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Michael Cox


아마 2가지 이유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팬들이 조세 무리뉴를 위해 부르는 응원가를 들어봤을 것이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팬들이 프리미어 리그 팬들중 가장 시끄럽고 원정에서도 꾸준하게 열정적인 응원을 보내는 팀이기 때문이 그 첫번째 이유일 것이다. 2번째 이유는 가사에 대한 논쟁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1964년 비틀즈 열풍 속에서도 UK차트 정상을 차지했던 허만스 허밋(Herman's Hermits)의 "I'm Into Something Good"을 변형해 만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팬들의 무리뉴 응원가 가사는 간단하고 기억하기에도 쉽다. 지난 1월에 있었던 헐 시티와의 경기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팬들은 10분 가량 이 노래만 불렀다.


무리뉴 역시 포르투갈 TV와의 인터뷰에서 응원가에 대해 만족스러운 태도를 보였다. 무리뉴는 지금까지 공격적인 축구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DNA"의 중요성에 대해 반복해서 언급했는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팬들이 "조세는 유나이티드가 마땅히 보여줘야할 플레이를 선보이고 있어, 우리가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 생각해" 라고 노래를 부르는 것은 팬들이 명백히 그의 노력을 인정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부진의 시발점이었던 데이빗 모예스가 감독일 때, 서포터들은 "퍼기의 아이들처럼 경기를 하라!"고 외쳤다. 이러한 팬들의 외침은 어떤 특정한 방식으로 구단이 경기를 펼치길 원하는 것이며 무리뉴를 향한 예찬은 지금 그 특정한 방식으로 팀이 경기를 펼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방식"은 대체 정체가 무엇인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방식"은 무리뉴가 경기를 풀어가나는 방법과 어느정도까지 일치하는걸까? 현재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과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사이에서 연속성을 가지는 요소들을 찾아보면 그에 대한 대답을 알아낼 수 있을 것 같다.


알렉스 퍼거슨 경 체제 속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보여준 축구의 미(美)는 다소 과장되어 기억되고 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이따금씩 우수한 축구를 보여주면서 승리를 챙기는 팀이었다.  


퍼거슨은 부임 초기 양쪽 측면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빠른 템포로 경기를 펼쳐 공격 진영으로 공을 빠르게 전달하는 것에 포커스를 둔 축구를 펼쳤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전술에 변화를 줄 수 밖에 없었다. 26년간 한 구단의 감독으로 부임하기 위해서 경기를 풀어가는 기틀을 바꾸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선택이었다.


이후 퍼거슨은 보다 조심스러운 경기 운영, 실용적인 선택을 펼치기 시작했다. 가끔씩 퍼거슨의 팀은 수비적인 팀이기도 했다. 유럽 대항전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화려한 공격으로 상대를 무너뜨리기보다 효율적이고 절제된 승리를 추구하는 팀이 되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역습을 우선시하는 팀이었을 때 가장 뛰어난 퍼포먼스를 보여주기도 했고 모두가 기억하는 득점 역시 역습으로 만들어진 결과물이다. 역습이란 결과물 역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라인을 내리고 수비를 단단히 함으로써 만들 수 있었던 것이다.


2008/2009시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14경기 연속 무실점이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세운다. 14경기 연속 무실점 행진 속에서 대승도 있었지만 0-0 무승부가 2차례 그리고 1-0 승리가 무려 8번이나 있었다. 2시즌 후인 2010/2011시즌 아스날과의 FA컵 경기에서는 무려 7명의 수비수를 선발 출전시킨다. 웨스 브라운, 크리스 스몰링, 네마냐 비디치, 파트리스 에브라, 존 오셰이, 파비우, 하파엘이 나섰고 팀은 2-0 스코어로 승리했다.


퍼거슨의 유나이티드는 어떻게든 '승리'라는 임무를 완수하는 팀이었다. 퍼거슨은 평범하고 실용적인 선수에 크게 의지했는데 이런 평범하고 실용적인 선수들은 에릭 칸토나, 라이언 긱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와 함께 임무를 완수할만큼의 실력은 갖추고 있었다. 퍼거슨 체제는 브라운, 오셰이, 필 네빌, 대런 플레쳐, 대니 웰백 같은 선수들로 표현할 수 있다. 홈그로운 & 전술적 능력 뛰어나면서 다재다능한 & 특히 빅매치에서 결코 실망시키지 않는 활약을 펼치는 알토란같은 선수들로 팀이 구성되어 있었다.


브라이언 맥클레어는 퍼거슨이 지도한 선수들 중 가장 저평가받는 선수이자 방금 언급한 트렌드를 만든 트렌드세터라 할 수 있다. 1987년 영입된 맥클레어는 데뷔시즌에 리그 24골을 넣는 뛰어난 공격수였다. 하지만 맥클레어는 뛰어난 전술적 능력으로 점차 후방에서 경기를 뛰기 시작했다. 퍼거슨은 맥클레이럴 "두뇌가 명석한 선수"라고 불렀는데 1994/1995시즌 리버풀과의 경기는 맥클레어의 진정한 가치를 보여주는 한 판이었다.


유나이티드는 리버풀에게 완전히 압도당하고 있었고 존 반스는 경기를 지배하고 있었다. 0-0 스코어로 경기가 진행되고 있는 59분에 퍼거슨은 맥클레어를 투입했다. 맥클레어는 경기를 지배하던 반스를 무력화시켰을 뿐만 아니라 발이 느린 얀 몰비의 약점을 공략했다. 맥클레어 투입 이후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경기를 지배하기 시작했고 맥클레어는 팀의 2번째 골을 넣으며 2-0 승리를 이끌었다.


이날 퍼거슨이 아주 중요한 전술 수업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이후 퍼거슨은 중요 경기에서 전술적 능력이 뛰어난 선수를 투입했다. 퍼거슨 체제 말기에선 박지성이 다재다능한 선수 카테고리에 속해있다고 할 수 있다. 아마 현재 유나이티드 스쿼드에서 비슷한 범주에 속할 수 있는 선수는 제시 린가드일 것이다. 린가드가 무엇을 잘하는지 콕찝어 말하긴 어려우나 린가드는 전술적 통제가 잘 되고 공을 효율적으로 다루며 다양한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는 자원이다.


린가드의 가장 대표적인 특징 아니지만, 미들즈브러전에서 우리가 목격했듯이 뜬금없는 벼락슈팅으로 골을 기록하기도 한다. 린가드 개인의 재능은 뛰어나지 못하지만 린가드는 주어진 임무를 완수하는 선수다. 피치 위 린가드의 노력이 우리의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 것일 뿐이다. 린가드는 피치 위 특정 지역에서 팀이 승리할 수 있게 해줄 자원이다.


린가드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유스 시스템이 만들어낸 선수, 그것도 앞서 언급한 맥클레어가 아카데미 총괄일 때 나온 선수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또 린가드는 니키 버트의 지도를 받기도 했다. 또한 영상을 찾아보면 1군 선수인 존 오셰이와 함께 축구를 배운 것도 알 수 있다. 맥클레어, 버트, 오셰이까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이런 타입의 선수를 양성하고 있다. 


이것이 그 어떤 것보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방식" 을 가장 잘 표현한다. 만약 린가드가 아스날 선수였다면 시오 월콧과 알렉스 옥슬레이드-체임벌린의 상황처럼 린가드를 장기적으로 어느 포지션에서 활용해야 하는가에 대해 끊임없는 의심을 받게 될 것이다. 하지만 유나이티드는 당장 다가오는 경기에서 린가드를 어디다 써야할지 집중하고 또 그를 가장 잘 활용할 수 있는 이상적인 감독의 지도 아래서 선수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무리뉴는 지금까지 공격적인 선수에게 수비적인 임무, 전술적인 규율을 부여했다. 린가드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방식과 조세 무리뉴 방식을 모두 보여주는 선수일 것이다. 두 방식이 점차 유사성을 보인다면, 많은 사람들이 무리뉴의 선수들이 "유나이티드가 마땅히 보여줘야할 방식으로 경기를 한다."고 자연스레 받아들일 것이다.




출처 : http://www.espnfc.co.uk/english-premier-league/23/blog/post/3087178/sir-alex-ferguson-jose-mourinho-and-playing-the-way-manchester-united-should



2013년 5월 은퇴를 선언하기까지 잉글랜드 축구 클럽이자 스포츠계에서 가장 가치있는 프랜차이즈 구단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26시즌을 보낸 알렉스 퍼거슨 경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감독 중 하나다. 26년간 알렉스 퍼거슨 경은 13차례 리그 타이틀과 25차례 컵대회 우승을 이뤄냈다. 퍼거슨은 단순한 감독 그 이상의 존재이다. 그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조직의 중심이었고 1군 관리에서 그치지 않고 구단 전체를 관리했다. 과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CEO였던 데이빗 길은 "스티브 잡스가 애플이었다면, 알렉스 퍼거슨 경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다." 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기초에서 시작하라


1986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부임한 퍼거슨은 구단의 유스 프로그램을 현대화함으로써 장기적인 구조를 형성했다. 그는 9살 정도되는 재능있는 어린 선수를 발굴하기 위해 2개 부서를 만들었고 많은 스카우터를 고용했다. 데이빗 베컴은 이 시스템에서 성장한 선수들 중 가장 잘 알려진 선수다. 가장 중요했던 선수는 아마 라이언 긱스일 것이다. 퍼거슨은 1986년 13세 불과했던 삐쩍마른 긱스를 발견했고 긱스는 이제 영국 축구 역사상 가장 화려한 커리어를 지닌 선수가 되었다. 39살 나이에도 긱스는 여전히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1군 선수로 활약 중이다. 오랫동안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자리를 지켜온 폴 스콜스와 개리 네빌 역시 퍼거슨의 유스 프로그램 투자 결과였다. 베컴과 긱스, 스콜스, 네빌은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핵심 선수였다. 오늘날 구단의 정체성을 형성하는데 있어서 퍼거슨의 공로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어린 선수들에게 상당히 과감한 투자가 이뤄졌다고 할 수 있는데 이는 당시 만연해있는 상식에 반하는 것이었다. 저명한 TV 코멘테이터는 "애송이들로는 우승할 수 없다(You can't win anything with kids)."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퍼거슨은 상당히 체계적인 방법으로 이 과정을 진행했다. 퍼거슨은 단순히 팀을 구상하는 것과 구단을 구상하는 것의 차이점에 대해 말한다.


SAF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부임했을 때, 저는 오로지 한가지 사항에 대해서만 생각했습니다. 축구 구단을 만들고 싶었고 (buildinga football club) 기반부터 확실히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렇게하면 1군에 선수들이 막힘없이 지속적으로 공급이 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이러한 시스템 덕분에 어린 선수들은 같이 성장하게 되며 결속력을 다지고 끝내 피치 위에서 정신력으로 발현됩니다.


처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왔을 때, 1군에 24세 이하인 선수가 단 1명 뿐이었습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정도되는 구단에게 그런 일이 있는게 가당키나 한 일입니까? 구단의 역사를 돌아봤을 때, 어린 선수들에게 포커스를 두는 것이 적합하다고 생각했으며 이전의 경험을 통해 어린 선수들로도 우승이 가능하다고 판단했습니다. 또한 젊은 선수들과 함께하는 것에도 자신이 있었습니다. 저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다시 성공의 길로 돌아가기 위해 유스 시스템을 개혁하는 것이 중요하단 최종 결론을 내렸습니다. 물론 저의 판단을 두고 용감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행운은 그런 담대함을 좋아합니다.


새롭게 부임한 감독의 99%는 살아남으려면 승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새로운 감독은 경험이 풍부한 선수들을 영입하곤 합니다. 이런 경향은 프로축구가 결과주의적 산업이기에 발생하는 것이죠. 어떤 구단에서는 3번 연속 패배하면 경질됩니다. 새로운 형태의 이사진과 구단주가 등장한 오늘날 축구계에서 인내심을 가지고 감독에게 팀을 만들기까지 4년의 시간을 줄 수 있는 곳은 많지 않을 것 입니다.


당장 눈앞의 경기를 승리하는 것은 단기적인 소득입니다. (당장은 이겼지만) 다음 경기에서는 질 수도 있습니다. 구단을 세우는 것은 안정성과 일관성을 가져다 줍니다. 1군에서 눈을 떼는게 쉽지는 않겠지만, 우리 구단은 유스에 투자함으로써 1990년대와 2000년대에 큰 성공을 이뤄낼 수 있었습니다. 젊은 선수들은 구단의 정신이 됩니다.


저는 어린 선수들이 성장하는 것을 볼 때 큰 자부심을 느낍니다. 감독이란 자리는 스승과 마찬가지로 누군가가 더 발전하도록 영감을 주는 자리입니다. 더 훌륭한 기술을 사용할 수 있도록, 승리자가 되도록, 더 좋은 사람이 되도록 가르친다면 선수들은 어디서든지 삶을 이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어린 선수들에게 기회를 주게되면 팀의 수명이 늘어날 뿐만 아니라 그 선수의 구단에 대한 충성심도 성장하게 할 수 있습니다. 선수들은 항상 자신에게 첫 기회를 준 감독을 기억합니다. 감독이 선수 편이라는 것을 그들이 느끼는 순간, 선수들은 감독이 제시하는 방법을 수용하게 됩니다. 가족이나 다름없는 공동체를 키우는 것 입니다. 젊은 선수들에게 성공할 수 있는 기회와 관심을 준다면, 선수들은 분명 감독을 깜짝 놀라게하며 기대에 부응할 것 입니다.



과감하게 팀을 리빌딩 하라


큰 성공을 거두고 있던 시기에도 퍼거슨은 팀 개편을 진행했다. 그의 팀은 크게 5세대로 구분 되었으며 끊임없이 우승을 차지했다. 퍼거슨의 결정은 팀의 리빌딩 사이클, 선수의 사이클을 정확히 파악하는 감각에 기반해 이루어졌다. 팀내 선수의 가치가 어느 정도인지 아주 명확하게 파악해냈다. 선수단을 관리하는 과정에서 퍼거슨은 개인적 친분까지 있는 선수를 제외시켜야하는 상황을 마주하게 된다. 라이언 긱스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감독님은 항상 미래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팀을 강화시키는데 무엇이 필요한지, 어떤 부분을 새롭게할지 알고 있었고 그걸 기막히게 파악하는 재주까지 있었습니다."


지난 10년간 선수들 이적 자료를 분석해본 결과, 우리는 퍼거슨이 굉장히 독특하면서 효율적인 '포트폴리오 매니저'라는 결론을 내렸다. 선수 영입에 있어서 퍼거슨은 전략적이고 이성적이었으며 체계적이었다. 지난 10년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5차례 리그 우승을기록했는데 선수영입에 첼시, 맨체스터 시티, 리버풀보다 더 적은 돈을 투자했다. 퍼거슨은 젊은 선수를 신뢰했다. 경쟁자들에 비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25살 이하 선수를 굉장히 높은 비율로 영입했다. 또한 아직 여전히 미래가 밝은 선수를 판매함으로써 많은 수익을 올릴 수 있었다. 그리고 퍼거슨은 자신이 영입한 젊은 선수들을 스타의 자리로 올려놓았다. (때로는 퍼거슨도 슈퍼스타 영입에 돈을 지불한다. 2012/2013시즌 29살 로빈 반 페르시 영입을 위해 $35m을 지불했다) 젊은 선수들에게는 시간과 성공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했다. 그리고 나이든 선수는 어느 정도 제값을 받을 수 있을 때 판매했다. 한편 나이를 먹었음에도 정상급 기량을 유지하고 있는 소수의 베테랑들은 잔류시켜 구단의 문화를 이어갈 수 있도록 했다.


SAF : 우리는 선수단을 3가지 단계로 구분했습니다 : 30세 이상, 23~30세, 23세 이하. 우리는 어린 선수들이 성장하면서 고참들이 세워둔 기준에 도달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성공적인 팀에도 사이클이란 것이 존재하며 4년 정도 지속되면 변화가 필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물론 그것이 틀렸다고 입증하길 원했습니다. 우리는 3~4년 후의 팀을 그려보고 그에 따른 변화를 시도했습니다. 유나이티드에 오랫동안 머무를 수 있었기에 저는 추후 계획을 짤 수 있었습니다. 어느 누구도 제가 팀을 떠날 것이라 예상하지 않았습니다. 그 점에서 저는 굉장히 운이 좋았던 사람입니다.


리빌딩의 목표는 나이든 선수에서 젊은 선수로 이동하면서 점진적으로 발전하는 것 입니다. 주로 2가지에 관련한 문제입니다. 첫번째 문제는 우리가 누구를 영입하는가 입니다. 둘째는 기존 선수들 노쇠화의 신호를 포착하는 것 입니다. 라이언 긱스, 폴 스콜스, 리오 퍼디난드 같은 선수들은 오랫동안 뛸 수 있지만, 확실히 나이는 문제입니다. 정말 어려운 점은 좋은 녀석임에도 불구하고 이 팀에서 내보내야할 때 입니다. 하지만 (하락에 대한) 모든 증거는 피치 위에 있습니다. 기량이 떨어지고 있다는 것을 파악하면 2년 정도 후에 어떻게 될지 스스로 물어봐야 합니다.



