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Ryan Giggs


학생, 견습생, 퍼스트팀 선수, 코치, 임시감독, 수석코치로 29년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생활했다. 그리고 14세 이후 처음으로 그 위대한 구단을 떠나 생활하고 있으며 멋진 수년간의 생활을 되돌아보고 있다. 알렉스 퍼거슨 경은 나의 커리어를 지도했고 축구 선수로서 나의 본능은 언제나 앞을 바라보는 것이었다. 다가올 트레이닝 세션, 다가올 경기, 다가올 다음 도전과제를 응시하는 것이었다. 지금의 생활은 완전히 다르지만, 나는 경기장을 떠나 휴식을 취하는 이 순간을 즐기고 있다. 경기장에서 떨어져 회상할 시간, 새로운 무언가를 해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유나이티드에서 경기하는 것, 유나이티드에서 지도자 생활을하는 것은 압박감이기도 했다. 일부는 동의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그들은 내가 다른 곳으로 떠나 새로운 것에 도전해야했다고 주장하지만, 올드 트래포드보다 더 큰 구단이 어딨는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처럼 매경기 승리할 것을 기대하고, 매시즌마다 새롭고 재능있으며 열의가 가득찬 젊은 선수들이 주전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도전하는 구단은 전 세계를 통틀어 얼마 없다.


나는 언제나 유나이티드의 팬이었다. 1987년 11월 29일 나의 14번째 생일날 알렉스 퍼거슨 경이 집으로 직접 찾아와 계약하기 전부터 말이다. 당시 나는 올드 트래포드에서 경기를 볼 수 있다면 어느 구역이든 가리지 않고 티켓을 구매했다. 물론 주로 스트렛포드 엔드에서 경기를 관전했다. 이제는 10살이 된 아들 제크와 유나이티드 경기를 본다. 맨체스터 더비전을 나는 아들과 함께 디렉터 박스에서 관전했다. 나는 스트렛포드 엔드를 가리키며 내 아들에게 내가 옛날에 저기서 경기를 지켜봤다고 알려줬다.


나는 모든 트로피를 알렉스 퍼거슨 경과 함께 들어올렸다. 13차례 리그 타이틀, 2차례 챔피언스 리그 우승, 4번의 FA컵, 4번의 리그컵 모두를 알렉스 경과 함께했다. 그리고 2013년 알렉스 경의 은퇴 이후 유나이티드 팬들이 걱정하는 사항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다. 나는 팬들이 우려하는 그 시기를 구단과 함께 했던 사람이다. 데이빗 모예스 시절에는 선수 겸 코치로 루이 반 할과는 수석 코치 관계로 근무했다. 나는 지난 3년의 시간이 팬들에게 상당히 고된 시간이었다는 것을 안다.


나는 알렉스 경이 감독직에서 물러난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던 장소까지 기억한다. 알렉스 경은 구단이 공식발표를 하기 하루 전에 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우리는 캐링턴에서도 상당히 많은 대화를 나누는 관계였으나 공식적인 시간이 지난 이후 전화가 오는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알렉스 경에게서 전화가 왔다는 것을 알게되자 나는 먼저 이 생각부터 들었다. "내가 도대체 뭘 잘못했길래..." 39살 먹고도 그 생각이 먼저였다.


알렉스 경은 전화를 통해 나에게 은퇴를 결심했다고 알렸다. 2001년 첫번째 은퇴 선언을 한 이후로 나는 매 여름마다 언제든지 알렉스 경이 팀을 떠날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실제로 그 말을 들어보니 상당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전화를 마치고서 굉장히 슬픈 감정이 올라왔다. 알렉스 경은 오랫동안 내 인생의 일부를 차지했던 인물이다. 그 분의 은퇴는 몇 달간 완전히 나를 새로운 세계로 몰아넣었다. 프리시즌을 위해 소집되었으나 더 이상 구단에는 알렉스 경이 없었다. 크리스마스에도 마찬가지였고. 우리 모두의 삶에 있어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던 분이었다. 조직을 체계화시켰던 분이고 우리를 길러내셨으며 동기부여까지 해주셨던 분이 바로 알렉스 경이었다.


