수들이었는데 이제 이 선수들이 다비드 실바와 안드레아스 이니에스타를 더욱 직접적으로 마주하게 되어버렸다. 이니에스타와 실바를 직접 마주하게된 아뉴코프와 지르코프는 자연스럽게 공격 가담 횟수를 줄였고 이에 러시아의 유기적인 움직임은 사그라들었다. 스페인이 미드필드 구역을 장악하기 시작했으며 후반전에만 3골을 기록하게 되었다. 유로 2008 득점왕인 다비드 비야가 없는 상황에서 역설적으로 스페인은 최고로 효율적인 경기를 펼쳤다. 


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인터나치오날레 밀라노의 챔피언스 리그 16강 1차전을 떠올려보자. 전반전에 마이콘의 공격 가담을 제지하기 위해서 퍼거슨 경은 박지성을 선택했고 박지성은 마이콘의 전진을 막아냈다. 인테르의 미드필더들이 폭을 좁게 유지하여 위치해있었기에 파트리스 에브라에게는 앞으로 전진할 공간이 많았다. 11vs11의 싸움이었지만 경기장에는 유나이티드 선수가 1명 더 많은 느낌이었다.


하프-타임에 조세 무리뉴 감독은 형편없는 경기를 펼친 넬슨 리바스를 빼고 이반 코르도바를 투입했다. 수비가 조금 더 안정을 찾게되자 에스테반 캄비아소가 전반전보다 더 높은 위치에서 경기를 펼치게 되었고 -전반전에 캄비아소는 사실상 센터백이나 다름없었다- 따라서 하비에르 자네티가 에브라의 전진을 제어할 수 있게 되었다. 전반전에 비해서 후반전에는 양팀이 더욱 대등한 경기를 펼치게 되었다.



브라질에서의 근원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풀백 개념은 50년대 브라질에서 발전했다. 4-2-4 포메이션의 시초가 누구인지에 대한 논쟁은 굉장히 복잡한 논쟁거리들 중 하나지만, 이거 하나만큼은 확실하다. 1958년 월드컵에서 브라질을 제외하고는 그 어떠한 국가도 4-2-4 포메이션을 사용하지 않았다. 흔히 우리에게 브라질의 이미지는 '공격적 색채'가 강하다. 그런데 그런 브라질이 3명의 수비수를 활용하는 W-M 포메이션이 아닌 4명의 수비수를 배치하는 4-2-4를 채택했다는 것은 지금으로썬 놀라운 일이다. 그러나 3명의 수비수를 둔다고 공격적이고 4명의 수비수를 둔다고 수비적인 것은 결코 아니다. 포메이션 그 자체는 항상 중립적인 것이고 그 포메이션을 어떻게 활용하느냐 -공격적인 운영, 수비적인 운영- 에 팀의 색깔이 구분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4-5-1 포메이션은 그 자체만으로 결코 수비적이지 않다)


여기서 용어에 대한 정리를 확실하게 해두고 넘어가야할 것 같다. 잉글랜드에서 '풀백(full-back)'은 2-3-5 포메이션의 유물이다. 기존의 2명의 수비수들은 W-M 시스템으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센터 하프(centre-half)가 후방으로 내려왔기에 측면으로 빠지게 되었다. 그리고 또 한 명의 미드필더(left-half)가 밑으로 내려오게 되면서 기존의 수비수 2명은 보다 더 측면으로 빠지게 되었고 이렇게 잉글랜드는 백4 라인을 형성하게 되었다. (이것이 잉글랜드의 백4 라인 넘버가 오른쪽부터 2-5-6-3인 이유이다)


반면 브라질에선(스페인어권 국가에서 대체로 비슷할 것이다) 풀백(full-back)은 '측면(lateral)' 그 자체를 의미한다. 여기서 이야기하는 풀백의 정의에는 선수들이 배치되는 폭의 넓이만 설정되어있지 이 선수들이 위치하는 깊이(전방 혹은 후방)에 대한 이야기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그렇다. 브라질에서 '풀백'이란 단어는 그 선수가 측면에 위치한 선수라는 것을 의미하지 반드시 수비적인 임무를 가진 선수일 필요는 없다는 것을 내포한다. 브라질 축구 특유의 공격 지향성이 여기서 드러난다. 1949년 아스날은 브라질 투어를 시도했고 전반적으로 성공적인 투어를 펼쳤으나 브라질에서 굉장히 당혹스러운 경기를 맞이했다. 당시 아스날의 풀백이었던 로리 스콧(Laurie Scott)은 이렇게 아스날의 1949년 브라질 투어 경기였던 플루미넨세전을 회상한다. "갑자기 어떤 선수가 측면에서 나타나서 공을 잡고 슈팅을 시도하더라. 그래서 우리는 서로를 둘러보면서 누가 맨마킹에 실패했는지 서로를 탓하려고 했다. 그런데 우리는 그 누구도 자신의 마크맨을 놓치지 않았다는걸 알게 되었고 슈팅을 시도한 선수가 상대의 풀백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공격적인 플레이를 전혀 거리낌없이 시도했다."