기준을 높게 잡고 모두가 그 기준을 따르게 하라


퍼거슨은 선수들에게 가치관을 심어주는 것에 대해 상당히 열정적으로 말했다. 퍼거슨은 선수들이 항상 더 나은 것을 추구하고 결코 포기하지 않는 마음가짐을 가지길 원했다. 즉 선수들을 승리자(winner)로 만들고자 했다.


퍼거슨의 승리에 대한 강한 열망은 선수 시절 경험에서 우러나왔다. 스코틀랜드의 소규모 구단에서 성공적인 커리어를 보낸 퍼거슨은 스코틀랜드의 명문 구단이자 자신이 어릴적부터 응원해온 레인저스 입단에 성공하는데 감독의 우선순위에서 밀려 3년 후 레인저스를 떠나게 된다. 퍼거슨은 레인저스에서 스코티시컵 준우승 이외의 성과를 이뤄내지 못했다. "당시의 역경 때문에 결코 포기하지 않겠다는 굳은 결의를 하게 되었습니다." 라고 퍼거슨이 말한다.


퍼거슨은 선수들에게도 그런 마음가짐을 요구했고 그 정신력은 점차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란 집단 내로 퍼졌다. 선수들은 동료가 최선을 다하지 않는 모습을 목격하면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슈퍼스타들도 결코 예외는 없었다.


SAF : 우리가 했던 모든 것들은 축구 구단으로서 세워둔 기준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팀을 만들어가는 과정, 팀을 준비하는 과정, 동기부여를 위한 논의, 전술적 논의에서도 모두 마찬가지였습니다. 우리는 형편없는 트레이닝 세션을 결코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트레이닝장에서의 모습이 결국 피치 위에서 나타납니다. 우리는 집중력이 흐트러진 트레이닝을 시행한 적이 없었고 모든 트레이닝 세션은 충분한 퀄리티 속에서 진행되었습니다. 훈련 속에서도 높은 집중력, 속도, 상위 수준의 퍼포먼스를 요구했습니다. 그렇게 우리 선수들은 매 훈련마다 성장했습니다.


선수의 기대치도 끌어올려야 했습니다. 선수들은 결코 포기하는 법이 없었습니다. 저는 선수들에게 "만약 1번이라도 포기하면, 다음번에 쉽게 포기하게 된다." 라고 말했습니다. 이러한 직업 윤리 및 활기찬 에너지 모두 이 구단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저는 항상 첫번째로 출근하던 사람이었지만, 지금은 수많은 스태프들이 제가 아침 7시에 도착하기 전부터 출근해 있습니다. 제가 왜 일찍 오는지 알아서 그런 것이겠죠. 일찍 와서 해야할 일이 있습니다. 또한 모두들 "감독님이 하면, 나도 할 수 있어."란 생각을 했으리라 봅니다.


저는 끊임없이 선수들에게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도 재능' 이라 말했습니다. 스타 선수들에게는 더 높은 수준의 노력을 원했습니다. "너가 최고 수준의 선수라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라고 말했고 선수들은 제 요구에 응답했습니다. 그게 그들이 슈퍼스타인 이유이죠. 그들은 훨씬 더한 노력을 합니다. 사람들은 에고(ego)가 강한 슈퍼스타가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에고가 강하면 승리자가 되길 원하며 경기에서 승리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들을 합니다. 호날두를 비롯해 베컴, 긱스, 스콜스 등이 상당한 시간을 훈련에 매진했습니다. 저는 창문을 열고 토요일에 경기가 있으니 가서 휴식을 취하라고 소리쳤지만 그들은 더 훈련하길 원했습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선수가 되는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걸 알고 있는 것이겠죠.



절대로 통제권을 잃지 말아라


"30명 모두가 백만장자인 선수들을 다룰 때 결코 통제권을 잃어서는 안 됩니다. 저의 통제권과 권위에 도전하는 선수들을 처리해야만 했습니다." 라고 퍼거슨이 말한다. 퍼거슨은 규범을 벗어난 선수들에 강하게 응징을 했다. 만약 선수가 정해놓은 선을 벗어나면 그 때는 팀 퍼포먼스에 피해가 온다. 퍼거슨은 그렇게 방해가 될 선수들을 다 내보냈다. 2005년 공개적인 자리에서 팀 동료들을 비난한 로이 킨이 오랫동안 주장을 맡아온 인물이었음에도 퍼거슨은 그와의 계약을 즉시 해지했다. 다음해 벤치행에 불만을 품었던 팀내 최다 득점자 루드 반 니스텔루이마저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시켰다.


강경하게 대응하는 것은 퍼거슨이 취한 전략 중 하나에 불과하다. 신속하게 사건을 처리하여 손쓸 수 없는 상황이 오는걸 막았다. 신속한 처리 역시 통제권을 유지하는데 중요하다. 


SAF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감독이 선수들에 의해 통제를 받는 날, 다른 말로 표현해서 선수들이 훈련, 휴식일, 팀내 규율, 전술에 간섭하는 순간이 온다면 그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지금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완전 다른 팀일 것 입니다. 유나이티드에 부임하기 전, 저는 어느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감독의 존재감은 다른 누구보다 커야만 합니다. 그것이 핵심이죠.


특정 선수가 드레싱룸 분위기, 팀의 퍼포먼스, 선수단과 스태프 지휘권에 영향을 미친다면 그 선수를 잘라내야만 합니다.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세계 최고의 선수라도 상관 없습니다. 어떠한 개인보다 구단의 장기적인 그림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감독은 구단에서 가장 핵심적인 인물이 되어야만 합니다.


잉글랜드 구단이 감독을 여러차례 바꾸기 때문에 드레싱룸에서 선수의 영향력이 생깁니다. 그건 매우 위험합니다. 감독이 팀을 통제하지 못한다면 그 감독은 결코 자리를 유지할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는 위치를 확보해야하고 결정권이 감독에게 있다는 것을 선수들에게 인지시켜야만 합니다. "어떻게 해야 선수들이 나를 좋아할까?" 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것은 일처리를 더욱 복잡하게만 만들 뿐입니다. 감독 자리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성공리에 해낸다면, 선수들은 자연스럽게 감독을 존중합니다. 


선수가 부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때 빠르게 대처했습니다. 일부 사람들은 제가 충동적으로 결정했다고 말하지만, 빠르게 마음 먹는 것이 결정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결정을 내릴지 고민하면서 잠자리에 들 필요가 있을까요? 이미 마음의 결정을 내린 상태로 다음날 출근하여 팀의 규율을 바로잡기 위해 필요한 조치를 취합니다. 자신이 내린 결정에 대한 확신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고 마음을 먹었다면 그대로 시행하는 것이 맞습니다. 어려운 길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며 팀내 감독의 영향력을 입증하기 위해 일부러 기회삼는 것도 아닙니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 통제권을 행사하고 권위를 바로세우는 것 뿐입니다.



상황에 맞는 메세지 전달


선수들에게 자신의 결정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퍼거슨은 항상 상황에 맞게 단어를 선택하려 노력했다. 선수는 선발 출전을 예상하고 있으나 실제로 퍼거슨이 명단에서 제외시키기로 결정했을 경우, 퍼거슨은 아주 섬세하게 그 이유를 설명했다. 퍼거슨은 "내가 너를 제외시키는 것이 실수하는 것일 수도 있어. 하지만 나는 지금 구상한 라인업이 오늘 경기에 아주 잘 들어맞는다고 생각해." 라고 말했으며 제외되는 선수들에게 자신감을 주고자 노력했다. 오로지 전술적인 이유일 뿐이며 더 중요한 경기에서 뛸 수 있을 것이라 말했다. 


경기를 준비하는 트레이닝 세션에서 퍼거슨과 그의 보좌진은 긍정의 힘을 강조했다. 미디어는 하프타임과 경기 후 퍼거슨이 불같이 선수들을 혼내는 것을 조명하지만, 퍼거슨은 굉장히 다양한 방법으로 선수들을 다뤘다. "소리지르는 것만으로 선수들을 다룰 순 없습니다. 효과도 없구요." 라고 퍼거슨이 말한다. 퍼거슨 밑에서 뛰었던 앤디 콜은 "최선을 다했음에도 경기에서 패배한다면, 알렉스 경은 선수들에게 '너희는 최선을 다했다'라고 다독여줍니다. 그 때는 문제될 것이 없어요. 하지만 나사빠진 듯이 경기하고 패배하면 그 때는 귀를 조심하는게 좋을 것 같네요." 라고 묘사했다.


SAF : 쓴소리 듣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강한 비판 속에서 성장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고 생각합니다. 다수가 격려 속에서 성장합니다. 그래서 가능한 선수들에게 격려를 해주고 싶었습니다.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선수들도 "잘 했어(Well done)"이란 표현을 좋아합니다. "Well done"은 2가지 단어로 말할 수 있는 최고의 표현입니다. 애써 최상의 표현을 할 필요는 없습니다.


선수가 기대치를 충족시키지 못했을 때 드레싱 룸에서 실수를 지적해야만 합니다. 바로 이 때 올바른 방식으로 질책해야만 합니다. 저는 경기 이후 바로 실수를 지적합니다. 월요일까지 기다릴 것도 없습니다. 경기 후 즉시 지적하고 그 자리에서 끝냅니다. 이후에는 다음 경기를 집중해야하며 선수를 영원토록 비판하지 않습니다.


일반적으로 경기를 앞둔 상황의 대화에선 우리의 기대치, 스스로에 대한 선수들의 믿음 등을 주로 이야기 합니다. 저는 노동자 계층의 사고관에 대해서 자주 언급합니다. 선수들은 노동자 계층이 아닐지라도 아마 그들의 아버지나 할아버지는 노동자 계층이었겠죠. 저는 선수들에게 직업 윤리를 가지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고 강조했고 노동자 계층 이야기를 통해 선수들이 어느 정도 위치인지 상기시켰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선수들의 자부심을 향상시키는 효과를 볼 수 있었습니다. 동료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으며 서로를 신뢰하면서 경기하라 주문했습니다. 그런 정신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란 팀의 특징을 형성하는데 도움을 준다고 말했습니다.


하프타임에는 약 8분 정도 선수들에게 메세지를 전달할 시간이 주어집니다. 그래서 그 시간을 잘 활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경기에서 이기고 있다면 모든 것이 수월하게 흘러갑니다. 집중을 요구하고 안일하게 경기하지 말라고 주문하면 됩니다. 또한 굉장히 사소한 부분까지도 이야기해줄 여유가 있습니다. 하지만 경기에서 지고 있다면, 그 8분 사이에 임팩트를 남겨야 합니다. 저는 지고있는 상황에서 우리팀에 대해 우리팀의 강점에 대해 집중해 이야기 합니다. 하지만 지고 있는 원인에 대해서도 분명히 수정을 해야합니다.


훈련장에서 우리는 전술적으로 굉장히 영리한 선수들을 데리고 축구팀을 만들고자 노력합니다. 너무 유하게 선수들을 다룬다면 목표치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적정 수준의 긴장감이 있어야만 합니다. 하지만 분위기가 너무 무거워서도 안 됩니다. 그러면 선수들은 항상 두려움에 떨게되고 이 때도 경기를 잘 소화할 수 없습니다. 나이를 먹으면서 화내는 것이 매번 통하지 않는다는걸 알게 되었고 적절한 시점을 포착해 화를 표출해야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감독은 상황에 따라 다른 역할을 수행해야만 합니다. 때로는 의사가 되어야하고 때로는 선생이 때로는 선수들의 아버지같은 존재가 되야만 합니다.



승리를 위한 준비


퍼거슨의 팀은 경기가 끝나가는 시점에 승리를 낚아채는 뛰어난 능력을 지니고 있다. 지난 10년간 자료를 분석해본 결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하프타임 무승부 상황, 75분 기준 무승부인 상황에서 다른 영국 구단보다 우수한 성적을 기록 중이다. 하프타임에 선수들을 자극하는 팀토크, 올바른 전술적 변화가 승리를 만들어내는데 의심할 여지없이 큰 기여를 했겠지만, 오직 그것만이 전부는 아닐 것이다.


경기에서 지고있는 상황에서 수많은 감독들은 선수들에게 전진하라고, 공격하라고 지시를 내린다. 그런 상황에서 퍼거슨의 전술적 접근은 굉장히 저돌적이었고 체계적이었다. 퍼거슨은 언제나 승리를 위한 준비를 했다. 퍼거슨은 10분 내, 5분 내 혹은 3분 내로 골을 넣어야할 상황을 가정하여 어떻게 경기를 펼쳐야할지 꾸준히 연습시켰다. 유나이티드의 수석 코치 중 한 명은 "우리는 경기에서 지고있거나 비기고 있는 상황을 가정해 훈련을 시행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알고 있습니다." 라고 말한다.


유나이티드의 트레이닝 세션은 전술과 기술 연마의 반복이다. "우리는 트레이닝 세션을 배움의 기회, 발전의 기회로 여깁니다. 때로는 선수들이 '또 이걸 하고 있네' 라고 생각할 순 있겠죠. 하지만 분명히 우리는 연습 덕분에 승리할 수 있습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훈련은 단순히 '승리가 반복적인 훈련에서 나온다' 라는 통념을 뛰어 넘는다. 선수들은 특정 플레이를 거의 자동적으로 수행할 수 있기까지 했다. 훈련장에는 현재 수준에 만족하지 않고 계속해서 발전을 도모해야한다는 분위기가 널리 퍼져 있었다. 퍼거슨은 이렇게 말한다. "메세지는 아주 간단합니다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됩니다."


SAF : 승리는 저의 본성입니다. 전 꽤나 오랫동안 기준을 세워왔고 승리 외 다른 옵션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경기에 나설 때마다 승리를 원했습니다. 우리의 주요 선수가 5명이 빠졌을지라도 전 항상 승리만을 기대했습니다. 다른 팀 감독들은 경기 시작 바로 전까지 선수들에게 바짝 다가가 지시를 내리지만 저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경기 시작 전 선수들이 피치를 발고 있다면, 저는 선수들이 이미 모든 준비를 마쳤으리라 확신합니다. 


저는 모험가이자 위험을 감수하는 사람입니다. 우리 팀이 경기 막판에 어떻게 플레이하는지 다 보셨을 겁니다. 하프타임에 경기를 지고 있다면 전달하는 메세지는 간단합니다 : "당황하지 마라. 우리가 할 일에 집중해." 만약 15분이 남은 상황에서 여전히 2-1 스코어로 지고있다면 저는 더 큰 위험을 감수할 준비를 마친 상태이고 남은 15분간 돌진합니다. 우리가 무승부 혹은 역전승을 만들기 위한 조치를 취했음에도 (오히려 1골을 더 내주어) 3-1 스코어로 지게 된다면 저는 결과에 불만을 가지지 않습니다. 수비를 조금 더 느슨하게 하면서 공격수를 추가 투입하겠죠. 만약 우리가 3-2로 역전해낸다면 그건 정말 짜릿한 일이 될 겁니다. 하지만 3-1로 지는 것은 2-1로 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경기에서 패배하는 것입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결코 포기하지 않았고 인내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의 메세지가 선수들에게 전달되는 것에 대해서 크게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경기가 끝나가는 상황에서도 반전을 만들어내는 기질을 가지는건 정말 멋지다고 생각합니다.



관찰의 힘을 믿어라


퍼거슨은 1974년 32세에 스코틀랜드의 소규모 구단인 이스트 스털링셔(East Stirlingshire)의 감독이 된다. 당시 퍼거슨은 선수들보다 나이가 많은 것도 아니었다. 당시 퍼거슨은 직접 나서서 선수들에게 보여주는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세인트 미렌, 에버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거치면서 퍼거슨은 점차 훈련을 수석코치에게 의존했다. 그렇다고 퍼거슨이 훈련장에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그는 언제나 훈련장에 있었고 모든 과정을 지켜보고 있었다. 선수들을 직접 코칭하는 것에서 관찰하는 것으로 역할 변화를 시도하면서 퍼거슨은 자신이 선수와 퍼포먼스를 더 명확하게 관찰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한다. "피치 위에서 직접 지도를 하게되면, 모든 것을 관찰할 수 없게 됩니다." 라고 퍼거슨이 말한다. 대신 관찰자가 되면, 훈련 패턴, 에너지 레벨, 활동량 등의 변화를 파악하게 된다.


훈련을 담당하는 코치들을 신뢰하기에 퍼거슨은 보다 면밀한 관찰자가 될 수 있었다.


