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Jonathan Wilson


프리미어 리그의 전통적인 킥-오프 시간 이전에 이미 2경기에서 13골이 나왔다. 개막주에 총 31골이 나왔고 지난시즌 상위 6개 구단 중 먼저 경기를 소화한 3개 구단(아스날, 리버풀, 첼시)이 모두 3골씩 실점했다. 스페인이 호날두의 퇴장으로 논란에 휩싸여도, 이탈리아에서 밀란이 부활을 암시하고 있어도, 독일에서 정교하게 형성된 압박 형태가 시선을 끌어도, 프랑스에 네이마르가 있을지라도 드라마와 유쾌함에 있어서 프리미어 리그는 여전히 왕(king) 이다.


하지만 챔피언스 리그에서의 성공을 원하는데 적합한 왕은 분명히 아니다. 또한 대표팀을 위해 어린 선수를 육성하는데 있어 적합한 왕 역시 아니다. 적어도 구단이 대표하는 지역을 보살피는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믿는다면, 그런 역할로서의 왕 역시 아니다. 그러나 언제든지 바보같은 상황이 발생하여 흥미와 구경거리를 준다는 관점에서는 유효하다.


프리미어 리그 구단에 퀄리티 있는 감독과 선수가 많다는 것, 리그 전반적인 경쟁력으로 인한 요인도 (프리미어 리그가 흥미로운 점에) 부분적으로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다. 하지만 상위권 구단이 수비를 못한다는 사실이 가장 큰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다가오는 주말 아스날, 리버풀, 첼시는 각각 스토크, 크리스탈 팰리스, 토트넘 핫스퍼를 상대하기 앞서 1라운드에서 해결해야할 치명적인 결점을 보였다. 3개 구단(아스날, 리버풀, 첼시) 모두 최근 뒤에 언급된 각 팀에게 혼쭐난 적이 있다.


어느 선까지는 수비에서의 카오스가 경기 규칙의 변화로 인한 결과라 말해두고 싶다. 이제는 20~30년 전보다 수비하기가 어려워졌다. 수비 라인은 상대팀 공격수가 자신보다 뒤에 있다고 오프사이드를 예상하고 가볍게 나올 수 없다. 오카자키 신지가 아스날 상대로 기록했던 골은 아주 적절한 예시다. 크로스가 올라오는 상황에서 오카자키 신지는 오프사이드 위치에 있었지만, 공을 터치한건 해리 맥과이어였고 맥과이어의 헤더가 이루어지는 그 순간 오카자키 신지의 위치는 오프사이드가 아니게 바뀌었다. 수비수들은 오카자키의 득점 상황 같은 특정 상황을 대비하기 위해 주저 앉게 되는데 그렇게 움직이면, 미드필드 지역에 기술적 능력이 뛰어난 선수에게 더 많은 공간을 내주게 된다.


또한 시니컬(cynical)한 파울은 과거보다 훨씬 혹독한 처벌을 받고 있다. 하프 라인 근처에서 선수들이 번갈아가며 경기를 파울로 끊어내는 것은 여전히 가능하지만, 과거보다는 훨씬 수행하기 어려워졌다. 이제는 거의 모든 파울 상황에서 경고가 나와야 한다는 기대심리까지 있다. 상대 선수를 위협하는 플레이는 이제 경기에서 거의 사라졌고 수비수가 자신의 실수를 상대를 향한 태클로 만회하기가 더 어려워졌다. 이제 그럴 수 있는 기회는 사실상 1번이다. 


물론 두가지 변화는 상당히 긍정적인 발전이고 각 팀이 실질적인 경기를 펼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긍정적인 결과를 초래했다. 그러나 다양한 전술적 이슈도 존재한다. 발레리 로바노프스키(Valeriy Lobanovskyi)가 만능형 선수(universal player)를 원했던 것, 펩 과르디올라의 11명의 미드필더화 코멘트에 관련된 사고관이 경기에 스며들고 있다. 이제 우리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수비수에게 패스 능력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헤더, 마킹, 태클 능력같은 전통적인 수비 스킬이 부족하더라도 패스 능력이 좋으면 그런 결점을 수용할 수 있다는 태도가 증가하고 있다. 

 

중앙 수비수가 보조 플레이메이커 역할을 수행한다는건 크루이프적 사고관의 핵심적인 요소였고 이는 오늘날 축구관에 영향을 미쳤다. 당시에는 로날드 쿠만, 프랑크 레이카르트였고 오늘날은 하비에르 마스체라노와 다비드 알라바로 대표되고 있다. 또한 그러한 기조는 존 스톤스와 다비드 루이즈가 저지르는 수비 실수를 용서할 수 있게 만들었고 지난 금요일 아스날이 백3 자리에 2명의 레프트백을 배치한 이유이기도 했다.


오늘날 대다수 풀백은 사실상 윙백이나 다름없다. 지난 주말 프리미어 리그에서 윙백 혹은 풀백으로 경기를 소화한 선수들은 총 83회의 태클을 시도했고 123번 크로스를 올렸다. 풀백의 임무가 단순 수비에서 측면 공격으로 변하고 있는데 이 역시도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지난 화요일 밤, 리버풀이 호펜하임에게 페널티킥을 허용하는 장면을 보자. 리버풀의 레프트백인 알베르토 모레노는 상대 골키퍼 앞까지 달려갔고 (본래 담당해야 하는) 왼쪽 지역에 상당히 넓은 공간을 허용하고 말았다. 


최근 백3를 선호하는 경향 역시도 현대적 풀백의 공격 본능에 반응한 것일거다. 하지만 선수 1명을 수비에 더 배치하는 것이 수비적 결점을 가려줄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백3를 사용하는 경우도 종종 볼 수 있다. 그러나 정말로 상대를 공략할 줄 아는 팀을 만나면 그 약점은 결국 노출되기 마련이다.


프리미어 리그가 엉망진창인 수비를 전세계적으로 보여주는 무대가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시장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영입만을 갈망하는 태도를 보여준 모습으로 맞이하는 당연한 결과물이다. 수비는 곧 연습이고 수비수 뿐만 아니라 (다른 포지션에서도) 동일한 선수들이 끊임없이 반복하여 선수들 간의 상호작용 패턴을 학습하여 얻어내는 결과이다. 또한 그렇게 학습된 형태가 유지되면, 그 수비는 정말로 뚫기 어렵다. 하지만 스쿼드에 지속적인 변동이 이루어진다면, 선수들 사이의 일정수준 이상의 익숙함을 형성하기가 사실상 불가능 해진다.


비르질 반 다이크는 아주 뛰어난 수비수지만 그가 오늘 리버풀에 합류한다고해서 리버풀의 수비가 한순간에 뛰어나지지 않는다. (리버풀에 반 다이크가 영입된다 할지라도) 반 다이크가 클롭이 선호하는 프레싱 게임에 적응할 시간이 필요하고, 풀백들의 전진 방식, 동료 센터백의 선호하는 플레이, 리버풀 미드필더들의 상황 대처에 대해서도 익숙해져야 한다. 데얀 로브렌 영입 사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로브렌 역시 (반 다이크와 마찬가지로) 사우스햄턴에서 아주 높은 평판을 받고 리버풀에 합류했다. 하지만 로브렌이 합류해도 리버풀의 수비는 안정과 거리가 멀었다.


이건 리버풀만의 문제가 아니다. 잉글랜드 축구계 전체에 걸쳐서 선수 영입으로 소용돌이가 치고있고 트레이닝 피치에서 해결한다는 생각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지난시즌 한 감독이 훈련장에서의 연구로 팀의 문제를 해결했는데 그 감독이 바로 안토니오 콩테였다. 하지만 지금 콩테는 걱정이 가득해 보이고 의기소침해진 스쿼드를 다루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는데, 그 상황은 콩테 스스로가 영입 부족에 대해 공개적으로 불만족스러움을 표시함으로써 악화되었다.


지금이야말로 정말로 전념해야할 부분, 팀의 구조와 관련해 기본적으로 부족함이 있었는지 판단해볼 좋은 시기일 것이다. 




출처 : https://www.theguardian.com/sport/2017/aug/17/question-premier-league-teams-bad-in-defence-arsenal-liverpool-chelsea?CMP=share_btn_tw


 





by Jonathan Wilson



이례적인 수준의 붕괴가 발생하지 않는다면, 올시즌 프리미어 리그 타이틀은 첼시의 것이 될 가능성이 크다. 안토니오 콩테는 9월 24일 에미레이츠에서 하프타임 스코어 3:0으로 아스날에게 지고있을 때, 백4 시스템 대신 백3 시스템을 쓰기로 결심했다. 바로 그 하프타임으로 인해 16/17시즌 프리미어 리그 우승이 결정되었다 말할 수도 있겠다. (비록 첼시의 패배가 매우 유력한 상황이었으나) 첼시는 후반전에 새로운 포메이션으로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여줬고 이후 13연승을 달렸다.


물론 첼시가 유럽대항전 불참이라는 이점을 누리고 있지만 사람들은 새로운 포메이션을 주입시킨 콩테의 결단력과 능력을 칭송하고 있다. 물론 이탈리아와 유벤투스에서 그가 남긴 자취를 봤을 때 (백3시스템 도입은) 어느 정도는 예상할 수 있는 시나리오였지만 잉글랜드 축구사에 있어서 콩테의 시도는 여전히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다. 첼시가 리그 타이틀을 획득할 경우, 잉글랜드에서 약 50년만에 백3 시스템을 사용하는 팀이 리그 우승을 차지하게 된다.


1962/1963시즌 해리 캐터릭(Harry Catterick)이 이끄는 에버턴을 마지막으로 백3 시스템을 사용하는 팀이 리그에서 우승한 경우는 없다. 당시 브라이언 라본(Brian Labone)이 딥-라잉 센터-하프(deep-lying centre-half)였고 풀백 자리에는 믹 메건(Mick Meagan)과 알렉스 파커(Alex Parker) 혹은 조지 톰슨(George Thomson)이 있었다. 당시 에버턴은 잉글랜드에서 W-M 포메이션이 마지막으로 성공을 거둔 사례라 할 수 있다.


그 이후, 빌 샹클리와 돈 레비를 포함해 조심스럽게 수비적인 경기를 펼치고자 했던 감독들이 미드필더 한명을 센터백 사이로 내렸다. 이들은 보다 규율잡힌 축구를 의도했지만 1965년 리버풀과 리즈 유나이티드의 FA컵 결승처럼 소극적인 경기 양상이 만들어져 많은 사람들의 분노를 샀다. 


백4로 전환하는 것은 현대 축구의 핵심과도 같았다. 캐터릭 역시도 백4로 변화를 시도했고 1966/1967시즌 보수적인 맷 버스비조차 빌 포크스 옆에 노비 스타일스를 배치하면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4-2-4 포메이션을 안착시켰다. 압박은 현대 축구의 풍조를 만들었고 풀백 역할의 급진적인 변화까지 만들어냈다.


1994년 월드컵 이후 잭 찰튼(Jack Charlton)은 전술적인 관점에서 풀백이 가장 중요한 선수라고 주장했다. 당시 찰튼의 주장은 일반적인 직관에 반하는 것이었으나 지난 50년간의 전술 역사는 점점 50년간 풀백이 걸어온 길과 비슷해져가고 있다. 게리 바인(Gerry Byrne)부터 대니 로즈, 폴 리니(Paul Reaney)부터 빅터 모제스까지의 과정을 살펴보자.



측면 그 자체


1870년대 말부터 1925년까지 거의 모든 팀이 2-3-5 포메이션을 사용했다. 이후 오프사이드 규정이 바뀌면서 상대를 온사이드로 만들기 위해서는 수비수 3명이 아닌 2명만 필요하게 되었다. 이제 새로운 수비 전략이 필요하게 되었고 결국 센터-하프 한 명을 밑으로 내리게 되었다. 한명이 사라지니 2명의 미드필더가 상당히 거센 압박을 받게 되었다. 따라서 포워드라인에 있는 인사이드-포워드(inside-forward) 2명이 조금 더 밑으로 내려오게 되었다. 아스날의 허버트 채프먼(Herbert Chapman)은 30년대를 주름잡던 포메이션 3-2-2-3 (혹은 W-M) 을 가장 성공적으로 사용한 감독이다. 이후 잉글랜드에서는 30년간 W-M 포메이션이 대세를 이루었다.