그러나 풀백의 과도한 전진은 브라질 축구에 크게 도움되지 않은게 사실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전까지 브라질은 코파 아메리카 대회에서 고작 2회 우승에 그쳤었고 1950년 우루과이와의 월드컵 결승전에서는 2골 모두 레프트백인 비고데(Bigode)가 자신의 위치를 벗어나있었기 때문에 실점을 허용하고 말았다. 물론 4-2-4 포메이션이 브라질의 공격적 성향이 한껏 발휘될 수 있도록 촉진한 구조임에는 틀림 없다.


풀백 앞의 공간을 향해 풀백들이 전진하면 동시에 그들의 빈자리를 채워주는 임무가 수행되어야한다. 맨투맨(man-to-man)방어를 포기하면, 풀백은 수비에 부담감을 덜 느끼면서 전진할 수 있다. 한명이 전진하면 다른 3명의 선수들이 4명이 차지하고있는 공간을 커버해주면 되고 W-M 시스템에서 3명으로 수비했었기 때문에 이러한 유동성에는 크게 문제가 없었다. 1958년, 1962년 브라질이 월드컵을 차지하는데 있어서 좌우 풀백을 담당했던 닐톤 산토스(Nilton Santos)와 자우마 산토스(Djalma Santos)의 기여도는 종종 간과되고 있지만 이들은 브라질이 월드컵에서 우승을 차지하는데 있어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선수들이었다.



자연스런 진화


형태가 변화하기 시작했다. 브라질의 가린샤(Garrincha)는 계속해서 전방에 위치했지만, 반대편에 위치한 마리우 자갈루(Mario Zagallo)는 피치 위아래를 왕복(수비 가담)하면서 정통 윙어와는 다른 움직임을 보였다. 1966년 잉글랜드는 오늘날 4-1-3-2로 묘사되는 윙어없는 전술을 사용했다. 당시 잉글랜드의 풀백이었던 조지 코헨(George Cohen)과 레이 윌슨(Ray Wilson)은 브라질 선수들만큼 공격력이 화려하진 않았지만, 이들의 오버래핑은 잉글랜드가 공격을 풀어나가는데 아주 핵심적인 요소였다. 풀백의 오버래핑 시도는 굉장히 자연스러운 진화다 :  막아야할 상대팀 윙어가 없다면 풀백은 더욱 과감한 플레이를 펼칠 수 있고 동시에 만약 우리팀에 윙어가 없다면 풀백은 팀 공격의 폭을 넓히기 위해서 공격을 시도해야한다. 


1970년 브라질은 단 한명의 공격적인 풀백을 활용했다. 오른쪽 풀백인 카를로스 알베르토(Carlos Alberto)가 전진하고 왼쪽에는 에베랄두(Everaldo)가 수비 진영에 남아 밸런스를 맞추었다. 공격 가담을 좌우를 언밸런스하게 지시하는 것은 처음에 특이한 전술로 받아들였지만, 이것은 하나의 트렌드였다. 리베로(libero)를 배치한 다수의 유럽 팀들은 한쪽 측면에는 공격적인 풀백을 배치하면서 다른쪽에는 대인방어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정도로 수비적인 선수를 배치했다 : 지아친토 파케티(Giacinto Facchetti)와 타르치시오 부르니크(Tarcisio Burgnich)는 엘레니오 에레라(Helenio Herrera)의 인테르의 좌우 풀백이었고 파울 브라이트너(Paul Breitner)와 베르티 포그츠(berti Vogts)는 1974년 월드컵에서 우승한 서독의 풀백이었다. 1982년 월드컵 우승국인 이탈리아의 풀백은 안토니오 카브리니(Antonio Cabrini)와 클라우디오 젠틸레(Claudio Gentile)였다.