SAF :  관찰은 매니지먼트 체계의 최종 단계입니다. 처음 감독 자리를 맡았을 때, 제가 경기를 잘 뛸 수 있고 높은 레벨에서 성공할 기술적인 능력을 갖춘 것은 물론 코칭 능력과 올바른 결정을 내릴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며 훈련을 진행했습니다. 에버딘에서 코치들과 차를 마시다가 수석코치가 "왜 저를 에버딘으로 데려왔는지 모르겠습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래서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라고 말했고 수석코치는 그에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저는 아무 것도 하는게 없습니다. 유스 팀과 같이 훈련을 진행하고는 있지만 저는 에버딘에 훈련과 선수 선발에 있어 감독님을 도우러 왔습니다. 그게 수석코치가 할 일입니다." 이에 다른 코치가 "수석 코치의 말이 맞습니다." 라고 동조했다. 동조한 바로 그 코치는 저에게 훈련을 직접 진행하지 않음으로써 얻는 이점도 있을 것이라 말했습니다. 처음에는 "아니야" 라고 말했지만 며칠 생각해보고 그 조언을 따르기로 결심했습니다. 저는 훈련을 코치들에게 맡겼고 그것은 제가 결정한 것들 중 최고의 선택이기도 합니다.


코치들에게 훈련을 위임해도 팀을 장악하는 능력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전 항상 훈련장에 존재했고 관찰하면서 중요한 사항을 집어내는 능력을 얻게 되었습니다. 저는 선수들의 습관 변화, 갑작스러운 열의 상실 등을 포착했고 그에 따른 조언을 해줄 수 있었습니다. 선수의 가족 혹은 금전적인 문제부터 지친건지, 오늘따라 기분이 안 좋은건지까지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선수는 괜찮다고 말했지만 부상을 달고 뛰는 경우도 잡아냈습니다.


사람들은 관찰의 가치를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저는 팀을 관리하는 과정에서 관찰이 아주 결정적인 부분이라 생각합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 하자면, 예상하지 못했던 것을 발견해내는 능력은 정말 중요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새로운 것에 대한 적응을 멈추지 마라


퍼거슨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보낸 25년간 축구계는 아주 급격하게 변화했다. 자본의 힘은 긍정적인 부분과 부정적인 부분을 동시에 가져왔으며 과학은 선수들이 더 높은 수준의 경기를 펼치게 만들었다. 변화에 적응하는 것은 쉬운게 아니다. 특히 최고의 자리에서 오랫동안 머무른 사람이 새로운 문화에 적응하는건 더욱 쉽지 않다. 하지만 퍼거슨은 모든 면에서 기꺼이 변화하려고 했다. 데이빗 길은 "변화하는 축구 속에서 퍼거슨은 놀라울 정도로 적응하는 능력을 보여줬다." 라고 평가한다.


1990년대 중반 퍼거슨은 비교적 중요성이 떨어지는 리그 컵에 어린 선수들을 대거 투입시켰다. 이렇게 리그 컵에 어린 선수들을 대거 출전시킨 감독은 퍼거슨이 처음이었다. 당시에는 퍼거슨의 결정에 대해 상당한 비판이 가해졌는데 지금은 거의 모든 프리미어 리그 구단이 리그 컵에 어린 선수들을 내보내고 있다. 또한 퍼거슨은 처음으로 로스터에 센터 포워드를 4명 보유하면서 2자리 놓고 경합을 시킨 감독이다. 사람들은 통제가 안될 것이라 예상했지만, 4명의 센터-포워드를 두는 이 전략은 1999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트레블 달성에 상당히 큰 부분을 차지했다.


퍼거슨은 피치 밖에서 팀을 도와주는 스태프 수를 늘려갔고 코치들을 보좌해줄 스포츠 과학팀도 고용했다. 스포츠 과학팀은 맨체스터의 부족한 일조량을 보충하기 위해 드레싱룸에 비타민D 부스 설치를 제안했고 퍼거슨은 이를 수용했다. 또한 훈련복에 GPS 장치를 설치하여 훈련 후 20분만에 퍼포먼스 데이터를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선수들을 위해 최초로 검안사를 고용했으며 일주일에 2번씩 선수들에게 요가 수업을 받으라 지시했다. 최근 훈련장에는 최첨단 의료 시설이 완공되었고 간단한 진료는 현장에서 즉시 처리가능했다. 일반 병원과 달리 선수들의 구체적인 컨디션이 언론에 유출될 가능성도 적었다.


SAF : 처음 감독을 시작했을 때는 에이전트가 없었습니다. 당시에도 TV를 통해 경기가 중계 되었지만, 지금처럼 선수들이 영화배우 마냥 언론의 관심을 받지는 않았습니다. 언론은 항상 선수들에 대한 새로운 이야깃거리를 찾아다니고 있습니다. 경기장도 발전했고 피치는 이제 완벽한 수준으로 관리되고 있습니다. 스포츠 과학은 우리가 시즌을 준비하는데 있어서 상당히 큰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러시아, 중동 혹은 다른 지역 출신 구단주는 구단에 돈을 퍼붓고 있어 감독에게 부담이 되어 돌아오고 있습니다. 선수들은 예전보다 훨씬 더 안정적인 삶을 살고 있고 25년 전보다 선수를 다루는 것이 힘들어졌습니다.


제가 25년간 잘해온 것은 변화를 감당하는 것입니다. 변화를 수용함으로써 그 변화에 대처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새롭게 고용하는 인물들을 신뢰해야 합니다. 세세한 점까지 다 간섭하면서 지시를 내린다면 그들을 고용할 이유가 없는 것이겠죠. 가장 중요한 것은 정체되지 않는 것 입니다. 몇년 전에 데이빗 길에게 "선수들이 계속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머물 수 있게 하는 유일한 방법은 유럽 최고의 훈련 시설을 갖추는 것입니다." 라고 말했으며 그 때 우리는 메디컬 센터를 착공했습니다. 결코 멈춰 있어서는 안 됩니다.


성공을 사람들은 변화를 원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저는 변화하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했죠. 우리는 성공해야만하고 발전할 수만 있다면 어떠한 방법이라도 모색해야 했습니다. 다른 선택지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계속 열심히 노력했으며 모든 성공이 첫번째 성공인 것처럼 생각했습니다. 제가 할 일은 팀이 승리할 확률을 최대한 끌어올리는 것 입니다. 그것이 저를 이끈 원동력 입니다.




출처 : https://hbr.org/2013/10/fergusons-formula





by Ryan Giggs


학생, 견습생, 퍼스트팀 선수, 코치, 임시감독, 수석코치로 29년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생활했다. 그리고 14세 이후 처음으로 그 위대한 구단을 떠나 생활하고 있으며 멋진 수년간의 생활을 되돌아보고 있다. 알렉스 퍼거슨 경은 나의 커리어를 지도했고 축구 선수로서 나의 본능은 언제나 앞을 바라보는 것이었다. 다가올 트레이닝 세션, 다가올 경기, 다가올 다음 도전과제를 응시하는 것이었다. 지금의 생활은 완전히 다르지만, 나는 경기장을 떠나 휴식을 취하는 이 순간을 즐기고 있다. 경기장에서 떨어져 회상할 시간, 새로운 무언가를 해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유나이티드에서 경기하는 것, 유나이티드에서 지도자 생활을하는 것은 압박감이기도 했다. 일부는 동의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그들은 내가 다른 곳으로 떠나 새로운 것에 도전해야했다고 주장하지만, 올드 트래포드보다 더 큰 구단이 어딨는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처럼 매경기 승리할 것을 기대하고, 매시즌마다 새롭고 재능있으며 열의가 가득찬 젊은 선수들이 주전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도전하는 구단은 전 세계를 통틀어 얼마 없다.


나는 언제나 유나이티드의 팬이었다. 1987년 11월 29일 나의 14번째 생일날 알렉스 퍼거슨 경이 집으로 직접 찾아와 계약하기 전부터 말이다. 당시 나는 올드 트래포드에서 경기를 볼 수 있다면 어느 구역이든 가리지 않고 티켓을 구매했다. 물론 주로 스트렛포드 엔드에서 경기를 관전했다. 이제는 10살이 된 아들 제크와 유나이티드 경기를 본다. 맨체스터 더비전을 나는 아들과 함께 디렉터 박스에서 관전했다. 나는 스트렛포드 엔드를 가리키며 내 아들에게 내가 옛날에 저기서 경기를 지켜봤다고 알려줬다.


나는 모든 트로피를 알렉스 퍼거슨 경과 함께 들어올렸다. 13차례 리그 타이틀, 2차례 챔피언스 리그 우승, 4번의 FA컵, 4번의 리그컵 모두를 알렉스 경과 함께했다. 그리고 2013년 알렉스 경의 은퇴 이후 유나이티드 팬들이 걱정하는 사항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다. 나는 팬들이 우려하는 그 시기를 구단과 함께 했던 사람이다. 데이빗 모예스 시절에는 선수 겸 코치로 루이 반 할과는 수석 코치 관계로 근무했다. 나는 지난 3년의 시간이 팬들에게 상당히 고된 시간이었다는 것을 안다.


나는 알렉스 경이 감독직에서 물러난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던 장소까지 기억한다. 알렉스 경은 구단이 공식발표를 하기 하루 전에 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우리는 캐링턴에서도 상당히 많은 대화를 나누는 관계였으나 공식적인 시간이 지난 이후 전화가 오는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알렉스 경에게서 전화가 왔다는 것을 알게되자 나는 먼저 이 생각부터 들었다. "내가 도대체 뭘 잘못했길래..." 39살 먹고도 그 생각이 먼저였다.


알렉스 경은 전화를 통해 나에게 은퇴를 결심했다고 알렸다. 2001년 첫번째 은퇴 선언을 한 이후로 나는 매 여름마다 언제든지 알렉스 경이 팀을 떠날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실제로 그 말을 들어보니 상당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전화를 마치고서 굉장히 슬픈 감정이 올라왔다. 알렉스 경은 오랫동안 내 인생의 일부를 차지했던 인물이다. 그 분의 은퇴는 몇 달간 완전히 나를 새로운 세계로 몰아넣었다. 프리시즌을 위해 소집되었으나 더 이상 구단에는 알렉스 경이 없었다. 크리스마스에도 마찬가지였고. 우리 모두의 삶에 있어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던 분이었다. 조직을 체계화시켰던 분이고 우리를 길러내셨으며 동기부여까지 해주셨던 분이 바로 알렉스 경이었다.


선수 생활 말년에 알렉스 경은 사무실로 나를 자주 불렀다. 그리고선 나에게 특정 경기에 투입시킬 생각이니 거기에 맞춰서 스스로 몸상태를 조절하고 있으라고 전달했다. 또한 여러가지 사항에 대해 논의했는데 나를 비롯해 게리 네빌, 리오 퍼디난드같은 고참들을 불러 팀 트레이닝에 대해, 경기를 어떻게 펼칠지에 대해, 상대팀에 대해, 선수 선발에 대해 여러가지 논의를 진행했다. 젊었던 시절보다 더 우리의 의견을 들어보려고 했다. 오해는 하지말자. 구단의 보스는 단 한 명 뿐이다. 






데이빗 모예스가 알렉스 경을 대체하기 위해 선임되었고 그는 나를 불러 선수 겸 코치가 되어달라고 요청했다. 당시 나는 UEFA 프로 라이센스 과정을 밟고 있었고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요청했다. 나는 선수 겸 코치직을 수용하는 것이 자연스런 변화라고 생각했지만, 그건 잘못된 판단이었다. 나는 선수로서 더 많은 기여를 하고 싶었고 선수의 신분일 때야 다른 것에 집중하지 않게 된다. 선수 겸 코치였지만 나는 어떠한 트레이닝 세션도 진행하지 않았다. 데이빗이 트레이닝 세션을 진행했기 때문이며 그렇지 않을 경우 필 네빌이나 스티브 라운드가 대신 트레이닝 세션을 지도했다.


1월에 나는 좀처럼 1군 경기를 뛰지 못했다. 경기에 나서지 못한 것은 나한테 정말 새로운 경험이었다. 물론 40세 선수가 매주 경기에 나설 수 없다는걸 받아들인 상황이지만, 나는 정말로 경기에 뛸 준비가 된 상태였다. 그리고 팀도 경기를 잘하고 있지 못했다. 나는 그 시간이 힘들었다. 프로답게 행동했지만 경기를 뛰지 못했던 그 순간도 즐겼다고는 말할 순 없다.


루이를 처음 만난 날, 우리는 바로 대화를 진행했다. 대화가 막 30분 지났을 무렵 그는 나에게 수석 코치 자리를 제안했다. 나는 그 제안을 받아들였는데 한가지 조건이 있다고 말하더라. 그것은 수석 코치를 하기위해 내가 은퇴해야한다는 것이었다. 루이는 나를 위한 결정이라고 말했다. 루이가 그렇게 말한 순간, 나는 그것이 옳다고 느꼈다. 지난 2년간 나는 루이에게서 생각했던 것보다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루이는 정말 철저한 사람이었다. 첫번째 시즌에 팀 구성원 모두가 자신이 무엇을 해야할지에 대해 알고 있었고 우리는 좋은 발전을 이뤄냈다. 하지만 우리는 지난시즌 길을 잃었다. 전적으로 루이만의 실패라고 말하는 것은 잘못되었다. 모두가 비난을 나눠야만 한다.


우리가 알렉스 퍼거슨 경과 함께 4경기를 남긴 상황에서 리그 우승을 확정지었던 2013년 5월로 돌아갔다고 가정하자. 그 때 누군가가 나에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리그 우승 경쟁에 참여하지도 못할 순간이 올 것이라 생각합니까?" 라고 묻는다면 나는 '절대로 그럴리 없다' 라고 대답했을 것이다. 우리는 상당한 조직력을 갖춘 팀이었고 재정적으로도 아주 풍족한 구단이다. 또한 이 나라에서 가장 큰 규모의 스타디움을 홈구장으로 사용하는 팀이기도 하다.


1970~1980년대 장기간 성공을 거둔 리버풀도 그 성공을 지속하기 위한 과정에서 그런 단계까진 도달하지 못했다. 유나이티드가 마지막 타이틀을 따낸지 고작 3년 지났을 뿐이다. 1974년 강등당했던 것처럼 구단이 곤경에 처한 상황은 아니지만, 이전까지 유지되고 있던 기준이 지속되지 않고 있는 것도 분명 사실이다. 


알렉스 경도 3시즌간 리그 타이틀 없이 보냈던 시기가 있다. 하지만 우리는 분명한 계획을 가지고 있었고 2007년부터 2009년까지 3연속 우승을 차지하며 정상의 자리로 돌아왔다. 팀을 다시 잉글랜드 정상으로 되돌려놓는 것은 조세 무리뉴의 과제이다. 하지만 앞으로 과거의 유나이티드가 했던 것처럼 똑같이 할 수 있다는 확신은 없다.


나는 알렉스 경이 떠난 이후 하락세가 오는 것이 당연하다는 반응에 동의하지 않는다. 당시 우리는 승점 11점 차로 프리미어 리그를 우승했다. 당시 구단에는 수많은 위너(winners)와 강한 개성을 가진 선수들이 여럿 있었다. 나를 비롯해 리오, 네마냐 비디치, 파트리스 에브라 같은 선수들 말이다. 영입이 제대로 이뤄졌다면, 우리도 젊고 의욕이 가득한 유나이티드의 위닝 멘탈리티를 가진 선수들에게 자리를 내주며 자연스럽게 뒤로 물러났을 것이다.


그런데 데이빗 모예스의 첫번째 여름 보강은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데이빗을 비난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는 우리가 스쿼드를 어떻게 관리하는지에 대한 내부 지식없이 부임했다 : 어느 시점에 특정 선수에게 휴식을 줘야하는지, 어떤 선수가 어떤 경기에 적합한지, 어떤 선수를 내보내야하는지, 어떤 선수에게 용기를 불어넣어줘야 하는지 같은 케이스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한 상태로 감독직을 수행하게 되었다. 물론 그 관리 속에서 살아온 우리들이 어느 정도까지 도와줄 수 있던 사항이지만, 감독 스스로도 시간이 흐르면서 관리법에 대한 혜안을 터득할 수 있어야 한다. 





펠라이니 영입은 8월 이적시장 데드라인에 근접해서야 이뤄졌다. 당시 구단은 여름에 단 1개의 메이저 딜을 성사시켰는데, 우리에게는 2~3명의 빅네임 영입이 필요했다. 영입이 지지부진했던 것부터 상황이 순탄치 않을 것이란걸 암시한 듯하다. 유나이티드는 이적시장 마지막 순간에도 선수를 구매하곤 했다. 2008년 디미타르 베르바토프를 영입했던 것이 떠오른다. 하지만 2013년 당시 영입은 다소 패닉 바이였다.