반유태주의를 피해 브라질행을 택한 헝가리 출신의 도리 커슈너(Dori Kurschner)는 1937년 플라멩고의 감독이 된다. 커슈너의 전임 감독인 플라비오 코스타(Flavio Costa)는 커슈너의 수석코치로 플라멩고 구단에 남았다. 하지만 포르투갈어에 서투른 커슈너는 1년만에 다시 코스타에게 감독 자리를 내주게 된다. 다시 플라멩고 감독 자리에 복직한 코스타는 W-M을 주입시키려는 커슈너의 노력을 냉소적으로 평가했다. 다시 2-3-5로 회귀할 것 같았지만 그는 W-M 포메이션 속에서 새로운 전술에 대한 잠재성을 발견했다. 그는 W-M에 약간의 수정을 가해 '대각선(diagonal)"이라 불리는 대형을 창조했다. 인사이드-레프트(inside-left)가 보다 공격적인 형태로 라이트-하프(right-half)는 보다 후방에서 뛰는 형태로 변했다.


브라질의 포메이션 변화는 지역 방어의 발전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전까지 수비수들은 정해진 선수만 마크했다. 레프트백은 오른쪽 윙어를 막고 라이트-하프(right-half)는 인사이드-레프트(inside left)를 막았다. 하지만 지역 방어가 도입된 이후 이제 선수들은 선수가 아닌 지역을 마크하기 시작했고 그 지역으로 들어오는 선수가 누구인지 따지지 않고 막았다. 제제 모레이라(Zeze Moreira) 감독은 선수들이 지정해준 위치를 벗어날 수 있도록 자유를 부여했고 대신 다른 동료가 후퇴하여 빈 공간을 커버하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안했다. 


1958년 월드컵에서 브라질은 지역방어를 사용하는 4-2-4 포메이션을 썼고 대회 우승을 차지했다. 언론의 헤드라인은 17세 소년 펠레를 다뤘지만, 브라질이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축구를 구사한 것도 굉장히 중요했다. 2명의 중앙 수비수가 공간을 커버하고 풀백들은 과감하게 전진하여 새로운 각도에서 공격을 시도했고 그 결과 브라질 공격 루트의 깊이가 더해졌다. 오늘날 1958년 브라질의 레프트백인 니우통 산토스(Nilton Santos)는 최초의 공격형 풀백이라 언급되고 있다. 브라질에서는 풀백(full-'back')이 아닌 측면 그 자체, 사이드 플레이어(side player)였던 것이다. 



백4 시스템의 결과


1958년 월드컵은 잉글랜드 축구사에 가장 강력한 임팩트를 남겼다. 잉글랜드와 가까운 스웨덴에서 월드컵이 개최되어 그 어느때보다 많은 감독과 저널리스트들이 대회를 관전하기위해 스웨덴으로 이동했다. 또한 1953년, 1954년 잉글랜드가 헝가리에게 대패를 당한 이후였기 때문에 이제 사람들은 잉글랜드 외부의 축구를 배워야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백4시스템이 널리 활용되었고 그로인해 공격에 대한 잉글랜드식 생각은 변화했다. 채프먼의 아스날과 같은 극히 드문 사례를 제외하고서 잉글랜드 축구는 언제나 윙어를 숭배했다. 11월부터 3월 사이 잉글랜드 구장의 피치는 굉장히 엉망이 된다. 질척거리는 피치 중앙과 달리 터치라인 근처는 피치가 탄탄해 이 위치에서는 발기술을 선보일 수 있었다.


W-M을 사용하면서 동시에 W-M을 상대하는 팀은 중심축을 놓은 상태로 경기를 펼친다. 왼쪽 공격을 시도하면 상대팀 라이트백이 후퇴한다. 센터백은 센터-포워드를 마크할 것이고 레프트백은 커버할 공간을 찾아 안쪽으로 들어온다. 수비팀 입장에서 왼쪽, 즉 공격하는 팀 입장에서 오른쪽 윙어가 있는 공간이 빈다. 공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전환시킨다면 상대는 수비 포진을 변경해야 한다. 오른쪽 윙어에게는 속도를 올릴 충분한 여유가 생기고 이미 속도가 올라간 상태에서 상대 레프트백을 만난다. 이미 속도가 붙은 상태에서 상대를 제치기가 더 쉬웠다. 하지만 (백4 라인이 형성되면서) 중앙 수비수 1명이 더 추가되었고 풀백은 애써 중앙을 커버하기 위해 움직이지 않는다. 백4 시스템이 만들어진 이후 풀백은 자신의 위치를 고수하여 상대팀 윙어가 속도를 올릴 공간을 내주지 않게 되었다.


이후 스탠리 매튜스(Stanley Matthews) 유형에서 벗어난 형태로 윙어가 발전하기 시작했다. 알프 램지(Alf Ramsey)는 입스위치에서 지미 레드베터(Jimmy Leadbetter)를 왼쪽 미드필더 역할로 변경시켜 큰 성공을 누렸다. 이후 잉글랜드 대표팀까지 지도한 알프 램지는 양쪽 윙어를 모두 후퇴시켜 훨씬 더 큰 업적(월드컵 우승)을 남겼다.


이로써 풀백의 역할 변화는 더욱 빨라졌다. 상대 윙어와의 거리가 더 멀어져 풀백에게 전진할 공간이 생겼다. 그 결과, 1960년대 공격적인 레프트백의 시대가 도래했다. 니우통 산토스(Nilton Santos) 뿐만 아니라 아르헨티나의 실비오 마르솔리니(Silvio Marzolini), 이탈리아의 지아친토 파케티(Giacinto Facchetti)가 있었다. 잉글랜드에는 레이 윌슨(Ray Wilson)이 있었고 그는 누구보다 전진성이 뛰어난 선수였다.



공격의 맛을 알게되다


윙어가 미드필드 지역까지 후퇴하자 이제는 풀백이 전진하기 시작했다. 풀백이 상대해야할 상대팀 윙어가 한발짝 물러났기 때문에 "선수를 꼭 풀백 포지션에서 뛰게 할 필요가 있을까?" 란 질문을 하게 되었다. "풀백마저 미드필더 지역으로 올려서 상대팀 윙어와 정면 맞대결을 펼치게 하여 상대팀 윙어를 상대팀 풀백 위치까지 밀어버리는게 이상적이지 않을까?" 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렇게 1980년대 초기에 윙백(wing-back)이 탄생했다. 치로 블라제비치(Ciro Blazevic), 셰프 피온텍(Sepp Piontek), 카를로스 빌라르도(Carlos Bilardo) 모두 윙백을 적극 활용한 감독들이다. 이들은 풀백을 미드필드 진영까지 전진시켜 측면 공격력을 강화했다. 한 선수(윙백)가 4-4-2 시스템에서 풀백이 하는 역할 및 윙어가 하는 역할을 동시에 수행할 수 있다면, 사실상 2명 여유가 생긴다. 또 그렇게 발생한 여유분 2명을 각각 수비와 미드필더에 추가하는 것이 대세였다. 이렇게 3-5-2가 만들어졌다. 3-5-2는 1986년 월드컵에서 디에고 마라도나가 이끄는 아르헨티나가 우승을 차지하는데 있어서 가장 큰 기반이었다.


1990년대 말, 단 1명의 스트라이커를 배치하는 시스템이 등장하여 백3는 자리를 잃었다. 하지만 자유를 만끽했던 풀백들은 이제 후퇴하지 않았다. 4-2-3-1 포메이션이 대세를 이루고 창조자들이 다시 피치 높은 곳까지 전진한 4-3-3 포메이션이 유행을 타도 풀백은 공격쪽에서 존재감을 상실하지 않았다.


지난 10년 사이 반대발 윙어(inverted winger)가 급격하게 늘어났다. 이제 오른쪽에 왼발잡이 포워드가 뛰는 시대가 왔다. 만약 공격하는 팀 풀백이 반대발 윙어의 바깥쪽 방향으로 오버래핑할 경우, 수비팀 풀백은 어디를 막아야할지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그 결과 반대발 윙어의 공격 효율성은 더욱 올라간다. 바르셀로나에서 리오넬 메시와 다니 알베스가 보여준 호흡은 완벽한 예시라고 할 수 있다. 현재 리버풀에서 사디오 마네와 나다니엘 클라인의 공격 방식 역시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오늘날의 형태


웨스트 브롬위치 알비언의 토니 퓰리스 감독은 풀백의 수비력을 상당히 신경쓰는 편이다. WBA의 경기를 보면, 백4라인이 전부 센터백으로 구성될 때가 많다. 지난시즌 레스터 시티의 크리스티안 푹스, 대니 심슨도 무리해서 오버래핑하지 않았다. 올시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안필드 원정을 왔을 때, 안토니오 발렌시아와 데일리 블린트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진영을 벗어나지 않았다. 수비적인 사례도 분명히 있다. 하지만 오늘날 경기에서 대다수 풀백이 공격을 한다.


유로2016 스페인과 이탈리아의 16강전에서 이탈리아의 윙백이었던 마티아 데 실리오, 알레산드로 플로렌찌는 활발한 공격을 펼쳐 이탈리아의 포메이션은 3-5-2 보다 3-3-4에 더 가까웠다. 올시즌에 펩 과르디올라가 맨체스터 시티에서 백3 시스템을 사용할 때, 윙백 포지션에 종종 라힘 스털링과 르로이 사네 혹은 놀리토가 기용된다. 과르디올라는 이런 방식으로 사실상 3-2-4-1 포메이션을 형성한다.


리버풀의 클라인과 제임스 밀너, 토트넘 핫스퍼의 대니 로즈와 카일 워커는 사실상 미드필더나 다름없는 움직임을 보여준다. 올시즌은 프리미어 리그 출범 이후 경기당 득점이 가장 높은 시즌이다. 측면 수비수들의 공격적인 변화가 득점 수가 상승한 원인 중 하나로 거론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올시즌 가장 효율적인 풀백은 첼시의 빅터 모제스와 마르코스 알론소다. 첼시의 중앙 수비수 숫자가 늘어났기 때문에 두 선수는 대담하게 공격을 감행한다. 그 결과 알론소는 올시즌 4골과 2개 어시스트를 기록하고 있다. 또한 두 선수의 적극적인 전진으로 인해 에당 아자르와 페드로는 인사이드 포워드 역할에 집중할 수 있다. 어느 누구도 아자르와 페드로에게 경기장을 넓게 활용하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물론 가끔씩 모제스가 수비적인 부분에서 아쉬운 모습을 드러내지만, 콩테는 기꺼이 그 위험을 감수하면서 현재 시스템을 사용하고 있다.


모제스와 알론소를 윙백이라 부르는 것이 보다 정확하지만, 어쨌든 우리는 "back"이라는 접미사에 갇혀있는 것 같다. 오늘날 카일 워커와 마르코스 알론소의 플레이는 1960년대 에버턴에서 활약한 메건 혹은 파커의 플레이와 전혀 다르다. 이제 최상위 레벨에서 풀백은 측면을 전부 누비는 선수다.




출처 : https://www.theguardian.com/football/blog/2017/feb/21/the-question-are-full-backs-full-blown-attacking-players-now-chelsea-antonio-conte

위대한 팀은 왜 종말을 맞이하는가

The Question 2016. 11. 21. 20:45 Posted by Seolskjaer





by Jonathan Wilson


펩 과르디올라와 바르셀로나의 마지막 시즌은 자신의 운명을 알고 있음에도 그 운명을 피하지 못한 그리스 비극과 유사하다.


축구는 우리가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걸 끊임없이 상기하게 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젊고 유망한 유망주는 어느새 노장이 되는데 그 시간은 우리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인이 되기까지 정도의 시간에 불과하다. 축구의 삶은 실제 삶보다 속도가 빠르다. 그리고 이것은 위대한 선수들보다 위대한 팀들에게 더 잘 어울리는 말이다 : 그들은 솟아오르고 빛을 깜빡이며 트로피를 성취해낸다. 그리고 빛을 잃는다. 하강의 속도는 상승의 속도보다 더 빠르며 우리는 이에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고 있다. 


빛을 내고 있는 것들이 언젠가는 사그라드는 것. 이것이 펩 과르디올라의 뇌리 속을 떠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바르셀로나만의 멋진 축구로 전세계 사람들을 감탄하게 했으며 경기를 지배했고 상대를 파괴했다. 그리고 3년의 시간동안 전례없는 수준으로 트로피를 싹쓸었다. 하지만 과르디올라는 그 순간을 즐기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 다음에는 무엇이 다가오는가에 대해 걱정하는 듯 보였고 바르셀로나 축구의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하는지 고민에 빠진 듯해 보였다. 과르디올라의 근심은 점점 줄어들어가는 그의 머리숱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헝가리 출신의 벨라 구트만의 "3번째 해는 피할 수 없다.(The third year is fatal)" 란 발언은 일반적인 진리로 받아들여진다. 특히 강한 압박을 구사하는 팀에게 3년은 그 위대한 팀이 지속될 수 있는 수명의 최대치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단지 보편적인 진리일 뿐이다. 서로 각기 다른 특별한 이유로 위대한 팀들이 사라져갔다.



