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분간의 별다른 소득 없는 경기가 펼쳐진 이후, 세르히오 로메로가 영웅으로 등극했다.


알레한드로 사베야 감독은 징계에서 복귀한 마르코스 로호를 선발로 복귀시켰다. 부상을 당한 앙헬 디 마리아의 자리는 엔조 페레즈가 대신 차지했다.


루이스 반 할 역시 부상에서 돌아온 나이젤 데 용을 다시 선발 명단에 복귀시켰고 이에 따라 데일리 블린트가 그간 멤피스 뎀파이가 위치했던 윙백 자리로 돌아갔다.


굉장한 긴장감이 있었던 경기였다. 그렇지만 별다른 상황이 발생하진 않았다. 지금까지 있었던 62경기 중 가장 적은 슈팅이 나온 경기였고 상대 진영에서 볼 터치 횟수도 가장 적었던 경기였다.



거의 없었던 득점 기회


120분 경기를 뛰었음에도 이렇게 유효슈팅이 적었다는 사실은 놀라울 따름이다. 모두 5번의 유효슈팅이 기록되었는데 네덜란드가 1번, 아르헨티나가 4번을 기록했다.


네덜란드의 유일한 유효 슈팅은 아르연 로벤의 주특기인 박스 오른쪽 바깥 부근에서 중앙으로 이동하면서 시도한 왼발 슈팅이었다.


아르헨티나의 슈팅 역시 마찬가지로 야스퍼 실러센을 크게 위협하지 못했다. 리오넬 메시의 프리킥은 골키퍼 정면으로 갔고 로호의 장거리 슈팅은 실러센이 너무나 편하게 잡아냈다. 연장전에서 로드리고 팔라시오와 막시 로드리게스의 슈팅은 정확한 임팩트가 되지 못했다.


다른 기회들도 있었지만, 경기는 너무 이른 시간부터 승부차기까지 가지않을까하는 인상을 주었다.



네덜란드의 포메이션


이번 월드컵에서 루이스 반 할은 굉장히 수동적인 자세로 경기에 임하고 있다. 코스타리카전에서는 3-4-3 포메이션을 사용했지만 이번 경기를 앞두고 반 할은 3-4-1-2로 전환을 시도했다. 반 할은 이전 경기들처럼 선수들이 효과적으로 상대 선수를 맨마킹해주길 희망했고 그에 따라 미드필더 숫자를 늘리는 것은 당연한 선택이었다. 방어적인 입장으로 나선 네덜란드는 자기 진영에서 더 많은 태클을 시도했고 반면 아르헨티나가 태클을 시도한 범위는 광범위하다.







네덜란드의 맨마킹은 이러했다 : 데 용이 메시를, 바이날둠이나 스네이더가 루카스 비글리아를 마크하는 것이었다. 네덜란드는 하비에르 마스체라노를 그렇게 열심히 방어하지 않았는데 다른 선수들이 맨마킹을 당하면서 만들어진 넓은 공간에서 마스체라노는 굉장한 창조성을 보였다. 측면으로 향하는 멋진 패스를 시도했으며 이러한 패스들이 네덜란드 수비진 간격을 벌어지게 만들었다. 비록 오프사이드 선언이 되었지만, 후반전에 메시를 향한 패스는 단연 최고였다.







메시&로벤


이 경기는 메시와 로벤이 만들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으나 정작 둘은 별다른 인상을 주지 못했다. 메시는 데 용이 자신을 굉장히 타이트하게 방어하고 있다는걸 느꼈다. 데 용이 60분 이후 교체되었지만 네덜란드는 중앙에서 굉장히 밀집된 모습을 보여줬고 메시는 공간을 찾기 어려워했다. 이 때부터 메시는 오른쪽 측면으로 빠지기 시작했다.


로벤은 측면에 자리를 잡고 있는 아르헨티나 풀백들 때문에 공간을 쉽게 찾아내지 못했다. 파블로 사발레타와 마르코스 로호는 90분간 별다른 오버래핑을 시도하지 않았고 로벤은 수비수 사이의 공간을 쉽게 발견하지 못했다.








오른쪽 공간을 노린 아르헨티나


주요 접전이 벌어진 위치는 바로 네덜란드의 왼쪽 수비수 위치였다. 물론 네덜란드에 왼쪽 풀백이 없지만, 왼쪽에 위치한 센터백은 있었다. 브루노 마르틴스-인디는 이번 대회 내내 자신이 주로 방어해야할 선수에게 굉장히 직접적인 맨마킹을 시도해왔다. 맨마킹 수비는 제대로된 맨마킹을 시도하는 것도 있고 그저 가까이 다가가서 멍청한 파울을 범하는 경우의 수비도 있는데 이번 경기에서 마르틴스-인디가 보여준 수비는 후자에 가까웠다.


아르헨티나의 분명한 전략은 마르틴스-인디를 자리에서 끌어내는 것이었다. 종종 곤잘로 이과인이 오른쪽으로 이동해 마르틴스-인디를 끌어냈고 오른쪽에 위치한 미드필더들이 만들어진 공간을 침투했다. 추가적인 부담을 주기위해 메시도 그 공간으로 이동했는데 이때부터 데일리 블린트가 약 15야드 정도 후퇴하여 마르틴스-인디와 같이 협력 수비를 펼치기 시작했다. 블린트의 후퇴로 사발레타가 굉장히 자유로워졌다.


굉장히 특이했던 요소는 아르헨티나가 집요하게 공략하는 위치에 에제키엘 라베찌가 아닌 페레즈가 있었다는 것이다. 라베찌는 윙어로 뛰고있는 공격수였고 페레즈는 윙어로 뛰고있는 중앙 미드필더였다. 라베찌가 공격적으로 더 위협적인 카드인데 오른쪽에서 주로 활약한 것은 페레즈였다. 우리가 아는 라베찌는 전방 1/3지점에서 언제나 위협적인 모습을 보이는 선수이고, 우리는 아래 자료를 통해 두 선수가 받은 패스를 비교하고자한다. 두 선수의 움직임이 어떻게 다른지는 그림만 봐도 분명하게 드러날 것이다.







아르헨티나가 최고의 시간을 맞이한 것은 하프타임 이전이었다. 라베찌가 오른쪽 측면에서 위협적인 장면을 만들어냈는데, 공간을 발견한 그는 좋은 드리블을 시도한 후 위협적인 크로스를 시도했다. 결과물이 시원찮았기 때문에 라베찌의 실망감이 컸겠지만, 라베찌가 이처럼 위험지역에서 활용할 수 있는 카드라는걸 입증하는 장면이었다.  