알렉스 경이 항상 베스트11을 마음에 품고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매 경기마다 어떤 팀을 꾸려서 나가야할지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고 몇주 앞둔 상황에서부터 그에 대한 계획을 옮겼다. 허나 데이빗에게는 그런 정보가 없었다. 그는 완전히 백짓장 위에서 시작했고 첫시즌의 상당한 시간을 베스트11 조합을 찾는데 썼다. 당시 최고의 기록은 2013년 12월의 6연승이었다. 우리는 꽤나 안정적인 팀을 만들어냈지만 부상이 발생하면서 상황은 악화되었다.


데이빗과 함께한 트레이닝 세션은 아주 훌륭했다. 모든 선수들이 데이빗의 훈련을 즐겼고 훈련 속 경쟁은 결코 사그라들지 않았다. 이는 알렉스 경 때부터 항상 유지되어온 특징이기도 하다. 아마 다른 무언가가 데이빗이 자리를 잃는데 더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사람들은 알렉스 경 지휘 속에서 올드 트래포드가 아우라를 뿜어냈다고 말한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유나이티드에서만 선수 생활을 했기 때문에 그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정의내리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나는 유나이티드 소속이 아닌 다른 선수들로부터 아우라가 느껴진다는 얘기를 들었다. 상대팀 선수들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게 두들겨 맞지않고 여기서 벗어나고 싶다." 란 식으로 생각했던 것으로 보인다.


웨일스 대표팀에서 우리가 좀처럼 공을 소유하지 못한 날이 있었다. 당시 나는 드레싱룸에서 불만을 토로하면서 우리가 제대로 경기를 펼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 때 개리 스피드는 "올드 트래포드에서 뛰는 느낌이 딱 이렇다." 라고 말해줬다. 그 때의 그 말은 나에게 올드 트래포드가 다른 팀 선수들에게 어떤 장소여야하는지에 대한 통찰로 남아있다. 



출처 : http://www.telegraph.co.uk/football/2016/10/21/sir-alex-ferguson-left-a-huge-void-at-manchester-united-but-decl/





by Michael Caley (원문은 2014년 9월 5일에 작성되었습니다)


유럽축구만큼 경제력으로 계층화된 스포츠는 없을 것이다. 샐러리 캡이 없는 상황에서 제한된 수입을 여러 구단이 나누고 다른 클럽에서 선수를 사온다. 큰 돈을 쓰는 것이 성공을 향하는 것이란 믿음은 오래도록 지속되고 있다. 2004/2005시즌 이후로 임금지출 탑2가 아닌 클럽에서 프리미어 리그 우승팀이 탄생한 경우는 단 한 차례에 불과하다. 2010/2011시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임금지출이 전체에서 무려 '3위'로 참으로 불리한 조건에서 우승을 이뤄냈다. 임금지출 수준이 리그 평균에 미치지 못하지만 4위 내로 시즌을 마감한 경우는 2004/2005시즌의 에버턴이 마지막이다.


이미 구조가 계층화되었지만, 여전히 좋은 면으로, 나쁜 면으로 두각을 보이는 클럽은 존재한다. 나는 인플레이션을 고려해 조정한 임금지출 자료를 가지고 어느 정도의 승점을 획득할 수 있는지 예측하길 희망한다. 이 자료에는 이적료로 얼마를 지출했는가는 포함하지 않는다. 하지만 대다수 클럽에서 임금 지출과 이적료 지출은 흐름을 같이한다. 두드러지는 결과를 보이는 클럽이 보인다. 아래는 y축을 승점, x축을 인플레이션을 고려한 임금지출액으로 하는 산점도다. 알렉스 퍼거슨 경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데이빗 모예스의 에버턴의 인상적인 활약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편 뉴캐슬 유나이티드는 지속적으로 기대치 이하의 활약을 보여주고 있다. 감독이 누구냐에 관계없이.







에버턴과 알렉스 퍼거슨 경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인플레이션을 고려한 임금지출액을 한결같이 유지했고 그들과 비슷한 레벨에 위치한 클럽들과 달리 기대치 이상의 성적을 만들어냈다. 한편 뉴캐슬의 임금지출액은 에버턴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비해 유동적인데, 기대치를 뛰어넘는 경우는 2011/2012시즌의 5위가 유일했다. 하지만 뉴캐슬은 대다수 시즌, 평균을 뛰어넘는 임금지출을 기록하고서도 40점 중반의 승점을 기록하는데 그쳤다.


이 통계 자료를 통해 우리는 퍼거슨의 위대함을 견줄 곳이 없다는걸 다시 한 번 느끼게 된다. 하지만 비록 실패로 돌아갔지만, 그의 후임자로 지목되었던 데이빗 모예스가 에버턴에서는 상당히 인상적인 결과를 만들어왔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프리미어 리그 최상위 클럽의 절반 혹은 1/3 수준의 예산을 가지고 모예스는 팀의 경쟁력을 지속적으로 유지했다. 


또 다른 수치를 살펴보자. 임금지출 수준을 고려했을 때, 과연 어느 클럽이 기대 이상의 성적을 보여줬는지, 기대 이하의 성적을 보여줬을까?







만약 실패로 돌아간 모예스의 2013/2014시즌을 제외시킨다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기록은 10.9까지 상승해 에버턴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게 된다. 임금지출에 비해 좋은 성적을 내는 클럽으로 스완지 시티, 토트넘 핫스퍼가 그 뒤를 잇는다. 한편 지출에 비해 결과가 좋지 못한 클럽으로 선덜랜드와 아스톤 빌라를 언급할 수 있다. 특히 아스톤 빌라는 연고지가 잉글랜드에서 2번째 규모의 도시인 버밍엄이지만 그 장점을 활용하지 못했다. 아스톤 빌라는 에버턴, 토트넘과 함께 5~7위를 다투던 클럽이지만, 형편없는 경영과 소유주의 행동으로 성장세를 이어갈 수가 없었다.


프리미어 리그에서 3시즌 이상 소화한 클럽만 고려했기 때문에, QPR은 포함하지 않았다. 만약 범위를 2시즌으로 좁혔더라면 비효율성에서 토니 페르난데스의 QPR만한 팀이 없을 것이다. QPR은 2시즌 모두 프리미어 리그 평균을 뛰어넘는 임금지출을 기록했지만, 1차례의 강등을 기록했으며 1차례는 가까스로 강등을 면했다. QPR은 실제 승점이 임금지출을 바탕으로 예측한 승점보다 무려 20점 낮다. 기대 이하의 활약을 선보인다고 콕 찝어서 말한 뉴캐슬의 2배에 해당하는 결과다. QPR은 비효율 순위에서 명실상부한 리더다. 


다음은 임금지출과 승점에 관한 회귀방정식을 추정한 것이다. 









출처 : https://www.washingtonpost.com/news/fancy-stats/wp/2014/09/05/here-are-the-premier-league-teams-that-have-made-the-most-of-their-payrolls/




by Gary Neville


서포터와 나를 비롯한 평론가들은 루이 반 할 감독이 알렉스 퍼거슨 경과는 다른 유형의 감독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한다. 과거는 과거에 머무르도록 내버려두자.


이제 나를 포함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팬들에게 알렉스 퍼거슨 경의 시대를 과거의 기억으로만 내버려둘 시간이 왔다. 이제 과거의 영광에 비추어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는 유나이티드를 평가하려는 행동을 하지 말자. 경기 스타일이 바뀌었고 선수단 구성도 바뀌었다. 현재 팀이 발전하고 있는가에 대해 전혀 혼란스러워하지 않을 사람이 확실히 한 명 있다. 그 사람은 바로 루이 반 할 감독이다.


난 아직 감독을 해보지 않았지만, 난 빠른 템포의 공격적인 축구가 올바른 방향이라 생각하는 사람이다. 만약 유나이티드가 자신들의 스타일을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고수하겠다는 생각을 가졌다면, 루이 반 할이라는 인물이 아닌 유사한 철학을 가진 다른 감독을 임명했을 것이다. 루이 반 할의 철학은 기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철학과는 일치하지 않고 우리들 눈에는 다른 누군가의 이질감 느껴지는 철학이 팀에 심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이고 있다. 우리에게는 루이 반 할 감독의 새로운 철학이 26년지기 파트너와의 헤어짐처럼 느껴지고 있으며 우리는 새로온 사람이 이전 사람처럼 똑같이 해주길 원하고 있다. 우리는 과거를 과거에 내버려둬야 한다. 우리는 퍼거슨을 언급하면서 '이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방식이 아니야'라고 말하고 있지만, 언제나 우리의 토론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어느 곳으로도 향하게 하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나 역시도 빠른 템포의 플레이를 선호한다. 약팀을 상대로 높은 위치에서부터 강하게 압박을 시도하는걸 원하지만,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이 반 할의 방식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내가 선호하는 것은 내가 믿는 최우선의 플레이이며 과거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올바른 방식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놓여져있는 것은 과거가 아니라 지금이라는 현실이다. 또한 나는 앞으로 영입되는 선수들이 높은 수준에서 경기를 치러왔던 선수들이어야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승점으로 리그 3위이며, FA컵 8강에 진출한 상태이다. 또한 최근 19경기에서 단 1패만을 기록하고 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지금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변화하고 있다. 우린 아주 고통스러운 과정을 겪고있는 것이다. 왜냐면 우리는 20년간 잉글랜드 축구를 지배해온 리더와 그의 경기 방식과 결혼한 상태였지만, 현재의 팀은 완전히 다른 시기에 있다고 봐야한다. 우리는 결코 두 시대를 동등한 입장에서 비교할 수가 없다.


7년 전, 나는 동료들과 함께 비지니스 리더십 강의를 들었던 적이 있다. 당시 우리에게 강연을 했던 강사는 팀의 성장 변화를 표현할 수 있는 4가지 단계를 설명해줬다 : 형성기(form)→갈등기(storm)→정상기(norm)→성과실현기(perform). 난 그 당시에는 강의가 별로 인상깊다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최근 유나이티드의 상태를 보니 다시 그 때의 강연을 떠올리게 되었다. 4가지 단계의 논리는 이러하다. 형성기는 새로운 인원들이 들어오는 것이며, 갈등기는 말 그대로 혼란의 상황이다. 정상기는 새로운 구조가 자리를 잡아가는 시기이며 성과실현기는 말 그대로 해석하면 될 것 같다. 우리 클럽은 퍼거슨 시대에서 벗어났고 갈등기를 겪고 있다고 본다. 아직 포스트-퍼거슨과 포스트-데이빗 길 구조가 형성되어야하는 정상기에는 완벽하게 도달하지 못했다. 


수많은 유나이티드 팬들은 굉장히 혼란스러워하고 있을 것이다. '우리 팀 속도는 정말 느리고 우리는 우리가 익숙한 방식의 플레이를 전혀 하고 있지 않아' 라는 생각을 하고 있지만 동시에 '잠깐만! 우리는 19경기에서 단 1경기 밖에 패배하지 않았고 우리는 리그 3위이며 현재 FA컵에선 8강에 진출한 상태야' 라는 생각을 한다. 당연히 혼란스러울 수 밖에 없다고 본다.


여전히 루이 반 할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대한 정확한 의견을 제시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지금으로썬 일시적이며 단기적인 것에 대해서만 이야기할 수 있다 : 좋은 경기력, 나쁜 경기력, 이 선수가 잘했다. 이 선수가 못했다 등등... 14일동안 FA컵 아스날전, 토트넘(홈), 리버풀(원정) 경기를 치르는 험난한 일정을 지나게 되면 그 때서야 루이 반 할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대한 지배적인 의견이 확실히 굳어질 것이라고 본다. 만약 FA컵 준결승에 진출하고 리그 2경기에서 최소 승점 4점을 얻어낸다면 유나이티드의 시즌 최종 성적은 분명 좋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이 기간의 결과가 나쁘게 흘러간다면 루이 반 할 감독은 첫번째 시즌에 경질을 당하는 위험 상황까지 몰릴 수 있을 것이다.


지난 2013-2014시즌을 3위로 마감한 첼시는 자신들에게 부족한 부분이 어떤 것이었는지 확실히 인지하고 있었고 치열한 경기에서 차이를 만들어줄 창의적인 미드필더와 기회를 가차없이 마무리 지어줄 수 있는센터-포워드가 필요하다는 것은 모두가 인정하는 부분이었다. 첼시에게는 발전이 필요했던 두가지 뚜렷한 포지션이 있었다. 이처럼 내가 굉장히 현재의 유나이티드에 대해서 혼란스러워 하는 부분은 다음과 같다. 


현재 프리미어 리그에서 3위를 달리고 있는 유나이티드에게 첼시처럼 '명확하게' 부족한 부분이 무엇인지 나는 잘 모르겠다. 난 세심하게 들어가서 5~6군데가 더욱 보강이 필요하다고 느끼고 있는데 루이 반 할 감독의 최종 임무는 클럽을 챔피언스 리그에 복귀시키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 클럽이 다시 잉글랜드 챔피언이 될 수 있도록 기반을 확실하게 다져놓는 것이다. 결국 루이 반 할 감독의 최종 업적에 대한 평가는 프리미어 리그에서의 성적이 좌우할 것이라고 본다. 난 루이 반 할 감독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챔피언스 리그에 복귀할 것이고 국내에서 트로피도 확실히 따낼 것이라 본다. 그러나 다가오는 2015-2016시즌부터 2시즌 내에 프리미어 리그에서 우승하기 위해서는 선수를 수급하는 경쟁에서도 반드시 경쟁 클럽들을 이겨야 한다. 지난 2시즌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280m을 선수 영입에 투자했고 선수를 팔아 £54m을 회수했다. 반면 첼시는 £313m을 선수 영입에 투자해 £190m을 회수했다. 게다가 심지어 첼시가 더 좋은 선수를 데려왔다.


차기 잉글랜드의 퍼거슨 감독과 길 단장은 현재까지 유나이티드보다 첼시에서 나올 법하다. 후안 콰드라도를 £24m에 영입하고 안드레 슈얼레를 비슷한 가격에 팔았다. 유나이티드도 첼시처럼 이적 시장에서 능수능란해질 필요가 있다. 이제는 선수를 £40m에 영입하고 자신들의 전술에 맞지 않는다는 말을 해서는 안 된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로호, 쇼, 블린트를 영입했을 때는 '아! 이 팀이 백3 시스템을 기본 시스템으로 염두해두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디 마리아나 에레라처럼 4-3-3을 기반으로 하려는 영입도 있었다. 그 결과 현재의 스쿼드는 굉장히 밸런스가 맞지 않고 있으며 시스템이 자리잡기 이전까지 선수들이 상당히 애를 먹고 있다.


예를 들자면, 다이아몬드 시스템에선 아주 능숙한 No.10이 있어야하고 2명의 기동력 좋은 포워드와 측면에는 기운 넘치는 미드필더가 존재해야한다. 4-3-3에서는 득점을 해줄 수 있는 뛰어난 윙어 혹은 측면 공격수가 필요하고 백3 시스템이라면 뛰어난 윙백이 있어야한다. 지금 유나이티드의 가장 큰 화두는 바로 이것이다. 어떤 스타일의 경기를 펼칠 것이며 그에 맞는 선수들을 데려올 수 있는가?


경기 스타일과 새로운 선수 영입은 반 할 감독 마음에 항상 자리잡고 있을 것이다. 여름에는 월드컵이 있었기에 준비가 촉박했고 1월 이적 시장은 반 할 감독에게 너무 빠른 시점이었다. 5월에 맞이하는 이적 시장이야말로 반 할 감독이 제대로 원하는 선수를 데려올 수 있는 시점이라고 본다. 과연 반 할 감독이 현재 마타, 펠라이니, 에레라, 팔카오에게 만족하고 있을까? 언급한 선수들은 오랫동안 결장한 적도 있지만 모두 기회를 받은 선수들이기도하다. 데 헤아는 잔류할 것인가? RvP의 상황은 어떻게 될 것인가? 이처럼 모든 것들을 다 고려해서 팀에 필요한 새로운 선수들을 구상할 것이다. 난 반 할 감독이 팀에 3년 머무는 것을 계획 중이며 영입되는 그 순간부터 바로 임팩트를 남길 수 있는 선수들을 찾아볼 것이라고 생각한다. 


난 루이 반 할 감독이 선수단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언제 어느 포지션을 보강할지는 확신할 수가 없다. 그러나 이렇게 확신을 하지 못하는 것도 다 나를 비롯한 유나이티드 팬들에게나 해당되는 것이지 결코 루이 반 할은 현재의 상황에 흔들릴 인물이 아니다. 반 할 감독은 자신에 대해서 확신을 가진 사람이고 난 반 할 감독이 현재 우리가 이렇게 떠들어대는 것에 대해 믿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불안은 커녕 아주 평온한 상태일 것이고 19경기에서 단 1패만을 기록했다는 것에 아주 만족하고 자신감 있어할 것이다.