이 세상의 영광는 이처럼 사라져간다(Sic transit gloria mundi)


위대한 팀이 사라지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선수들이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다. 1956년부터 1960년까지 5차례 유러피언컵 우승을 차지하며 위대한 반열에 올라선 레알 마드리드가 바로 이 케이스이다. (레알 마드리드는 감독을 교체하면서 구트만이 주장한 3년 법칙을 피해갈 수 있었다) 레알 마드리드가 당시 유럽에서 최고의 선수를 차지할 수 있었던 것에는 '부(wealth)'가 큰 역할을 했다고도 할 수 있지만, 유럽 재패 이후에도 레알 마드리드는 1961년부터 1965년까지 5연속으로 리그 타이틀을 획득에 성공했다.1964년 레알 마드리드는 엘레니오 에레라가 이끄는 인터나치오날레와 유러피언컵 결승전 경기를 치렀는데 당시 레알 마드리드에는 37살 프렌츠 푸스카스와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 34살 호세 산타마리아, 31살 파코 헨토가 있었다.


리즈 유나이티드도 마찬가지였다. 1974년 돈 레비가 떠났는데 이후 브라이언 클러프와 지미 암필드 역시 나이를 먹은 선수단으로 어찌할 수가 없었다. 빌 샹클리는 은퇴 전에 위대한 리버풀을 건설하고 떠날 수 있었지만, 처음에는 샹클리 마저도 나이먹은 선수들로 할 수 있는게 없었다. 팀의 과도기를 매니징할 수 있는 것은 밥 페이즐리, 알렉스 퍼거슨, 발레리 로바노브스키처럼 한 구단에서 오랫동안 머무른 사람들에게만 주어진 능력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그런데 당시 레알의 문제를 오로지 선수단 고령화로 설명할 수는 없다. 이들은 분명히 시대에 뒤떨어진 전술을 구사하는 팀이었다. (레알이 유럽을 재패한 이후로도) 전술은 끊임없이 진화했으며 인터나치오날레의 맨마킹 전술은 헨토와 푸스카스를 질식시켰다.



친애하는 소년이여, 사건이다 사건!


때로는 외부 사건이 개입하여 문제를 야기한다. 디나모 키예프는 빅토르 마슬로프와 함께 소비에트 챔피언십에서 3연속 우승했다. 그런데 1966년 월드컵에 1군 선수들이 다수 차출되는 바람에 마슬로프는 유스에서 선수를 끌어올려야만 했다. (소련 당국이 월드컵 기간이라고 리그를 중단하기엔 너무나 고집이 쎈 인물들이었다.) 1970년에도 1966년과 마찬가지였고 이번에는 성적이 더 안좋았다. 기본적으로 새로운 선수들이 1966년 세대만큼 기량적으로 우수하지 않았다. 더 비극적인 사건은 1991년에 있었다. 츠베르나 즈베즈다(레드 스타 베오그라드)의 세대는 내전이 발생하여 시작조차 하지 못한채 와해되었다.


90년대 초 리버풀도 이야기할 수 있다. 백패스 금지 조항은 리버풀에게 치명타였다. 당시 리버풀에겐 골키퍼에게 공을 보내 안정적으로 공을 소유하는 것이 경기 지배에 대한 핵심적인 요소였다. 마찬가지로 노팅엄 포레스트 역시 백패스 금지 조항이 생긴 첫시즌에 강등을 당했다. 물론 노팅엄 포레스트 강등의 주된 원인은 늙은 브라이언 클러프가 더 이상 변화에 따라가지 못했다는 것이다. 프리미어 리그라는 새로운 환경은 구단에게 이전과는 다른 상업성을 요구했고 당시 리버풀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게 이토록 빠르게 뒤쳐질 이유는 결코 없어보였다. 힐스보로 참사가 없었더라면 리버풀 구단은 슬픔과 분노에 빠져 흔들리지 않았을 것이며 케니 달글리시가 리버풀을 떠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즉 힐스보로 참사가 없었다면, 리버풀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도전에 조금 더 착실한 대비를 할 수 있었을 것이다.


비극적인 사건도 위대한 팀의 종말을 불러온다. 토리노의 수페르가 비극,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뮌헨 참사같은 케이스가 있다. 하지만 그건 특수한 경우다. 구단의 확고하고 급진적인 철학이 있다면, 그 구단은 자신들의 컬러를 지나칠 정도로 더욱 확고히 하는 과정에서 스스로를 파멸의 길로 몰고간다. 그들을 망가뜨리는 핵심적인 원인은 노쇠화와 외부 환경이 아니다.



자기희생의 부정적 결과


1967년 4월 엘레니오 에레라의 인테르는 유벤투스보다 승점 4점 앞서고 있었다. 또한 유러피언컵 8강에서는 레알 마드리드에게 승리를 거두었다. 그런데 그들은 빠르게 붕괴되기 시작했다. 유러피언컵 4강에서 CSKA 소피아와 두차례 1-1 무승부를 기록한 인테르는 플레이오프를 치러야만 했다. 인테르는 볼로냐에서 경기를 개최하는 조건으로 입장수입의 3/4를 CSKA 소피아에게 주기로 약속했다. 플레이오프에서 인테르는 1-0 승리를 거두었으나 문제가 전혀 해결된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인테르의 수비적인 경기 접근법에 대한 모든 의구심들이, 자신들만의 강점을 극대화시키기보다 상대의 강점을 최소화시키는 인테르 전술이 급격히 문제화되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인테르는 라치오, 칼리아리전에서 무승부를 기록했고 유벤투스에게는 1-0으로 패배했다. 이제 유벤투스와의 승점은 2점으로 줄어들었다. 인테르는 또 다시 나폴리전에서 무승부를 기록했지만 유벤투스도 무승부를 기록했다. 피오렌티나와의 홈경기에서 또 비겼고 유벤투스는 이번에는 승점차를 좁혔다. 인테르의 시즌이 종료되기까지는 2경기가 남았다. 리스본에서의 유러피언컵 결승전과 리그 만토바 원정에서 2승을 거두면 인테르는 더블을 달성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팀의 모멘텀은 결코 좋지 않았다.

 

레알 마드리드가 새로운 감독직에 에레라 선임을 고려하고 있다는 점은 인테르의 보드진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산드로 마쫄라는 독감으로 한바탕 고생을 겪었고 루이스 수아레즈는 허벅지 부상을 당했다. 인테르는 선수들의 집중력을 흐트러뜨리는 것들로부터 떼어내고자 강제로 투숙을 시행했다. 하지만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다. 라이트백 타르치시오 부르니치는 "압박감만 커져갔다. 우리게엔 탈출구도 도움을 청할 곳도 없었다. 그런 상황에 강제로 합숙을 진행한 것은 리그와 유러피언컵 결승전을 앞둔 팀 붕괴에 아주 큰 영향을 미쳤다." 라고 회상한다. 


리스본에서는 그런 규제들이 훨씬 더 심해졌다. 인테르는 리스본에서 30분 거리 떨어진 해안가에 호텔을 잡았다. "우리는 코치들과 호텔 직원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을 3일동안 단 한 명도 마주치지 못했다. 일반인이라면 이런 상황에서 미쳐버릴께 분명하다. 수년간 우리는 이런 방식을 경험했고 익숙해져 있었지만, 그 때 우리는 버티는 한계치에 도달해 있었다. 세상의 모든 짐을 다 짊어지고 있었는데 그 부담감을 해소할 곳은 전혀 없었다. 선수들은 잠도 설쳤고 운이 좋아야 3시간 가량 잘 수 있었다. 우리는 경기 준비에만 사로잡혀 있었다. 나와 지아친토 파체티는 늦은 밤에도 주장 아르만도 피치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경기 당일 아침 4명의 선수가 구토증세를 보였고 또 다른 4명의 선수가 피치로 나가기 전에 드레싱룸에서 구토증세를 호소했다. 그런 관점에서 우리는 스스로 자멸했다." 라고 부르니치가 말했다.


인테르 선수들의 신체만큼 감정, 정신력 모두 지칠 때로 지쳐있었다. 셀틱의 공격 흐름은 끊이질 않았다. 인테르는 초반 페널티킥을 획득했지만 셀틱의 끊임없는 공격에 굴복해 2-1로 패배했다. 이제 리그 최종전이 남았다. 유벤투스는 라치오에게 승리를 거두었다. 인테르의 골키퍼 지울리아노 사르티는 前 인테르 선수인 베니아미노 디 지아코모에게 단 1차례 슈팅을 허용했지만 그 공이 미끄러져 골문으로 들어가버렸다. 만토바가 1-0으로 승리했고 인테르는 스쿠테토마저 놓쳐버렸다. 인테르를 최강의 자리로 올려놓았던 집중, 규율, 조심성이 끝내 인테르를 궤멸시켜버렸다.



썩어가는 열매와 시들어가는 꽃


지금부터 이어갈 이야기도 인테르의 스토리와 똑같다. 구단을 위대한 길로 인도했던 방식을 너무 지나치게 시행한 결과 파멸을 맞이한다. 셀틱은 인테르를 제압하면서 모든 선수들이 공격함으로써 모든 선수들이 수비하는 것을 이길 수 있다고 증명했다. 이것이 아약스와 토탓 풋볼의 선구자와 같은 역할을 했다고도 할 수 있다. 우리는 토탓 풋볼을 공격적인 시스템으로 간주하지만, 이것은 주도적으로 경기를 풀어가는 최선의 방식이다. 아약스는 1972년과 1973년 유러피언컵 결승에서 카테나치오를 시행하는 이탈리아 클럽을 상대로 승리했고 아약스는 공의 소유권을 되찾아오는 것을 중심으로 수비를 시행했다. 이 때의 아약스는 리누스 미헬스의 축구보다 규율이 풀려있는 축구였다. 


1966/1967시즌 아약스는 유러피언컵 8강에서 스파르타 프라하에게 패배하여 탈락했고 미헬스는 수비에 손을 보기 시작한다. 그렇게 파르티잔에서 전투적인 리베로 벨리보르 바소비치를 영입한다. 바소비치는 자신이 아약스에 "터프함, 규율, 위닝 멘탈리티"를 심을 수 있다고 단언했다. 바소비치는 31세에 천식으로 선수 생활을 그만둬야했고 1971년 유러피언컵 우승을 마지막으로 은퇴를 선언한다. 이 때 미헬스도 바르셀로나에 합류한다.


바소비치의 자리는 바소비치보다 더 공격적인 호르스트 블랑겐부르그가 대체한다. 미헬스의 자리는 루마니아의 스테판 코바치가 대체하는데 코바치는 아약스가 유지하고 있던 여러 브레이크를 풀어버렸다. 이 때 아약스는 구단 역사상 가장 공격적인 축구를 구사했다. 미드필더 게리 뮈렌은 이렇게 말한다. "코바치는 좋은 감독이다. 하지만 그는 너무할 정도로 좋은 사람이었다. 미헬스는 코바치보다 더 프로다웠고 엄격했으며 모든 선수들을 동등하게 대우했다. 코바치와 함께했던 첫시즌 우리는 이전보다 훨씬 더 좋은 플레이를 펼쳤다. 왜냐면 당시 아약스는 정말 우수한 선수들로 구성된 팀이었고 우리에게 충분한 자율성이 주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팀의 규율이 사라지자 모든 것이 끝나버렸다. 우리에겐 이전만큼의 정신력이 없었고 하나로 뭉칠 수 있다면 우리는 계속 유럽 챔피언 자리에 머무를 수 있었을 것이다."


인테르가 지나친 규제로 무너졌다면, 아약스는 지나치게 자유로웠다. 감독의 임무는 정원을 가꾸는 것과 유사하다. 열매가 즙이 많아지고 단맛을 낼 때, 꽃이 가장 화려하게 폈을 때, 그 때부터 부패가 시작된다. 감독의 임무는 꽃이 최대한 오래도록 유지될 수 있도록 태양으로부터 식물을 보호하는 것이다.



캄프 누의 오이디푸스


펩 과르디올라의 행보가 흥미로운 것은 그가 구트만이 주장한 '3년 법칙'을 인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과르디올라의 마지막 시즌은 그리스 비극과 같았다 : 자신의 운명을 알고 있던 영웅도 결코 그 운명을 피하지 못했다. 과르디올라는 공격의 다양성을 위해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를 영입했는데 빠른 시일 내에 다시 그를 처분해야만 했다. 이브라히모비치의 강한 개성은 팀을 와해시킬 수도 있었다. 아리고 사키의 밀란이 침체기에 그러했듯이, 과르디올라 마음 속에서 진부하고 반복적인 방법으로 승리하는 것에 대해 의구심이 생겼을 수도 있다. 