후반전의 변화


반 할 감독은 경고를 받은 마르틴스-인디를 빼고 데릴 얀마트를 투입시켰다. 딕 카윗이 왼쪽 윙백으로 자리를 옮겼고 블린트가 스토퍼 위치로 내려갔다. 전반전이 종료되기 이전에 페레즈와 라베찌가 위치를 맞바꾸었으나 사베야 감독은 다시 라베찌와 페레즈의 위치를 바꿔 라베찌를 왼쪽에 위치시켰다. 그럼에도 라베찌는 오른쪽으로 이동해 위협적인 크로스를 이과인을 향해 올렸으나 얀마트가 공중에서 멋지게 끊어냈다. 그 이후 페레즈 역시 오른쪽에서 이과인을 향해 완벽한 득점 기회를 만들어주었으나 이과인이 이를 옆그물로 보내버리고 말았다.  라베찌가 오른쪽 측면에서 더 위협적이었던 선수였지만, 페레즈의 크로스에 이은 이과인의 슈팅이 이번 경기에서 가장 확실한 득점 기회였다.








사베야 감독은 81분에서야 공격적인 변화를 줬다. 로드리고 팔라시오가 페레즈 대신 투입되었고 세르히오 아게로가 이과인 대신 투입되어 아르헨티나는 이제 발빠른 공격수를 3명이나 갖추게 되었다. 라베찌, 팔라시오, 아게로에 10번 역할의 메시까지 있었다. 이들은 공간을 찾아내 빠르게 공격할 준비가 되었다. 


반 할은 경고를 받은 마르틴스-인디를 뺐고 부상 회복 후 약 1시간 정도밖에 뛸 수 없었던 데 용을 뺐다. 그리고 이번 주 내내 아파 120분을 소화할 수 없었던 반 페르시를 뺐다. 따라서 코스타리카전에서 성공적이었던 승부차기를 대비한 팀 크룰 기용 카드는 꺼낼 수가 없었다.


경기는 마스체라노의 빛나는 수비가 아니었다면 연장전에 돌입하지 않았을 것이다. 센터백 앞에서 뛰고 있었던 마스체라노는 빠른 속도로 복귀해 완벽한 커버를 해줬다. 이 장면은 이 대회에 참가한 중앙 미드필더들 보여준 여러가지 장면들 중 최고의 장면이 아닐까 싶다. 마스체라노의 이 수비가 없었다면 연장전은 있지 않았을 것이다. 






결론


상대를 무력화시키기에 주력한 두 팀은 굉장히 실망스러운 경기를 보여줬다.


네덜란드의 주된 특징은 맨마킹 수비였고 수비라인과 미드필더라인 모두 맨마킹을 시도했다. 아르헨티나는 공간을 찾으려고 노력했고 주로 자신들의 오른쪽이자 네덜란드의 왼쪽에서 득점 기회들을 만들어냈다. 


네덜란드는 반 할 감독이 시도한 맨마킹 시스템과 상대팀의 미드필더에 맞춰 경기마다 변형되는 포메이션, 윙백들을 후퇴시켜 언제나 후방에 여분의 수비수가 남아있도록 하는 전술을 통해 대회 내내 매력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칠레를 2:0으로 잡은 것은 반 할 감독의 전술적 유연성을 보여준 좋은 사례라고 볼 수 있었다. 그렇지만 네덜란드는 토너먼트 이후부터 경기력이 떨어졌다.


승부차기에서 패배하는 것은 잔인한 일이다. 그렇지만 네덜란드는 2경기 연속으로 득점없이 120분 경기를 소화했다.


아르헨티나는 5번의 1점차 승부 그리고 승부차기 승리로 결승전에 도달했다. 이번 경기에서는 이전보다는 전술적인 모습들이 보였는데, 그들은 네덜란드의 취약 지점을 집요하게 공략했다. 90분간 공격적인 자세로 경기에 임했고 상대팀보다 더 많은 기회를 가져갔다. 아르헨티나는 3경기 연속으로 무실점 경기를 기록했는데 토너먼트에서 이러한 수비력은 주목할만하다. 특히 대회 이전에 아르헨티나의 취약 요소가 수비라인이라 여겼던 것을 감안하면 말이다.




출처 : http://www.zonalmarking.net/2014/07/10/argentina-0-0-netherlands-argentina-through-on-penalties/






원문은 2016년 1월 14일자 글입니다.


2015년 네덜란드 국가대표팀의 첫번째 경기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 아르연 로번이 킥오프를 했고 공은 바스 도스트에게 전달되었다. 도스트는 그걸 다시 베슬리 스네이더에게 연결했고 스네이더는 제프리 브루마에게 또 브루마는 데일리 블린트에게 공을 연결했다. 블린트는 다시 브루마에게 브루마는 그걸 다릴 얀마트에게 연결했다. 얀마트는 다시 브루마에게 백패스를 했고 브루마는 블린트와 원투패스를 주고 받았다. 공은 빠르게 테렌스 콩골로에게 연결되었는데 이는 다시 블린트에게 돌아왔다. 블린트는 스네이더에게 그런데 스네이더는 다시 블린트에게 백패스를 했다. 블린트는 비르힐 반 다이크에게 패스했고 다시 반 다이크가 블린트에게 공을 연결했다. 블린트는 다시 반 다이크에게 반 다이크는 브루마에게 패스했다. 공은 다시 블린트에게 갔고 블린트는 측면에 위치한 콩골로에게 연결했으며 콩골로는 다시 반 다이크에게 공을 줬다. 이렇게 1분 3초를 소비한 뒤에 반 다이크는 처음으로 하프 라인을 넘어가는 패스를 시도했다. 그는 저 멀리 위치한 아르연 로벤을 겨냥해 매우 깊은 곳에서 롱패스를 시도했다.






네덜란드와 웨일스의 대결에서 경기 시작 후 첫 63초간 보여준 네덜란드 대표팀의 모습은 현 상황을 그대로 보여준다. 부차적으로 그것은 네덜란드 대표 선수들의 요람 에레디비지에의 모습, 안전한 패스를 주로 시도하며 상대의 볼소유를 억제하기 위해서 공을 점유하는 경향을 뚜렷하게 나타냈다.



90분 터치 횟수


유로 2016 본선 진출국 중에서 네덜란드보다 더 높은 점유율을 기록한 국가는 스페인과 독일 딱 2곳 뿐이다. 그러나 각 국가에서 가장 많은 볼터치를 기록한 선수 3명씩 살펴보면 확연한 차이를 볼 수 있다. 이 데이터는 90분 기준이며 최소 400분 이상 경기를 소화한 선수들을 대상으로만 한다.






중앙 수비수가 본래보다 높은 위치에서 더 오랫동안 공을 소유하는 것은 더 이상 네덜란드 축구만의 특징이 아니다. 비테세의 중앙 수비수 구람 카시아는 에레디비지에서 올시즌 90분당 가장 많은 볼터치를 기록하고 있고 현재 이 부분에서 중앙 수비수가 아님에도 탑5에 랭크된 선수는 PSV의 안드레스 과르다도가 유일하다. 한편 프리미어 리그에서는 상위 10명에 세스크 파브레가스, 산티 카솔라, 메수트 외질, 야야 투레,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 등이 있고 탑20에 들어가는 유일한 센터백은 데일리 블린트 뿐이다. 그 다음으로 가장 많이 공을 터치하는 수비수는 마마두 사코로 33위에 랭크되어 있다. 