유나이티드가 운이 좋아서 19경기에서 1패만 기록했다는 것은 완전 틀린 말이다. 운이 좋아서 3~4경기에서 무패행진을 이어나갈 수는 있다. 그러나 19경기 1패는 결코 운이 아니다. 문제라면 18개월간 우리가 영입했던 빅네임들은 최절정이던 시절의 모습을 다 보여주지 못했다는 것이겠다. 다가오는 2~3개월 내에 이 선수들은 반드시 경기력으로 답을 해야한다. 그렇지 못한다면 더욱 거센 압박감에 휩싸일 것이다.


루니는 언제나 이런 논란의 중심에 놓여있다. 프레스턴과의 경기에서 센터-포워드로 활약하는 루니를 보니 나는 반 페르시와 팔카오 조합을 실험하는 것이 이제는 끝나야한다는 생각을 했다. 두 선수가 다시 경기에 같이 나서는 경우가 있어서 안 된다는 말이 아니라 두 선수를 활용한 플레이가 전혀 통하질 않다고 느끼는 것 뿐이다.


내가 반 페르시-팔카오 투톱이 더 이상 가능성이 없을 것 같다고 느낀 이유는 다음과 같다. 풀백인 쇼 혹은 발렌시아가 높은 위치에서 공을 잡았을 때, 두 명의 스트라이커는 서로 떨어지면서 센터백과 풀백 사이의 공간으로 침투해야한다. 이렇게 움직여야할 이유는 두가지가 있는데 첫째로 스트라이커가 그쪽으로 움직여줘야지 쇼 혹은 발렌시아가 전진 패스를 시도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긴다. 둘째로 그렇게 움직여야지 수비진의 간격이 벌어지고 동료 미드필더들에게 공간이 열리게 된다.


팔카오와 반 페르시는 때때로 그런 움직임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고 그럴 움직임을 보여줄 생각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 결과 풀백이 올라와도 다시 백패스를 해야하는 상황이 만들어진다. 스트라이커들의 움직임이 부족한 것이 측면에서 움직임 부족으로 직접적으로 연결되고 있다. 움직임의 작은 변화(스트라이커들이 지금보다 더 넓게 뛰어준다면)가 유나이티드의 플레이를 더욱 활기차게 해줄 것이다.  


현재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시스템에서 루니는 센터-포워드로 더 괜찮은 옵션이다. 만약 반 페르시와 팔카오가 계속해서 짝을 이루어 경기에 나선다면, 측면에서 두 명의 공격수를 도와줄 선수가 반드시 필요하다. 현재 두 명의 공격수는 박스 안에서 플레이하는 선수들이고 기동성과 빠른 속도마저도 갖추지 못한 선수들이다.


그렇다. 아직 유나이티드는 갈등기(storm)를 겪고 있다. 속도는 빠르지 않으나 유나이티드에 감독과 함께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지금의 감독은 알렉스 퍼거슨 경의 플레이 방식과 다른 방식을 추구하는 사람이다. 무엇이 다르냐고? 반 할 감독은 점유율을 지배하는 것을 선호한다. 물론 알렉스 경도 높은 점유율을 좋아했다. 그러나 그에게 있어서 우선 순위는 '템포와 위험을 감수하는 플레이'였다. 알렉스 경은 우리가 피치 위에서 다른 모습을 보여주길 원할 때 "난 우리 팀의 패스에서 템포와 리듬을 가늠할 수 있길 원한다. 공을 더 빠르게 움직이도록 해라" 라고 말했다.


만약 우리가 2~3골차로 앞서고 있다면 알렉스 경은 우리가 점유율을 지배하는 것에 기뻐했다. 반면에 반 할 감독은 경기가 시작되는 그 순간부터 냉혹하게 우리 팀이 공을 이쪽에서 저쪽으로 돌리는 것에 만족하는 사람이다. 점유율과 선제골을 위해서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다. 물론 퍼거슨 감독 아래선 경기를 이겼다고 생각하는 그 순간까지 위험을 감수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였지만, 지금의 팀에선 그게 아니다.


(물론 그럴 일은 없겠지만) 만약 다른 클럽의 감독들이 샘 앨러다이스 감독의 '롱볼 유나이티드' 발언에 동조하며 자료를 들고 기자회견을 펼친다면, 그 감독의 발언은 반 할 감독에게 철저하게 밟힐 것이라 보면 된다. 나에게는 시즌 초에 루이 반 할과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내 경험상 반 할 감독은 다시 자료, 기록 등을 찾아와서 사람들에게 자신의 주장을 가르칠 준비가 언제든지 되어있는 사람이다.


"내가 당신들의 무지함을 일깨워 주겠다!"라고 말하면서 반 할 감독이 자신의 사무실에서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려고하는 장면이 눈에 선하다. 루이 반 할 감독은 아약스, 바이에른 뮌헨, 바르셀로나를 지도했던 감독이다. 앨러다이스 감독에게 응수하는 과정에서 그는 결코 앨러다이스의 발언에 당황하지 않았을 것이다. 반 할 감독의 관점에선 축구를 어떻게 해야하는지 모르는 교육받지 못한 자들에게 자신이 교육을 해줄 수 있는 기회라고 여겼을 것이다.


반 할 감독은 극도의 자신감을 가진 사람이기 때문에 아마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내가 당신들의 사고방식을 다 고쳐주겠다. 내 설명을 듣게 된다면 당신들은 내가 생각하는 방식으로 축구를 바라볼 것이다. 난 사람들이 나를 향해 비웃음을 보낼 때 웃어넘겼다. 이건 라파 베니테즈의 사건과는 다르다. 라파는 리버풀의 감독으로 유나이티드에 관한 소위 '진실들(facts)'을 이야기하는 것이었고 그건 리버풀을 이끌고 리그 우승을 이뤄내야한다는 압박감에 휩싸여있을 때의 인터뷰였다."


나는 루이 반 할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대한 최종적인 평가를 내리기에는 아직까지 시기가 이르다고 보고 있는데 그렇지만 반 할 감독이 다른 빅클럽에서도 우리와 비슷한 과정들을 겪어왔다는 것을 고려했을 때 우리는 자신감을 가져도 될 것 같다. 난 루이 반 할 감독과의 인터뷰 마지막 질문을 항상 생각하게 된다. "3년 안에 리그 우승 할 수 있습니까?" 라고 나는 물었었고 그는 "물론이지!"라고 대답했었다. 




출처 : http://www.telegraph.co.uk/sport/football/teams/manchester-united/11424827/Manchester-United-fans-must-stop-pining-for-Sir-Alex-Fergusons-champagne-football-that-era-is-over.html





다른 팀들은 전성기일때 특정한 포메이션을 활용했지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전성기였던 3시즌 동안 고정적인 포메이션을 활용하지 않았다. 알렉스 퍼거슨 경은 4-3-3 , 4-4-2, 4-5-1, 4-2-3-1, 4-4-1-1 과 가끔 다른 포메이션을 활용했다.


여러 포메이션의 활용, 엄격한 로테이션 시스템과 핵심 선수들의 활약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3시즌동안 강자로 있게 만들어주었다. 딱 11명의 선수를 선정하여 '이들이 3시즌동안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라고 말할 수가 없다.

 

그들이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경험했던 2007/2008시즌 명단을 통해 자세하게 말하고자 한다. 중요한 경기에서만큼은 퍼거슨 감독은 고정적인 포백 라인, 두명의 딥라잉 미드필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카를로스 테베즈, 웨인 루니와 추가적인 미드필더를 기용했다.

 

호날두, 테베즈, 루니가 다재다능한 선수들이고 측면 공격수 및 중앙 공격수를 소화할 수 있었기 때문에 퍼거슨 감독은 포메이션의 틀을 깰 수 있었다. 세 명의 선수들은 페널티박스 근처에서 상호간의 이해력이 높았고, 이에 퍼거슨 감독은 세 명의 선수에게 프리롤을 맡기고 벤치에서 편하게 경기를 관전할 수 있었다. 또한 세명의 선수들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수비적인 임무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이러한 전술적 활용은 루치아노 스팔레티 감독의 AS 로마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게는 최전방에 위치할 특정한 선수가 없었다. 기본적으로 윙어였던 호날두는 기술적, 신체적인 장점을 십분 활용하여 수많은 골을 집어넣었다. 필요할 때만 최전방 공격수로 기용되기도 했다. 반면 본래 공격수인 웨인 루니와 카를로스 테베즈는 키가 작은 선수들이고 밑으로 내려오는 경향이 있는 창의적인 공격수들이다. 또한 루니와 테베즈는 굉장히 열심히 뛰어다니는 선수들이기도 하다.

 

그러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항상 3명의 공격수를 활용하진 않았다. 유럽대회 원정경기에서만큼은 3명 중 1명의 선수(테베즈)가 박지성처럼 열심히 뛰어다디는 미드필더에게 자리를 뺏겼다. 유나이티드는 07/08시즌 로마원정에서 승리했고, 이는 잉글랜드팀이 유럽대회에서 거둔 가장 완벽한 승리로 기억될 것이다.루니는 왼쪽 측면에서 미드필더처럼 뛰었고, 호날두가 최전방에서 원톱으로 뛰었다. AS 로마는 프란체스코 토티를 이용하여 미드필더 라인까지 내려오는 최전방 공격수를 뜻하는 '펄스 9'이라는 개념을 만들었지만,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는 '펄스 9'에 추가적으로 측면으로 빠지는 움직임도 선보였다. 팀 동료인 토티와 다른 움직임을 가져가는 호날두를 본 로마 선수들은 당황한 듯 보였다. 호날두가 밑으로 내려오면 박지성 혹은 루니가 최전방으로 나섰고, 유나이티드는 2-0으로 승리했다. 특히 첫번째 헤딩골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대단한 헤딩 득점이었다.


최전방 선수들이 다재다능했기 때문에 퍼거슨 감독은 상대에 따라서 팀에 변화를 줄 수 있었다. 로마원정에서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최전방에 웨인 루니가 왼쪽 측면에 위치했지만, 첼시와의 결승전에서는 루니가 최전방에 나섰고 호날두는 본래의 오른쪽에서 벗어나 왼쪽 측면에 배치되어 마이클 에시앙을 위협했다. 호날두와 에시앙의 대결이 펼쳐졌고, 결국 호날두의 제공권을 이기지 못한 에시앙은 선제골을 내주는데 빌미를 제공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전체적인 구조를 깨뜨리지 않고도 전방에 위치한 공격수들간의 역할 교체가 가능했다. 이러한 부분들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게 성공을 가져다주었다.


몇몇의 저널리스트 사이에서는 퍼거슨 감독이 전술적으로는 그다지 뛰어난 감독이 아니라는 인식이 존재했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그런 목소리는 줄어들고 있다. 지난 몇년간 퍼거슨 감독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유럽대회 원정경기에서 강한 모습들을 보여주었다. 에미레이츠 스타디움에서 올 시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아스날을 이겼을 때(3-1승),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지난 10년간 변해온 전술의 집합체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오늘날 퍼거슨 감독은 4-3-3 포메이션과 4-4-2 포메이션을 번갈아가면서 활용하고 있다. 퍼거슨 감독은 4-3-3 혹은 4-4-2 포메이션 중 적어도 하나의 포메이션에서 활용할 수 있는 선수들을 스쿼드에 보유하고 있다. 박지성은 4-3-3 포메이션에서 수비적인 측면 공격수 역할로 매우 훌륭한 경기력을 선보여왔다. 안데르손은 4-3-3 포메이션에서 두명의 수비형 미드필더 앞에 배치될 경우에 가장 효율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반대로 디미타르 베르바토프는 4-4-2에서 활용할 옵션이지 4-3-3에서는 그의 자리가 없다. 퍼거슨 감독의 미드필더 자원인 마이클 캐릭, 폴 스콜스, 대런 플레쳐, (몸이 멀쩡한) 오웬 하그리브스는 4-4-2 와 4-3-3 일때의 역할이 조금씩 다르다.

 

2006년부터 2009년까지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알렉스 퍼거슨 감독이 처음으로 만들어낸 위대한 팀은 아니다. 그러나 이 당시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전술적인 혁신이 이루어진 것들을 체화한 팀으로 기억될 것이다.

 

 

 

출처 : http://www.zonalmarking.net/2010/03/20/teams-of-the-decade-3-manchester-united-2006-09/

 




by Jonathan Wilson 

 

35년간 영국 축구 최고의 감독으로 군림해온 알렉스 퍼거슨 경의 여러가지 비범한 능력들 중에서 가장 뛰어난 능력은 바로 팀의 전술을 시기에 맞춰 수정할 줄 안다는 것이다. 퍼거슨은 언제나 팀 개편을 염두에 두고 있었고 또 그것을 시행에 옮겨왔다.

 

가장 두드러졌던 개편은 2000년에 있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바로 前시즌에 트레블을 달성했고 레알 마드리드와의 챔피언스 리그 8강전을 앞둔 시점에 프리미어 리그에서 2위와 10점차 선두를 달리고 있었다. 이 레알 마드리드전은 프리미어 리그 출범 이후 처음으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게 전술적 화두를 던지는 경기가 되었다.

 

유나이티드는 마드리드 원정에서 0:0 무승부를 기록했고 다수의 사람들은 올드 트래포드에서 유나이티드가 우세한 경기를 펼칠 것이라 예상했지만, 퍼거슨은 마드리드 원정에서 너무 소극적인 경기를 펼쳤던 것이 신경쓰였다. 마드리드는 기존에 백4 시스템을 사용했으나 이 때 델 보스케는 올드 트래포드에서 3-3-2-2 포메이션을 선택하며 변화를 줬다. 두 팀 모두에게 기회가 있었으며 특히 유나이티드는 전반전 카랑카의 핸드볼에 대한 페널티킥을 보상받았어야 했고 카랑카는 퇴장당해야만 했지만 그러지 않았다. 어쨌든 레알 마드리드는 올드 트래포드에서 3골을 넣었다. 유나이티드는 2:3 스코어까지 쫓아갔고 자신들이 불운했다고 주장할 수 있겠지만 결과는 전체적인 흐름에 부합하게 나왔다. 


1996/1997시즌 유나이티드는 챔피언스 리그 준결승에서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를 만났다. 독일 원정에서 유나이티드는 0:1로 패했다. 올드 트래포드에서 만회를 노렸겠지만 이른 시간에 실점을 허용하면서 탈락하고 말았다. 다음해에 있었던 모나코와의 8강전에서 유나이티드는 프랑스 원정을 떠나 0:0 무승부를 기록했다. 그렇지만 올드 트래포드에서 또 다시 이른 시간 실점을 허용하면서 탈락의 고배를 마시고 말았다. 어느새 이른 시간에 실점을 내주는게 유나이티드의 특징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1998/1999시즌 시작부터, 정확히는 그들이 야프 스탐과 드와이크 요크를 영입하면서 그들 세대의 포메이션을 확립하게 되면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선제골을 내주더라도 좀처럼 패배하지 않았다. 스티브 맥클라렌 당시 수석코치는 "당시 우리는 결코 패배할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고 우리에게 그런 일은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라고 말했다.


퍼거슨도 "우리는 언제나 어려운 방식으로 승리를 쟁취해낸다. 이는 우리 클럽의 특징이기도 하다." 라고 말하면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그런 성향을 뛰어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란 클럽의 독특한 면에 지나지 않는다란 식으로 간주했으나 레알 마드리드에게 패배한 이후 그의 생각은 달라졌다. "레알 마드리드전 패배가 우리에게 준 교훈이 있습니다. 우리가 유럽 대회에서 상대의 역습을 방어하는 능력을 향상시킨다면 우리는 유럽 무대에서 더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습니다." 퍼거슨은 이렇게 말했다. 이전까지 15번의 득점 기회를 만들어내고 상대에게 5번의 기회를 내줬다면, 그 이후로부터 퍼거슨은 고작 5번의 기회만 만들더라도 상대에게는 단 한 번의 기회도 내주지 말겠다는 각오로 유럽 대회에 임했다. 물론 1999년부터 2007년 사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챔피언스 리그 토너먼트 경기에서 승리를 거둔건 2002년 데포르티보전이 유일하기 때문에 퍼거슨의 변화가 유효했는지 평가하긴 어려울 것 같다. 어쨌거나 퍼거슨이 경기 운영에 대한 변화를 준 것만큼은 사실이다.

 

퍼거슨은 언제나 냉철한 결정을 내리곤 했다. 1990년 FA컵 결승전 이후 짐 레이튼을 버렸고 1995년 FA컵 결승에서 패배하고 리그를 2위로 마무리 짓자 폴 인스, 마크 휴즈, 안드리 칸첼스키스를 내쳤다. 퍼거슨 경 입장에서는 신중한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이지만 다른 사람들 눈에는 급진적인 변화처럼만 보였다.