선수 생활 말년에 알렉스 경은 사무실로 나를 자주 불렀다. 그리고선 나에게 특정 경기에 투입시킬 생각이니 거기에 맞춰서 스스로 몸상태를 조절하고 있으라고 전달했다. 또한 여러가지 사항에 대해 논의했는데 나를 비롯해 게리 네빌, 리오 퍼디난드같은 고참들을 불러 팀 트레이닝에 대해, 경기를 어떻게 펼칠지에 대해, 상대팀에 대해, 선수 선발에 대해 여러가지 논의를 진행했다. 젊었던 시절보다 더 우리의 의견을 들어보려고 했다. 오해는 하지말자. 구단의 보스는 단 한 명 뿐이다. 






데이빗 모예스가 알렉스 경을 대체하기 위해 선임되었고 그는 나를 불러 선수 겸 코치가 되어달라고 요청했다. 당시 나는 UEFA 프로 라이센스 과정을 밟고 있었고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요청했다. 나는 선수 겸 코치직을 수용하는 것이 자연스런 변화라고 생각했지만, 그건 잘못된 판단이었다. 나는 선수로서 더 많은 기여를 하고 싶었고 선수의 신분일 때야 다른 것에 집중하지 않게 된다. 선수 겸 코치였지만 나는 어떠한 트레이닝 세션도 진행하지 않았다. 데이빗이 트레이닝 세션을 진행했기 때문이며 그렇지 않을 경우 필 네빌이나 스티브 라운드가 대신 트레이닝 세션을 지도했다.


1월에 나는 좀처럼 1군 경기를 뛰지 못했다. 경기에 나서지 못한 것은 나한테 정말 새로운 경험이었다. 물론 40세 선수가 매주 경기에 나설 수 없다는걸 받아들인 상황이지만, 나는 정말로 경기에 뛸 준비가 된 상태였다. 그리고 팀도 경기를 잘하고 있지 못했다. 나는 그 시간이 힘들었다. 프로답게 행동했지만 경기를 뛰지 못했던 그 순간도 즐겼다고는 말할 순 없다.


루이를 처음 만난 날, 우리는 바로 대화를 진행했다. 대화가 막 30분 지났을 무렵 그는 나에게 수석 코치 자리를 제안했다. 나는 그 제안을 받아들였는데 한가지 조건이 있다고 말하더라. 그것은 수석 코치를 하기위해 내가 은퇴해야한다는 것이었다. 루이는 나를 위한 결정이라고 말했다. 루이가 그렇게 말한 순간, 나는 그것이 옳다고 느꼈다. 지난 2년간 나는 루이에게서 생각했던 것보다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루이는 정말 철저한 사람이었다. 첫번째 시즌에 팀 구성원 모두가 자신이 무엇을 해야할지에 대해 알고 있었고 우리는 좋은 발전을 이뤄냈다. 하지만 우리는 지난시즌 길을 잃었다. 전적으로 루이만의 실패라고 말하는 것은 잘못되었다. 모두가 비난을 나눠야만 한다.


우리가 알렉스 퍼거슨 경과 함께 4경기를 남긴 상황에서 리그 우승을 확정지었던 2013년 5월로 돌아갔다고 가정하자. 그 때 누군가가 나에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리그 우승 경쟁에 참여하지도 못할 순간이 올 것이라 생각합니까?" 라고 묻는다면 나는 '절대로 그럴리 없다' 라고 대답했을 것이다. 우리는 상당한 조직력을 갖춘 팀이었고 재정적으로도 아주 풍족한 구단이다. 또한 이 나라에서 가장 큰 규모의 스타디움을 홈구장으로 사용하는 팀이기도 하다.


1970~1980년대 장기간 성공을 거둔 리버풀도 그 성공을 지속하기 위한 과정에서 그런 단계까진 도달하지 못했다. 유나이티드가 마지막 타이틀을 따낸지 고작 3년 지났을 뿐이다. 1974년 강등당했던 것처럼 구단이 곤경에 처한 상황은 아니지만, 이전까지 유지되고 있던 기준이 지속되지 않고 있는 것도 분명 사실이다. 


알렉스 경도 3시즌간 리그 타이틀 없이 보냈던 시기가 있다. 하지만 우리는 분명한 계획을 가지고 있었고 2007년부터 2009년까지 3연속 우승을 차지하며 정상의 자리로 돌아왔다. 팀을 다시 잉글랜드 정상으로 되돌려놓는 것은 조세 무리뉴의 과제이다. 하지만 앞으로 과거의 유나이티드가 했던 것처럼 똑같이 할 수 있다는 확신은 없다.