다른 유럽 상위 리그에서도 비슷한 패턴을 보이고 있고 유일하게 90분당 볼터치 상위 5명에 중앙 수비수가 랭크된 리그는 프랑스의 리그 앙으로 티아구 실바가 상위 5명에 포함되고 있다. 우리는 비교적 약한 리그이면 그런 경향성을 보이는가에 대해 확인해보기 위해서 벨기에 주필러 프로리그 데이터를 살펴보았지만 역시 볼터치 차트를 지배하는 것은 중앙 미드필더였다. 


중앙 미드필더의 많은 볼터치 경향은 팀의 플레이 방식을 분석하고 포메이션에 따라 라인별로 터치 어떻게 할당되어 있는가를 분석할 때 그 가치가 더 명확하게 드러난다. 그러나 특히 네덜란드에서 4-2-3-1 대신 4-3-3을 주장하고 있기 때문에 윙포워드와 윙어의 차이는 모호해 미드필더와 공격 선수들 사이의 차이점을 명확하게 구분짓는 것은 어느 정도의 한계성을 지니기도 한다. 그러나 각 리그별로 수비수를 몇명씩 기용하는가에 대한 비중이 다르기 때문에 (특히 세리에A의 기록이 두드러진다) 이것까지 포함하여 고려하면 포지션별로 점유율이 어떻게 분배되고 있는지 더욱 면밀히 측정할 수 있을 것이다. (2016년 1월 7일자 기록)





수비수의 볼점유


7개의 서로 다른 리그에 총 132개의 팀이 참가하고 있다. 여기서 전체 18개의 에레디비지에 팀 중에서 17개 클럽이 수비수의 볼터치 상위 25% (상위 33클럽)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수비수의 볼터치가 팀 전체 볼터치의 43.9%를 차지하는 로다JC부터 49.7%의 위트레흐트까지 범주에 있으며 여기서 제외된 유일한 클럽 FC 트벤테는 글을 쓰고 있는 현재 리그 17위를 기록 중이다.


네덜란드 클럽의 기록이 두드러지는 가운데, 당연하게도 에레디비지에는 수비수의 플레이 관여가 가장 높은 리그로 나타나고 있다. 






볼터치의 분포


위의 자료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분데스리가의 수비수 볼터치 비율이 유럽 평균보다 높은 수치를 기록하고 있다는 것이다. 에레디비지에와 주필러 프로리그는 상대적으로 퀄리티가 부족한 선수들이 뛰고 있는 리그이기에 보다 느린 빌드업, 더 많은 터치가 필요하다고 받아들일 수 있지만, 분데스리가까지 그렇게 받아들일 것은 아닌거 같다. 그렇다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에레디비지에가 치열한 리그인 것일까? 수비수들이 평균치보다 더 많은 수비를 해야하는 상황을 맞이하는 것일까? 에레디비지에는 분데스리가의 압박 플레이 요소와 유사점을 공유하고 있을까?



각각 맞고 틀리다고 할 수 있다. OptaPro의 저널리스트 요하네스 하킨스의 수비 액션맵(defensvie-actions map)을 보면 에레디비지에와 주필러 프로리그의 자료는 분데스리가의 형태와 완전히 다르다고 할 수 있다. 대체적으로 분데스리가 클럽들은 높은 수비라인과 꽤나 컴팩트한 구조를 보이고 있고 그런 경향성은 피치 중앙에 가까운 곳에서 수비 액션이 발생하는 위의 자료를 통해서도 확인할 있다. 세리에A, 리그 앙, 라 리가에서는 측면에서 그런 경향을 보이고 있으며 한편 프리미어 리그는 박스 앞을 둘러싸고 굉장히 중앙에 집중된 형태를 보이고 있다.


그렇다면 수비적 액션은 공격으로 원활하게 연결되고 있을까? 상대의 공격을 끊어내기 위한 전선이 형성되었다면 (defensive-actions map을 확인했다면) 이제 우리는 그와 반대되는 것을 (non-defensive actions map) 확인하고자하는 욕구가 생긴다. 또한 공격적인 터치들은 수비수들의 그것보다 더 도전적인 플레이를 펼치게 만들 것이라는 기대를 품을 수 있게한다.


물론 수비수의 가장 첫번째 덕목은 '상대의 득점 기회를 제한하는 것'이지만 유럽에는 수비수들을 공격적 수단으로 활용하는 사례들이 있다. 가장 우수한 사례는 바르셀로나로 풀백 호르디 알바와 다니 알베스는 올시즌 90분당 가장 많은 볼터치를 기록하고 있다.






탑5 리그는 얼추 우리의 예상과 동일하게 기록을 나타내고 있다. 프리미어 리그는 자신의 진영에서 공격을 위한 터치에 크게 신경쓰는 것 같지는 않다. 세리에는 피치 중앙에 집중하고 있고 라 리가와 리그 앙은 측면에 중점을 두고 분데스리가는 중앙 지역을 폭넓게 활용한다. 그러나 우리는 에레디비지에와 주필러 프로 리그 볼터치 자료에서 중앙에 위치한 파란색 블랙홀을 타리그와 비교해 확인할 수 있다. 수비 진영에서 공을 소유하는 것에 익숙하며 글의 가장 앞에서 언급했던 장면과 같은 리스크를 감수하지 않는 상황들이 발생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수비에서 공을 많이 가지고 돌린다는 것은 피치 전방에서부터의 수비 액션이 부족하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며, 어떤 면에서는 두 리그가 점유율에 의존하지 않은채 앞으로 전진한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에레디비지에의 특성이라 요약할 수 있을까? 두가지 히트맵을 합쳐도 수많은 공간이 적게 활용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렇게 다른 리그도 만들 수 있을텐데 이를 통해 각 리그별 강점과 약점을 파악할 수 있을 것이고 부차적인 팀의 레벨을 평가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보면 에레디비지에 클럽들은 빌드업 플레이를 미드필드 지역에서 펼치는 것에 대해 특별히 생각하진 않는 것 같다. 






상대 진영에서의 수비적 액션의 부족도 두드러진다. 분데스리가, 라 리가, 리그 앙, 세리에A에 비해 약 10%가 떨어지고 오직 프리미어 리그만 에레디비지에와 근접한 수치를 기록하고 있다. 수비수들이 많은 볼터치를 시도하고 미드필더와 공격수들은 평균보다 떨어지는 볼터치 횟수를 기록하면서 거기에서부터 다양한 스타일의 축구가 각 리그별로 펼쳐지고 있다. 