그래서 변화를 주기위해 과르디올라는 백3를 선택했다. 12월 베르나베우에서 바르셀로나가 3-1 승리를 거뒀을 때, 바르셀로나의 백3 시스템은 성공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 때조차도 과르디올라가 일을 너무 복잡하게 진행하는 것이 아니냐라는 의구심이 있었다. 과르디올라는 운명에서 벗어나기 위해 변화를 시도했지만 그것은 점점 과르디올라를 옭아맸다. 과르디올라는 바르셀로나의 공격이 뻔해지는 것을 우려했고 상대팀이 바르샤를 상대로 내려앉아 싸우는 것을 걱정했다. 그래서 과르디올라는 공격 라인에 더 많은 선수를 배치했고 특히 다니 알베스를 높은 위치에서 적극 활용했다. 상대의 두터운 수비를 측면에서의 공격으로 돌파하고자 했다. 그런데 이것은 바르셀로나를 점차 더 예측가능한 팀으로 만들어버렸다. 후방에서 뛰어들어오는 선수보다 애초에 전방에서 머무르는 선수를 더 막기 쉽지 않은가. 


이것만으로 바르셀로나가 첼시와의 챔피언스 리그 4강 2차전 경기에서 무기력했던 것을 설명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것은 바르셀로나가 예전만큼 상대의 수비진에서 속도를 내지 못하는지에 대해 설명할 수 있다. 이미 상대의 박스 가까이에 바르샤 선수들이 들어가있기 때문에 공을 가진 상황에서 질주하며 속도를 낼 수가 없었다. 


마지막을 고려하고 있던 과르디올라가 운명론적 이상주의를 택한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과르디올라는 자신이 지도하는 바르샤가 다른 어떤 바르샤보다 가장 바르셀로나스러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심지어 그의 바르샤가 끝나가는 시점에서도 말이다. 과르디올라는 수비수를 점차 줄여나갔다. 때로는 피라미드를 완전히 뒤집어 놓은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과르디올라의 상황을 가장 잘 표현하는 작품은 오이디푸스왕 일 것이다. 오이디푸스도 자신의 아버지를 살해하고 어머니와 결혼하게 될 것이라는 운명에서 벗어나려고 하지만 운명을 벗어나려는 과정 속에서 운명을 따르게 된다.


과르디올라는 바르셀로나의 붕괴를 끝까지 막으려했으며 그들의 철학이 무너지는 것을 원하지도 않았다. 과르디올라는 바르샤를 위대하게 만들었던 것들을 강화하면서 바르셀로나의 운명적인 몰락을 늦추고자 했다. 극도로 점유율을 높였고 더 많은 선수를 전진시켰다. 하지만 과르디올라는 실패했다. 하지만 적어도 과르디올라만의 방식대로 실패했다.


1980년 노팅엄 포레스트가 마드리드에서 함부르크를 꺾고 유러피언컵 우승을 차지했을 때, 던컨 해밀턴이 노팅엄 포레스트의 수석코치 피터 테일러를 보면새 깨달았던 위대한 진리를 다시금 느끼게 된다 :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모든 팀들은 그 순간 동시에 몰락의 싹을 틔우고 있다. 영광은 몰락의 시작과 함께 다가온다.



 출처 : https://www.theguardian.com/sport/blog/2012/may/02/the-question-great-teams-end

센터-포워드(centre-forward)란 무엇인가?

The Question 2016. 11. 5. 01:03 Posted by Seolskjaer



by Jonathan Wilson


펩 과르디올라는 세르히오 아게로가 지금보다 상대 수비수로부터 더 자주 공을 뺏어오길 원한다. 첼시가 디에고 코스타에게 요구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스트라이커의 역할은 이제 더 이상 골을 넣는 것에만 한정지을 수 없다.



센터-포워드(centre-forward)란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해 답변하기가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점차 어려워지고 있다. 펩 과르디올라가 세르히오 아게로에 대해 만족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은 언뜻 보기에 굉장히 기이한 현상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수많은 부상 속에서도 5시즌간 리그 109골을 넣은 아게로의 득점 능력에 대해서는 결코 의심할 수가 없을텐데 말이다. 하지만 현대적인 스트라이커에게 '골'은 담당하는 임무 중 하나에 불과하다.


과르디올라는 아게로에게 피치 전 지역에 걸친 기여를 원하고 있다. 과르디올라가 별난(unique) 감독일 수 있겠지만, 센터-포워드에게 많은 것을 요구하는 것은 결코 이상하지 않다. 위르겐 클롭 역시 다니엘 스터리지가 리버풀에 남기 위해선 득점 이상의 무언가를 해줄 수 있어야 한다고 분명히 선을 그었다. 안토니오 콩테도 디에고 코스타에게 상대로부터 공을 뺏어내는 역할을 주문했다. 이러한 주문은 오늘날 유행하는 압박이 가진 특징이다 : 골만 넣는 것은 이제 충분하지 않다.


포워드가 상대 수비수를 쫓고 괴롭히는 것은 전술적으로 새로운 사항이 결코 아니다. 축구가 시작된 이후, 센터-포워드가 어떻게 경기를 펼쳐야 하는가에 대해 다양한 시각이 있었다. 1920년 오스트리아에선 마티아스 진델라르가 오늘날 우리가 펄스 나인(false 9)이라 간주하는 전술을 처음으로 실현했다. 진델라르는 포워드 자리에 키가 크고 터프한 공격수를 선호하는 오랜 현상을 끝냈다.


전방에서부터 수비를 시행했던 최초의 센터-포워드가 누구냐에 대해서 명확히 구분할 수는 없지만, 1960년대 압박 축구가 성장하면서 그런 역할을 수행해줄 선수는 필수적이게 되었다. 디나모 키예프의 아나톨리 푸사치(Anatoliy Puzach), 아약스의 요한 크라이프, 리버풀의 로저 헌트가 그런 선수들이었다. 80년대에 들어서 점차 보편화 되기 시작했고 이안 러시는 그 분야에 있어서 최고 수준이었다.


이전과 달라진 것은 크게 강도의 차이며, 압박이 더 복잡해진 것도 거론할 수 있다. 80~90년대 비디오 분석이 널리 퍼지면서 애널리스트는 상대의 잠재적인 약점을 정확히 발견해냈다. 마르셀로 비엘사의 위대한 통찰력을 여기서 확인할 수 있는데, 비엘사가 1997년 벨레스 사르스피엘드 감독직을 수락하면서 요구했던 첫번째 사항이 바로 상대 경기를 녹화하는 것과 짜깁기한 영상을 컴퓨터로 전송하는 것이었다. 상대가 경기를 어떻게 풀어나는가? 만약 골키퍼가 라이트백에게 공을 연결하고 라이트백은 오른쪽에 위치한 중앙 미드필더에게 공을 넘겨주는 것이 상대팀 플레이의 디폴트(default)라면, 비엘사의 팀은 어떻게 이것을 방해할 수 있을까? 데이터가 쌓이는 분야가 확장되고 컴퓨터를 더 광범위하게 활용하면서 상대의 패턴을 더 정밀하게 분석하게 되었고 압박을 보다 집중적으로 시행할 수 있게 되었다.


마이클 오언이 잉글랜드 대표로 40골을 넣었던 시기에도 오언은 시대에 뒤떨어진 선수, 진화한 축구에서 뒤쳐진 스타일의 선수처럼 느껴졌다. 골사냥꾼의 시대는 지나갔다. 단순히 골만 잘넣는 선수의 시대가 지나갔다는 것은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에도 거론된 이야기다. 그런데 굉장히 강한 압박을 요구하는 감독이 늘어나면서 거기서 더 한발짝 나아가게 되었다.


한동안 윙어가 공격수 중에서 가장 열심히 뛰어다니는 포지션이었다. 그들은 상대 풀백의 전진을 제어해야만 했다. 예를 들면, 2008/2009시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포르투의 레프트백 알리 시소코의 공격 가담에 고전했고 알렉스 퍼거슨 경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보다 더 근면하게 수비적인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웨인 루니를 측면 포워드로 돌렸다.


그런데 이제는 그마저도 변하고 있다. 터치라인 가까이에서 플레이하는 것, 기본적으로 한쪽으로 치우쳐진 상황에서 경기를 펼치기 때문에 풀백이 플레이메이커가 되는 것은 어려울 수 밖에 없다. 한쪽이 완전히 막혀있으니 살짝만 압박이 가해져도 중앙으로 이동하기가 어려워진다. 따라서 -아약스와 바르셀로나가 기용하는 스타일의 선수- 공을 다룰 줄 아는 중앙 수비수, 딥-라잉 중앙 미드필더들이 팀의 구심점이 된다. 즉, 이제는 센터 포워드가 상대의 중앙 수비수와 미드필더를 견제하기 위해 준비해야만 한다.


그래서 로베르토 피르미누가 리버풀의 귀중한 자원인 것이다. 올시즌 피르미누는 90분 기준으로 평균 11.5km를 뛰고 있다. 스프린트 횟수는 78회이며 평균 3회 태클, 0.7회 가로채기를 시행하고 있다. 피르미누가 4골 1어시스트를 기록하고 있는 것은 보너스이다. 피르미누가 압박의 시발점이기 때문에 그의 가치는 아주 상당하다.


과르디올라는 아게로에게 이와 비슷한 역할을 요구할 것이다. 하지만 아게로의 기록은 피루미누만 못하다. (득점은 논외로 두자. 물론 득점은 오늘날 축구에서도 아주 중요한 사항이고 아게로는 7골을 기록 중이다.) 현재 아게로는 90분 기준으로 9.9km를 뛰고 64.3회 스프린트를 기록 중이다. 그런데 지난 2015/2016시즌 아게로가 90분 기준으로 8.9km를 뛰고 스프린트 횟수가 44회에 불과했던 것에 비해서는 많이 향상된 수치라 할 수 있다.


아게로는 아직 피르미누에 비해서 갈 길이 멀다. 하지만 상대 수비수에게 달려가는 것만으로도 패스의 질을 확 떨어뜨릴 수 있다. 반드시 태클을 시도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분명한 것은 아게로가 과르디올라 아래서 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시즌이 진행되는 현 시점에서도 계속해서 향상되고 있는게 보인다. 바르셀로나 원정 선발 라인업에서 제외된 이후, 아게로의 스프린트 횟수, 뛴 거리가 모두 상승했다.


기회를 골로 연결시키는 능력, 공간을 만들어내는 능력, 동료에게 기회를 만들어주는 능력도 여전히 중요하다. 그런데 더 강한 압박을 시도하는 오늘날 축구가 센터-포워드에게 요구하는 덕목에 변화를 준 것은 분명하다.



출처 : https://www.theguardian.com/football/blog/2016/nov/03/the-question-what-is-centre-forward

 




by Jonathan Wilson


클롭은 여전히 안필드 유명인사다. 하지만 리버풀의 기복을 언제까지나 인내해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감독을 언제까지 믿어주고 어느 순간부터 신뢰를 내려놓아야할 것인가? 또 감독은 얼마나 빠르게 발전된 모습을 보여줘야만 할까? 이는 결코 대답하기 쉬운 질문이 아니며 상황에 따라 대답이 달라질 수 있는 문제라 할 수 있다. 리버풀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다가오는 토요일, 위르겐 클롭은 다시 화이트 하트 레인에서 리버풀 선수들을 지휘할 것이다. 지난해 10월 클롭이 프리미어 리그 데뷔전을 치렀던 바로 그 경기장에서 클롭이 다시 한 번 리버풀 선수들을 데리고 경기에 나선다. 당시 리버풀은 유럽에서 가장 유쾌한 감독을 모셔오는 대단한 성과를 이뤄냈다는 반응이었다. 수많은 서포터들이 팀버스에서 내리는 클롭을 찍기 위해서 주차 공간에 모이기도 했다. 경기장에는 클롭을 환영하는 수많은 배너들이 있었고 특히 클롭의 얼굴 위에 "We Believe"가 새겨진 깃발도 있었다. 킥오프 전에는 무려 23명의 기자들이 클롭을 찍기 위해서 리버풀 벤치에 몰려 있었다.


