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가브리엘 마르코티는 '더 타임즈'에 펩 과르디올라에 관한 기사를 썼다. 그가 썼던 기사는 펩 과르디올라의 커리어를 칭찬하려는 의도가 아니였다. 과르디올라를 깎아내리는 비평들에 대한 응수를 두는 글도 아니였다. 그가 썼던 글은 2004년 축구에 펩 과르디올라가 얼마나 쓸모없는 선수인가에 대해 쓴 글이였다.


그의 글은 과르디올라가 더 이상 재능이 없다고 말하는 글이 아니였다. 피지컬적인 부분에서 출중하지 않았던 과르디올라의 주된 포지션은 수비수들 바로 앞 공간이었다. 과르디올라의 역할은 그 자리에서 앞선에 위치한 그보다 출중한 재능을 갖춘 선수들에게 공을 뿌려주는 것이였다. - 미하엘 라우드럽, 흐리스토 스토이치코프, 호마리우는 펩 과르디올라의 도움을 받은 선수들이다. 마르코티는 당시 33세였던 과르디올라에 대한 혹평을 했고,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서는 과르디올라가 정점에 위치해있어야만 했다.

 

그러나 당시에 그 누구도 과르디올라를 원하지 않았다. 2000년대 초반 유럽축구는 중원에 두가지 유형의 선수를 두는데 치중했었다. (거친 태클을 거침없이하는 수비형 미드필더와 전형적인 공격형 미드필더) 많은 빅클럽들은 파괴자-창조자의 조합을 선호했다.  실제로 유벤투스에서도 다비즈-지단의 조합이 있었지 않았는가? 과르디올라와 같은 딥 라잉 플레이메이커는 설 자리가 없었다.

 

마르코티의 기사를 인용하겠다.

 

"미드필더로서 그가 가진 기술들은 이제 쓸모없어졌다. 현대축구는 과르디올라와 같은 선수를 배척하고 있다. 그의 커리어는 훌륭하나 이제 과르디올라의 자리는 없다. 과르디올라와 같이 복잡한 패턴의 패스를 시도하는 선수들은 팬층을 잃어가고 있다."

 

과르디올라 본인의 인터뷰를 인용하겠다.

 

"나는 변하지 않았으며, 나의 기술 역시 퇴보하지 않았다. 단지 현대의 축구가 달라진 것일 뿐이다. 이제 축구는 더욱 빠르게 진행되며 신체적인 조건이 더 요구되고 있다. 현대 축구의 전술은 달라졌다. 이제는 중원에 패트릭 비에이라와 에드가 다비즈와 같이 공을 잘 뺏어내고 태클을 시도하는 선수들을 원하고 있다. 이제 패스를 잘한다는 것은 보너스와 같은 부분이 되어버렸다. 이제 중앙에 위치한 미드필더들은 수비적인 역할에 치중한다. 나같은 스타일의 선수는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한 이야기는 2004년의 이야기였고, 2010년 현재 유럽의 챔피언은 펩 과르디올라가 이끌고 있다. 과르디올라는 자신의 플레이 스타일을 바르셀로나에 주입시켰다. 그는 중원에 3명의 미드필더를 기용하는데 세명의 선수 모두 과르디올라와 같은 유형의 선수이다. -챠비 에르난데스, 안드레 이니에스타, 세르히오 부스케츠. 그리고 챠비와 이니에스타는 스페인 국가대표팀을 유로대회 우승으로 이끌었다. 6년전에 축구계에서 죽었던 과르디올라의 정신은 2010년의 축구를 이끌고 있다.


짧은 시간안에 그토록 많은 변화가 발생했다는 것은 놀랍다. 과르디올라 유형의 선수가 부활한 가장 큰 요인은 2000년대 초반의 4-4-2 포메이션에서 4-2-3-1 포메이션과 4-3-3 포메이션으로 흐름이 바뀌면서 발생했다고 볼 수 있다. 두 포메이션의 특징은 중앙에 3명의 미드필더를 둔다는 것이며, 한 명의 선수가 여유롭게 남는다는 특징을 지닌다. 기존의 파괴자-창조자 조합에 이제는 '패서'가 추가되었다. 리버풀이 리그 우승에 가장 근접했던 2008-2009 시즌 리버풀의 중원 조합은 다음과 같았다.  마스체라노(파괴자)-사비 알론소(패서)-스티븐 제라드(창조자)

 