출처 : http://www.optasportspro.com/about/optapro-blog/posts/2016/blog-visualising-defensive-involvement-in-the-eredivisie/



by Jonathan Wilson


이번 월드컵은 원칙과 팀을 위한 선택 사이에서 적절한 타협점을 찾아내고 있는 노련한 감독을 주목하게 만들고 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팬들은 새로운 감독을 기대해도 좋을 것이다.



1980년대 말, 지구 반대편에 있는 서로 다른 두 명의 감독은 축구가 어떠한 방식으로 구사되어야하는지에 대한 비슷한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두 명의 감독 모두 70년대 초반 네덜란드의 토탈 풋볼로부터 상당한 영향을 받았지만, 그러한 매력적인 축구를 구사하기 위해서는 선수들의 몸상태가 더 향상되어야하고 압박이 보다 더 전방위에서 이루어져야한다고 여겼다.


이번 월드컵에서 수많은 팀들은 전원공격과 역습을 빠르게 진행시키고 있으며, 이전보다 더 전방에서부터 공을 뺏어내려고 하고있다.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이번 월드컵에 참가한 거의 모든 국가들의 감독들은 마르셀로 비엘사나 루이스 반 할의 영향을 받았던 것이다. 그리고 루이스 반 할은 직접 네덜란드를 이끌고 대회에 참여하고 있다.


그렇지만 정작 반 할만큼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철학에 틀어박혀있지 않았다. 물론 확고한 규율 준수, 언론에 대한 공격적 태도, 뻔뻔해보일 정도의 자기 확신적 태도는 이전과 같으나 자신이 추구하고 있는 축구 철학에 대한 태도에는 보다 유연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칠레를 2:0으로 잡은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는 반 할의 현실과 이상이 타협한 경기라 뽑을 수 있다. 비엘사의 제자인 호르헤 삼파올리가 이끄는 칠레를 보며 반 할은 거울을 보고있는 것처럼 느꼈을 것이다. 왜냐면 칠레의 모습은 자신이 추구하는 네덜란드의 모습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옛날이었으면 칠레처럼 똑같이 플레이하면서 응수했겠지만) 노련해진 반 할은 수비 라인을 내리고 세트 피스 상황에서 칠레의 약점인 높이를 집중적으로 공략했다. 반 할은 칠레가 경기가 약 10~15분 정도 남은 상황부터 급격하게 페이스가 떨어진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그는 이 시간대를 정확하게 노렸고 적중했다. 후반전 추가 시간에 아르연 로벤이 칠레의 수비진을 돌파해 크로스를 내줬고 멤피스 데파이가 2번째 득점을 기록했다.


경기 후 반 할은 기자들로부터 거센 질문 세례를 받았다. 네덜란드의 스타일인 공격 축구를 버렸다고 말이다. 기자의 질문에 돌아온 반 할의 대답은 이러하다 "당신이 정의내리는 공격 축구란 무엇입니까?" 


반 할의 이야기는 이러하다. 공격 축구는 쉽게 정의될 수가 없는 용어이다. 관중들의 시선에 결정되기 마련인 것이며 최근 10년간은 이전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축구를 시청하기 때문에 경기를 보는 관중들의 시선은 이전보다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전 세대에서 일컫는 공격 축구란 공을 소유하는 축구와 비슷한 맥락에서 해석되는데 지금의 축구는 그렇지 않다. 지난 2010년 우리는 독일이 가장 공격적인 축구를 구사했던 것으로 기억하지만, 사실 그들은 역습을 주 전술로 꺼낸 팀이었다. 반면 점유율을 중시하는 축구를 했던 스페인이 지루한 축구를 구사한다고 지탄 받았었다. 


반 할의 철학은 리누스 미헐스, 요한 크루이프가 주장하는 여전한 아약스와 바르셀로나의 축구가 아니다. 바이에른 뮌헨에서 보여준 반 할의 철학은 분명히 과거 네덜란드식 축구에서 파생된 것이지만 미헐스, 크루이프와 아약스 동료들이 보여준 축구에 머물러있는 것이 아니다. 반 할이 여전히 4-3-3을 선호하고 미드필더처럼 플레이메이킹을 해줄 수 있는 센터백을 선호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그는 추가적인 홀딩 미드필더를 기용하면서 4-2-3-1 포메이션을 채택하기도 했다.


이번에 네덜란드를 이끌면서 역습 스타일의 팀을 만들었지만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AZ 알크마르를 이끌던 당시 반 할은 전통적인 윙어를 두지 않으면서도 역습 위주의 팀을 만들어 팀을 에레디비지에 우승으로 이끌었다. 이번 월드컵에서 더욱 주목할 변화는 케빈 스트로트만의 부상으로 인한 스리백으로의 전환이다.


AS 로마 소속의 스트로트만은 네덜란드와 프랑스의 친선 경기에서 부상을 당했는데 이 경기가 네덜란드가 포메이션을 바꾸게 만든 결정적 계기를 만든 경기였다. 이 경기에서 카림 벤제마는 브루노 마르틴스-인디를 완전히 갈기갈기 찢어버렸는데, 이 경기로 반 할이 대표팀 수비수들이 월드 클래스 선수들과의 1:1 대결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것을 확실히 인지하게 된 것이다. 세 명의 중앙 수비수가 있으면 바로 다른 선수가 공간을 커버해줄 수 있으며 나아가 스리백을 활용하면서 5명의 수비수를 배치할 수도 있게 된 것이다. 이렇게 결정된 네덜란드의 5백을 구성하는 선수들 중 마르틴스-인디, 스테판 데 브라이, 데릴 얀마트는 페예노르트 동료로 팀에서 3명의 중앙 수비수 역할을 맡았던 경험이 있는 자원들이었다. 이들을 지도하는 감독이 반 할과 개인적 감정이 좋지 못한 로날드 쾨만이지만, 반 할은 새로운 포메이션을 팀에 안착시키기 위한 실용주의 정신으로 반 페르시와 함께 페예노르트 경기를 지켜보러 갔다. 그 후 반 할은 아르연 로벤에게 전화를 해 전통적 네덜란드식 플레이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음을 설명했다.


반 할은 이미 네덜란드를 이끌고 2002 한일 월드컵 본선행 좌절이라는 실패를 맛본 경험이 있었다. 이 때 그가 얻었던 교훈은 이런 내용이었을 것이다.'대표팀에서는 시간이 부족하다. 클럽 축구에서처럼 자신의 철학을 완전히 팀에 녹이려는 시도는 옳지 못하다' 그래서 이번 2014년에는 단기전에 알맞는 전술적 선택을 내렸고 그는 베슬리 스네이더가 최대한 창조성을 활용할 수 있도록 배려했고 로벤의 속도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특히 멕시코와의 경기에서 쿨링 브레이크를 이용해 로벤의 위치를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바꾼 것은 완벽하게 적중했다.


