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Michael Cox


월드컵 역사상 최고로 놀라운 결과가 4강전에서 나왔다. 좀처럼 보기 어려운 7:1이라는 스코어지만, 독일의 전반적인 경기 지배력을 고려했을 때는 아주 합당한 결과라고 말할 수 있겠다.


요하임 뢰브는 지난 프랑스와의 8강전에서 꺼내들었던 11명의 선수들을 그대로 기용했다. 


반면 티아구 실바의 경고 누적으로 인한 결장, 네이마르의 부상으로 루이스 펠리페 스콜라리 감독은 변화를 시도할 수 밖에 없었다. 티아구 실바의 자리는 단테가 대체할 것이 확정적이었으나 네이마르의 자리는 확실치 않았다. 그 자리에는 베르나르드가 선정되었다. 이전과 달리 오스카가 다시 전형적인 10번의 위치로 복귀했고 루이스 구스타보가 징계에서 풀려 복귀했다. 파울리뉴는 벤치에 앉았다.


이 경기는 4강전 경기였지만, 사실상 30분 내에 끝났던 경기였다. 30분이 지난 시각의 스코어는 5:0이었고 브라질은 그 이후로 추가적인 공황 상태에 빠지는 것을 막기 위해 뛰었을 뿐이다.



브라질의 왼쪽 공간을 공격한 독일


이 경기는 아주 확실한 독일의 승리였다. 그렇게나 잘한 독일을 단 한 곳만 칭찬하기도 뭣하지만, 독일의 모든 것은 다 독일의 오른쪽이자 브라질의 왼쪽 공간에서 만들어졌다. 여기서 브라질은 모든 것을 다 잘못 시도했다. 30분간 독일이 마르셀루의 뒷공간을 침투한 것은 수차례에 달한다. 그럼에도 마르셀루가 계속해서 공격적인 자세를 취했던 것은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자리를 지켰어야했지만 마르셀루는 계속해서 공격했다. 그렇지만 마르셀루가 공격할수록 독일의 공격이 브라질의 숨통을 조이고 있었다.


전반전에만해도 브라질의 왼쪽 공간이 비는 경우가 많았다. 하나 하나 되짚어 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3:17 - 마르셀루가 전방으로 나아가 토마스 뮬러 근처에 붙는다. 독일이 스로인을 얻어내는 순간 마르셀루는 잠시 정신줄을 놓고 말았다. 마르셀루는 자신이 있어야할 위치를 벗어나 있었고 이를 포착한 사미 케디라는 마르셀루가 비워둔 공간을 향한다. 뮬러가 케디라에게 공을 던져주고 빠르게 역습을 시도한다.





케디라는 공을 미로슬라브 클로제에게 연결했고 독일은 첫번째 역습 기회를 만들어냈다. 토마스 뮬러가 전광석화와 같은 속도로 마르셀루보다 더 빠른 속도로 공격을 시도해 독일은 역습을 슈팅으로 연결지을 수 있었으나 클로제의 터치가 좋지 못해 무산되고 만다. 여기서 뮬러는 좋은 기회를 날려버린 클로제에게 질책한다. 0:0 상황을 무너뜨릴 수 있는 기회를 상당히 빨리 잡았는데 살리지 못한 것에 대한 질책이었고 브라질 입장에서는 앞으로 이러한 상황을 조심해야한다는 일종의 경고였다. 






6:50 - 마르셀루가 미드필드 진영에서 공을 뺏겼다. 루이스 구스타보가 마르셀루의 빈 자리를 커버하려는 시도를 한다. 뮬러는 오른쪽 높은 위치에 있고 이번에도 비어있는 뒷공간을 향하고 있다. 케디라는 측면에서 크로스를 올릴 수 있는 위치를 잡은 뮬러에게 공을 전달했고 뮬러의 크로스는 외질을 향했다. 외질은 다시 케디라에게 공을 넘겼고 케디라의 슈팅은 동료인 토니 크로스에게 막혔다.





9:35 - 마르셀루는 전방 1/3지점에서 헐크로부터 패스를 받았다. 스텝오버 후 패스를 시도하려 했으나 공의 소유권을 넘겨주고 말았고 케디라와 뮬러가 공간을 파고들어갔다. 구스타보가 다시 한 번 마르셀루의 빈 자리를 커버하려했으나 케디라와의 신체 접촉에서 밀리고 말았다. 마르셀루는 빠른 속도로 복귀해 처음엔 뮬러, 나중에는 케디라에게 태클을 시도한다. 자신의 실수를 만회하기 위한 행동이었고 그는 동료들에게 미안하다는 싸인을 전했다. 