그로부터 10개월의 시간이 흘렀고 클롭은 여전히 그 어느때 만큼이나 인기있는 인물이다. 그는 이번 여름에 2022년까지 계약을 연장했다. 클롭에게 리버풀이 계약 연장을 제안한 것은 다소 놀라운 일이었다. 심지어 지난 주 <Stern magazine> 인터뷰에서 클롭도 리버풀의 계약 연장 제의에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클롭 부임 이후, 리버풀은 경기당 1.59 승점을 기록하고 있다. 브랜단 로저스의 리버풀은 경기당 1.88 승점을 기록했다. 데이터는 직설적이지만, 이것만으로 클롭의 스토리를 전부 이야기할 순 없다. 클롭이 여전히 전임자가 남겨둔 문제점들을 바로 잡고 있다고 주장한다. 팀을 바꿔가는 과정에서 전진을 위해 후퇴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클롭은 지난 주 인터뷰에서 고액의 선수를 사는 것이 아닌 선수를 코치해서 성장시키는 것이 자신의 방식이라 주장했다. 그는 고액의 선수를 구매하는 것은 건강하지 못한 방식이라 말했고 그런 응급책을 쓰지 않겠다고 했다. 하지만 클롭에게 오랜시간의 참을성이 주어질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지금은 조금이라도 문제의 징조가 보이면 팬들이 감독의 희생을 요구한다. 알렉스 퍼거슨 경은 TV와 여론이 지루한 경기를 볼 때마다 감독을 내쫓아야 한다는 듯이 행동한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역사는 위대한 감독에겐 시간이 필요했다고 말한다.   


더비 카운티와 노팅엄 포레스트를 지도했던 브라이언 클러프는 첫번째 시즌을 2부 리그 하위권으로 마감했다. 허나 클러프는 5년 후 더비 카운티를 1부 리그 우승으로 이끌었고 노팅엄에서는 고작 3년만에 동일한 성과를 이뤄냈다. 퍼거슨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첫번째 리그 우승을 차지하는데까지 7년의 시간이 필요했고 허버트 채프먼은 아스날을 우승으로 이끄는데까지는 6년의 시간이 걸렸다. 돈 레비는 리즈 유나이티드 첫시즌에 가까스로 3부리그 강등을 피했다. 1부 승격까지는 3년의 시간이 필요했고 빌 샹클리도 마찬가지로 리버풀을 1부로 끌어올리는데 3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지금의 축구는 과거와 다르다. 막대한 자본이 유입되어 구단은 투자한 돈을 바탕으로 기대치를 설정하고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는 성적을 거두는 것은 구단주와 운영진 입장에서는 상당히 두려운 사건이다. 감독의 성적과 구단의 목표점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빠르게 발생할 때가 있는데 그럴 경우, 빠르게 헤어지는 것이 양측 모두에게 최선의 결정이다.


최근들어 선덜랜드는 감독을 제물로 바치고서 잔류에 성공하는 습관을 만들어냈다. 클러프, 샹클리, 레비, 퍼거슨같은 사람들이 현재 조건에서 그 때와 동일한 커리어 시작을 했다고 상상해 보아라. 상당히 많은 위대한 감독 커리어가 꽃을 피우기도 전에 사라졌을 것이란 의구심을 가져볼만 하다.


클롭은 여전히 큰 기대를 받고 있는 감독이다. 카리스마 있는 모습도 클롭이 큰 기대를 받는 이유 중 하나겠지만, 마인츠와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에서 보여준 성과, 뛰어난 경기력이 클롭에게 기대를 거는 분명한 이유일 것이다. 지난시즌 리버풀이 좋은 성적을 내고 있을 때, 그들은 정말 좋은 축구를 구사했다. 맨체스터 시티를 2차례 꺾었으며 유로파 리그에서는 비야레알과 도르트문트를 상대로 승리했다. 무엇보다도 당시 리버풀 축구는 정말 스릴넘치는 축구였다. 만약 리버풀이 경기력을 일관성 있게 유지할 수 있다면, 리버풀은 세계에서 가장 재밌는 축구를 구사할 수도 있을 것이다.


리버풀의 문제는 일관성이다. 리버풀은 아스날과의 개막전에서 하프타임 이후 20분간 정말 뛰어난 축구를 구사했다. 나머지 70분간의 축구는 인상적이지 않았지만 리버풀은 그 20분간의 뛰어난 퍼포먼스로 충분히 4-3 승리를 챙길 수 있었다. 하지만 번리에게 2-0으로 패배한 경기는 인상적이지 못한 경기력이 더욱 두드러진 날이었다.


리버풀은 상대가 전진하고 뒷공간을 남겨두면 공격이 된다. 하지만 여전히 의문점은 남아있다. 리버풀은 상대가 내려앉아 선수 간격을 촘촘하게 형성했을 경우 그 그물망을 뚫을 수 있을까? 리버풀은 조던 헨더슨을 세르히오 부스케츠처럼 변신시킬 수 있을까? (어쩌면 엠레 찬은 두번째 의문점에 대한 해답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클롭은 답을 발견해야만 한다. 번리전은 리버풀을 개선하는 임무가 거의 끝났다고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다는걸 보여준 경고성 신호다. 만약 리버풀이 지난시즌처럼 지극히 평범한 경기력과 뛰어난 경기력을 오간다면, 팬들이 언제까지 감독에게 인내심을 가질 수 있는지 볼 수 있을 것이다. 




출처 : https://www.theguardian.com/football/blog/2016/aug/25/the-question-will-jurgen-klopp-be-given-time-liverpool








by Jonathan Wilson


아직 맨체스터 시티를 평가하기에 이른 시점이지만, 실바와 데 브라이너가 공격형 미드필더 역할을 공동으로 수행하는 4-1-4-1 겸 W-M 시스템이 팀의 기본적인 시스템으로 자리잡아가는 것으로 보인다.




먼저 맨체스터 시티에 대해 평가하기에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해야할 것 같다. 시간이 흐르면서 상황은 변할 것이고 또한 발전할 것이다. 펩 과르디올라의 위대한 능력 중 하나가 바로 '변화무쌍'함 아니었던가. 과르디올라는 경기 접근법을 바꿀 의지와 능력을 갖춘 인물이고 그 능력은 수많은 경기를 소화해야하는 잉글랜드 무대에서 다시 한 번 시험받을 것이다. 아직 과르디올라가 지휘한 공식 경기는 2경기 뿐이지만, 과르디올라만의 특정한 패턴이 벌써부터 보인다.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윌리 카바예로가 조 하트를 제친 것이며 클라우디오 브라보의 맨체스터 시티 이적이 임박했다는 것이다. 하트는 유로2016에서 손으로 2차례 실수를 저질렀으나 과르디올라가 그것보다 더 주요하게 체크한 것은 하트의 발기술이었다. 지난 2015/2016시즌 하트의 패스 성공률은 52.6%였고 이는 프리미어 리그 골키퍼 중에서 7위에 해당하는 기록이었다. 하지만 바이에른 뮌헨에서 지도했던 마누엘 노이어의 80.8% 성공률에는 한참 못미치는 수준이다. 과르디올라와 코칭 스태프는 하트에 대한 신뢰를 잃었고 하트는 발을 바꿔서 공을 길게 연결시키라는 코치진의 지시를 받았지만, 강한 발 쪽으로 공을 옮기는 테크닉에 어려움을 호소했다고 한다. 패스의 질은 나름 괜찮았다고 하지만 반대 발로 공을 전환시키는 과정이 문제였던 것이다.


허나 해결책으로 제시된 카바예로 역시 또 다른 문제점을 노출했다. 선덜랜드와의 경기에서 80%의 패스 성공률을 기록했지만, 첫번째 클리어링 상황에서 던컨 왓모어에게 소유권을 내주고 말았다. 슈테아우아와의 챔피언스 리그 플레이오프 원정 경기에서도 카바예로는 다시 한 번 불안한 모습을 노출했는데, 새롭게 영입될 것으로 전망되는 브라보는 지난 2015/2016시즌 84.3%의 성공률로 유럽에서 활약하는 골키퍼 중 최고의 패스 성공률을 기록했다.


유로2016에서 치명적인 실책을 범했지만, 여전히 다수의 사람들은 하트가 카바예로보다 더 좋은 슛-스토퍼(shot-stopper)라 생각한다. 하지만 과르디올라에게는 그것만이 중요한게 아니다. 골키퍼가 공의 움직임에 관여하고 점유율 유지와 빠른 역습 전환의 시발점이 될 수 있다면, 과르디올라는 골키퍼가 선방을 적게 기록하더라도 기꺼이 그 골키퍼를 기용할 것이다.


비슷한 논리는 다른 포지션에도 적용된다. 선덜랜드와의 경기에서 알렉산더 콜라로프는 엘리아큄 망갈라를 제치고 왼쪽 센터백으로 출전했다. 콜라로프의 패스 능력이 망갈라의 공중전 능력보다 우위였기 때문에 가능한 선택이었던 것이다. 시티가 공을 점유하는 순간, 페르난지뉴는 두명의 센터백 사이로 내려오고 좌우 풀백인 바카리 사냐, 가엘 클리시가 딥-라잉 미드필더 포지션으로 이동한다. 이는 과르디올라가 2014년 4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전에서 처음 시행한 전술로 이 때, 케빈 데 브라이너와 다비드 실바는 "자유로운 8번(free No.8)"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부가적인 설명을 덧붙이자면, 1970년대 네덜란드와 아르헨티나에서 4-3-3 포메이션이 유행했을 때 이들은 1명의 홀딩 미드필더와 다른 2명의 미드필더를 기용했다. 2명의 미드필더 중 1명은 10번으로 피치 높은 지역에서 플레이메이커 역할을 담당했다. 다른 선수는 8번 유니폼을 입고 피치 위아래를 오가며 빈자리를 채웠다. 하지만 이 선수의 주된 역할은 여전히 공격적인 위협을 가하는 것이었다. 1978년 월드컵에서 오시 아르딜레스가 바로 이 8번 역할을 수행했다. 


데 브라이너가 10번, 실바가 8번 혹은 그 반대로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 아니라 두 선수 모두 그 중간 정도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고 있다. 데 브라이너는 벨기에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현재 맨체스터 시티에서 수행하는 역할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것 같다. 경기하는데 있어서 약간의 변화를 줘야했는데 문제되는 것은 아니다. 감독은 자신만의 전술적 철학을 지니고 있고 나는 더 이상 10번 역할로 경기에 나서지 않는다. 하지만 어디든 움직일 수 있는 자유로운 8번 역할을 담당한다고 생각한다." 라고 말했다.


일련의 과정을 거쳐 시티가 공을 소유한 상황에서 포지션을 다시 정비하면, 그 모양은 과거 W-M 형태처럼 보여진다. 짐작건대 그렇게 W-M과 유사한 형태로 변하는 이유는 자연스럽게 삼각형 형태를 만들기 위함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프리미어 리그 첫번째 상대였던 선덜랜드는 라인을 깊게 내리고 시티가 점유율을 가져가도록 내버려뒀고 시티는 아직까지 그런 움직임이 부자연스러워 보였다. 슈테아우아 원정 경기에서는 활력 넘치는 경기를 선보였지만, 앞으로 슈테아우아 수준의 팀을 상대할 일은 많지 않다. 슈테아우아는 라인을 올려 싸우는 도박을 걸어봤고 시티는 슈테아우아가 그렇게 나올 것이라 예상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슈테아우아는 전반전에도 수차례 불안한 장면을 노출했고 시티는 경기가 진행되면 진행될수록 그 약점을 더 파고들었다.


시즌이 진행될수록 현재의 전술적 요건이 사냐와 클리시에게 부합하는가에 대한 의문이 분명 제기될 것이다. 과르디올라는 바이에른 뮌헨에서도 풀백에게 미드필드 지역으로 전진하라고 요구했지만, 그걸 수행한 선수는 바로 다비드 알라바와 필립 람이었다. 두 선수 모두 사냐&클리시보다 공을 발로 다루는데 있어서 훨씬 좋은 능력을 지닌 선수들이다. 그리고 앞으로 상대팀은 역습 상황에서 시티의 중앙 블록을 우회하여 바로 측면으로 넘어갈 것이다. 


또한 일카이 귄도안이 부상에서 복귀하여 페르난지뉴와 동시에 경기에 나설 수 있는가 역시 또 다른 흥미로운 이슈라 할 수 있다. 만약 두 선수 중 한 명을 선택해야 한다면, 아마 귄도안이 현재 페르난지뉴가 차지하고 있는 위치를 점령할 것으로 예상된다. 4-1-4-1 혹은 W-M이 기본적인 시스템이라 했을 때, 페르난지뉴가 센터백으로 경기에 나설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 한다.


선덜랜드와 슈테아우아보다 더 우수한 상대를 만날 때, 그 때가 진정한 시험대가 될 것이다. 과르디올라는 팀의 기본적 전술 설정 뿐만 아니라 상대팀에게 창의적인 카운터링을 먹이는 것에서도 특출난 능력을 가지고 있다. 선덜랜드와 슈테아우아가 과르디올라에게 아주 순탄한 시작을 안겨주었고 첫번째 진정한 시험무대인 9월 10일 맨체스터 더비가 다가오고 있다.





출처 : https://www.theguardian.com/football/blog/2016/aug/18/the-question-kevin-de-bruyne-silva-free-roles











by Jonathan Wilson


두 팀이 각자의 방식으로 서로 치고박는 경기는 존재하지 않았고 우리는 서로 점유를 하지 않으려는 축구, 느리게 진행되는 축구를 너무나 자주 목격했다. 