반 할은 수많은 네덜란드 감독들이 옳은 방식이라고 여기는 네덜란드의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있지 않다. 이번 월드컵을 통해 반 할의 전술적 유연함과 더불어 섬세한 준비성이 각광을 받고 있다. 그가 말했었듯이, 그의 관심사는 오로지 승리하는 것이다. 승리를 위해서라면 실용주의적 결단, 급진적 변화 모두를 시도할 사람이 바로 루이스 반 할이다.




출처 : http://www.theguardian.com/football/blog/2014/jul/03/louis-van-gaal-tempers-idealism-holland-strengths



by Omar Saleem 


누군가에게 있어서 루이 반 할이란 인물은 지난 20년간 엄격한 형식을 위해 화려함을 희생하는 출중한 감독이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심각할 정도의 원칙주의자로 여겨지며 팬들과 선수들로부터 거리를 만드는 인물로 여겨지고 있다. 당신이 루이 반 할에 대해서 어떤 입장을 취하고 있던간에 현대 축구에서 루이 반 할이라는 인물이 불화를 일으키는 감독 중에 한 명이라는 사실은 부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우리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감독은 7번의 리그 우승 타이틀, 4번의 유러피언 트로피를 획득한 감독이고 경험이 부족한 네덜란드 선수들을 데리고 월드컵 3위로 대회를 마감한 인물이다. 국내 컵대회 우승과 반 할 감독을 향한 긍정적인 코멘트들을 종합해보면, 그를 깎아내리는 평판들은 하찮아보일 수도 있다. 도대체 어디에서부터 불화가 시작되는 것일까?


1991년 10월 20일로 돌아가보자. PSV는 필립스 스타디움에서 라이벌 아약스와 경기를 앞두고 있다. 에레디비지에 5라운드에서 두 팀이 대결을 펼치게 되었고 새로운 감독 루이 반 할 아래서 인상적인 시즌 스타트를 기록한 아약스는 홈팀 PSV의 축제를 망치고자 한다.


자유롭게 유기적이며 모험적인 아약스 축구는 반 할 아래서 조직적이고 밸런스 있는 접근에 기반한 축구로 변했다.  아약스의 플랜은 아주 명확했다 : PSV가 활용할 공간을 죽여 호마리우가 경기에서 영향력을 미치지 못하게 하는 것. 이 경기는 루이 반 할이 데니스 베르캄프에게 후방으로 내려와서 상대의 패스 길목을 차단하라고 지시한 첫번째 경기다. 더불어 베르캄프가 공개적으로 반 할 감독의 수비 가담 요구에 어깨를 으쓱이며 달갑지 않음을 공개적으로 표현한 경기이기도 했다.


그 날부터 루이 반 할의 매니지먼트 성향이 급격히 변하기 시작했다. 더불어 리누스 미헐스, 요한 크루이프가 아약스에 심어놓은 화려한 축구 역시도 냉철한 강철 튤립(Iron Tulip, 반 할의 별명) 루이 반 할에 의해  변하게 되었다. 물론 어느 정도의 과장이 있는 표현이다. 그러나 de Godenzonen(아약스의 애칭, 신의 아들이란 의미)에서 반 할이 남긴 분열은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유효하다. 반 할에 대한 베르캄프의 의견은 아주 명확하다. 1993년 암스테르담을 떠나 인테르로 향한 베르캄프의 결단은 반 할의 코칭 스타일에 반기를 드는 첫번째 행동이라 할 수 있다. 이는 반 할에 대해 베르캄프의 자서전 <Stillness and Speed>에 자세하게 서술되어 있다. 


"물론 반 할은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반 할 스스로가 보급시켰다고 생각하는 축구는 크루이프와 벵거의 축구이기도 하다. 반 할의 방식이 다른 것일 뿐이지 그게 전부다. 크루이프의 코칭 스타일은 자신이 선수였을 때 어떻게 했는가에 기반한다. 모험적이고 볼거리 풍부하고 공격적인 모습 말이다. 그에게 분석은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 그는 본능에 충실하고 기술을 중요시한다."


"루이는 남을 가르치고 싶어한다. 그는 시스템이 돌아가게 하기 위해서 선수들에게 지시를 내린다. 그에게 시스템은 아주 성스러운 것이다. 반 할에게 모든 선수들은 평등하다. 빅네임이란 것은 그에게 결코 존재할 수가 없다. 모든 구성원은 팀과 시스템, 정확히 이야기하면 그의 시스템의 부속물이다. 크루이프는 위대한 선수들에게 개인주의자가 되도록 독촉했다. 왜냐면 그들 스스로가 경기를 결정지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반 할은 결코 그렇게 내버려두지 않는다. 왜냐면 그건 그가 추구하는 방식에 어긋나는 것이거든."


"그런데 이렇게 생각해보자. 10명의 평범한 화가가 있고 1명의 렘브란트가 있다고 하자.  당신은 렘브란트에게 "어짜피 너도 다른 10명과 다를 것이 없어"라고 말하며 다른 평범한 10명의 화가들과 동등하게 대할 것인가? 스스로 독창적인 상상을 펼치지 못하게 막을 것인가? 아니면 그에게 특별하다는 인상을 심어주어 우수한 작품이 나올 수 있도록 유도할 것인가?"


베르캄프의 이야기는 팀을 중심으로 생각하는 반 할의 방식을 보여준다. 크루이프는 트레이닝에 대해 굉장히 자유로운 생각을 가진 인물이고 경기에서 아주 사소한 부분에 신경을 쏟는 인물이었다 : 개인의 퀄리티, 테크닉, 점유율과 압박. 반면에 반 할의 방식은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구조와 형태의 패러다임이 우선이다. 아마 이러한 이유 때문에 유명 선수들이 반 할 밑에서는 뛰기 까다롭다고 느끼고 있지 않을까 한다.


아약스에서 237경기 122골이라는 우수한 득점 기록을 남겼음에도 베르캄프는 반 할의 권위적인 지도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사실 베르캄프와 반 할 사이의 이런 미묘한 감정은 바르셀로나에서 드러난 반 할과 히바우두 사이의 갈등과 결코 비교되기 어려운 수준이다.


68.7%의 승률을 기록한 아약스를 떠나게 되었고 그는 유럽에서 가장 많은 구애를 받는 감독이 되었다. 아약스에서 6년간 11개의 우승을 차지했고 아약스의 주요한 역사 한 페이지를 장식하게 되었다. 트로피는 물론이고 다수의 선수들이 아약스가 자체적으로 배출해낸 선수라는 것 역시 의미가 컸다. 일부 사람들은 6년 사이에 단 1차례만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기록했다는 것이 완벽한 실패라고 주장하지만 그건 당시 세리에A의 강세, 잉글랜드에서 부상하고 있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당시에도 여전히 막강했던 레알 마드리드, 바르셀로나의 존재를 아주 완벽히 간과한 잘못된 의견이라 할 수 있다.