그러나 변화에 더 큰 요인을 준 부분이 있다. 2000년대 초반에 마켈레레의 역할을 담당하는 선수를 기용해야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주된 방어대상이 되는 공격형 미드필더의 감소현상이 발생했다. 더불어 막아야할 상대의 수가 줄어들었기 때문에 마켈레레 역할을 담당하는 미드필더의 수도 줄어들었다. '창조자' 역할을 담당하는 선수들은 밑으로 내려가 플레이를 하고 더욱 조직적인 패싱 플레이를 선보인다. - 세스크 파브레가스와 안드레 이니에스타는 3명의 미드필더 중 가장 위에 위치하게 되었다. 그리고 홀딩 미드필더는 태클러에서 패서로 변하게 되었다. - 마이클 캐릭과 세르히오 부스케츠가 가장 큰 수혜자이다. 그리고 중원 대결은 더 이상 피지컬 대결과 공을 뺏어내는 대결이 아니라 패싱 중심의 대결로 바뀌었다. 그리고 이런 방식은 바르셀로나가 몸소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선수들이 순전히 바르셀로나에서만 만들어진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다른 유럽 국가에서도 패싱 능력으로 자신의 지위를 확고히 만든 선수들이 존재한다. 안드레아 피를로는 분명한 예시가 될 수 있다. 과르디올라를 '쓸모없는 선수 유형'이라 혹평했던 마르코티도 그 기사에서만큼은 다른 클럽들과는 상반된 축구를 구사하는 AC 밀란에서만큼은 과르디올라가 통할 수 있을 것이라 말했다. AS 로마의 다비드 피사로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나 최근 몇년간 로마는 특이한 포메이션으로 축구를 하고 있었다. 피사로도 인테르의 4-4-2에서는 굉장히 힘들어했다. 따라서 우리는 거의 10년간 볼을 다루는 미드필더들이 특이한 포메이션을 구사하는 팀에서 성공적이였다고 추론할 수 있겠다.


또한 우리는 과르디올라 감독이 챠비와 이니에스타를 만들어냈다고 착각해서는 안된다. 그들은 이미 바르셀로나 유스가 만들어낸 선수들이였다. 그러나 그들이 어린 시절에 과르디올라의 플레이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점과 레이카르트 감독 아래에서는 출전 기회를 충분히 보장받지 못했다는 점은 사실이다. 2006년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레이카르트 감독은 두 선수를 벤치에 두었다.

 

세기가 바뀌면서 모두들 기대했지만, 여전히 피지컬은 기술을 이기지 못하고 있다. 반대의 상황이 현재 펼쳐지고 있다. 기술적인 부분은 그 어느때보다 더욱 중요해졌다. 과르디올라의 말을 인용한 부분을 다시 읽어보라. 2004년이 완전히 다른 세상이였던 것처럼 느껴질 것이다. 6년전 쓸모없는 선수라고 혹평을 받았던 과르디올라의 철학은 유럽축구를 이끌고 있다.

 

과르디올라 감독이 바르셀로나 감독으로 부임했을 당시의 나이는 37세였다. 앞서 언급했듯이 신체적인 능력은 과르디올라의 장점이 될 수가 없다. 그러나 그의 프로정신을 고려해보면 패싱 능력은 여전했을 것이다. 과르디올라 감독이 37세에도 라 리가 혹은 세리에A에서 충분히 통했을 것이라는 소리는 그다지 불합리적인 말이 아니다. 시대가 따라주지 않은 탓에 과르디올라는 커리어를 너무나 일찍 마쳐버렸다. 하지만 그 덕분에 과르디올라가 빠른 시기에 감독직을 수행하여 그의 철학이 빠르게 축구계에 침투하게 되었다.

 

따라서 2000년대 축구전술의 가장 매력적인 부분은 과르디올라이즘(Guardiolaism)의 흥망성쇠였다.

 

 

 

 

 

출처 : http://www.zonalmarking.net/2012/04/27/how-the-2000s-changed-tactics-1-the-fall-and-rise-of-the-passing-midfielder/



by Michael Cox


이번 주말은 전설적인 딥라잉 플레이메이커들에게 좋은 결과가 있었다. 스페인 무대에서는 챠비 에르난데스가 프리킥 득점을 기록하면서, 바르셀로나의 2-0 승리를 이끌었고, 이탈리아에서는 안드레아 피를로가 경기를 지배하여 유벤투스에게 5-0 대승을 안겨주었고, 환상적인 칩슛을 시도했다. 그 다음날 잉글랜드에서는 폴 스콜스가 이번에도 수준높은 플레이를 펼치면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울브스를 두들겨패는 것에 일조했다.

 

피를로와 스콜스가 맞이했던 상황은 동일했었다. 두 선수 모두 전반전에 퇴장을 당했던 팀을 상대로 원정 경기를 가졌었다. 피오렌티나와 울브스 모두 압박을 잘해내지 못했고, 수많은 문제점을 드러내며 경기를 이끌고 가질 못했다. 즉 유벤투스와 유나이티드에게는 미드필드 깊은 지역에서 공을 만질 많은 시간이 있었다는 것이고, 이에따라 피를로와 스콜스가 빛날 수 있었다.