여기서 얻어낸 코너킥을 독일이 득점으로 만들어냈다. 독일 선수들이 뮬러의 마커였던 다비드 루이즈를 막았고 뮬러는 자유로운 상태로 득점을 만들어냈다.


13:22 - 뮬러가 케디라와의 원-투 플레이를 시도했고 마르셀루는 뮬러의 진로를 방해해 프리킥을 내주고 말았다. 


16:40 - 마르셀루의 공격적인 플레이로 브라질 입장에서는 좋은 득점 기회를 만들어냈다. 빠른 속도로 람을 제치는 듯 싶었으나 박스 안에서 람은 아주 훌륭한 슬라이딩 태클로 마르셀루의 공격 찬스를 무산시켰다.






18:35 - 마르셀루가 전방으로 전달해준 공은 제롬 보아텡에 의해 끊겼다. 마르셀루는 바로 복귀하지 않았고, 그 결과 뮬러는 다시 한 번 노마크 상태가 되었다. 크로스가 뮬러를 발견하고 공격 방향을 바꿨으나 공이 너무 높게 전달되고 말았다.






21:30 - 이번에도 마르셀루가 다시 전방에 위치하면서 뮬러에게 공간을 허용하고 말았다. 역습 상황이 발생했지만 이번에는 구스타보가 적절하게 뮬러를 방어했다.






21:50 - 람이 공격적으로 나가기 시작했고 헐크의 수비력 부족이라는 문제 역시 또 하나의 문제로 등장하고 말았다. 스로인 상황에서 공격에 가세한 람 덕분에 뮬러는 박스 안으로까지 침투할 수 있게 되었고 뮬러의 침투는 클로제의 두번째 득점으로 이어졌다. 


23:45 - 왼쪽 측면에 위치했던 외질은 자신의 동료들이 오른쪽에서 재미를 보고있다는걸 간파했다. 외질까지 오른쪽에 있는건 브라질 입장에서 너무나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외질은 오버래핑을 시도하는 람과 호흡을 맞췄고 람은 박스 안으로 들어오는 뮬러를 향한 컷백을 시도했다. 뮬러가 이를 슈팅으로 연결하지 못했지만, 공은 크로스에게 향했고 크로스는 3:0을 만들었다.


아래의 자료는 독일이 전방 1/3지점에서 시도한 패스를 나타낸다. 왼쪽은 전반 30분 동안의 패스 경로이고 오른쪽은 30분 이후부터를 나타낸다. 독일이 전반전 30분 동안 얼마나 오른쪽에 치우친 공격을 시도했는지를 알 수 있다.







압박


독일의 무자비하면서도 이기적이지 않은 역습은 브라질이 미드필드 지역에서 패싱 게임을 시도하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알제리와의 경기에서 극도로 위험했던 높은 수비라인은 프레드를 상대하기엔 너무나 완벽한 전술이었다. 발이 느린 프레드는 상대의 뒷공간을 향해 들어가는 움직임을 보여주지 못했다. 더불어 짧은 패스 연결을 원했던 프레드였기 때문에 독일은 기꺼이 라인을 올려 싸우길 희망했다.


독일 미드필더들은 상대를 압박했다. 크로스는 페르난지뉴를 마킹했고 케디라는 구스타보를 맡았다. 4번째 득점은 이러한 전술을 완벽하게 보여주고 있다. 크로스는 페르난지뉴를 압박해 케디라에게 공을 연결했고 케디라는 다시 크로스에게 공을 내주면서 4:0을 만들었다. 케디라는 다비드 루이즈가 자리를 비우면서 단테 혼자 중앙에 남았을 때 팀의 다섯 번째 득점을 만들어냈다.


너무나 쉽게 쉽게 골이 만들어졌다. 토니 크로스는 오늘의 독일이 가장 잘 집약되어진 선수라 할 수 있다. 기술적으로 우수하고 전투적이고 파워도 갖췄다.







독일의 압박은 브라질 수비수들이 공을 잡아도 딱히 건네줄 곳이 없게 만들었다. 구스타보와 페르난지뉴는 상대에게 계속해서 압박을 받고 있고 공을 받으려고하는 오스카는 너무나 앞쪽에 위치해있었고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보다 브라질 수비수들에게 멀리 떨어져있었다. 그가 자신이 공을 받으려면 후방으로 내려가야한다는 사실을 너무 뒤늦게 깨달았다는 것이 놀라울 뿐이다.