 

퍼거슨이 유나이티드의 감독으로 부임하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팬들은 그의 개혁에 크나큰 실망감을 느끼고 말았다. 팬들은 "4-4-2"를 외치면서 퍼거슨의 성과없는 팀 개혁을 조롱했다. 이에 퍼거슨은 결코 4-4-2 포메이션을 사용한 적이 없다고 말하면서 응수했다. 사실 4-4-1-1이 4-4-2에서 파생된 것이기 때문에 4-4-1-1와 4-4-2은 한 가족이나 다름없으나 퍼거슨은 그렇게 팬들의 야유에 대응했다.

 

1983년 컵 위너스컵에서 레알 마드리드를 꺾었던 퍼거슨의 에버딘은 당시 잉글랜드에서 유행하던 한쪽으로 기울어진 4-4-2 포메이션과 유사한 전형을 활용했었다. 고든 스트라칸이 오른쪽 미드필더로 위치했었고 왼쪽에서 뛰었던 피터 위어는 스트라칸보다 더 공격적인 윙어 역할을 수행했다. 에릭 블랙은 중앙 스트라이커인 마크 맥기 밑에서 뛰었다. 퍼거슨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감독으로 부임한 후 첫번째 경기였던 옥스포드와의 경기에서도 에버딘과 비슷한 포메이션으로 경기에 임했다. 클레이턴 블랙보어는 창조적인 오른쪽 미드필더였으며 동시에 굉장히 근면한 플레이를 보여줬던 선수였다. 왼쪽에서 뛰었던 피터 반즈는 현란한 유형의 선수였고 피터 데븐포트는 팀의 주포였던 프랭크 스태플레튼을 보좌하는 역할이었다.

 

그렇다고 융통성없게 퍼거슨이라는 사람이 옛날의 성공했던 포메이션만 고수했던건 아니었다. 1991년 컵 위너스컵 결승전에서 유나이티드는 바르셀로나를 상대했다. 퍼거슨 감독은 오늘날 4-2-3-1로 표현되는 전형을 꺼내들었다. 마크 휴즈는 철저하게 센터 포워드 역할을 수행했고 브라이언 맥클레어가 밑에서 휴즈를 보좌했다. 아무래도 후방에서 바르셀로나의 템포를 조절하는 로날드 쾨만을 방해하려는 심산이었을 것이다. 마이크 펠란과 리 샤프가 측면에서 힘을 보탰고 폴 인스와 브라이언 롭슨이 포백 앞에 위치했다.


그 이후 유나이티드는 측면에 발빠른 선수들을 배치시키면서 성적 향상을 이뤄냈다. 칸첼스키스, 리 샤프, 라이언 긱스와 같은 선수들이 등장했고 이들은 역습 상황에서 많은 골을 만들어냈다. 그 결과 유나이티드는 1992/1993시즌 26년만에 처음으로 리그 우승을 달성했다. 3월 노리치 시티 원정 승리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승점 2점차 선두를 달리고 있는 상황에서 우승 경쟁에 아주 큰 영향을 미쳤다. 당시 경기에는 휴즈가 징계 때문에 나서지 못했고 이에 퍼거슨은 1명의 수비형 미드필더 인스 앞에 샤프, 칸첼스키스, 맥클레어를 기용했다. 투톱을 담당했던 선수는 에릭 칸토나와 긱스였다. 유나이티드는 노리치에게 3:1 승리를 거뒀고 특히 2번째 골이었던 칸첼스키스의 골은 역습의 정석과 같은 골이었다.



그렇게 탄생한 경기 운영 철학은 1999년 유나이티드가 트레블을 달성하는데 영향을 끼쳤다. 칸토나가 떠났지만 드와이트 요크와 앤디 콜은 칸토나와 휴즈 못지않게 다이나믹한 모습을 보였다. 미드필드에는 데이비드 베컴, 로이 킨, 폴 스콜스, 라이언 긱스가 있었다. 굉장히 활발하고 창조적인 선수들이 미드필드에 배치 되었다. 그렇지만 레알 마드리드에게 패배한 이후 퍼거슨의 4-4-1-1, 4-4-2에 대한 믿음이 약해지기 시작했다.


2000/2001시즌에도 유나이티드는 이전과 비슷한 선수단과 포메이션을 유지했다. 그렇지만 유럽 대회에서는 눈에 띌 정도로 조심스러운 경기 운영을 펼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요크와 콜의 영향력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2001년 후안 세바스티안 베론을 영입해 베론을 후방에 두고 스콜스를 앞으로 전진시킨다. 루드 반 니스텔루이 밑에서 뛰었던 스콜스가 언제든지 미드필드 싸움에 가세할 수 있는 형태가 만들어진 것이다. 그런데 단기적으로 이 변화는 실패였다. 애초 스콜스는 공개적인 발언을 잘 하지 않는 선수인데 그는 자신의 새로운 역할이 맘에 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리그 타이틀을 수없이 만들어낸 라인 (긱스-스콜스-킨-베컴)을 스스로 깨버렸다. 그 변화는 프리미어 리그에서는 물론 챔피언스 리그에서도 성공적이지 못했다.


유나이티드는 크리스마스 전까지 10패를 기록했고 전지전능한 아우라를 잃어가는 듯 했다. 반 니스텔루니의 짝으로 올레 군나르 솔샤르가 낙점되었고 유나이티드는 4-4-2 포메이션으로 복귀했다. 어느정도의 위용은 되찾았지만 우승을 이뤄낼 정도의 수준에는 미치지 못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2002/2003시즌 다시 4-4-1-1 포메이션을 활용했고 스콜스는 다시 한 번 자신이 좋아하는 위치에서 벗어나 경기를 소화해야만 했다. 2002/2003시즌은 반 니스텔루이와 스콜스가 가장 최절정의 시기를 보냈던 시즌이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반등은 베론이 부상으로 명단에서 제외되면서 빠른 템포의 축구로 변환했기 때문에 이루어질 수 있었다.

 

2003/2004시즌은 4-2-3-1을 시도했던 시즌이었다. 필 네빌은 홀딩 미드필더로 기용되는 경우가 잦았다. 2004/2005시즌은 느슨한 4-3-3 포메이션을 시도했다. 라이언 긱스와 웨인 루니는 종종 측면 공격수로 경기를 소화했고 중앙으로 파고드는 움직임을 보였다. 스콜스는 속도가 느려진 킨을 도와주기 위해서 이전보다 더 후방에서 뛰기 시작했다. 두 시즌 모두 리그는 물론 유럽 대회에서의 우승이 없었다. 그 다음 시즌이었던 2005/2006 시즌에는 챔피언스 리그 16강 진출에도 실패했다. 퍼거슨이 가장 신뢰하는 몇 안되는 기자들 조차도 "세계에서 가장 용맹한 감독이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는 시점이 왔다" 라고 혹평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퍼거슨은 언제나 그래왔듯이 사람들의 예상과는 정반대의 결과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2007년 챔피언스 리그 8강전, 유나이티드는 AS 로마를 7:1로 이겼다. 유나이티드는 평소처럼 4-4-1-1 포메이션을 활용했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라이언 긱스가 측면을 담당했고 마이클 캐릭과 대런 플레쳐가 중앙 미드필더를 앨런 스미스가 최전방 공격수를, 루니가 살짝 뒤에 처진 공격수로 경기에 나섰다. 당시 로마는 스타디오 올림피코에서 있었던 8강 1차전 경기에서 2:1 승리를 거두었다. 당시 로마는 형식적인 공격수 프란체스코 토티가 미드필더로 내려오면서 사실상 공격수가 없는 형태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상대했다. 2006/2007시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밀라노 원정에서 발이 무거운 모습을 보여주며 4강에서 떨어졌다. 유나이티드는 로마를 합계 스코어 8:3으로 꺾었지만, 그 다음 시즌인 2007/2008시즌부터 AS 로마의 공격 방식을 모방했다. 호날두, 웨인 루니, 카를로스 테베즈, 라이언 긱스 혹은 나니가 2명의 홀딩 미드필더(오언 하그리브스, 마이클 캐릭, 폴 스콜스, 안데르손) 앞에서 뛰었을 뿐 어느 누군가가 분명한 최전방 공격수 역할을 수행하지 않았다. 대신 전방에 위치한 4명의 선수가 번갈아가면서 최전방 공격수 역할을 수행했다.

 

명확한 스트라이커를 두지 않는다는건 시도하기 어려운 전술이다. 그렇게 유나이티드는 2007/2008시즌 초반에 득점력 빈곤에 시달렸다. 수비수 존 오셰이를 임시방편으로 공격수처럼 기용했지만 레딩과의 개막전에서 0:0으로 비기고 말았다. 그렇지만 퍼거슨이 시도한 전술이 팀에 녹아들기 시작하자 이 전술은 위용을 뽐내기 시작했다. 루니와 테베즈의 이타적인 플레이 덕분에 호날두는 2007/2008시즌 리그에서만 31골을 기록하는 위력을 보여줬다. 

 

새로운 전술이 성공적으로 활용되고 있었지만 퍼거슨은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에서 전형적인 4-4-2 포메이션을 꺼내들었다. 당시 결승전은 1999년처럼 유나이티드에게 행운이 따른 승리였다. 퍼거슨의 전술에 대해 비판할 것이 있다면 그가 때로는 빅매치를 앞두고 과도한 생각을한다는 것이다. 당시 결승전에서 퍼거슨은 에슐리 콜을 고려하여 오언 하그리브스를 오른쪽 미드필더로 기용했다. 호날두를 왼쪽 미드필더로 기용해 오른쪽 수비수로 출전한 마이클 에시앙을 공략하겠다는 의도였다. 30분 정도는 이 전술이 효과적으로 먹혀들었고 호날두가 직접 골을 기록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 이후부터 에시앙이 계속해서 호날두를 제치고 나아가기 시작했다. 프랭크 램파드의 동점골도 그렇게 에시앙의 전진에서부터 만들어졌다. 그 이후부터 승부차기 전까지 첼시가 더 우세한 경기를 펼쳤다. 퍼거슨의 선택에 정당성을 부여한 것은 경기 내용이 아닌 결과였다. 2000년 레알 마드리드에게 패배한 이후 수비적인 시스템으로 변하지 않았더라면 그가 2번째 유러피언컵을 쟁취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2007/2008시즌부터 긱스가 후방에서 역할 수행을 하기 시작했고 따라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포메이션은 4-2-4와 4-3-3-0의 중간 형태였다. 2008/2009 시즌부터는 4-3-30에 더 가까웠다. 특히 유럽무대에서는 더 그랬고 '수비적인 공격수'를 만들어낸 선구자 역할을 했다. FC 포르투의 알리 시소코가 8강 1차전에서 지속적인 오버래핑으로 유나이티드를 힘들게 만들자 퍼거슨은 2차전에서 호날두를 중앙에 기용했다. 호날두는 올드 트래포드에서 있었던 1차전 경기에서 알리 시소코의 전진을 적절하게 제지하지 못했다. 대신 루니가 오른쪽에 배치되어 시소코의 전진을 방해했다. 유나이티드는 포르투 원정에서 비교적 쉽게 1:0 승리를 쟁취했다. 2007/2008시즌에도 루니는 바르셀로나와의 4강전에서 리오넬 메시를 막기 위해 사실상 2번째 풀백 역할을 수행하기도 했다. 박지성은 유럽 대회에서 퍼거슨 감독의 이런 요구를 아주 잘 수행했던 선수였다. 2009년 인터나치오날레와의 16강전에서는 박지성이 마이콘을 아주 인상적으로 봉쇄했다.


그렇지만 2009년 로마에서 있었던 바르셀로나와의 결승전에서 퍼거슨은 박지성의 위치를 잘못배치시켰다. 유나이티드의 4-3-3 포메이션에서 박지성은 실빙요를 마주치게 되었는데 사실 박지성은 반대편에 위치한 웨인 루니와 자리를 바꿨어야했다. 박지성이 카를레스 푸욜의 전진을 막았어야했고 루니가 푸욜보다 공략하기 쉬운 실빙요를 노려야했다. 유나이티드는 바르셀로나의 매끄러운 플레이에 0:2으로 무릎을 꿇었고 결승전 이후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까지 팀을 떠나면서 퍼거슨은 다시 한 번 팀을 개편해야하는 상황을 맞이했다.

 

출전 시간에 대한 불만이 있었던 테베즈의 이적, 들쭉날쭉하는 디미타르 베르바토프 때문에 루니는 2009/2010 시즌부터 정통 센터 포워드 역할을 수행하기 시작했다. 특히 루니는 AC 밀란을 꺾는데 선봉장 역할을 수행했다. 2009/2010 시즌은 1930년대 포워드들에게서 볼 수 있었던 파워풀한 헤더를 루니에게서 볼 수 있었던 시즌이다. 그러나 이 방식은 너무나도 옛날 축구였고 한 선수에게 과도하게 집중되는 형태였다. 챔피언스 리그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상대한 바이에른 뮌헨은 루니가 발목을 다치기 이전부터 그런 전술적 허점을 간파해 우세한 경기를 펼쳤다.


2010/2011시즌부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다시 4-4-1-1 혹은 4-2-3-1 포메이션으로 복귀했다. 하비에르 에르난데스와 로빈 반 페르시가 정통 센터 포워드의 역할을 수행했다. 또한 지난 2시즌간 유나이티드는 후방 미드필드 지역에서의 역동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꾸준하게 받았는데 퍼거슨은 때때로 필 존스를 수비형 미드필더로 기용하면서 중앙의 역동성 부족을 보완했다. 또한 루니를 보조 미드필더 형태로 사용하면서 문제를 해결해왔다.


1990년 FA컵 우승 이후, 2005/2006 시즌은 퍼거슨이 맞이한 가장 위태로운 시기였다. 그러나 이후 그는 5번의 리그 우승, 3번의 챔피언스 리그 결승 진출을 이뤄냈다. 최고 수준의 레벨에서 퍼거슨처럼 이토록 오랫동안 성공을 누려온 감독은 없었고 또한 퍼거슨만큼 경기 방식의 발전에 따라 그 변화를 잘 흡수해온 인물도 없었다.  


 


 

 

 

출처 : http://www.guardian.co.uk/football/blog/2013/may/08/sir-alex-ferguson-tactics-evolution

 



by Adam Bates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포워드 웨인 루니에게 1시즌의 운명을 맡기려고 한다. 우리는 이것이 올바른 결정인가에 대해서 알아보고자 한다.


29살 웨인 루니를 미드필더로 활용하는 실험은 이제 끝난 것으로 보인다. 지난 2014/2015시즌 웨인 루니는 후방 미드필더로 부적합한 경기력을 보였고 루이 반 할 감독은 그를 다시 센터-포워드로 원상복구시킬 예정이다. 지금까지 루니가 걸어온 발자취를 되돌아 본다면, 다시 루니를 센터-포워드로 활용하기로 결심한 감독의 결정은 아주 현명한 선택이라 볼 수 있다.


로빈 반 페르시의 페네르바체 이적과 라다멜 팔카오의 임대 만료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유니폼을 입고 지금까지 479경기에 출전해 230골을 기록했음에도 2011/2012시즌 이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공격진 최전방 임무를 단 한번도 1시즌 통째로 부여받지 못했던 루니가 그 역할을 수행하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이제 루니는 2015/2016시즌부터 새로운 포지션에서 새로운 임무를 부여받게 된다. 여러분들이 과거의 기록을 토대로 루니의 새 시즌에 대해 예측하려고 한다면, 2009/2010시즌 기록부터 참고하는 것이 가장 현명할 것 같다. 물론 2004년 전부터 루니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선수로 활약했지만, 팀의 핵심 인물(main man)로 진정 빛이 났던 시기는 2009/2010시즌부터이기 때문이다.


2009/2010시즌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80m의 이적료를 남기면서 레알 마드리드로 떠나 루니가 실질적으로 공격 라인을 이끌기 시작한 시즌이다. 루니는 리그에서 26골을 기록했고 104.73분당 1골을 넣었다. 유나이티드가 첼시에게 승점 1점차로 밀리면서 준우승을 차지했으나 루니는 모든 대회를 통틀어 34골을 넣었고 동료 선수들보다 22골 이상을 더 기록한 그가 PFA(프로축구선수협회) 올해의 선수상, FWA(축구기자협회) 올해의 선수상을 싹쓸이한 것은 결코 놀랍지 않았다.




루니를 위한 무대가 만들어졌다. 그렇지만 바로 다음 시즌에는 남아공 월드컵에서부터 부진하기 시작하더니 공격수 파트너인 디미타르 베르바토프에게 득점 수에서 밀리고 말았다. 베르바토프의 조력자 역할로 베르바토프가 20골을 기록할 수 있게 도왔지만 정작 자신은 11골 밖에 기록하지 못했다. 그러나 유나이티드는 리그 타이틀을 되찾았다.