1992년 유러피언 컵 우승을 비롯해 1991년부터 1994년까지 4연속으로 라 리가 타이틀을 안겨줬고 현재의 바르셀로나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강력했던 팀을 이끌었던 감독 요한 크루이프는 미래를 위한 틀을 만들고 있었다. 칸테라에 미치는 크루이프의 영향력은 아주 상당했고 이 시스템을 거쳐서 성장하는 선수들의 테크니컬 퀄리티를 향상시키기 위한 트레이닝 프로그램 마련에 크루이프는 열정적으로 참여했다. 당시보다 더 많은 선수들을 자급자족하기 위한 노력이었던 것이다. 또한 네덜란드식 코칭 방법을 적용해 클럽은 스페인 전역, 특히 바스크 지역으로 스카우터를 점차 파견하기 시작했고 그 인원 수를 더욱 늘리게 되었다. 라틴 아메리카 역시 마찬가지로 스카우터를 파견하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크루이프의 장기적인 관점에 바탕을 둔 결정이었던 것이다.


크루이프는 끝내 1996년 바르셀로나를 떠나는데 그는 다양한 방면에서 클럽 운영의 컨셉을 잡아주고 팀을 떠나게 되었다. 클럽 아카데미의 코치 수급 방식, 인프라까지 개선해 놓았고 여기에서 크루이프가 아끼던 제자이자 홈그로운(home-grown), 바르셀로나 스타일로 철저하게 훈련이 된 펩 과르디올라가 배출되었다.


반면 크루이프와 달리 반 할이 아약스를 떠났을 때, 사람들은 테크닉을 중요시하는 트레이닝과 토탈 풋볼(totaalvoetbal)이 반 할 아래서 엄격한 규율에 따라야하는 구조에 기반하는 트레이닝으로 바뀐 것을 비웃었다. 크루이프는 자신의 방식을 바꿔놓은 반 할의 코칭 스타일에 대해 곱지않은 시선을 보냈다.


"우리는 축구를 바라보는 방법에 대해 나쁜 버릇을 가지게 되었다. 그의 방식으로 선수들을 훈련시키는 것은 축구장 피치 위에서 시도해야하는 것이 아닌 사무실에서나 시행되어야할 방법이다." 


반 할은 바르셀로나에서 메이저 스타들을 다루는 방식으로 인해 감독직에서 물러나게 되었고 히바우두가 아주 적절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히바우두는 세계 최고의 선수 중 하나로 손꼽히는 인물이었다. 그는 자신의 공격력에 제한선이 생길 것이라 생각해 윙으로 경기에 나서는 것을 거부했다가 벤치에 앉아야만 했다. 그는 특히 반 할이 빠른 속도를 이용해 역습 전개를 요구하는 상황에서 자신이 풀백을 커버하기 위해서 후방까지 내려오는게 과연 가치가 있는 움직임인가에 대해 의문을 품었다. 그로부터 시간이 많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바르셀로나에서 리오넬 메시는 항상 상대 진영에 머물러있다. 히바우두같은 재능에게는 어느 정도 타협을 해도 되지 않았을까? 


카탈루냐 관중들에게 히바우두가 벤치로 물러나야한다는 것은 상당히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세계 최고의 선수가 관중들을 즐겁게 해주는 것이 아니라 벤치에 머물러 있어야만 했고 이는 크루이프와 반 할의 가장 극명한 차이기도 했다. 


크루이프가 누 캄프에서 감독 생활을 했을 때, 그에게는 다루기 어려운 선수 3명이 있었다. 스토이치코프, 라우드럽, 호마리우. 추가로 크루이프의 마지막 시즌에 로베르토 프로시네츠키가 합류했다. 사소한 불화들이 없던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그는 메이저 스타들이 경기장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게 만들어 승리를 쟁취해냈다. 팬들이 즐거워하는 축구에는 결코 고집불통이란 것은 있지 않았다.


이것이 아마 2번의 라 리가 타이틀을 획득했음에도 루이 반 할의 바르셀로나가 잡음이 많은 이유이기도 하다. 55%의 승률과 최고 수준의 스쿼드에도 불구하고 2000년까지 챔피언스 리그 타이틀을 차지하지 못한 것이 바르셀로나 시절의 기억을 희석시킨다. 충분하지 않은 성적이었고 그 때부터는 팀이 쇠퇴하려는 조짐이 보이기까지 했다.


히바우두 이후로, 야리 리트마넨의 경기 소화시간 부족 역시 도마위에 올랐다. 리트마넨은 아약스시절 가장 영향력있는 퍼포먼스를 보여준 스트라이커였지만 바르셀로나에서는 골칫거리였다. 리트마넨에 대한 반 할 감독의 코멘트는 왜 그의 지도 방식이 양극단의 평가를 받게 되는지 아주 극명하게 보여준다.


"선수는 중요하지 않다. 팀이야 말로 모든 것이다. 나는 선수들의 피치 위에서의 퀄리티 이상의 가치를 요구한다. 특히 피치 위에서 모든 것을 다 던져놓을 수 있는가에 대한 자세같은 것 말이다. 아주 뛰어난 재능을 가진 선수임에도 불구하고 나의 방식에 따르지 않으려는 개성과 성향을 가진 선수들이 있다."


이번에도 반 할은 창조적인 자원들을 가지고 자유로움을 부여하지 않았다. 비슷한 구성원이었지만 크루이프는 득점을 바라본 반면, 반 할은 상대의 침투 공간을 허용하지 않는 것에 집중했다.


그는 네덜란드를 2002년 월드컵에 데려가지 못했다.  "네덜란드는 아일랜드보다 더 우수한 탤런트를 보유하고 있다."라는 오만한 그의 발언은 네덜란드의 월드컵 진출 실패로 인하여 그의 지도 방식에 궁극적인 의문을 불러일으켰다.  이제는 그의 방식에 대한 회의적인 시선이 더욱 많아졌다.


놀랍게도 2002년 후반, 그는 다시 바르셀로나 지휘봉을 잡게된다. 약 6개월간 30게임 정도를 소화한 이후 다시 바르셀로나 감독 자리에서 물러난다. 반 할은 바르셀로나와 맞지 않았던 것이다.



2년 반의 공백기를 청산하고 반 할 감독은 AZ 알크마르 감독직으로 복귀를 신고한다. 1988년 알크마르의 수석 코치로 일을 시작했기에 그에게는 결코 낯선 클럽이 아니었다. 나를 포함해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은 AZ 알크마르가 반 할 감독의 최대 업적이라 생각한다. 2006년 2위로 시즌을 마감하더니 2007년에는 3위를 기록하는 뛰어난 성과를 올렸다. 마침내 그는 2009년 리그 타이틀을 차지한다.


AZ 알크마르는 반 할의 커리어에 있어서 아주 신선한 곳이었다. 처음으로 그는 자신을 지키기 급급한 클럽 팀의 감독을 맡아보게 되었고 상황이 긍정적이지 못한 상황에서도 자신의 방법론을 밀고 갈 수 있는 클럽을 지휘한 것이다. 즉 AZ 알크마르는 과거 그가 지휘하던 아약스, 바르셀로나, 네덜란드와는 그 규모가 달랐던 곳이었다.