전반전 패스 기록을 살펴보자. 브라질 수비 진영에서 공이 돌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반면 독일은 수비 진영에서 공을 돌리기보다는 빠르게 앞으로 나아갔다. 이쯤부터였을 것이다. 브라질 선수들은 완전히 자신감을 잃었고 미드필더들은 공을 그저 쳐다볼 뿐이었다.







다비드 루이즈


오늘 다비드 루이즈가 보여준 경기력은 비판을 받아 마땅하다. 그는 오늘 경기 브라질 대표팀의 주장이었는데 하프 타임 이후로 이성을 잃은 듯한 모습은 주장으로서 적절하지 못했다. 그러나 전반전 브라질 선수들 중 가장 무언가 만들어낼 수 있는 선수는 바로 다비드 루이즈였다. 현실적으로 미드필더들에게 패스를 시도하는건 옳지 못하다는 결론을 내린 루이즈는 정확한 롱패스를 통해 전방을 향해 공을 전달했고 드리블을 시도하면서 전진했다.


루이즈의 롱패스는 주로 헐크를 향했다. 루이즈가 전진하면서 독일 선수들은 자신이 마크하고 있는 선수 한 명을 제쳐두고 루이즈의 드리블을 저지해야했다. 클로제가 분전하면서 루이즈의 전진을 막으려했다. 






무너진 브라질


전반전이 끝나기 직전 브라질 선수들의 응집력은 실종되다시피했다. 6명의 수비수, 4명의 공격수가 존재했을 뿐 그들을 연결하려는 사람은 아무도 존재하지 않았다. 6명의 수비수들은 4명을 향해 공을 전달해주지 못했고 4명의 공격수는 6명의 수비수들을 도와주지 않았다. 전형적인 공수가 분리된 팀이었고 월드컵 4강이라는 수준에 걸맞지 않는 플레이었다.


하프 타임 후 스콜라리 감독은 헐크와 페르난지뉴를 빼고 하미레스와 파울리뉴를 투입했다. 활기없이 뛰는 선수들에게 어느 정도의 활력을 불어넣고자 함이었고 브라질은 4-2-3-1에서 4-3-3으로 전환을 시도했다. 미드필더를 역삼각형으로 배치하면서 구스타보 앞에 파울리뉴와 하미레스를 세웠다. 아마도 브라질은 전반전부터 이러한 카드를 꺼내들어야했을지도 모른다. 브라질은 후반전이 시작된 이후로 마누엘 노이어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독일도 교체를 시도했는데, 가장 두드러진 교체는 클로제를 빼고 안드레 슈얼레를 투입한 교체이다. 슈얼레는 알제리전처럼 전방에서 뛰면서 뒷공간을 향해 빠르게 침투했다. 브라질이 경기 내내 약점을 노출했던 왼쪽 수비, 공격적일 수 밖에 없는 브라질의 입장을 고려한 적절한 교체였다. 슈얼레는 2골을 넣었는데 그 중 한 골은 람이 오른쪽에서 만들어낸 득점이었다.


스콜라리 감독은 프레드를 빼고 윌리안을 투입하면서 스트라이커 없이 경기를 풀어갔다. 90분에 터진 오스카의 득점은 큰 위로가 되지 못했다.



결론


이번 경기는 축구 역사에 길이 남을 승부가 되었다 : 개최국이자 월드컵 최다 우승국이 자국에서 열린 월드컵에서 1:7로 패배했다. 그것도 준결승에서. 사람들은 사건이 터진 후에는 모두 현명한 척 이야기를 한다. 이 경기에서 독일이 승리한 이후 많은 사람들은 독일은 언제나 이길만한 경기를 펼쳤다고 말하지만, 독일과 브라질 모두 50:50이라는 가능성을 두고 경기를 펼쳤다. 그리고 모두가 굉장히 타이트하고 긴장감 넘치는 경기를 예상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아주 놀라운 결과이다. 독일이 이긴 것에는 두가지 요소가 있다고 생각한다. 뮬러(람과 케디라)가 마르셀루의 뒷공간을 철저하게 공략했고 미드필드 진영에서 강력하게 압박을 시도한 것이 독일이 높은 수비 라인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왔다고 본다. 그로써 독일은 브라질이 미드필드 진영에서 패싱 게임을 펼치지 못하게 막았다.