이 3가지 조합을 보았을 때, 우리는 왼쪽에 위치한 선수가 공격적인 선수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렇게 왼쪽에는 공격적인 풀백을 두고 오른쪽에는 수비적인 선수를 배치하는 것은 하나의 정석과 같은 행동이었다. 지안루카 비알리(Gianluca Vialli)의 주장은 이러하다 : 라이트백은 팀에서 가장 최악인 선수가 담당하는 포지션이다. 평균 이상의 신장을 갖춘 선수가 수비력이 좋다면 그 선수는 중앙 수비수로 기용될 것이다. 만약 볼을 잘 다룰 수 있는 선수면 그 선수는 미드필더로 활용될 것이며 자연스럽게 수비적이지도 않고 기술력도 두드러지지 못한 선수가 라이트백 자리를 담당하게 된다는 것이다. 레프트백은 특수한 케이스이다. 일단 왼발잡이 선수가 흔하지 않으며 왼발잡이들은 보통 재능있는 선수들이 많다. 물론 비알리의 주장은 20여년의 시간이 흐르면서 그 힘을 잃어버렸다.


윙어가 없는 시대에서 윙백이 출현하게 되었고 그런 변화는 풀백을 다시금 자유롭게 만드려는 시도였다. 그러나 1명의 스트라이커를 두는 전략적 움직임이 생겼고 3명의 중앙 수비수를 배치하는 것은 낭비적인 일이 되어 다시 백4로 돌아오게 되었다. 그래서 다시 풀백에게 공격적 중요성이 강조되기 시작했다. 풀백의 역할이 상당히 중요해졌고 이 때문에 다니 알베스가 세계 최고의 선수 중 하나라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이제 측면에만 머물러있는 윙어를 배치하는 팀은 없다. 4-2-3-1 포메이션은 경기장에 다시 드리블러가 등장할 수 있게 만들었고 드리블러들은 중앙에서 수적 열세가 생기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측면에만 머물러있지 않는다. 4-4-2 포메이션에서의 윙어들도 피치 높은 곳에만 위치해있지않고 후방으로 내려온다. 따라서 잭 찰튼의 주장처럼 피치 위에서 자신의 앞 공간이 허락되어진 선수는 풀백밖에 없다. 공간이 있는 곳에 기회가 있다(where there is space there is oppertunity). : 직접적으로 상대해야하는 윙어가 없다면 풀백은 전진해서 전방에서 수적 우위를 만들 수 있다. 유나이티드가 인테르를 상대로 산 시로에서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상대 풀백에 대응한다


문제는 풀백들에게 상당한 공격 의존도를 지닌 팀이라면, 유로 2008에서의 러시아처럼 위기를 맞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에슐리 콜과 조세 보싱와에게 과도하게 전진을 요구했던 첼시의 루이스 필리페 스콜라리 감독은 상대팀들이 두 선수가 올라오지 못하도록 미드필더 숫자를 늘리자 첼시에서 처참한 실패를 기록하고 말았다.


풀백의 공격력이 중요시되면서 박지성과 딕 카윗처럼 피치 전방에 위치하면서 수비적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선수들이 등장하고 있다. 이런 부류인 선수의 등장은 지난 몇시즌간 가장 두드러지는 변화가 아닐까 싶다. 엘레니오 에레라가 이끌던 인테르에는 오른쪽 윙어에 자이르(Jair)란 선수가 있었는데 이 선수는 '토르난티(tornante)'라고 불리는 역할을 수행했다. 토르난티는 영어로 표현하면 'returner'이며 토르난티의 역할은 클래식 카테나치오 전술에서 자신의 공격 가담을 억제하고 상대 풀백의 전진을 막아내는 것이었다. 박지성과 딕 카윗은 토르난티의 현대적 재림인 것이다.


공격적인 윙어와 공격적인 풀백이 대결을 펼치면 흥미로운 장면들이 많이 발생한다. 지난 2007-2008시즌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이 바로 그 적절한 예시이다. 모두가 알고 있듯이 에슐리 콜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를 상대로 좋은 경기력을 펼치기에 알렉스 퍼거슨 경은 호날두를 왼쪽 측면으로 보내서 마이클 에시엔과 대결을 펼치게 만들었다.