15차례의 유러피언 챔피언십 대회 중 가장 최악의 대회로 거론될만한 유로2016이 마무리 되었다. 이번 대회는 총체적인 퀄리티가 상실된 대회로서 서투른 벨기에를 상대로 웨일스가 가볍게 승리를 거둔 것이 마이너의 반란처럼 평가가 격상되기까지 했다. 전체 51경기 중에서 중립팬에게 기억될만한 경기는 프랑스와 독일의 대결 정도였다. 사실 프랑스와 독일의 대결은 대회 나머지 경기의 특성을 전혀 대표하지 못한다. 


많은 사람들은 이번 대회에서 포르투갈이 우승할 자격이 있었는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겠지만, 어떤 관점에서는 포르투갈이 가장 우승할 자격이 있다고 할 수 있다. 포르투갈은 유로2016 대회의 전반적인 전술적 기조를 가장 대표하는 국가 중 하나였다. 2명의 공격수만 남겨둔 채 8명의 선수가 녹-아웃 스테이지에서 420분간 단 1골만 실점하는 요새를 만들었다. 그러나 이 대회에서 포르투갈은 정규시간으로 한정지었을 때 단 1승을 거두는데 그쳤다. 이것이 현재 국가대표 축구이다.


물론 약소국가의 놀라운 성적도 있었다. 아이슬란드와 웨일스 사람들은 프랑스에서의 2016년 여름을 매우 긍정적인 관점으로 기억할 것이다. 하지만 유로2016은 어떤 관점으로 봐도 엘리트성과 동떨어진 대회로서 국가대항전의 죽음이란 또 다른 단계에 도달한 것 같게 느껴진다. 물론 여전히 언더독 입장에서는 기뻐할 일이다. 


비록 여전히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지만, 골리앗이 퀄리티 측면에서도 더 높고 금전적 보상도 더 높은 클럽 게임을 오랜기간 소화하고서 국가대항전에선 정작 자신이 클럽에서 무엇을 했는지 망각한 것과 같은 지친 상태로 등장한다면 어떻게 이야기가 진행될까?


모든 토너먼트가 대회가 끝날 때마다, 항상 우리는 전술적인 부분에서 어떤 발전이 있었는지에 대해서 되묻는다. 하지만 유로2016은 전세계가 백4를 쓰게 만든 1958년 월드컵과 같은 파급력을 지니지 못한다. 네덜란드가 토탈 사커의 효력을 전세계에 알린 1974년 월드컵의 파급력에도 미치지 못하며 경이로운 백3 시스템으로 대표되는 1986년 월드컵과도 크게 비교된다. 유로2016은 클럽 경기와는 간접적인 수준의 관계에 지나지 않았으며 어쩌면 전술적인 면보다 심리적인 면이 더 두드러지는 대회였다. 


펩 과르디올라의 바르셀로나가 등장하고선 티키-타카 방식으로 빈번하게 70% 이상의 점유율을 기록하는 경우가 발생했다. 모두가 바르셀로나의 경이로운 플레이에 충격을 받았고 그들에게서 공을 뺏어오는 방법을 알아내고자 다방면으로 노력했다. 하지만 2010년 챔피언스 리그 준결승에서 인터나치오날레가 바르셀로나를 제치고 결승에 진출했고 그 때부터 오히려 바르셀로나가 공을 점유하도록 내버려두는 것이 바르셀로나를 꺾을 수 있는 방법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바르셀로나의 극단적 점유율에 맞서 조세 무리뉴는 극단적인 점유율 포기를 선언했고 이것은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등장했다.


유로2016에 참가하는 국가들은 모두 경기를 주도하려는 상대에 대응하는 팀이 되려했다. (take on the reactive role) 대다수 경기에서 주도적으로 경기를 풀어가려는 팀이 없었고 그 결과 서로 공을 점유하지 않으려는 느린 경주가 진행되었다. 서로의 뚜렷한 경기방식으로 처음부터 치고박는 경기는 우리가 굉장히 재밌어하는 경기 스타일인데 그런 모습은 좀처럼 보기 어려웠다. 8명의 선수를 공 뒤에 위치하는 열망이 더 커지면서 평범한 경기가 양산되는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다.


통계적으로도 전체 경기의 49%에서 한 팀이 60%가 넘는 점유율을 기록했다. 이는 지난시즌 프리미어 리그에서 한팀의 점유율이 60%가 넘는 경우가 전체의 37%에 불과했던 것과 대비되는 결과이다. 즉 유로2016의 절반 정도가 분명하게 공격팀 vs 수비팀 구도로 구분되었던 것이다.


물론 그 자체만으로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독일은 프랑스전에서 66.8%의 점유율을 기록했지만, 수동적인 자세를 취한 프랑스가 아주 명확한 공격 전술을 유지했고 그 결과 점유율 차이 속에서도 충분히 신나는 경기를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수비하기로 마음먹은 팀이 스스로 샌드백 역할을 자처한다면, 경기를 볼 가치가 상당히 떨어지게 된다.


이것은 FA컵이 알리기 싫어하는 비밀이기도 하다 : FA컵의 경기 퀄리티가 좋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은 대회 초반을 관심있게 지켜보지 않는다. 프리미어 리그 클럽이 약한 전력인 팀을 내보내더라도 FA컵의 생명줄과 같은 충격적인 결과는 빈번하게 발생하지 않는다. 충격적이지 않은 결과가 나온다면, 경기는 보통 재미가 없다. 그런데 국가대표 레벨에서는 클럽 수준만큼 공격이 짜임새있기 어렵기 때문에 그런 경향은 더욱 두드러진다. 국가대표 특성상 준비시간이 적고 그렇기 때문에 밀집된 후방 수비를 뚫을 공격 선수들 사이의 이해심을 형성하기란 불가능하다. 하지만 독일은 슬로바키아전에서 밀집수비를 상당히 잘 뚫어냈다. 그러나 독일이 그럴 수 있었던 것은 창조성을 담당하는 주축인 토니 크로스, 토마스 뮬러, 메수트 외질이 상당히 오랫동안 같이 대표팀에서 호흡을 맞춰왔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대표팀에서 그러기 쉽지 않다.


유로2016은 더 많은 국가에게 대회참가 자격을 부여함으로써 엘리트 주의에서 벗어났다. 이번 대회에서 임팩트를 남겼던 웨일스, 아이슬란드, 북아일랜드 같은 약소국은 16개국이 참가하는 토너먼트였어도 충분히 대회에 참가할 수 있을만큼 지역예선에서 인상적인 경기를 선보였다. 프랑스와 예선에서 최고의 활약을 보였던 15개 국가들을 떠올려보자. 지역 예선에서 최고의 활약을 보인 16개팀과 실제로 이 대회에서 16강에 진출한 국가의 차이는 오스트리아와 체코를 헝가리와 아일랜드로 바꾸는 것일 뿐이다. 2주의 시간동안 굉장히 지루한 36차례의 경기가 진행되었다.


유로2016은 수비하는 팀에 대해 불평이 쏟아진 대회로 기억되겠지만, 약팀은 당연히 수비를 해야한다. 가능한 선에서 최선의 결과를 만들기 위해선 그렇게 축구할 필요가 있고 승패가 중요하지 않다면 그것은 더 이상 스포츠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 수비를 뚫기위해 공격하는 팀이 형편없는 기량을 보여준다면, 경기는 재미없어지게 된다.


대신 최고의 국가대표 대항전에 대한 한탄을 하고 싶다. 3주 반의 시간동안 평범하고 낮은 퀄리티의 축구가 지속되었다. 유로2012도 재미없었다는 사실은 유로2016이 최악이라는 것을 바꾸지 못한다. 사실 그 이전 3차례의 유로 대회는 아주 훌륭했었다. 퀄리티가 희석되면서 국가대표 축구는 죽어가고 있다. 아마 유로2016은 모든 국가가 동일한 전술을 유지한(homeopathic) 첫번째 대회로 기억될 것이다.




p.s.//


via @Soccermatics




유로2016에서 점유율과 해당경기 골득실은 상관관계가 없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음



마찬가지로 2015/2016시즌 프리미어 리그 데이터로도 해당경기 골득실과 점유율이 상관관계가 없거나 상당히 적은 경향성을 보이는걸 확인할 수 있음




출처 : https://www.theguardian.com/football/blog/2016/jul/12/euro-2016-death-possession-football





by Jonathan Wilson


유로2016에서 웨일스, 이탈리아는 3-5-2 전술을 사용함으로서 성공적인 결과를 만들어 냈다. 허나 지금의 3-5-2는 관념적이기보다는 실용적인 부흥이다.



유로2016이 24개국으로 시작되었을 당시, 백3 시스템으로 대회를 시작한 국가는 2곳 있었다. 그 중 하나는 아직까지 이 대회에서 생명을 이어가고 있고 (웨일스) 또 다른 한 국가는 (이탈리아) 자신들을 잡기위해 백3 시스템으로 변형을 시도한 국가 (독일) 에게 패배해 8강에서 끝을 맞이했다. 유로 2016은 백3 시스템이 (시대에 뒤쳐진 전술이라는 비판에) 성난 반응을 보이는 대회라 할 수 있겠다.


백3가 성공을 거두고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여전히 국가대표 축구를 클럽 레벨에 모방하려는 사람이 있을까? 다음 시즌에 웨일스, 이탈리아, 독일이 백3를 통해 불러온 파장을 따라갈 클럽이 있을까? 그건 아니라고 본다. 국가대표 레벨과 클럽 레벨에는 이제 상당한 격차가 있고 클럽에서는 국가대표보다 훨씬 세련된 축구가 시행되고 있다. 새로운 아이디어의 흐름은 한 방향으로만 흘러갈 수 있는 것이다. 백3 시스템을 사용하는 팀들이 예상보다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는 것은 단지 이번 대회에서 상대의 전략에 반응하는 수동적인 축구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입증하는데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백3 시스템을 사용하는 국가가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두는 것이 놀랄 일은 아니다. 2년 전 과거와 비교해 평범한 선수들로 구성된 네덜란드는 루이 반 할의 철학과 대비되는 5-3-2 역습축구로 준결승까지 진출했다. 2014년 3월 프랑스와 친선전에서 0:2 패배를 당한 이후 로날드 쿠만이 이끄는 PSV 아인트호번 경기에서 반 할은 그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었다.


80년대 중반 널리 퍼져있던 백3 시스템은 90년대 후반 1명의 스트라이커를 두는 전략이 널리 퍼지면서 시대의 흐름에서 뒤쳐져갔다. 과정은 이러했다 : 전통적인 윙어가 사라졌고 따라서 풀백들은 더 이상 수비적으로만 플레이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따라서 풀백은 미드필드 진영까지 가세해 3명의 수비수가 2명의 상대팀 공격수를 방어하게 된다. 2명이 각각 1명씩을 마크하고 1명의 리베로가 남아 공간을 커버한다. 하지만 상대가 1명의 공격수를 배치하면 2명의 선수가 잉여자원으로 남고 그것은 결국 백3 시스템을 사용하면 피치 어딘가에서 팀이 수적 열세에 마주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특히 상대가 4-3-3 혹은 4-2-3-1 시스템을 사용해 윙포워드를 배치하는 경우 윙백이 상당히 자기진영 깊숙히 내려와야만 했다.


하지만 펩 과르디올라의 바르셀로나 덕분에 사고방식이 조금 달라졌다. 과거보다 65~70%의 점유율이 더욱 흔해졌고 그 결과 30% 미만의 점유율을 기록하면서 경기를 펼치는 것에 더 많은 팀들이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깊숙히 내려앉아 공간을 방어하고 상대가 미드필드 지역에서 패스를 돌리도록 허용하는 것에 점차 자연스러워지고 있다. 한 때 이런 방식의 플레이는 굉장히 불편한 것으로 받아들여졌지만, 이제는 경기에서 승리할 수 있는 하나의 방식으로 통용되고 있다.


따라서 이제는 미드필드 지역에서 수적열세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제 후방에 잉여자원이 남는 것은 큰 이점이다. 공간과 선수에 대한 추가적인 커버가 될 수 있고 루즈볼 상황에 대한 경쟁력 우위를 불러올 수 있다. 다만 이것은 백3 시스템뿐만 아니라 무실점을 목표로하는 팀이 빈번하게 사용하는 전술적 선택으로로 볼 수 있다.

 

동시에 점차 2명의 중앙 스트라이커를 기용하는 것이 일반적인 흐름으로 가고 있다. 지난시즌 레스터 시티의 선택 역시 주목할만하다. 2명의 중앙 수비수가 1명의 공격수를 상대하는 것에 익숙해진 탓에 오히려 공격수 2명의 파트너십을 방어하는 것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따라서 지금의 흐름에서 백3 시스템을 사용하는 것은 그 어느 때보다 더 효율적일 수 있다.