 

그들에게 어려운 경기 진행양상이 아니었다. 스콜스는 전력질주를 거의 하질 않는 선수고, 피를로는 득점을 확실히 노리고 있을때만 전력질주하는 선수이다. 질주하는 선수들은 아니지만, 이 두명의 선수의 기술적 능력을 볼 수 있었던 경기인건 확실했다.

 

중앙을 거닐면서, 동료에게 짧은 패스를 연결, 그리고 반대편 측면으로 공을 뿌리면서 10명이서 싸우는 상대를 힘들게 만들기. 피를로는 143개의 패스를 했으며 성공률은 97%였다. 스콜스는 98개의 패스를 했으며 성공률은 98%였다.오직 챠비만 11명을 상대했고, 그는 경기 중간 교체되었다. 따라서 챠비의 패스 횟수는 88회밖에 되질 않는다. 그의 성공률은 90%이다.

 

피를로와 스콜스는 이번주말 같은 경험을 했으며, 커리어를 통틀어봐도 이들은 유사하다. 커리어 초기에 이 두 선수는 공격형 미드필더의 냄새가 났었다. 공격형 미드필더 또는 딥라잉 스트라이커 역할을 맡는 선수였다. 속도가 떨어져가는 선수 경력 막바지에 더 뒤로 쳐져서 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속도라는 것은 두 선수에게 필수적 요소는 아니였다. 스콜스의 스피드는 그의 최고 무기가 아니였었다. 오히려 타이밍을 맞추는 능력이 더 뛰어났었다. 피를로는 역동적인 선수가 아니였고, 그는 공이 오는 것을 기다리는 선수였다. 오히려 그의 팀동료 때문에 그가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만약에 그들의 속도가 그들이 경기장의 뒤로 물러난 이유라고 치더라도, 경기자체의 속도가 빨라져서이지 그들의 스피드가 떨어진 것이라 보긴 힘들다. 피를로는 브레시아 임대시절인 22세 즈음부터 수비적으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로베르토 바죠가 그의 팀 동료였고, 피를로는 좀 더 깊숙히 내려간 위치해서 플레이할 필요가 있었다. 그가 밀란으로 이적했을 때, 루이 코스타와 클라렌세 셰드로프도 같이 이적했고 피를로는 계속 후방에서 뛸 수 밖에 없었다. 스콜스는 커리어 말년 10년에 걸쳐서 점차 후방으로 내려오는 자연적인 과정을 거쳤다. 하지만 이 변화는 오히려 그의 경기력을 더 상승시키는 요인이 되었다.


챠비는 이들과는 조금 다르다. 두 선수와 구별되는 부분은 확실히 짧은 패스를 선호한다는 것이다. 반면 스콜스와 피를로는 반대편 측면을 향해 대각선으로 길게 연결해주는 패스를 선호한다. 또한 그는 두 선수와 포지션 측면에서도 다르다. 득점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피보테' 역할을 바르셀로나에서 담당하기 시작했다. (피보테 : 수비적 역할보다 공격의 시발점이 되도록 경기를 조율하는 선수) "그들은 저에게 경기장을 오르락내리락하면서, 어시스트를 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챠비가 그라함 헌터가 쓴 '바르샤 : 세계에서 가장 잘나가는 팀을 만든다' 집필 과정에서 했던 인터뷰입니다. "깊숙히 내려앉은 위치에서 뛰는건 어렵습니다. 그 위치보다 10~15미터 정도 앞서있는 지금의 위치가 제일 쉽게 느껴집니다."

 

다른 방식으로라도, 이 세명의 선수는 사장되어가던 딥라잉 역할을 되살리는데 기여했습니다. 피를로와 챠비가 우상으로 삼았던 펩 과르디올라의 존재가치를 되살리고 있으며, 과르디올라는 2001년 31세의 나이로 바르셀로나를 떠날때 스콜스를 가리키면서 '나의 세대에서 최고의 미드필더'라고 치켜세운 바 있습니다. 과르디올라는 바르셀로나를 떠나 피를로의 대체자를 원했던 브레시아로 이적했습니다.

 

챠비가 바르셀로나와 스페인 대표팀의 핵심인 반면, 스콜스와 피를로는 언제 팀에서 떠날지 모르는 선수들입니다. 밀란은 피를로와 재계약을 원하지 않았었고, 피를로도 새로운 도전을 원해서 유벤투스로 이적했습니다. 폴 스콜스는 리저브팀 코치 생활을 하다가 선수로 복귀했습니다. 두 선수에게는 현재 에이전트가 없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가치를 계속 증명하겠지만 지금까지의 활약으로도 '올 시즌 최고의 공짜 영입'으로 손꼽힐만 합니다. "피를로와 같은 수준과 능력을 지닌 선수요? 그를 영입한건 이탈리아 내에서 최고의 영입일 것입니다." 지안루이지 부폰이 이렇게 말했었습니다.