2009/2010시즌 루니는 29개의 공격포인트를 기록했으나 2010/2011시즌 공격포인트는 22개로 떨어졌다. 그의 기록을 더욱 자세히 살펴보면, 최전방에 있을 때가 더 효율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베르바토프를 보조하는 역할을 수행한 2010/2011시즌 루니는 76.9%의 패스 성공률을 기록하며 이전보다 3%가량 높은 수치를 기록했고 기회 창출은 2.1회로 전 시즌 1.75회보다 더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그러나 2009/2010시즌 경기당 슈팅이 3.9회였던 루니의 슈팅 수는 2.7회로 떨어졌고 볼터치 횟수도 60.8회에서 56.75회로 떨어졌다. 


2011/2012시즌 루니는 다시 팀공격 최전선을 이끄는 역할을 부여받았다. 사람들은 루니가 공격수로 보여준 최고의 모습이 2009/2010시즌이라 말하지만, 오로지 공격 포인트에만 초점을 둔다면 2011/2012시즌이 최고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2011/2012시즌은 리그 27골로 커리어-하이를 기록한 시즌이며 베르바토프를 보좌하는 역할을 끝내고 대니 웰백과 하비에르 에르난데스와 호흡을 맞추며 루니가 공격 선봉에 나섰던 시즌이었다.


그러나 루니는 다시 한 번 암초를 만났다. 2011/2012시즌 유일하게 루니보다 더 많은 득점을 기록했던 선수, 로빈 반 페르시가 아스날에서 영입되었다. 반 페르시의 존재는 최전방 공격수 역할을 수행하고 싶어하는 루니에겐 항상 골칫거리였고 이 때부터 루니의 다재다능함이 본격적으로 팀을 위해 희생되기 시작되었다. 반 페르시는 알렉스 퍼거슨 경의 마지막 시즌, 26골을 기록하면서 리그 우승을 이끌어냈다. 반 페르시가 루니의 공격수 자리를 완벽히 뺏어낸 반면에 루니는 고갈되어가는 미드필드 지역의 구원투수 역할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되었다.


지난해 9월에 있었던 루이 반 할 감독의 인터뷰는 또 다른 불길한 징조였다. "루니는 여러 포지션에서 뛸 수 있다. 루니는 다(多)기능 선수로 나는 그를 스트라이커 포지션에서 활용해봤지만 엄청 대단하지는 않았다. 팔카오는 스트라이커니까 스트라이커 자리에선 팔카오가 더 잘할 것이라 본다." 팔카오와 반 페르시가 최전방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지만, 웨인 루니가 자신이 선호하는 센터-포워드로 경기에 나선 경우는 굉장히 드물었다. 공격 포인트 기록상으로도 루니의 팀 영향력이 상당히 줄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루니는 최전방에서 가장 빛나는 선수인데 그는 점점 더 후방으로 내려가고 말았다. 2009/2010시즌 경기당 평균 슈팅 수가 3.9회였는데 지난 시즌에는 1.6까지 떨어졌다. 또한 12골 5어시스트란 기록은 2004/2005시즌 이후로 최악의 성적이었다. 보비 찰튼 경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통산 득점 249골까지 고작 19골만을 남겨둔 선수를 그렇게 활용하는 것은 분명한 재능 낭비이다.


지난 2월, 웨스트 햄 유나이티드와 1:1로 비긴 경기 이후, 스카이스포츠의 제이미 캐러거는 "웨인 루니는 부적절한 포지션에서 뛰고 있다. 루니는 자신의 기량을 최고로 발휘할 수 있는 최전방으로 돌아가야만 한다."라고 말했다.


지난 시즌 루니를 미드필더로 활용하기로 결정한 자신의 결정을 옹호하면서 루이 반 할 감독은 이렇게 말했었다. "난 루니가 미드필더로 뛸 때 공을 더 많이 터치하기 때문에 그가 미드필더 역할을 즐길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지난 시즌 루니의 경기당 평균 볼터치 횟수는 66.8회로 최전방 공격수로 나섰던 2009/2010시즌 60.8회에서 크게 증가한 것이 없다. 기회 창출 횟수 역시 경기당 1.4회로 감소하여 지난 6시즌 기록 중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루니의 미드필더 기용이 그닥 성공적이지 못했다는 것을 감안하면, 다시 루니를 1순위 공격수로 복귀시키는 결정은 당연하다고 볼 수 있다. 지난 시즌 가장 (공격 포인트 관점에서) 생산적이지 못한 시즌을 보냈지만, 유나이티드 공격 최전선으로 돌아간 루니는 다시 최고의 폼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출처 : http://www.skysports.com/football/news/15115/9919049/should-wayne-rooney-lead-the-line-for-manchester-united-this-season



by Paul Scholes


알렉스 퍼거슨 경이 이끄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일원으로서, 유나이티드의 공격형 플레이어의 주요 일원으로서 선수들은 공을 소유하게 될 경우 위험을 감수하면서 골을 넣을 수 있는 찬스를 만들어내려고 해야한다. 위험을 무릅쓰는 과감한 공격 시도는 절대로 선택사항이 아닌 의무(obligation)이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선수 시절에 내가 전진 패스를 시도하는 것을 멈추거나 수비진의 공간을 벌릴 수 있는 위험을 감수해야하는 패스를 시도하지 않았을 때 내가 받아들였던 결과는 항상 똑같았다. 감독님은 나를 출전시키지 않았다. 감독님이 원했던 플레이를 다시 보여주는 경우에만 다시 경기를 뛰는 팀의 일원으로 선발될 수 있었다.


유나이티드의 역사는 공격적인 축구를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그래서 우리가 항상 클린 시트를 기록하거나 상대에게 찬스를 단 한 차례도 허용하지 않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지난 수년간 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최고의 골키퍼를 보유했던 것 같은가? 답은 이거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많은 선수를 공격을 위해 전진시켜야하고 그래서 최고 수준의 골키퍼가 필요했던 것이다.


루이 반 할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경기를 보면서 내가 어떠한 재미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 나한테는 그리 반가운 일이 아니다. 유나이티드는 수요일 밤에 번리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었지만, 전반전에 최고의 모습을 보여준 팀은 번리였다. 때때로 유나이티드의 축구는 절망적인 수준이다. 상대를 쳐부수기 위해서는 공격을 해야하고 공격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위험을 감수해야한다. 현재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선수들 중에서 위험을 감수할 준비가 되어있고 실제로 그러는 선수는 거의 없다고 봐야한다.


유나이티드의 미드필더로 뛰었던 나 역시도 모든 전진 패스를 성공시키지 못했다. 전진 패스를 시도하는 것이 스트라이커들에게 기회가 생긴다는 것과 반드시 동일한 것은 아니다. 미드필더들은 패스를 넣어주지만, 공을 받아서 골을 넣는 것은 스트라이커들에게 달려있는 것이었다. 그게 쉬운 일이었을까? 마냥 쉬운 일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우리는 유나이티드를 위해 뛰는 선수 아니었던가.


현재의 유나이티드에서 앙헬 디 마리아가 다른 어떠한 선수들보다 더 많은 위험을 감수하고 플레이를 펼치고 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디 마리아가 시도하는만큼 잘 수행되지는 않고 있다. 그는 수없이 많은 볼을 연결시켜주고 있지만, 현재 결과물로 돌아오는 것은 매우 적다.


지금의 팀은 볼 점유율을 굉장히 강조하고 있는데 조금 더 심하게 표현하자면, 지금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점유율에 강박증을 가지고 있다. 유나이티드 팬들은 공격적인 팀을 볼 수 있다면, 팀의 점유율이 40%밖에 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신경쓰지 않을 것이다. 선수 시절 경험을 통해서 느꼈던 것은 우리가 최고의 팀이더라도, 우리에게 피터 슈마이켈과 에드윈 반 데 사르가 있더라도 클럽의 서포터들은 우리가 실점할 수 있다는 것을 항상 이해해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우리가 결코 수비에 부주의하거나 골을 먹혀도 된다는 순진한 생각을 가졌던 것이 아니었다. 우리의 주된 목표는 언제나 공격이었고 실점할지라도 우리는 상대보다 더 많은 골을 기록하면서 우리의 가치관이 맞다는 것을 보여줬다.


다비드 데 헤아가 2014-2015시즌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얼마나 많이 살려냈는가? 데 헤아가 없었더라면 현재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순위는 지금보다 3~4단계 더 낮은 순위일 것이다.


물론 나는 현재의 팀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황금 세대라 불리는 팀과 비교하고 있다. 그리고 황금 세대가 영원토록 지속될 것이 아니란 것도 알고 있다. 난 수많은 최고의 선수들과 최고의 감독과 함께 선수 생활을 보냈던 행운아다. 그러나 난 클럽의 정신과 클럽만의 축구 방식은 지속되어야한다고 생각한다. 유나이티드는 공격적인 축구를 펼치는 팀이고 그 이외의 가치들은 공격적인 축구 이후에 고려되어야할 사항들이다.


마침내 우리는 로빈 반 페르시와 라다멜 팔카오라는 공격수를 얻게 되었다. 웨인 루니가 두 선수를 위해 자리를 비켜준 상황임에도 난 두 선수들이 굉장히 낯설게 느껴진다. 웨인은 피치 어디서든지 뛸 수 있는 선수고 강한 의지를 가진 선수이며 언제든지 최소한 자신의 기량의 70%는 보여줄 수 있는 선수이기도 하다. 번리와의 경기에서는 수비형 미드필더였고 때로는 오른쪽 측면까지 밀려나기도 한다. 거기서 루니는 스트라이커들과 스위칭 플레이를 시도할 것이다. 그러나 반 할 감독이 현재 공격수를 맡고있는 두 선수(반 페르시, 팔카오)보다 루니가 더 좋은 스트라이커 옵션이라 생각하지 않는다면, 그건 정말이지 심각한 문제일 것이다.


루니는 유나이티드에서 환상적인 득점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보비 찰튼 경과 데니스 로 다음으로 많은 골을 기록하고 있는 선수가 웨스트 햄과의 경기에서 상대팀 페널티 박스 지점에서 단 한 차례도 공을 터치하지 못했다. 이건 결코 팀에게 좋은 일이 아니다.


샘 앨러다이스 감독은 유나이티드를 향해 '롱볼 유나이티드'라는 조크를 날렸는데 반 할 감독은 이에 통계자료를 들이밀면서 반박했고 이 때문에 많은 비난 여론을 맞이했다. 우리는 루이 반 할 감독이 팀의 새로운 감독으로 부임했을 때 누군가에게 맞대응하는 것을 기대했기 때문에 그런 장면을 볼 수 있다는 것이 어느 선까지는 기쁘긴 했다. 그러나 반 할 감독은 자기 자신을 되돌아봐야할 것이다.그건 빅샘의 발언이었지 레알 마드리드, 리버풀, 바이에른 뮌헨 감독의 발언은 아니었다. 웨스트 햄을 상대로까지 그럴 필요는 없다.




출처 : http://www.independent.co.uk/sport/football/news-and-comment/paul-scholes-column-this-manchester-united-team-is-not-being-true-to-the-clubs-ethos-of-attacking-and-taking-risks-10042729.html


by Jonathan Wilson


"만약 감독이 바뀐다면?", "감독이 어느 시점에 바뀌는가?"의 질문에서 벗어난지는 한참 지났다. 지금 관심이 있는 것은 누가 다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감독이 되느냐이다. 지난 월요일에 있었던 슈루즈버리와의 FA컵 경기는 반 할의 올드 트래포드 임기를 끝내버릴 수도 있는 경기였다. 어쩌면 미트윌란과의 유로파 리그 경기에서 탈락한다면 그것도 또 하나의 사임의 시점이 될 수 있다. 지금 어느 누구도 다음 시즌에 반 할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감독직을 유지할 수 있을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체면치레를 할 수 있는 대회인 FA컵과 유로파 리그가 있지만 유나이티드가 그 대회를 병행함과 동시에 챔피언스 리그 진출권이 달려있는 리그 4위를 차지하지 못한다면, 알렉스 퍼거슨 경의 은퇴 이후로 벌써 3번째 수치스러운 시즌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축구판 뿐만 아니라 일반적으로 오랫동안 머무른 리더를 곧바로 성공리에 대체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이런 패턴을 겪는 것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1910년 올드 트래포드 개장 이후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리그 타이틀 관점에서 가장 성공적인 잉글랜드 클럽이자 동시에 라이벌들보다 재정적으로 상당한 이점들을 누려왔었다. 그러나 주목할 부분은 1910년 이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차지한 19번의 우승 모두가 단지 3명의 감독 아래서만 이루어낸 성과라는 점이다.


1910년 이후의 모든 리그 영광이 단 3명의 감독에게서 나온 것, 이것은 일반적인 축구계 문화에서 익숙치 않은 그림이다. 감독에게 이토록 큰 힘이 주어지는 곳, 클럽의 철학을 넘어 자신의 통제력을 행사할 수 있는 곳은 축구계에 그리 많지가 않다. 스완지 시티가 최근 부상하게 된 것도 권력이 감독에게서 다른 곳으로 이양되었기 때문이다. 감독은 훨씬 더 좋은 제안에 이끌려 팀을 떠날 수도 있고 실패한 것으로 인식되어 팀을 떠날 수 있다. 그러나 팀의 권력이 감독에게서 다른 곳으로 이양되면 클럽은 대격변 없이 감독 자리를 대체할 수 있다.


그러나 여전히 브리티쉬 문화는 감독만의 왕조를 건설하는 것에 대해 열망하는 모습이다. 모든 감독이 자기 클럽의 빌 샹클리, 맷 버스비, 돈 레비가 되어주길 바란다. 심지어 조세 무리뉴조차 첼시 감독으로 2번째 부임할 때 10년 계획에 대해서 언급했었다. 팀에 충성하는 젊은 홈그로운 선수들 무리, 또한 그들과 클럽이 오랜 시간을 함께 하면 서로가 완벽하게 상호 이해를 하는 것, 거기에 추가가되는 영입은 언제나 클럽 운영의 이상향으로 여겨지고 있다. 실제로 그런 조화가 이루어지면 결과물은 정말 환상적이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맷 버스비 경과 알렉스 퍼거슨 경 아래서 그런 경험을 했고 현재는 바이에른 뮌헨과 바르셀로나가 그런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쟁점은 그 영광의 순간 다음이다. 팀에 하나의 체계를 다져놓은 리더가 떠나면, 그 시스템도 사라지고 그 때부터 발생하는 사건들이 본격적으로 문제가 된다.



사례 : 맷 버스비 이후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1968년 유러피언컵 우승 이후 이들이 더 할 수 있는게 있었을까? 자신의 3번째 위대한 팀을 이끈 버스비 경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이룰 수 있는 위대한 상은 모조리 수집했다. 유러피언컵을 최초로 우승한 잉글랜드 팀이 바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고 바로 10년 전 뮌헨에서의 비극이 있었기에 이는 더욱 두드러진 성과였다. 1969년 1월에 버스비 경은 은퇴 의사를 밝혔는데 이 당시 그의 나이는 불과 59세였다. 그러나 그는 24년째 감독직을 이어오고 있었고 뮌헨에서의 트라우마는 계속해서 그를 지치게 만들고 있었다. 


그러나 버스비 경은 자신이 일종의 풋볼 디렉터로 존재하면서 그 밑에 감독을 두는 것을 구상하고 있던 것으로 보인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선택한 후계자는 윌프 맥기네스였다. 그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유스팀 출신이며 다리가 부러지는 부상을 당한 이후에 유스팀 코치를 담당하는 인물이었다. 맥기네스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첫시즌을 리그 8위로 마감했고 리그컵과 FA컵에서는 모두 준결승까지 진출했다. 


다음 시즌부터 조지 베스트는 점차 축구에 집중하지 못했다. 리그컵 준결승에서는 디비전3에 소속되어 있는 아스톤 빌라에게 패배했고 리그에서의 경기력은 형편없었다. 시티와 아스날에게 연패를 당하면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18위란 성적으로 크리스마스를 맞이하게 되었다. 드레싱룸에선 감독에 대한 반발, 파벌 형성에 대한 루머들이 있었으며 맥기네스는 다시 자신의 본래 직위였던 리저브팀 감독으로 복귀했다. 그러나 약 2주 후에 그는 완전히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떠났다.


맥기네스의 자리를 물려받은 인물은 바로 버스비 경이었고 유나이티드는 시즌을 8위로 마감했다. "유감스럽게도 모든 선수들이 윌프의 지시를 따르려하진 않았습니다. 모두가 윌프를 위해서 100% 헌신하진 않았던 것이죠. 우리의 문제는 그렇게 간단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버스비 경이 다시 무대로 복귀하니까 모든 것이 단번에 달라졌습니다." 데이빗 새들러가 이렇게 말했었다.


맥기네스의 문제 중 하나는 역할에 대한 경계의 애매모호함 때문이었다. 버스비 경의 주장에 따르면, 맥기네스는 선수들과 '과도하게' 친밀했다고 한다. 그러나 버스비 경이 이사진으로 클럽에 여전히 존재하는 마당에 맥기네스가 감독으로서의 자신만의 권리를 정립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이적 작업에서의 마지막 입김을 행사하고 일부 1군 선수 무리들과는 골프를 치는 관계까지 유지했던 버스비 경의 존재는 맥기네스만의 지위 확립에 어려움으로 작용했다.