모든 이론적 가능성을 다 제쳐두고서 웨일스와 이탈리아가 백3 시스템을 선택한 것은 그것이 선수단에 가장 잘 맞는 옷이기 때문이었다. 안토니오 콩테는 유벤투스 재임기간 안드레아 바르잘리-레오나르도 보누치-조르지오 키엘리니 라인을 만들었고 그 3명을 대표팀에서도 그대로 활용하길 희망했다. 그렇게 이탈리아 백3 시스템의 기반이 만들어진 것이다. (유벤투스 조합을 효과적으로 쓰려면 이탈리아는 필연적으로 백3를 선택할 수 밖에 없었다)


한편 웨일스의 크리스 콜먼같은 경우는 클럽 커리어를 통틀어 딱 1차례만 백3 시스템을 사용했었다. 그 때는 2005/2006시즌 최종전으로 풀럼은 미들즈브러를 상대해 1:0 승리를 기록했다. 그는 유로2016 지역예선 초기에 이 시스템을 웨일스에 안착시켜 조 레들리, 조 앨런, 애런 램지를 동시에 기용할 수 있었으며 동시에 가레스 베일에게도 큰 자율성을 부여할 수 있었다.


웨일스와 이탈리아 모두 자신이 가지고 있는 옵션을 활용할 수 있는 가장 실용적인 방법으로 백3 시스템을 선택했다고 할 수 있다. 결국 이것은 실용적인 문제일 뿐 관념적인 사항이 결코 아니다. 웨일스와 이탈리아의 전술적 결단은 경기시작 후 빠른 시간 내에 공격하는 팀과 수비하는 팀이 정해지는 이번 대회의 패턴과 굉장히 잘 들어맞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서로 치고박는 경기보다는 서로 다른 축구를 구사하는 팀 사이의 대결이 훨씬 많았다. 즉 이번 대회는 상당수의 경기가 공격팀 vs 수비팀 흐름이었고 웨일스와 이탈리아는 모두 자신들을 상대로 공격적으로 나선 팀에게 최선의 결과를 만들어냈으며 한편 소극적으로 경기에 나선 상대팀에게는 고전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지난 3월 독일은 이탈리아를 상대로 친선전에서 4:1 승리를 기록했지만 이번 대회에서는 똑같은 포메이션으로 맞대응을 했다. 뢰브의 결단은 상대의 전술에 반응하는 움직임이었고 어쩌면 상당히 자기 방어적인 선택이었다. 독일이 8강에서 가까스로 승리를 거두었기에 뢰브의 선택이 통했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만약 이탈리아가 승부차기에서 그 끔찍한 킥을 양산하내지 않았더라면 뢰브의 결정에 관대한 태도를 보일 수 있었을까란 질문을 던져보게 된다.


백3 시스템의 성격이 이번 대회의 특성을 잘 반영하고 있다고 할 수 있지만, 이것이 각 국가마다의 자국리그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 물론 이번 대회에서 영감을 얻어 모방하려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국가대표 레벨에서 통하는 것이 엘리트 클럽간의 경쟁에서 영향력을 행사할지는 미지수다. 루이 반 할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첫시즌에 백3 시스템으로 재미를 보려고 했지만 고전했었다.






출처 : https://www.theguardian.com/football/2016/jul/05/the-question-why-has-3-5-2-worked-at-euro-2016-jonathan-wilson











by Jonathan Wilson (원문은 2016년 1월 15일에 작성되었습니다)


주중 아스날과의 경기에서 조 앨런의 극적인 동점골이 나오자 위르겐 클롭은 허공을 향해 펀치를 날리기 까지하며 기뻐했다. 클롭은 그 순간 단순한 극적인 승점 1점에 기뻐하는 것 뿐만 아니라 자신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축구가 실현되었다는 것에 대한 만족감도 느꼈을 것이다. 2013년 클롭은 이렇게 말했었다. "나는 80%의 점유율을 기록하는 것을 선호하지 않는다. 미안한 말이지만 나한테 그것은 충분치 않으며 내가 원하는 경기도 아니다. 내가 좋아하는 축구는 차분한 축구가 아닌 파이팅 넘치는 축구다. 독일에서 '잉글리쉬'스럽다 이야기하는 것들 : 비가 오는 날 질척거리는 피치 위에서 모두의 유니폼이 진흙탕이 되어가며 싸워 5:5 무승부를 기록하는 것 나는 그런 축구를 좋아한다." 물론 안필드에서 아스날과의 무승부는 5:5 스코어가 아닌 3:3 스코어였지만 그 경기는 충분히 '드라마, 에너지 넘치는 경기, 카오스, 선수들의 의지가 충만한" 이라 표현될 수 있는 경기였다.


한편 리버풀과 똑같은 3:3 스코어를 뉴캐슬 유나이티드 원정에서 기록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감독 루이 반 할은 그런 부류의 경기를 극도로 싫어한다. 반 할의 축구는 완벽한 컨트롤을 요구하며 그런 반 할의 철학은 터치라인에서 감독 스스로가 보여주는 행동으로 요약될 수 있다. 클롭이 터치라인에서 뛰어다니고 윽박지른다면, 반 할은 자신의 자리를 냉정하게 고수하며 감정 표현을 크게 하지 않는다. 그런 반 할이 뉴캐슬 원정에서 최소 2차례 이상의 강한 리액션을 보였다는 것은 큰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허나 반 할과 클롭의 대결은 서로 다른 개성의 충돌 이상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두 감독의 맞대결은 각기 다른 축구 철학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그렇게 서로 상반된 철학에 대한 변증법은 현대 축구를 구성하고 있다. 반 할의 선수 육성법은 전형적인 네덜란드 방식이지만 그는 굉장히 자기중심적인 인물로 네덜란드의 전설적인 인물인 리누스 미헐스과 요한 크루이프의 철학을 신뢰하지 않는다. 반 할의 철학은 분명히 토탈 풋볼에서 시작되었으나 반 할은 그것에 대해 실용적인 해석을 하고 있다. 반 할은 공을 소유하여 리스크를 최소화하길 원하고 쓸데없이 점유율을 상대에게 내주는 것을 극도로 혐오한다.


즉흥성의 결여, 조심스러운 경기 운영은 크루이프가 반 할을 싫어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과거 아약스의 윙어였던 스야크 스바르트는 반 할의 축구 철학을 부정하고 2015/2016시즌에 반 할은 '지루함'이라는 비평과 맞서 싸우고 있는 중이다. 펩 과르디올라는 자신을 지도했던 바르셀로나 감독 중에서 반 할이 자신의 축구관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고 말한다. 과르디올라의 바르셀로나 역시도 점유율을 가장 우선순위로 판단하지만 경기 속도와 패스의 흐름은 올시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보여주는 꽉 막힌 답답함과는 한 차원이 다른 수준이었다.


과르디올라의 재임기간 바르셀로나의 스타일은 전세계를 지배했다. 어느 누구도 바르셀로나처럼 경기하지 못했지만 엘리트 클럽들은 바르셀로나처럼 경기하기를 원했다. 그 결과 90년대 후반 바르셀로나에서 뛰었던 인물들이 현재 엘리트 클럽의 감독 자리를 다수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축구는 결코 멈추지 않으며 지속적으로 진화를 한다.


바르셀로나의 (성공에 대한) 갈망이 사그라들기 시작하면서 바르셀로나를 대항하는 방법론의 의견 합의 역시 이루어지고 있었다 : 바르셀로나가 공을 소유하면 깊숙히 내려앉아 파이널 서드 공간을 틀어막아 바르셀로나가 공을 측면으로 돌리게 유도한다. 바르셀로나가 70%를 뛰어넘는 점유율을 기록하도록 내버려두고 빠르게 역습으로 반격을 가한다. 바르셀로나가 패스 리듬을 형성하기 이전에 전방에서부터 압박할 수 있다면 그렇게하는 것이 훨씬 좋다. 


어쨌든 이것은 클롭이 경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이었다. 마인츠에서 그랬고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에서도 60~80년대 잉글랜드 스타일의 압박을 더욱 에너지넘치고 세련되게 바꿔놓았다. 잉글랜드 입장에서는 클롭의 축구를 자신들 본래 축구의 진화 형태로 받아들여야만 했지만, 잉글랜드는 90년대 초반부터 자신들의 축구 색깔에 대한 믿음을 잃었고 클롭의 축구를 수용하지 않았다. 프레싱, 피치 높은 구역에서부터 공을 뺏어오려는 시도 역시 바르샤약스(Barcajax) 스타일로 반 할과 과르디올라가 추구하는 전술적 요소 중 하나다. 그러나 클롭의 축구가 이것과 차이를 가진다면 그것은 공을 뺏어낸 이후의 태도이다.


아르센 벵거는 바르셀로나의 축구를 '무익한 점유율'이라 지칭한 바 있으며 심지어 바르셀로나의 기술적 우아함을 동경하는 사람들조차 때로는 그들 축구에 대해 지루함을 느끼고 있다. 한편 2013년 챔피언스 리그에서 각각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를 탈락시킨 바이에른 뮌헨과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의 빠른 역습은 반박의 여지없이 굉장히 즐거운 축구였다. 


2012/2013시즌을 끝으로 바이언을 떠나는 유프 하인케스의 축구는 후계자 펩 과르디올라의 축구와는 너무나도 달랐다. 하지만 과르디올라는 (자신의 것과 다른 것을 받아들이기에) 충분히 젊었으며 독단적인 사람도 아니었다. 바이언의 스타일을 받아들인 과르디올라는 보다 유연한 감독이 되었고 다양한 경기 접근법을 갖춘 감독으로 성장했다. 그렇게 바르셀로나의 스타일과 탄탄한 게겐프레싱이 합쳐져 뮌헨에서 과르디올라는 바르셀로나 때와는 사뭇 다른 축구를 보여주고 있다.


현재 바이언의 축구 근간 역시 반 할의 축구이다. 과르디올라가 바르셀로나에서 보여준 극단적인 점유율과 클롭이 선두주자 역할을 수행하는 공을 뺏긴 이후의 압박은 모두 반 할이 선호하는 철학에서 시작되었다. 마치 강물이 두 갈래로 갈라졌다가 다시 만나듯이 그 축구 흐르은 바이언에서 합쳐졌다.


AZ 알크마르에서의 성공은 반 할도 융통성을 가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지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는 바르셀로나와 바이에른 뮌헨에서 그랬던 것처럼 핵심적인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어쩌면 반 할은 엘리트 클럽이라면 축구는 당연히 점유율에 기반해야한다고 생각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에게 역습 전술이란 단지 약자가 선택할 수 있는 권한에 불과하다. 


반 할처럼 영리한 감독을 축구의 발전에 뒤쳐진 인물이라 폄하하는 것은 이단적인 발언일 수 있겠지만, 분명 유나이티드의 느릿느릿한 점유율 축구는 다소 시대에 뒤떨어진 느낌을 주고 있다. 축구 선수가 유명인이 된 세상, 과거보다 개인주의가 널리 퍼진 세상에서 반 할이 선수들에게 강요하는 "시스템 속 자기 희생과 평등주의"는 결코 편하게만 받아들여질 수 없을 것이다.







출처 : https://www.theguardian.com/football/blog/2016/jan/15/jurgen-klopp-louis-van-gaal-manchester-united-liverpool

선수와 전술은 어떤 관계인가?

The Question 2016. 6. 4. 16:42 Posted by Seolskjaer



by Jonathan Wilson (이 글은 2013년 4월 10일에 작성되었습니다.)


선수들은 전술로부터 자유로운 것일까? 아니면 선수들이 감독의 전략에 의해 지배당하는 것일까?


몇 주전에 밀란에서 나는 이탈리아 축구협회(FIGC)의 고위 관계자로부터 질문을 하나 받았다. 그의 질문은 '과연 우리가 선수들이 전술로부터 자유로운 환경에서 뛸 수 있는걸 다시 볼 수 있는가'였다. 굉장히 머쓱한 순간이었다. 나는 통역기를 통해 의사소통을 하는 상황이었고 맨 앞줄에 있는 데메트리오 알베르티니, 페란 소리아노, 아드리아노 갈리아니 등이 나를 쳐다보고 있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그의 질문을 정확하게 이해했는지를 확신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 기회에 한 언어가 다른 언어로 옮겨지는 과정에서 아주 정확하게 의미가 전달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한 준비된 상태가 아니었다는 것이 나를 당황케 만드는 또 다른 요인이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어떠한 이야기를 했는지 잘 기억하지 못하는 것 같다. 그렇지만 그 고위 관계자가 나에게 던졌던 질문은 참 적절했던 질문이었다. 사실 그러한 것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다. 그렇지만 너무나 막연했던 주제였다. 직접적으로 이야기하기에는 굉장히 꺼려지는 주제인건 사실이다. 아마 오늘은 굉장히 기본적이고 기초적인 질문을 던져야할 것 같다. : 과연 전술이란 무엇일까?