 

피를로와 스콜스는 기대치 이상의 활약을 보이고 있습니다. 수비적인 부분에서 모자람이 있을까 예상했지만, 그런 예상을 깨고 있습니다. 피를로는 그 어느시절보다 더 깊숙히 내려앉아 뛰고 있으며, 젠나로 가투소와 같은 선수와 뛰고 있지도 않습니다. 아르투로 비달과 클라우디오 마르키시오는 피를로보다 앞선에서 뛰고 있습니다. 수비진 앞에는 피를로만 남아있을때가 있지만, 그의 포지셔닝으로 방어에 성공합니다. 주로 패서-러너로 구성되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미드필더진이지만, 스콜스의 가세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공의 분배에 더 초점을 맞춰 경기의 템포를 조절할 수 있는 중앙 미드필더 라인을 형성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런 환경조건들은 이들에게 더할나위 없이 좋은 환경들입니다. 그들의 주변은 차분해야하고, 참을성 있게 경기를 진행시켜 상대팀을 궤멸시켜버립니다. 보통 이런 부류로 구분되는 선수들(마이클 캐릭, 리카르도 몬톨리보, 네스토 오르티고사)과 챠비, 스콜스, 피를로의 차이는 후자가 그런 경기환경들을 스스로 만들어낼줄 안다는 것입니다. 특히 이러한 경기를 만들어가려는 시도는 상대가 강하게 나설 경우에 굉장히 어려워집니다. 격렬한 경기에서 템포를 끊어 자신들이 원하는 페이스로 이끌줄 아는 능력은, 그 반대로 만드는 능력보다 훨씬 대단한 능력입니다.

 

경기를 차분하게 풀어가는 만큼, 그들의 경기장 밖에서의 생활도 유사합니다. "경기장과 드레싱룸을 저에 대해서 알 경계로 삼겠습니다. 다른 부분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해요. 인터뷰도 좋아하질 않고, TV프로에 나가는 것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페이스북과 트위터도 없습니다." 피를로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폴 스콜스는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챠비의 경우에는 취미 생활이 버섯 따기입니다.

 

폴 스콜스가 지난 여름에 은퇴선언을 했을때 많은 박수갈채를 받았지만, 그의 개인상복은 피를로와 챠비에 비해서 모자랍니다. 피를로는 2006년 월드컵 결승전 최우수 선수로 선정되었고, 2006년 대회에서 브론즈볼을 수상했습니다. 챠비는 발롱도르 3위에 3차례 이름을 올렸고, 유로 2008 최우수 선수로 선정되었습니다.

 

스콜스가 아무런 개인상을 받지 못했다는 것은 충격적인 일이지만, 그의 메이져대회에서의 임팩트는 모자란 부분이 있다. 그 점에서는 그의 개인상이 없다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그가 여지껏 발롱도르 투표에서 단 1표도 얻지 못했다는 것은 굉장히 놀라운 사실이다. 2000, 2001, 2003, 2004, 2007년 이렇게 5차례 발롱도르 50인 후보에 이름을 올렸는데도 불구하고 그에게 표를 던졌던 기자들은 여지껏 없었다. 그가 딱히 어느해에 상위 5인에 손꼽힐 정도의 뛰어난 활약을 했던 것은 아닌데, 얀 콜러, 파파 부바 디우프, 프레드릭 카누테도 받았던 표를 그가 여지껏 단 1표도 못얻었던 것은 의아하다.

 

아직 시간은 충분히 있다. 챠비와 피를로의 영향력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리고 스콜스에게도 이는 마찬가지이다. 알렉스 퍼거슨 경은 스콜스의 유로 2012 참가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스콜스의 수준에서 아직 마치지 못한 과제들은 많다. "제가 잉글랜드에 변화를 줄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가 2010년 카펠로 감독의 대표팀 복귀 설득에 이렇게 대답했었다. 하지만 그는 대회가 끝나고 이런 말을 남겼었다. "제가 잘못된 결정을 내렸던 것 같습니다." 폴 스콜스는 은퇴를 번복하고 복귀한 선수다. 은퇴하고 돌아온 선수의 기량에 의문을 품고 그가 대단한 영향력을 행사할지 의문을 품을순 있겠지만, 스콜스는 그에 대한 대답을 지금 하고 있다.

 

 

 

 

 

 

 

출처 : http://www.guardian.co.uk/football/blog/2012/mar/19/paul-scholes-xavi-andrea-pirlo-playmak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