구단의 신뢰에 반 할 감독은 무사 뎀벨레, 저메인 렌스, 아리, 그라차노 펠레, 세르히오 로메로, 니클라스 모이산더 등의 선수들을 데리고 에레디비지에 타이틀을 획득으로 보답한다. 중위권으로 시즌을 마감할 것이라는 전망과 달리 알크마르는 FC트벤테와 아약스를 제치고 8개월의 무패 기간을 기록하며 타이틀을 따낸다. 


리그 최고의 수비 기록과 더불어 무니르 엘 함다위, 아리의 득점력 역시 알크마르 우승에 보탬이 되었다. 알크마르는 역습을 바탕으로 이기기 쉽지 않은 팀이 되었다. 빅클럽에서는 승리와 경기 스타일 모두가 중요하지만 알크마르에서는 스타일은 전혀 문제될 것이 없었다. 실재하는 승리야 말로 알크마르 입장에서 더욱 중요한 것이었다.


알크마르에서는 유스 선수 수급에 별다른 족적을 남기지 못했지만 뎀벨레, 모이산더, 로메로, 렌스, 펠레와 함께 성공을 거둔 것은 결코 과소평가 되어선 안 될 것이다. 선수들에게 목표를 정해주고 훈련을 통해 목표를 이뤄낼 수 있는 완벽한 팀을 만들어냈다. 슈퍼스타가 아닌 효율적인 축구 선수를 만들어냈다. 확실한 것은 슈퍼스타를 길러내진 못했다는 것이다. 현재 이들의 위상이 어떤지 생각해보라. 그런데 반 할은 이들을 조화시켜 에레디비지에 우승을 차지했다.


그 다음해 알크마르가 타이틀 방어에 실패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물론 반 할이 바이에른 뮌헨으로 떠났지만 다시 타이틀을 사수하는 것은 알크마르 입장에서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는 AZ 알크마르를 네덜란드 내에서 우수 클럽으로 발돋움시켰고 다시 한 번 자신의 명성을 입증했다. 알크마르 시절은 스페인과 네덜란드 대표팀을 맡으면서 쌓여온 부정적인 이미지 청산에 큰 도움이 되었다. 다음 단계는 바이에른 뮌헨이다.



반 할은 "나는 내가 꿈꾸던 클럽에 왔다" 라고 말하며 바이언에 입성했고 아르연 로번을 데려왔다. 지금까지 자신이 지도한 팀에서 우수한 재능을 컨트롤 하는데 있어서 다소간 마찰을 빛어온 감독이지만 그에게도 예외는 있기 마련이다. 챔피언스 리그 트로피를 차지한 아약스의 세대 그리고 20살도 안 된 시점에 네덜란드 국가대표팀 데뷔기회를 준 로번이 바로 그 예외라 할 수 있다.


반 할에게 있어서 바이에른 뮌헨 감독직은 자신의 커리어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분기점이기도 했다. 그러나 초반에는 또 다른 위르겐 클린스만이 부임한 것처럼만 느껴졌고 결과는 형편없었다. 반 할은 항상 자신의 방법론을 팀에 주입시키는데 시간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인물이다. 그런데 그렇지 않은 감독이 있기는 할까? 어느 감독에게나 시간은 당연히 필요하다. 그러나 충분한 시간 보장과 성적은 서로 틀어져있는 관계이다. 처음으로 그가 스타일을 바꿔야할 필요가 생긴 것이다.


반 할 아래서 홀거 바트슈트버, 토마스 뮬러같은 선수들이 1군 주전멤버로 성장하기 시작했고 가장 성공적인 변화는 윙어인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를 중앙 미드필더로 변화시킨 것이었다. 반 할은 바이언 코어(Bayern Core), 바이언 유스 출신들이 팀의 척추 라인을 휘어잡는 일을 해냈다.


뮬러는 반 할의 이상적인 포워드이다. 측면과 중앙 미드필드 지역까지 가리지않고 열심히 움직이는 선수고 팀을 우선시하며 자신을 희생할 줄 아는 선수다. 반 할이 그를 중용한 것은 아주 시기적절한 결단이었다. 그러나 여기에서도 빅스타와 반 할은 마찰을 일으키고 만다. 이번 상대는 박스 안에서는 효율적이지만 다른 곳에서는 그렇지 못한 루카 토니였다. 토니는 빌드업 과정에서 별다른 기여를 하지 못했고 역습 전개에도 그다지 효율적이지 못했다. 또한 상대의 뒷공간을 파괴하는데 적합한 유형도 아니었다. 반 할은 팀의 치밀한 구조를 원하면서 동시에 상대의 뒷공간을 파괴할 수 있는 모습을 원했다. 결국 토니는 전술의 희생양이 되었고 팬들은 크게 실망했다.


토니를 팀에서 제외시켰지만 그는 결국 2010년 분데스리가 타이틀을 차지한다. 독일에서 리그 우승을 차지한 첫번째 네덜란드 태생 감독이란 기록을 남긴 반 할의 시작은 아주 좋았다. 그렇지만 반 할에 대한 평가는 자국 리그가 아닌 유럽 대항전에서의 성적을 바탕으로 이루어진다. 


챔피언스 리그 조별라운드에서 보르도에 이어 2위를 차지한 바이언에 대해 팬들은 우승은 남들의 이야기일 것이라 생각했지만, 여전히 그들은 타이틀을 차지할 수 있는 유력한 후보였다. 토너먼트 매치업에서 피오렌티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리옹을 꺾으며 결승에 진출해 조세 무리뉴가 이끄는 인터나치오날레 밀라노를 상대한다.


반 할은 너무 신중하게 생각했고 묘책을 부리려다가 실패하고 말았다. 그의 제자 무리뉴는 보여줄 수 있는 모든 장점을 다 보여줬는데 정작 스승은 그러지 못했다. 무리뉴는 선수 개인의 탤런트와 자유를 보장하면서 팀이 최우선이라는 철칙을 효율적으로 섞어냈다. 그렇게 만들어진 인테르는 정말 상대하기 어려운 팀이 되었다. 규율을 중요시하면서 슈퍼스타를 위한 게임을 만들어줄 수 있는 무리뉴는 보다 현대적인 사고를 지닌 반 할이라 할 수 있다.


2010/2011시즌은 리그 3위라는 성적으로 누가봐도 용납할 수 없는 성적을 만들어냈다. 위르겐 클롭이 이끄는 도르트문트에게 승점 10점이 뒤쳐진 성적으로 시즌을 마감하는데 누가봐도 차이가 극명했다. 한쪽에는 신선하고 유머러스하고 팬, 선수들과 허물없이 지내는 위르겐 클롭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스타 플레이어와의 불화를 일으키고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하는 루이 반 할이 있다. 반 할에게 보내는 독일 축구의 짧았던 애정선은 이렇게 끝나고 말았다.