나는 알렉스 경이 떠난 이후 하락세가 오는 것이 당연하다는 반응에 동의하지 않는다. 당시 우리는 승점 11점 차로 프리미어 리그를 우승했다. 당시 구단에는 수많은 위너(winners)와 강한 개성을 가진 선수들이 여럿 있었다. 나를 비롯해 리오, 네마냐 비디치, 파트리스 에브라 같은 선수들 말이다. 영입이 제대로 이뤄졌다면, 우리도 젊고 의욕이 가득한 유나이티드의 위닝 멘탈리티를 가진 선수들에게 자리를 내주며 자연스럽게 뒤로 물러났을 것이다.


그런데 데이빗 모예스의 첫번째 여름 보강은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데이빗을 비난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는 우리가 스쿼드를 어떻게 관리하는지에 대한 내부 지식없이 부임했다 : 어느 시점에 특정 선수에게 휴식을 줘야하는지, 어떤 선수가 어떤 경기에 적합한지, 어떤 선수를 내보내야하는지, 어떤 선수에게 용기를 불어넣어줘야 하는지 같은 케이스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한 상태로 감독직을 수행하게 되었다. 물론 그 관리 속에서 살아온 우리들이 어느 정도까지 도와줄 수 있던 사항이지만, 감독 스스로도 시간이 흐르면서 관리법에 대한 혜안을 터득할 수 있어야 한다. 





펠라이니 영입은 8월 이적시장 데드라인에 근접해서야 이뤄졌다. 당시 구단은 여름에 단 1개의 메이저 딜을 성사시켰는데, 우리에게는 2~3명의 빅네임 영입이 필요했다. 영입이 지지부진했던 것부터 상황이 순탄치 않을 것이란걸 암시한 듯하다. 유나이티드는 이적시장 마지막 순간에도 선수를 구매하곤 했다. 2008년 디미타르 베르바토프를 영입했던 것이 떠오른다. 하지만 2013년 당시 영입은 다소 패닉 바이였다.


알렉스 경이 항상 베스트11을 마음에 품고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매 경기마다 어떤 팀을 꾸려서 나가야할지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고 몇주 앞둔 상황에서부터 그에 대한 계획을 옮겼다. 허나 데이빗에게는 그런 정보가 없었다. 그는 완전히 백짓장 위에서 시작했고 첫시즌의 상당한 시간을 베스트11 조합을 찾는데 썼다. 당시 최고의 기록은 2013년 12월의 6연승이었다. 우리는 꽤나 안정적인 팀을 만들어냈지만 부상이 발생하면서 상황은 악화되었다.


데이빗과 함께한 트레이닝 세션은 아주 훌륭했다. 모든 선수들이 데이빗의 훈련을 즐겼고 훈련 속 경쟁은 결코 사그라들지 않았다. 이는 알렉스 경 때부터 항상 유지되어온 특징이기도 하다. 아마 다른 무언가가 데이빗이 자리를 잃는데 더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사람들은 알렉스 경 지휘 속에서 올드 트래포드가 아우라를 뿜어냈다고 말한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유나이티드에서만 선수 생활을 했기 때문에 그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정의내리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나는 유나이티드 소속이 아닌 다른 선수들로부터 아우라가 느껴진다는 얘기를 들었다. 상대팀 선수들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게 두들겨 맞지않고 여기서 벗어나고 싶다." 란 식으로 생각했던 것으로 보인다.


웨일스 대표팀에서 우리가 좀처럼 공을 소유하지 못한 날이 있었다. 당시 나는 드레싱룸에서 불만을 토로하면서 우리가 제대로 경기를 펼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 때 개리 스피드는 "올드 트래포드에서 뛰는 느낌이 딱 이렇다." 라고 말해줬다. 그 때의 그 말은 나에게 올드 트래포드가 다른 팀 선수들에게 어떤 장소여야하는지에 대한 통찰로 남아있다. 



출처 : http://www.telegraph.co.uk/football/2016/10/21/sir-alex-ferguson-left-a-huge-void-at-manchester-united-but-dec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