약 30분간 호날두는 철저하게 에시엔을 파괴했다. 개인기로 에시엔을 무너뜨렸을 뿐만 아니라 에시엔보다 더 높에 점프하면서 유나이티드에게 리드를 안겼다. 호날두가 영향력을 발휘하기 시작하니 호날두를 더 많은 선수를 활용해 방어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첼시는 그 반대의 전략을 꺼내 오히려 에시엔이 공격적으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첼시는 미드필드 진영에서 한 명이 더 있는 효과를 누렸고 경기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첼시는 호날두를 내버려두었지만 호날두의 영향력은 줄어들었다. 프랭크 램파드의 동점골도 사실 에시엔의 전진이 있었기에 가능한 골이었다. 첼시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대결 흐름은 에시엔과 호날두의 대결로 표현할 수 있는 경기였다.


잉글랜드가 크로아티아를 상대로 4:1 승리를 거둔 것 역시 윙어와 풀백의 대결로 결정지어졌다. 유로 2008에서 다니엘 프라니치의 적극적인 오버래핑은 오른발잡이인 이반 라키티치가 왼쪽에 위치하면서도 자연스럽게 중앙으로 이동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그러나 시오 월콧을 만난 프라니치는 수비도 엉망이었고 공격 가담도 수월하게 진행하지 못했다. 프라니치의 공격 가담 감소로 크로아티아의 공격적 위력이 죽어버렸고 프라니치는 월콧을 상대로 자신의 수비적 결함만 노출했다. 이 날 월콧은 해트트릭을 기록했다.


2010년 월드컵에서 -리오넬 메시, 프랭크 리베리, 웨인 루니, 페르난도 토레스, 사무엘 에토, 호비뉴-같은 포워드나 판타지스타들이 신문 1면을 장식할 것이다. 그러나 아마도 경기의 승패를 결정짓는 대결은 -세르히오 라모스, 필립 람, 알렉산더 아뉴코프, 파트리스 에브라, 다니 알베스, 에슐리 콜-이 위치한  풀백 자리에서 펼쳐질 것이다.




출처 : http://www.theguardian.com/football/blog/2009/mar/25/the-question-full-backs-football

수비형 포워드 시대가 도래한 것인가?

The Question 2016. 5. 24. 23:21 Posted by Seolskjaer




by Jonathan Wilson (본문은 2009년 6월 4일에 쓰여졌습니다)


바르셀로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그리고 리버풀은 공격 성향의 선수들이 조금은 덜 화려한 역할을 수행해야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클럽들이다.



바르셀로나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에서 소유권을 유지했던 방식에 대해 수많은 찬사가 쏟아지고 있다. 그 날 바르셀로나의 감독인 펩 과르디올라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에게 공이 없다면, 우리는 최악의 팀입니다. 우리는 공이 필요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피치 전방부터 압박을 시작하고 빠르게 공을 뺏어내고자 합니다."


바르셀로나 감독으로부터 이러한 말이 나왔다는 것은 별달리 놀랍지 않다. 1971년 리누스 미헐스가 바르셀로나의 지휘봉을 잡은 이후로 그들은  압박과 공격적인 오프사이드로 대변되는 클래식한 네덜란드식 축구를 구사했다. 1974년 바르셀로나에 합류한 브라질 수비수 마링뉴 페레스는 이렇게 회자한다. "내가 바르셀로나에 처음 도착했을 때, 미헐스는 센터백이 전진해서 오프사이드 라인을 형성하길 주문했다. 브라질에선 그러한 수비 방식을 당나귀 라인(donkey line)이라 부른다. 브라질 사람들은 그러한 수비 방식이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러한 수비 방식을 가져간다면, 한 명의 선수만 제쳐낼 경우 다른 선수들 모두를 제쳐낸 것을 의미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크라위프가 나에게 말했던 것은 네덜란드 사람들은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사람들처럼 플레이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더치 선수들은 공간을 좁히고 모든 선수들이 얇은 띠를 형성하길 원했다. 오프사이드 트랩을 활용하는 큰 전제는 피치를 누비는 팀의 간격을 좁히는 것이었다. 나에게 있어선 새로운 발상의 전환이었다. 브라질에선 오프사이드 트랩을 깨부수기 위해서 공을 살짝 띄워 상대 선수를 제치면 그만이었지만, 바르셀로나가 추구하는 공격적인 오프사이드 트랩은 그럴 수가 없었다. 개인 기량을 보여줄 충분한 시간이 없었거 때문이다."