1971년 여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레스터 시티의 감독인 프랭크 오파렐을 임명하는데 그는 버스비 경이 여전히 차지하고 있는 올드 트래포드의 감독 사무실을 자신에게 넘겨야한다고 주장했다. 베스트가 커리어 황혼을 태우는 시기였고 유나이티드는 시즌 첫 20경기에서 14승을 거두었으며 고작 2패만을 기록했다. 크리스마스 기간에 3경기 연속으로 무승부를 기록했으나 12월을 리그 1위로 마감했었다. 그러나 새해 첫날부터 웨스트 햄에게 0:3으로 패배하더니 역사상 처음으로 7경기 연속 패배까지 기록해 시즌을 8위로 마감했다. 이번에도 베스트는 다시 일탈하기 시작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형편없는 흐름은 새로운 시즌에도 이어졋고 개막 후 리그 12경기에서 고작 1승을 거두는데 그쳤다. 오파렐은 버스비 경이 특정 선수 이적을 (알렉스 스텝니, 윌리 모건) 방해했다고 주장했고 그와 버스비 경의 관계는 깨져버렸다. 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온 것은 10월에 토트넘에게 1:4로 패배한 이후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연례 행사에서 과음한 버스비 경이 오파렐의 아내에게 오파렐을 '자립심만 강한 골칫덩어리'라 표현한 것에서 시작되었다. 다가오는 월요일에 오파렐은 버스비 경에게 정확히 어떤 의미를 담아 이야기한 것인가에 대해서 물었는데 이에 버스비 경은 바비 찰튼이 선발 라인업에서 제외 되어선 안되며 (오파렐이 영입한) 마친 부찬은 형편없는 플레이를 선보인다고 전했다. 오파렐 입장에서는 버스비 경이 팀에 과도하게 참견하고 있다고 느낄만 했다.


12월에 리그 꼴찌인 크리스탈 팰리스에게 0:5로 패배하면서 오파렐의 임기도 그렇게 종료되었다. 오파렐의 자리는 토미 도허티에게 넘어갔는데 팀은 1974년 2부로 강등되었다. 그러나 곧바로 다시 승격에 성공하며 1977년에는 FA컵 우승을 차지한다. 그러나 도허티는 그해 여름 클럽의 물리치료사 아내와의 불륜이 발각되면서 경질되고 만다.


버스비 경은 언제나 자신의 직접적인 간섭이 있었다는 주장에 대해서 부인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버스비 경의 존재가 후임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줬다고 느낀다. 1973년 클럽에서 완전히 떠나야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버스비 경은 이렇게 대답했다. "내가 어떻게 이 자리를 떠날 수 있겠습니까. 전쟁의 폐허 후 잿더미 속에서 내가 일으켜세운 클럽, 뮌헨에서의 비극 이후에 내가 다시 만들어낸 클럽에서 내가 스스로 자리를 박차고 나가라는 말입니까? 내가 진심으로 사랑하는 클럽이자 이 클럽을 위해서 나를 던지며 살아왔다고도 할 수 있는 내가 어떻게 떠날 수 있겠습니까?"


어쩌면 버스비 경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떠나는 것은 불가능했던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것은 팀에게 문제가 되기도 했다. 한편 1974년 은퇴를 선언한 빌 샹클리가 훈련장에 오지 못하도록 조치한 리버풀의 상반된 대처는 유익한 결과를 불러왔다고 할 수 있다.



사례 : 발레리 로바노프스키 이후의 디나모





퍼거슨 경과 가장 유사한 인물을 뽑자면 바로 1973년부터 생을 마감한 2002년까지 디나모 키예프를 이끌었던 발레리 로바노프스키를 이야기할 수 있다. 물론 2번의 휴식 기간이 (1982~1984 & 1990~1997) 있었으나 그는 굉장히 성공적인 감독이었다. 12번의 리그 타이틀, 9번의 컵 대회 우승, 2차례의 컵-위너스 컵 우승을 이뤄냈으며 소비에트 스타일이라고 특징지을 수 있을만한 강한 압박 스타일을 정립했다. 그런 사람의 뒤를 잇는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현재 디나모 키예프를 이끌고 있는 세르히 레브로프는 포스트-로바노프스키를 찾는 디나모의 침체기를 벗어나게 해줄 수 있는 인물로 거론되고 있는데 그는 로바노프스키 이후 디나모가 임명한 8번째 감독이다. 디나모는 팀의 연속성을 이어가기 위해서 로바노프스키 감독 이후에 그의 아래서 직접 뛰었고 코치까지 지냈던 Oleksiy Mykhaylychenko를 감독으로 임명했다. 그는 2004년 챔피언스 리그 3차 예선에서 트라브존스포르에게 홈에서 1:2로 패배하며 경질되기 이전까지 2차례의 리그 우승과 1번의 컵대회 우승을 차지했다.


그 경기 이후 디나모의 회장 이호르 수르키스는 이렇게 말했다. "(경질해야할 이유는) 분명해졌다. 디나모의 발전과 그 과정에 있어서 방해가 되는 몇가지 것들이 발견되었다. 나는 선수들의 신체적 피로도에 대해서 이야기하려는 것이 아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우리의 심리적인 부분, 기강에 있다. 우리는 트라브존스포르전에서 그것이 약화되어 있다는 것을 목격했다. 지난해 경기장에서 80,000명의 팬들이 아스날에게 승리를 거둔 것에 대해서 아낌없는 박수갈채를 보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망신살 뻗치는 경기를 펼쳤다!"


디나모는 로바노프스키 아래서 뛰었던 선수들에게 의존했다. 그럴만한 것이 로바노프스키 밑에서 뛰는 선수가 아니었다면, 당시 우크라이나 축구계에선 그리 명망있는 인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샤흐타르 도네츠크의 성장과 디나모의 과도기를 겹치며 디나모는 4년의 시간동안 단 1차례의 리그 타이틀만 성취해냈다. 과거 디나모가 우크라이나를 평정했던 것을 기준으로 삼는다면 이건 생각조차 못할 일이다.


디나모의 경기장 벤치에 왔던 모든 사람들에겐 '발레리 로바노프스키'란 수식어가 붙었고 결국에는 로바노프스키에 대해 계속해서 기억하는 것이 경기에 대한 온전한 집중을 못하게 방해한다는걸 인지 못하기까지에 이르렀다. 조제프 자보는 위기의 순간에 본인이 "이 위기의 상황에서 발레리 로바노프스키라면 어떻게 대처했을까?" 까지 생각해봤다는걸 인정했다. 그러나 로바노프스키의 가장 큰 장점은 계속해서 발전하려고 했던 것이었다. 그것이 로바노프스키의 진정한 장점이었고 그렇게해서 약 30년간 최고의 자리를 유지할 수 있던 것이다. 핀트를 잘못잡은 것이다. 


그래서 2007년 12월에 디나모는 결국 로바노프스키의 제자 내에서 감독자리를 구하는 것 대신에 외부인을 영입하기로 결정했다. 그래서 데려온 인물은 모스크바 출신이자 직접적으로 로바노프스키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유리 세민이다. 그는 처음으로 온전히 지휘봉을 잡았던 시즌에 바로 리그 우승을 차지했으나 친정팀 로코모티브의 제안을 받고 다시 모스크바로 돌아갔다. 그 이후 또 다른 러시아인 발레리 가자예프가 자리를 이어받았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그 이후 클럽은 로바노프스키의 제자인 Alyaksandr Khatskevich에게 임시 감독을 맡겼고 또 다시 Mykhaylychenko가 다시 임시로 1달을 대신했다. 결국 디나모가 정식 감독으로 선택한 인물은 다시 로바노프스키의 제자인 올레흐 블로힌이었다.


블로힌은 아주 이상적인 로바노프스키 스타일의 선수였다. 디나모의 공격수로 19년을 보냈던 그는 로바노프스키 방식에 아주 철저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블로힌은 고집스럽고 완고하며 아주 성공적이지 못한 감독으로 기억되며 자리에서 물러나야만 했다. 2014년 4월, 18개월만에 그는 유감스럽게도 자리에서 물러나야했다.


디나모는 클럽 내부에서도, 클럽 외부에서도 로바노프스키의 성공을 이어갈 재목을 찾았으나 두가지 모두 로바노프스키 아래서 디나모 키예프가 경험한 성공을 유지하지 못했다. 현재 디나모를 이끌고 있는 감독은 로바노프스키의 3번째 위대한 팀, 1999년 챔피언스 리그 준결승전까지 진출한 팀의 키플레이었던 레브로프이다. 그러나 레브로프는 잉글랜드, 터키, 러시아에서도 선수 생활을 했었던 인물이다. 물론 블로힌의 코치로 일했으나 그의 철학은 우크라이나에만 머물러있지 않았으며 위르겐 클롭의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를 많이 닮으려고 노력 중이다. 처음 지휘봉을 잡자마자 리그에서 우승을 했고 유럽 무대에서 보여주고 있는 퍼포먼스는 디나모가 정말 발전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물론 우크라이나 동부에서 발생한 갈등으로 인해 샤흐타르가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다는 것도 고려해야할 점이다)



전임자 영향력에 대한 우려


두가지 사례에서 우리가 찾을 수 있었던 가장 큰 문제점은 권위자의 어렴풋하게 남아있는 존재감이었다. 버스비 경의 케이스는 아주 직접적인 경우였고 로바노프스키 같은 경우는 클럽이 과도하게 그 부분을 (전임자의 성과를 이어가야만 한다는 것) 인식했던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맥기네스와 오파렐이 시도한 모든 결정들은 버스비의 시각에서 재해석 되었다 : 두 감독의 결정이 버스비 경과 같은 노선을 달리고 있는가? 아니면 두 감독이 버스비 경에게 반기를 들고 있는가? 잇따른 디나모 키예프 감독들의 실패도 마찬가지였다. 새로운 감독에게는 기존 로바노프스키가 마련해놓은 하나의 진실된 길에서 벗어났을 때 발생하는 실패에 대해서 설명할 준비가 필요했다. 결국 새로운 감독들은 자신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시행하지 못했고 과거 로바노프스키가 옳다고 생각한 것들에 대해서만 집중하게 되었다.


오파렐은 특정 선수를 처리하고 싶었는데 그들 중 일부는 버스비 경과 사적인 자리에서 골프를 즐기는 사이었다. 그런 경우는 상황을 더욱 심각하게 만들게 된다. 현재 루이 반 할 같은 경우는 관중석에서 경기를 바라보는 알렉스 퍼거슨 경의 시선에 결코 주눅들어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어쩌면 데이빗 모예스는 그랬을지도 모른다.





리버풀이 자리에서 물러난 샹클리를 (훈련장에 오지 못하도록) 모질게 대한 것도 지금 회상하기에는 굉장히 매정한 것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그것은 클럽 입장에서 가장 최선의 선택이었을 것이다. 리버풀의 부츠룸 (1960대부터 1990년 초반까지 안필드에 있는 공간으로 코칭 스태프의 회의가 있던 곳) 전통은 리버풀 감독직 자리의 왕관이 잘 인수될 수 있도록 도와준 하나의 시스템 구조가 되었다. 샹클리에서 밥 페이즐리로, 페이즐리에서 조 페이건으로 넘어가는 흐름은 대중의 환호에 관심이 없는 페이즐리의 존재감 덕분에 더 성공적이었다. 



권력의 공백


전제 군주의 배경에 무엇이 있었느냐가 중요한게 아니다. 그의 존재를 무엇으로 대체하느냐가 더 중요한 것이다. 권력의 공백기에 새로운 세력이 떠오르게 되고 그 결과 맥기네스와 오파렐이 겪었던 것처럼 작은 규모의 혼란이 찾아올 수 있다. 어쩌면 더 심각한 규율 혼란이 올 수도 있다. 역사는 절대자가 물러나면 수많은 내전이 발생한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현재 이러한 위험 속에 존재하고 있다. 특히 알렉스 퍼거슨 경이 물러날 당시 데이빗 길 단장 마저도 자리에서 물러난 것이 더욱 그런 현상을 발생하게 만들었다. 현재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라는 팀은 아주 분명하게 두갈래로 갈라졌다 : 상업적인 부분에 더 신경을 쓰는 이사진이자 동시에 클럽에 새롭게 소개된 인물들 vs 연세가 있는 오로지 축구에 관련된 인물들, 특히 Class of 92 세대들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분들


에드 우드워드는 전자를 대표하는 인물이라 할 수 있고 현재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부조화스런 스쿼드를 갖추도록 초래한 산만한 영입 정책을 총괄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빅네임을 영입해야 한다고 꾸준히 이야기하는 것도 궁극적으로는 팀을 부유하게 만들겠다는 것에 기인하고 있다. 또한 이들은 조세 무리뉴 선임에 대해서 긍정적인 인물들로 맨체스터 시티의 펩 과르디올라 부임 발표에 대해 슈퍼스타 (조세 무리뉴) 로 대응하는 것을 생각한다. 조세 무리뉴의 기록은 굉장히 단기적인 성공에 치우쳐있음에도 말이다.


그와 반대점에 존재하는 축구에 관련된 인물들은 논란을 끊임없이 제조하는 감독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감독이 되길 원치 않는다. 또한 그들은 무리뉴가 계속해서 떠나면서 남겼던 것들, 정신적으로 선수들이 지치는 것들에 대해서 우려하고 있다. 무리뉴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떠날 때 그런 상황이 반복되는 것에 대해 우려한다.


그러나 무리뉴 선임보다 더 중요한 것이 따로 있다. 무리뉴 부임은 클럽의 근본적인 구조적 문제에 대한 해결이 될 수 없어 보인다. 앞으로 추가적인 비용이 지출되는 영입이 있을 것인데 그것은 에이전트들에게나 좋은 소식이지 클럽의 일관성 부분에 대해서는 결코 좋은 소식이라 할 수 없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2차례 황금기에 그 기반이 되었던 유스 시스템은 글레이져 가문의 인수 이후로 다소 방치된 부분이 있다. 1986년 론 앳킨슨의 자리를 이어받은 알렉스 퍼거슨 경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유스 시스템 구조를 소생시켰으나 현재 유력한 감독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조세 무리뉴는 과거 행적을 보았을 때, 그것을 재현하기 어려운 인물로 보인다.


부유한 클럽은 트로피를 향한 길을 언제나 돈으로 살 수 있다. 그러나 그 성공을 유지하는 것은 단순한 돈 이상의 무언가를 필요로 한다.


70년대와 80년대의 리버풀은 어떻게 다음 감독에게 권력을 이동시켜야 하는지에 대한 적절한 예시 모델이 될 수 있다. 전통을 깨는 것도 긍정적인 면으로 작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언제나 내포하고 있다. 1987년 케니 달글리시의 존 반스, 피터 비어즐리, 레이 휴튼 영입은 리버풀의 전통적인 영입 모델에서 벗어난 경우지만, 1987/1988시즌 리버풀은 짜릿한 축구를 선보였다.


어쩌면 그 때의 위대한 팀이 마지막 꽃봉우리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3명의 주요 선수를 영입하고 보다 창조적인 경기를 펼친 것은 리버풀에게 필요한 변화였다. 힐스보로 참사와 그로인한 후유증이 클럽을 덮어오기 시작했고 충격에 빠진 달글리시는 리버풀 감독직을 사임하게 된다. 자연스럽게도 리버풀은 내적인 부분에 신경을 쓰게되었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처럼 프리미어 리그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상업적 가능성에서 이점을 누리지 못했다.


레브로프가 디나모 키예프의 영광을 되찾고 있다고 주장하기엔 아직 시기가 이르다. 그러나 레브로프는 분명히 합리적인 모델을 찾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로바노프스키의 원칙은 여전히 디나모 키예프란 클럽의 원칙으로 남아있고 레브로프는 그런 로바노프스키의 위대함에 대해서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 그러나 레브로프는 로바노프스키의 신조에 결코 구속받지 않는다. 그는 디나모가 과거에 성공했던 방식에 집착하지 않으며 진보적인 입장을 취한다. 새로운 정보와 아이디어는 기존 디나모의 것이 아닌 다른 곳에서 착안하려고 한다. 레브로프는 다른 감독들처럼 위대한 로바노프스키의 그림자 밑에서 해답을 찾으려는 것이 아니라 로바노프스키의 철학을 기반으로 한 상황에서 새로운 답을 찾으려 한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우려해야할 것은 디나모 키예프가 이 해답을 찾는데까지 14년의 시간이 걸렸다는 것이다.





출처 : http://www.theguardian.com/football/blog/2016/feb/25/manchester-united-and-the-problem-of-moving-on-from-an-all-powerful-lead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