독일 입장에서는 모든 것이 성공적으로 이어졌다. 그렇지만 독일은 모든 것을 철저하고 구체적으로 준비해 경기장에서 그걸 펼쳐낸 것이다. 후반전부터 독일은 결승전을 대비해 많은 것을 아껴두는 경기를 펼쳤고 교체 투입된 슈얼레는 자신이 선발 명단에 들어갈 수 있음을 증명했다.


브라질은 모든 것이 뜻대로 풀리지 않았다. 아마 베르나르드의 투입이 가장 뜻대로 풀리지 않은 선택이지 않았을까 싶다. 베르나르드 투입은 굉장히 과감한 선택이었다. 아마 그가 오늘 경기가 펼쳐졌던 벨루 호리존치 출신이고 지난 해 있었던 컨페더레이션스컵 대회에서 벨루 호리존치에서 굉장히 큰 환대를 받았기 때문이었을까? 네이마르의 인기를 벨루 호리존치에서 베르나르드로 대체하려했던 것이었을까? 결국 베르나르드 투입은 성공적이지 못했고 브라질 선수들 개개인 모두 좋은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


스콜라리를 향해 비난의 목소리와 오늘 있었던 선수 선발에 대한 의문이 계속될 것이다. 그렇지만 장기적으로 던져야할 질문은 진지하게 다루어져야할 것이다. '왜 브라질이 월드 클래스 수준의 공격수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것인가?' - 네이마르에 대한 상당한 의존도, 부진하고 있는 헐크와 프레드를 향한 선발 보장은 아름다운 축구의 고향이었던 브라질에겐 결코 옳지 못한 일이었다.




출처 : http://www.zonalmarking.net/2014/07/09/germany-7-1-brazil-germany-record-a-historic-thrashing/





by Jonathan Wilson


브라질 사람들은 1982년 월드컵에서 이탈리아에게 패배한 것이 위대한 플레이 스타일에 사망선고를 내렸다고 주장하지만, 이탈리아의 승리는 '시스템'이 몰락하고 있는 방식의 축구를 상대로 승리를 거둔 것을 의미한다. (원문은 2012년 7월 25일에 작성되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30년 전인 1982년 7월 5일, 지쿠는 경기가 끝나고 '오늘 축구는 죽었다' 라고 말했다. 바르셀로나에서 텔레 산타나의 위풍당당한 브라질은 이탈리아에게 패했고 월드컵에서 탈락했다. 당시 브라질은 과거의 브라질 스타일, 즉 1958년부터 1970년까지 월드컵 3연패를 기록했었던 시기의 유동적인 공격쪽에서의 움직임을 바탕으로하는 축구를 구사했다.

 

브라질이 자유로운 축구를 구사했다고 하지만 완전히 무질서한 스타일의 축구는 아니었다. 1970년의 브라질 대표팀은 상대팀에 대한 철저한 조사를 했고 상당한 밸런스를 맞춘 팀이었다. 오른쪽 풀백인 카를로스 알베르토의 오버래핑이 활발할 수 있었던 것은 왼쪽 풀백인 에베랄도가 상당히 수비적인 선수였기 때문에 가능했다. 카를로스 알베르토가 전진하면 팀 수비는 스리백으로 전환되었다. 자일지뉴는 대회 매 경기마다 안쪽으로 파고드는 모습을 보였고 카를로스 알베르토는 앞으로 전진해 자일지뉴의 빈 자리를 채웠다. 펠레와 토스탕은 미드필드 지역까지 깊숙히 내려오면서 공간을 창출해냈다. 클로드알도는 포백 앞에서 공을 따내는 역할을 수행했고 제르송은 클로드알도 옆에서 딥-라잉 플레이메이커 역할을 수행했다. 후방에 위치한 에베랄도가 수비쪽에서 탄탄한 모습을 보였기 때문에 왼쪽에 배치된 히벨리누는 전형적인 공격형 미드필더 역할을 수행했다. 