토탈 풋볼로부터 영향을 받은 또 다른 한명의 감독인 아리고 사키는 센터 포워드와 센터백 사이의 간격이 25m 이내일 때 가장 이상적인 압박 조건이 형성된다고 믿었다. 그렇지만 현대 축구에서 오프사이드 규정 완화로 많은 팀들이 3선이 아닌 4선으로 포메이션을 운용하기 때문에 사키의 주장은 굉장히 이상적이라 볼 수 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4-1-2-3 포메이션으로 경기를 소화했던 바르셀로나에게 완패를 당한 것은 논쟁의 여지를 만들 것이다. 물론 유나이티드는 대런 플레쳐 없이 경기를 치러야했고 안데르손의 부진으로 유나이티드는 경직된 4-3-3 포메이션으로 경기를 치러야했다. 미드필더 선수들의 재능이 동등하다고 가정하더라도,  3각형은 언제나 1자 라인을 부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바르셀로나는 클래식 토탈 풋볼의 특징들(숏패싱, 선수들 사이의 유기적 움직임, 피치 높은 부분에서부터 공을 뺏어낸다)을 다시 한 번 축구장에 접목시켰고 그에 따라 위대한 업적을 만들어냈다. 과거보다 오프사이드에 대한 해석이 완화되면서 그들은 해결책을 제시했어야 했는데 그렇게까지 복잡한 것은 아니었다. 특히 마링뉴가 그랬던 것처럼 공격적인 오프사이드 라인 형성에 대한 신념을 버리는 것은 더욱 아니었다.


만약 수비수들이 완화된 오프사이드 규칙 때문에 뒷공간이 생기는 것을 염려해 피치 앞쪽으로 나오지 못하게 된다면, 공격수들은 공이 없는 상황에서 수비수가 되는 것이다. 이는 결코 새로운 시도가 아니다 - 안드리 셰브첸코의 수비 능력은 발레리 로바노브스키가 그를 '다방면적인 선수'라 칭찬하게 만들었다. 그렇지만 바르셀로나 공격수들에게 두드러지는 것은 그러한 수비력의 정도이다. 바르셀로나 공격수들은 볼-위너라고 부를 수 있을만큼의 수비력을 갖추고 있다.


공격수는 마치 예민한 예술가이며 그들의 예술 행위를 방해하는 부정적인 생각에 사로잡히면 안된다고 생각하는 전통주의자들, 특히 지미 그리브스처럼 공격수는 찬스가 생겼을 때 최고조의 상태에 있어야해서 최소한도로 뛰어야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생각에는 불쾌하게 여겨질 수도 있겠지만 통계 자료가 말을 해주고 있다.


다니 알베스는 지난 시즌 백4 라인에서 뛰고있는 그 어떠한 선수들보다 2배많은 파울을 저질렀다. Opta의 통계에 따르면, 티에리 앙리는 백4 라인에 위치한 선수들보다 더 많은 파울을 저질렀고 헤라르드 피케는 사무엘 에토보다 단 1개 더 많은 파울을 저질렀다. 리오넬 메시와 다른 수비수들과의 파울 횟수 차이는 1개에 불과했다. 앙리, 에토, 메시가 케빈 데이비스나 나이얼 퀸처럼 타깃맨 역할을 수행해 상대팀에게 프리킥을 많이 허용하는 충돌이 잦은 선수가 아니라는 것을 감안하면 이들이 기록하고 있는 수비적 데이터는 실로 어마어마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풀백은 오늘날 피치에서 더욱 전술적으로 중요해졌다. 왜냐하면 1994년 잭 찰튼이 말했듯이 풀백은 피치 위에서 자신 앞쪽에 공간이 허용되어진 유일한 포지션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에 대한 전술적 대응이 무엇일까. 그건 바로 공격수들, 특히 측면 공격수들이 수비적인 임무를 부여받는 것이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박지성을 수비적인 윙어로 활용하고 있다. 인터나치오날레와의 경기에서 박지성은 이러한 역할을 아주 훌륭하게 수행했는데 그는 풀백 마이콘의 공격적 위협도를 거의 완벽하게 차단해냈다. 분명 박지성이 공격적인 창조성이 부족한 것을 감안했을 때, 박지성을 지난 2년간 경기를 제대로 소화하지 못했으며 경기 초반에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던 실빙요와 상대하도록 지시내린 퍼거슨 감독의 선택은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의 이해할 수 없는 미스테리적 요소 중 하나이다.