지난 화요일 밤 말라가를 상대로 보루시아 도르트문트가 아주 멋진 역전을 이뤄내는 것을 보았다. 이 경기는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작용한 경기였다. 전술은 혼란으로 이루어진 축구에 질서를 부여하기 위한 시도이다. 그래서 전술이라는 것은 어느 정도 언어적인 축구라 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전술이 적용되는 범위는 어느 정도인 것인가?


사실 이 날 도르트문트는 자신들이 보여줄 수 있는 최선의 축구를 보여주지 못했고 말라가는 수비적인 부분에서 아주 훌륭한 팀이었다. 후반전에 도르트문트는 2번의 기회를 잡았지만 말라가의 윌리 카바예로 골키퍼가 도르트문트의 기회를 무산시켰다. 도르트문트의 슈팅은 아주 정교하게 시도된 슈팅이 아니었고 동물적 감각이나 팔을 정확하게 뻗어 막은 방어보다는 윌리가 슈팅을 방어하기위한 최적의 위치에 서있던 것이었다. 마르코 로이스의 슈팅은 윌리를 맞췄고 골문 밖으로 나갔다. 물론 공이 윌리를 맞고 골이 되지않았기 때문에 윌리가 칭찬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렇지만 상당한 운이 작용했던 세이브였고 기회를 살리지 못한 로이스의 실수도 조금은 가미된 장면이었다. 


마지막 10분은 정말 정신이 없는 수준이었다. 득점이 절박했던 도르트문트는 역습에 쉽게 노출될 정도로 공격을 시도했다. 그러나 훌리우 밥티스타의 도움을 받은 엘리세우가 득점을 기록하면서 말라가가 2:1로 앞서나갔다. 결국 도르트문트는 패스 플레이를 포기하고 무작정 공을 박스 안으로 집어넣는 시도를 할 수 밖에 없게 되었다. 경기 내내 성공적이었던 말라가의 오프사이드 트랩은 서서히 무뎌져갔다. 도르트문트의 롱볼 공격은 공격에 가담한 네벤 수보티치에게 연결되었고 수보티치에게 공을 연결받길 기다리고 있던 필리페 산타페를 헤수스 가메스가 아주 대담한 태클로 저지했다. 그렇지만 공은 로이스에게 연결되었고 로이스가 골로 연결시켰다. 도르트문트의 결승골 과정에서 처음 크로스가 올라오는 과정에서 4명의 선수가 오프사이드 위치에 있었다. 엄청나게 혼란스러운 와중에 산타나가 결승골을 만들어냈다. 산타나의 결승골은 대혼란 그 자체였다. 80분 이후에 터진 3번의 득점은 전부 승리를 향한 열망과 실수에 의해서 만들어진 골이었다. 사실상 전술이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굳이 전술적인 표현을 하자면 아주 기본적인 것만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도르트문트는 역습에 취약한 구조를 선택했고 말라가는 오프사이드 트랩을 적극 활용했으며 수보티치가 더 이상 수비수가 아닌 공격하는 역할로 활용되었다는 것 정도로 말이다. 


(말라가가 앞선채 경기가 진행되고 있는) 90분이 되자 나는 위르겐 클롭 감독이 안쓰러워졌다. 도르트문트가 자신들만의 기준에 걸맞지 못하는 경기를 펼쳤기 때문이다. 1,2차전 내내 긍정적이지 못한 경기력이었고 사실 말라가보다 도르트문트가 4강에 올라가는 것이 4강전을 더욱 박진감 넘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도르트문트가 경기를 역전한) 93분이 되자 마누엘 페예그리니 감독이 안쓰러워졌다. 2차전에서만큼은 전술적으로 말라가가 더 좋은 팀이었고 말라가의 강한 압박은 도르트문트가 실수를 연발하도록 만들었다. 아니면 도르트문트가 그 날 굉장히 무뎠거나. 경기 후 수보티치는 (말라가에게 지고 있는) 상황이 만들어내는 압박감이 도르트문트를 뭉치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 날 도르트문트의 패스가 경기 결과만큼 썩 좋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경기에 영향을 주는 것은 전술적 책략인 것인가? 아니면 선수들을 향한 동기부여인 것인가?


정답은 두개 모두라고 말하고 싶다. 나딤 아슬람의 <헛된 기다림>이라는 책에는 이러한 구절이 있다. '여기서 실타래를 풀게 되면, 전 세계를 돌아 다시 시작하는 곳에서 만나게 될 것이다' 이것이 내가 밀란에서 말한 것이고 여기에 답이 있다고 생각한다. 전술이 선수를 만들고 선수가 전술을 만든다. 고로 둘 사이의 관계는 굉장히 소중한 것이다. 간단한 예를 들자면, 선수의 상태가 완전치 못하고 훈련되지 않았다면 우리는 압박하는 경기를 펼칠 수 없다. 그러나 이것만이 완전한 사실이 아니다. 이건 극도로 단순화된 하나의 사례일 뿐인 것이다.




윌리를 예시로 들었던 것과 그가 후반전에 보여준 세이브를 예시로 들었던 것은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설명하기 위해 아주 중요하다.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선 두가지 단계가 필요하다. 골키퍼는 경기를 읽어내는 개인의 능력과 신체적 능력을 종합해 상대의 슈팅을 막아낼 수 있는 최적의 위치를 결정해낸다. 이는 아주 기초적인 사항이다. 윌리는 트레이닝에서 자신이 교육받았던 것을 그대로 이행한 것이고 자신이 슈팅을 막아낼 수 있다고 생각한 최적의 위치에 있던 것이다. (기초적 사항을 기반으로하고) 그 다음은 미리 계획하기 불가능한 것들 : 굴절, 행운, 상대의 공격수가 공을 어디로 보낼지 같은 것들에 의해 상황이 결정된다. 


바로 위에서 언급한 사항은 전반적으로 경기 자체에도 비슷하게 적용된다고 볼 수 있다. 아주 근원적인 것 : 피치 위에 선수를 어떻게 배치시킬 것인가. 선수 개개인이 맞딱뜨리는 상대와의 관계 등이 기본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기본적인 것들이 한 팀이 점유율을 지배한다던지, 왼쪽 풀백 때문에 오른쪽 윙어가 고립된다던지 등의 상황을 야기시킨다. 아주 근원적인 것이 경기의 양상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제는 이에 대한 대응이 나온다. 그렇다면 윙어는 기술과 속도를 활용해 풀백을 뚫을 수 있는가? 정확한 크로스를 시도할 수 있는가? 그가 득점 기회를 만들어낼 수 있는가?


그 이후엔 다음 단계가 이어진다. 센터포워드가 그 기회를 잡아낼 수 있는가? 그가 자신의 마크맨을 따돌리고 헤더를 따낼 수 있는가? 그가 직접 득점으로 연결시킬 수 있는 헤더를 시도하는가? 그렇다면 그 헤더의 파워는 어느 정도인가? 물론 여기에도 센터포워드가 기회를 감지한다는 기본 전제가 깔려있다. 크로스를 받아낼 수 있는 적절한 위치에 있는가? 자신보다 큰 센터백과 경합할 것인가 작은 센터백과 경합할 것인가? 같은 사항들 말이다.


조금 더 쉽게 생각해보자. 기본적인 사항들은 어느 팀이 더 많은 기회를 만들어내고 그것이 어떠한 기회인지를 결정짓는다. 그 다음으로 따지게 되는 기본적 사항보다 위에 있는 가치는 그러한 기회를 잡느냐를 결정 짓는다. 물론 언제나 그 전 단계들이 존재한다. 그 기회를 만들어줄 기회를 잡을 수 있느냐부터 시작해서 똑같은 질문을 계속해서 반복하는 것이다. (어시스트를 하면 어시스트 이전의 패스는 누구이며, 그 이전의 패스는 누구이며를 따지는 것 같은 것들 말이다) 무한히 뒤로 향할 가능성이 있다. 이렇게 복잡하게 따지고보면 모든 것이 다 연관되어져있다. 멋진 플레이는 항상 어떤 주체를 통해 시행되는 것이고 이러한 이유에서 축구가 항상 단순히 데이터를 기반으로한 분석을 한사코 거절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다시 선수와 전술간의 관계라는 주제로 돌아오자 : 전술은 기본적 사항들에 영향을 받는 것이고 선수들은 그보다 더 상위에 있는 개념에 영향을 받는다. (물론 두가지 사항이 굉장히 밀접하게 연관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를 구분한다는 것은 아주 학문적인 것으로 느껴질 수 있다) 감독들은 전술을 수정하면서 경기에 영향을 주는 아주 기본적인 요소를 수정할 수 있다. 선수들에게 영향을 끼치는 더 상위 요소에 대해 감독들이 할 수 있는건 선수들이 최상의 몸상태와 심리적 상태를 유지할 수 있게 돕는 것이 전부다. (그리고 이는 전술에 영향을 주는 기본적 사항에 해당하지만, 최고의 선수를 최적의 위치에 배치시키는 것도 감독이 할 수 있는 것이다.)


정형화된 방식을 만들 수 없지만, 경기를 지배했다는 것을 평가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방법은 득점 기회를 얼만큼 만들어냈는지를 체크하는 것이다. 물론 이것도 완벽한 가이드라인은 아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기준으로만 따질 경우 모든 기회가 동등한 득점 확률을 가졌다고 전제를 깔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예를 들어서 한 번 생각해보자. 만약 20번의 기회를 만들어낼 것이라 예상되는 A팀과 10번의 기회를 만들어낼 것으로 예상되는 B팀이 서로 맞대결을 펼친다고 가정하자. 만약 B팀의 감독이 20:10의 싸움을 14:8로 만들었다면 경기 결과에 상관없이 그는 자신의 일을 잘 수행한 것이다. 이 결과가 선수의 영향을 받았던 받지 않았던 그건 크게 중요하지 않다. A팀의 센터포워드가 아주 멋진 활약을 펼쳐 4:0으로 승리를 거두건, B팀 골키퍼의 멋진 플레이로 1:0으로 승리하건 감독이 시도한 전술적인 업무에 있어서 경기 결과는 대체적으로 무관한 입장을 지닌다. 후안마 릴로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목적(경기 결과)은 하나의 과정이고 여정입니다. 경기 결과라는 것을 쟁취하기 위한 노력의 과정이 중요한 것 입니다. 단순히 이겼다고 좋은 경기를 펼친 것이 아니고 이기지 못했다고 나쁜 경기를 펼쳤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경기를 감상하는 당신들에게 영감을 불어넣는 것은 결과가 아닐 것 입니다. 결과는 일종의 데이터일 뿐입니다. 무엇인가를 해낸다는건 과정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경기 결과는 논쟁의 거리가 되지 못합니다. 당신은 경기 결과를 나열한 것으로 가득찬 신문을 월요일 아침에 1유로를 지불하면서 살 것입니까? 축구장에 경기가 끝날 즈음에 들어가서 스코어보드만 확인하고 다시 경기장을 나올 것 입니까? 경기장에 들어간 당신은 90분 경기를 지켜보며 그것이 바로 과정인 것 입니다. 사람은 본래 잘한 무언가보다 잘 마무리된 무언가를 좋아합니다. 우리는 나쁘게 시행된 것을 질타하지 않고 나쁘게 끝났다는 것에만 초점을 두고 질타하죠."


다시 원래 우리가 처음에 던졌던 질문으로 되돌아가자 : 과연 선수들이 전술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필자의 대답은 '아니오'다. 노동자들이 마르크스가 주장한 생산관계에서 벗어나지 못하듯이 선수들 역시 전술에서 완전히 분리된 별개의 존재로 있을 수 없다. 심지어 '자유'라는 말까지 오류가 존재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선수들에게 별다른 지시를 내리지 않거나 '프리 롤'을 부여해도 선수들은 여타 다른 선수들과의 관계 속에서 뛸 수 밖에 없다. (포지션은 동료와의 관계, 상대팀, 공의 소유권, 공간을 고려하지 않는한 의미가 없다라고 주장하는 아리고 사키의 위대한 통찰력이 다시 한 번 주목받는다) 과연 선수들이 전술적 시스템으로부터 보다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절대적으로 아니다. 결코 선수들은 경기의 가장 기본적인 조건(전술)을 피할 수 없다. 말라가와 도르트문트 경기의 마지막 10분처럼 아주 혼돈 그 자체의 순간에도 선수들은 전술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출처 : http://www.theguardian.com/football/blog/2013/apr/10/th-question-players-tactics-jonathan-wils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