 

1970년의 브라질은 축구를 좀 하는 11명의 사내들을 단순히 모아둔 것이 아니었다. 분명히 이들을 맞물리게 만드는 세련된 무언가가 있었다. 그렇지만 1970년의 브라질에는 1974년과 1978년에는 볼 수 없었던 플레이의 자유로움과 유동성이 있었다. 1982년 월드컵을 앞두고 브라질은 다시 자신들의 예전 스타일로 돌아갔다 : 리드미컬한 미드필더, 순간적으로 폭발하는 속도, 자신의 개성을 표현하는 플레이


토니뇨 세레조의 징계로 소련전에 출전했던 팔캉은 인상적인 경기를 펼치면서 세레조의 복귀 이후에도 주전 미드필더 자리를 차지했다. 지쿠와 소크라테스까지 있던 브라질은 4명의 미드필더를 모두 창조적인 선수로 채웠다. 세레조와 팔캉은 모두 레지스타였고 그 앞에서 뛰는 지쿠와 소크라테스는 트레콰르티스타였다. 에데르는 보조 공격수로 육중한 덩치를 보유한 세르지뉴 근처에서 뛰었다. 세르지뉴의 피지컬은 동료 선수들에게 공간을 만들어주는데 아주 유용하게 활용되었다. 브라질의 포메이션은 중앙에 아주 강력한 기둥을 세운 것과 같은 4-2-2-2였고 측면은 풀백인 레안드로와 주니오르의 몫이었다. 일반적인 유럽 팀이라면 브라질의 포메이션을 두고 측면에 약점이 있다고 말하겠지만, 브라질은 엄청난 유기성과 볼다루는 재주로 부족함을 충분히 채웠다. 

 

브라질은 1970년 이후로 가장 명랑한 축구를 펼쳤다. 소련을 2-1로 이겼고, 스코틀랜드를 4-1, 뉴질랜드를 4-0으로 이겼다. 2라운드 결선경기에서는 디펜딩 챔피언인 아르헨티나를 손쉽게 물리치면서 이탈리아를 상대로 비기기만 하더라도 준결승에 오를 수 있었다. 아르헨티나를 손쉽게 이겼기에 모두가 이탈리아전은 그저 형식적인 수준의 경기가 펼쳐질 것이라 생각했다.

 

한편 이탈리아는 완벽한 카테나치오에서 벗어나 '이탈리아식 축구' 국면에 접어들었던 시기다. 그러나 여전히 조심스런 접근은 이탈리아 축구의 기본적인 전제였다. '에스타디 데 사리아' 경기장에서 벌어진 브라질과 이탈리아의 맞대결은 어떤 면에서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 : 공격 축구 vs 수비 축구


에레라의 카테나치오는 미드필드 지역의 수적 열세를 초래했고 그 결과 이탈리아는 네덜란드, 독일식 축구를 받아들여 리베로를 보다 더 올라운더 형태의 선수로 만들었다. 스스로 공을 가지고 나오거나 이탈리아가 공을 소유한 시점에는 미드필더처럼 뛰는 형태로 이바노 블라손이나 아르만도 피키같은 변형된 풀백의 형태로 보는 것보다 가에타노 시에라 같은 변형 인사이드 포워드에 가까웠다.


브라질과 달리 이탈리아는 저조한 성적으로 대회를 시작했다. 이탈리아는 첫번째 3경기를 모두 비겼다. 카메룬도 이탈리아처럼 3무를 기록했지만 이탈리아는 득점수에서 앞서 1라운드를 통과했다. 승부조작 징계에서 벗어나서 갓 돌아온 파올로 로시는 최고의 컨디션이 아니었다. 그러나 아르헨티나를 2-1로 꺾으면서 이탈리아 선수들은 자신감을 갖기 시작했다. 브라질의 골키퍼 발디르 페레스는 로시의 컨디션이 갑자기 살아날까봐 두렵다는 인터뷰를 했다. 아마도 페레스는 골키퍼보다 예언가의 능력이 더 뛰어났던 것 같다.

 

이 경기는 월드컵 역사상 최고의 경기였을까? 1954년 월드컵 우루과이와 헝가리의 경기가 최고라 주장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이 경기는 충분히 월드컵 최고의 경기라 할 수 있을 경기였다. 브라질과 이탈리아의 경기에는 공식집계 44,000명보다 더 많은 관중들이 들어왔다. 만약에 브라질이 선제골을 넣었더라면 이탈리아는 쉽게 의기소침해졌을 것이시스템과 정신력으로 브라질을 따라잡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탈리아는 5분만에 선제골을 기록했다. 브루노 콘티가 40야드를 뚫고 전진하여 안쪽으로 파고들어온 공격적인 레프트백 안토니오 카브리니에게 공을 넘겨줬고 카브리니는 로시에게 크로스를 올렸다. 로시는 자신을 신뢰해준 베아르초트 감독의 기대에 부응하는 헤딩골을 기록했다.