박지성만 그랬던 것이 아니다. 웨인 루니도 수비적으로 활용되었는데 결승전만 보더라도 후반전에 카를레스 푸욜이 공격적으로 나설 것은 자명한 사실이었다. 특히 두번째 득점은 푸욜이 위치했던 오른쪽 측면에서부터 만들어졌다. 루니는 하프 타임 이후 위치를 바꾸기 이전까지 푸욜을 적극적으로 저지했다. 루니가 중앙에서 뛰면서 창조성을 불어넣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러한 주장은 최근 측면에서 수많은 득점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는 것이며, 루니가 수비적인 부분에서도 얼마나 우수한 선수인지를 무시하는 주장이다. 수비수들은 때때로 욕구를 억제하고 있는 포워드라 이야기 되는데, 이 때만큼은 루니는 공격을 억제하고 있는 레프트백이었다. 상대를 속일 수 있는 공격에 더 많이 참여할 수도 있었지만 그는 자신의 창조성을 발휘할 기회를 억제한 것이다.


챔피언스 리그 8강 1차전에서 알리 시소코의 등장으로 유나이티드는 포르투와의 첫번째 경기를 어렵게 치렀다. 2차전에서 알렉스 퍼거슨 경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를 센터 포워드로 기용하는 대신 루니를 오른쪽에 배치시켰다. 시소코와 포르투의 공격은 무력해졌고 유나이티드는 원정에서 다소간 편안하게 1:0 승리를 챙겼다. 그 이전시즌에도 루니는 유나이티드가 준결승에서 바르셀로나를 만났을 때, 메시를 무력화시키기 위한 또 다른 풀백이 되었었다.


호날두가 지난 07/08시즌에 42골을 기록했고 이에따라 유나이티드에서 가장 돋보이는 선수로 회자되었다. 그렇지만 이것을 기억해야한다. 지난 시즌 호날두가 선발 출전한 경기에서 유나이티드는 평균 2.38점의 승점을 기록했다. 테베즈가 선발일 때에는 2.44점이었고 루니가 선발일 때에는 2.52점이었다. 단순히 하나의 자료이며 이것만으로 모든 것을 평가하는 것이 무리라는건 인정하는 바이지만, 이러한 자료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벌어지는 중요한 임무들이 간과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루니가 중앙에서 더 많은 공격 작업에 연관되는 것이 보는 입장에선 더욱 짜릿할 수도 있지만 더욱 효과적인 경기 운영을 위해선 꼭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루니가 언제든지 덜 화려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준비가 된 이타적인 선수라는 것을 다시금 칭찬해야할 때인 것 같다.


리버풀에선 비슷한 역할을 딕 카윗이 수행하고 있다. 카윗은 그가 상대하는 풀백을 괴롭히고 그에게서 공을 뺏어낸다. 스티븐 제라드가 리버풀의 4-2-3-1의 중앙에서 계속해서 뛸 조짐이 보이기 때문에 라파 베니테즈가 카를로스 테베즈를 데려오고자함을 이해할 수 있다. 팀의 세컨 스트라이커로도 뛸 수 있는 선수이며 왼쪽에서도 뛸 수 있으며 그렇게 된다면 리버풀은 창조적인 3명의 선수를 2선에 보유하게 되는 것이다. 세 명의 선수 모두 열심히 뛰는 선수들이며 따라서 이들은 수비적 임무를 공유할 수 있게 된다.


수비적인 포워드로 인해 더 수비적인 위치에 있는 선수들이 창조성을 발휘할 수 있게 된다. 1982년 브라질팀의 세레조와 팔카오가 딥-라잉 플레이메이커 역할을 수행했고 이는 센터포워드였던 세르지뉴의 수비적인 기여도가 있었기에 가능했었다. 더욱 최근으로 예시를 가져오자면, 셰브첸코가 상대를 수비해주기 위해 후방으로 내려오면서 안드레아 피를로가 레지스타(중앙 미드필더이자 플레이메이커, 이탈리아어로 연출가)를 성공적으로 재조명시키는게 큰 역할을 했다. 프리미어리그에서는 마이클 캐릭과 사비 알론소가 피를로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챠비와 안드레스 이니에스타는 전방에 위치한 3명의 공격수들이 앞에서부터 적극적으로 태클을 해주지 않았다면 이처럼 효율적인 패스를 공급해줄 수 있었을까?


로바노브스키는 선수들의 다방면성, 선수들이 기꺼이 역할을 교환하는 시대가 올 것임을 예언했다. 그리고 우리는 로바노브스키가 예언하는 시대를 마주할 것으로 보인다. 몇몇 수비수들은 그들의 창조적인 퀄리티 때문에 중용받았지만, 이제는 그와는 반대로 수비적인 포워드의 시대가 도래할 것이다.



출처 : http://www.theguardian.com/sport/blog/2009/jun/04/defensive-forwards-barcelona-liverpool-manchester-uni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