독일 저널리스트가 이렇게 물었다. 반 할 스스로 본인이 신(god)이라 생각하고 있는게 아닐까? 라는 물음에 울리 회네스는 아주 직설적으로 이렇게 말했다. "아니. 단순히 신이 아니라 그는 자신이 신의 애비라도 된다고 생각하고 있을껄?"



이 때부터 요한 크루이프와 반 할의 마찰이 본격적으로 대두되기 시작했다. 사실 두 사람의 첫번째 갈등은 1989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만 한다. 그는 공개적으로 반 할의 방법론에 대해 반감을 표출했다. 네덜란드에서는 결코 무시당할 수 없는 레전드 크루이프는 굉장히 직설적인 발언을 자주하는데 그의 발언은 이랬다. 


"반 할은 축구에 대한 훌륭한 시야를 가지고 있지만 축구에 대한 그의 사고방식은 나와 같지 않다. 그는 손발이 척척 들어맞고 마치 군대처럼 자신의 전술 철학을 시행할 수 있는 팀을 원한다. 나는 그런 팀을 원하지 않는다. 선수들 스스로가 생각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크루이프는 반 할이 아약스에서 시도한 훈련 방식과 선수 선발에 관해 마찬가지로 비판을 한적이 있다.


"선수를 평가할 때는 직감과 가슴이 시키는대로 행동해야 한다. 현재 반 할의 지시에 따라 아약스에서 사용되고 있는 표준치에 따라 선수를 선발하면 실수하게 된다. 내가 15살이던 시절에 나는 왼발로 볼을 약 15m 정도 밖에 차지 못했다. 오른발은 아마 20m 정도? 당시에 나는 코너킥을 담당할 수 없었고 신체적으로도 약했으며 상대적으로 느린 편이었다. 그러나 나에게는 훌륭한 테크닉과 통찰력이라는 2가지 퀄리티가 있었다. 그 2가지는 결코 컴퓨터로 측정할 수 없는 가치이다."


크루이프의 발언은 자신의 가치와 충돌하는 철학의 가치에 대해서는 조금도 고려하지 않은 실례되는 발언일 수도 있다. 크루이프가 다소 직선적으로 말하는 성향인 것도 고려해야한다. 그런데 어떤 면에서는 크루이프의 발언이 옳을 수도 있다. 왜냐면 크루이프의 시대 이후로 네덜란드가 국제 무대에서 세계를 주도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반 할과 크루이프의 철학 중에서 누구의 것을 더 선호하는가?



우리는 이제 반 할의 커리어 막바지에 도달했다. 반 할이 2번째로 네덜란드 국가대표팀을 맡으며 이뤄낸 발전은 결코 과소평가되어선 안 된다. 그는 유망한 더치 스타들이 월드컵 경험을 쌓을 수 있도록 만들었고 심지어 그들로 월드컵 준결승까지 이끌고 갔다. 사람들은 네덜란드가 고전을 면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월드컵 4강 진출은 상당한 성과물이라 할 수 있다.


반 할의 네덜란드는 아주 전형적인 반 할스러운 팀이었지 네덜란드스러운 느낌을 뿜어내는 팀이 아니었다 : 엄격한 대열 유지, 조직력, 역습을 바탕으로 하는 반 할스러운 팀이었다. 물론 네덜란드 내부에서는 이러한 경기 접근법에 대해 비판적인 여론이 있지만, 이것은 그토록 헐거운 수비를 가지고 펼칠 수 있는 유일한 해답이었다. 지난 20년간의 커리어를 돌이켜보면 고유한 스타일이란 것은 반 할 아래서 언제나 희생되기 일쑤였던 것이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도 루이 반 할의 매니지먼트 결과물을 받아들이고 있다. 4위로 시즌을 마감하면서 다시 챔피언스 리그 무대에 복귀를 신고하지만 빅네임과의 충돌은 다시 시작되고 말았다. 세계에서 반 할과 가장 친분을 쌓고 있다는 평이 자자했던 로빈 반 페르시는 순식간에 우선 순위에서 밀려났고 팔카오는 반 페르시보다는 조금 더 괜찮은 대우를 받았지만 몸상태가 정점에 도달하지 못했다. 경기에 꾸준히 나서지 못한 것은 팔카오에게 (몸상태를 끌어올리기 위한) 결코 반가운 해결책이 아니었다. 앙헬 디 마리아의 경우는 왜 그토록 폼이 다시 살아나지 못했는지 여전히 미스테리한 부분으로 남아있다.


다비드 데 헤아까지도 떠날지 모르는 상황에서 이제 반 할에겐 위한 테스트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야누자이, 맥네어, 윌슨, 페레이라같은 올드 트래포드의 유망한 어린 자원들을 가지고 어떤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최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아카데미에서 배출해낸 자원들이 시원찮으나 이들의 퀄리티는 충분히 좋다. 다만 성적이 더 중요한 상황에서 반 할은 어린 선수들에게 경험을 쌓을 기회를 부여할 수 있을까?


에슐리 영은 개인의 우수한 퍼포먼스 뿐만 아니라 반 할의 철학에 딱 들어맞는 모습을 보이면서 부활을 선언했다. 호전적이며 열심히 뛰는 영과 발렌시아는 반 할의 철학에 부합하는 선수들로 2014/2015시즌 재기에 성공했다. 시스템 속에서 철저하게 움직이는 마테오 다르미안, 모르강 슈네들렝,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가 영입되었고 다가오는 2015/2016시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클래식한 반 할의 모델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된다.


다만 창조적인 멤피스 데파이, 후안 마타, 웨인 루니에게 어느 정도의 공격적 자유도 희생이 따르는지가 관건이다. 반 할의 축구 모델이 잘 돌아가느냐 역시 중요하지만 공격 자원들이 만족할 수 있게 자유도 제한에 있어서 적정선을 유지하는 것 역시 중요할 것이다.  



우리는 직선도로 한 가운데에 위치해있다. 한쪽 방향은 요한 크루이프가 있고 그와 함께 베르캄프, 과르디올라가 위치해있고 숏패스를 선보이고 있다. 다른 방향은 반 할이 위치해있고 그 옆에는 론 블라르, 토마스 뮬러같은 선수들이 마치 기계마냥 반복적인 세트피스 훈련을 연습하고 있다. 선택은 당신의 몫이다. 어디를 선택할 것인가?


당신이 생각하는 축구의 아름다움은 어떤 것인가? 여기에 대한 당신의 의견은 지난 20년간 분열과 함께 성공 스토리를 기록한 루이 반 할에 대해 당신이 어떠한 평가를 내릴지에 대한 해답을 줄 수 있다. 




출처 : http://thesefootballtimes.co/2015/08/02/louis-van-gaal-divisi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