 

이제부터는 브라질의 공격 vs 이탈리아의 저항 형태의 경기가 펼쳐졌다. 그렇지만 7분만에 브라질이 동점골을 기록했다. 소크라테스가 지쿠와 원투패스를 활용하여 전진했고 골키퍼 디노 조프의 니어포스트쪽으로 골을 성공시켰다. 사람들은 브라질의 승리를 예감했지만 25분 후에 세레조가 큰 실수를 저질렀다. 세레조는 무심코 주니오르 쪽으로 애매하게 횡 패스를 시도했다. 이 때 로시가 공을 가로채서 발디르 페레스를 뚫고 골을 성공시켰다. 브라질은 당황했고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파올로 로시는 후반전에 3-1로 만들 기회를 살리지 못했고, 2분 뒤 브라질이 팔상의 강한 슈팅으로 동점을 만들어냈다. 또 다시 브라질이 기세를 잡아가는 듯 했다.

 

앞서 말했듯이, 브라질은 비기기만 하더라도 준결승에 올라갈 수 있었다. 그렇지만 골문을 걸어잠그는 것은 브라질의 방식이 아니었다. 브라질은 계속해서 공격을 시도했고 결국에는 그 대가를 치르게 되었다. 콘티의 코너킥이 어정쩡하게 처리되었고 마르코 타르델리의 빗맞은 슈팅이 로시에게로 갔다. 그리고 로시는 그것을 골로 연결시켰다. 브라이언 글렌빌은 "브라질의 화려한 미드필드진이 시험에 들었던 순간에 그들은 전방과 후방에서의 불완전함을 극복해낼 수가 없었다." 라고 말했다.

 

이 경기는 축구 역사의 한 단층을 차지하는 경기로서 이 날은 지쿠의 말처럼 축구가 죽은 날이 아닌 천진난만한 축구가 죽은 날이었다 : 즉, 이 경기 이후로 최고의 선수를 뽑아놓고 독려하는 것만으로는 승리하는 것이 불가능한 시기가 도래했고 시스템이 승리하는 날이 왔다. 물론 여전히 공격적인 재능을 뽐낼 여지는 남아 있었지만, 그들의 재능을 품어줄 수 있는 시스템 속에서 선수를 보호해주고 받쳐줘야만 하는 형식으로 축구는 변해갔다. 사실 이전부터 그랬는데 1970년 멕시코 월드컵에서 브라질 선수들의 자유로운 움직임이 먹힐 수 있었던 것은 멕시코의 더위와 높은 고도 때문이었다. 상대팀은 더위와 높은 고도로 인해 지속적으로 브라질 선수들을 강하게 압박할 수 없었다.

 

아이러니한 부분은 1982년에 이미' 이탈리아식 축구'는 시들어가고 있었다는 것이다. 가제타의 저널리스트인 루도비코 마라데이는 이렇게 말했다. 

 

"이탈리아식 축구가 한동안 효과를 보기 시작하자 1970년대 말부터 1980년대 초까지 이탈리아에서는 모두가 똑같은 플레이를 시도하게 되었다. 이는 이탈리아식 축구가 실패하는 이유가 되었는데 모두가 똑같은 시스템을 사용했고 모두가 똑같은 방식으로 등번호를 정하기 시작했다. 9번은 센터 포워드, 11번은 왼쪽에서 뛰는 세컨 스트라이커, 10번은 중앙에서 뛰는 공격형 미드필더, 7번은 토르난테(측면을 따라 내려와 수비를 돕는 윙어), 4번은 딥-라잉 미드필더, 8번은 링커맨으로 보통 중앙 왼쪽에 위치한 3번이 전진할 수 있는 공간을 남겨두었다. 대인마크 역시 쉽게 예측이 가능했다. 2번이 11번을 막으며, 3번이 7번을 막고, 4번이 10번을, 5번이 9번을, 6번은 스위퍼이며, 7번이 3번을 8번은 8번, 10번은 4번, 9번은 5번, 11번은 2번을 대안방어할 것이라 예측이 가능했다."

 

1982년 월드컵에서 브라질을 물리친지 1년 만에 독일의 함부르크는 1983년 유러피언컵 결승에서 유벤투스를 꺾으면서 '이탈리아식 축구'가 쉽게 예측이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해보였다. 5년이 지나서 아리고 사키가 이끄는 AC 밀란은 경기에 임하는 이탈리아의 방식을 한 단계 발전시켰다. 그렇지만 그 때도 분명했고 지금까지도 변하지 않은 사실은 시스템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다.

 

 

 


 

출처 : http://www.guardian.co.uk/football/blog/2012/jul/25/italy-brazil-19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