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의 게임 : 0은 1보다 크다

The Numbers Game 2016. 8. 14. 15:26 Posted by Seolskjaer



모든 선수들은 피치 위에서 발생하는 모든 것을 시행할 수 있어야 한다 - 펩 과르디올라



지금까지 축구계에는 수많은 전술 철학가와 그 철학을 널리 전도한 사람들이 존재했다. 하지만 1978년 아르헨티나를 월드컵 우승으로 이끌었던 세자르 루이스 메노티만큼 예지력 있는 사람은 아주 드물다. 메노티는 공산주의자였지만, 아르헨티나가 우파 성향의 군사 정권 통치를 받을 때 아르헨티나 대표팀 감독직을 수락했다. 메노티의 커리어 측면에서 이념에 치우치지 않은 실용적인 판단을 내린 것이라 할 수 있겠지만, 그 실용적 판단은 피치까지 이어지지 않았다. 메노티는 피치 위에서만큼은 아주 순수주의자였다.

 

메노티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세지는 아주 간단했다 : 축구는 상대팀보다 1~3골을 더 넣는 스포츠라는 것이다. 그의 생각 속에는 리드를 지키기위해 잠근다는 개념이 없었다. 하지만 우리는 오늘날의 축구가 공수 밸런스를 속에 이루어지는 것을 이미 확인했다. 하지만 메노티에게 흑과 백이 아닌 회색은 존재하지 않았다. 눈부시고 흥미진진한 공격, 시니컬하고 우울하기 짝이없는 수비 2가지 개념만 존재했다. 하나는 빛이고 하나는 어둠이었다.

 

메노티는 공격과 수비를 이념의 대결처럼 간주했다. 공격은 좌파이며 수비는 우파이다. 메노티는 확고한 공산주의자였기 때문에 공격을 긍정적인 태도, 창의성과 흥겨움이 함께하는 것으로 평가했다. 한편 수비는 부정적, 결과에 집착하는 두려움의 표현으로 묘사했다. "우파 축구(수비적인 축구)는 인생이 투쟁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어한다. 희생을 강요하고 강철같은 선수가 되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승리를 쟁취하라고 말하며 선수는 명령에 복종하고 기능적으로 뛰어야 한다. 수비 축구는 선수들에게 지금 언급한 덕목을 요구한다. 그렇게 수비 축구는 선수들의 성장을 지체시키고 시스템 속에서 뛰어다니는 유용한 바보들을 양산한다."

 

사실 메노티의 팀은 그가 주장하는 것보다 훨씬 시스템에 의존하는 팀이었다. 자신의 의견과 행동이 충돌하는 부분이 있었지만, 메노티가 제안한 주장이 매혹적이라는 것은 아주 분명했다. 그의 원칙을 요한 크루이프를 시작으로 하여 펩 과르디올라, 아르센 벵거, 마르셀로 비엘사, 즈네덱 제만, 브랜단 로저스 심지어 이안 홀로웨이까지도 공유하고 있다.

 

대다수 팬들도 대략적으로 메노티의 주장을 받아들이고 있다. 공격적 축구를 장려하고 수비적인 선택은 가장 최후의 수단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클럽은 이적시장에서 공격수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며 시즌이 끝날 쯤이면 하이라이트 영상의 효과를 누린 공격수들은 상을 하나씩 거머쥐게 된다. 하지만 수비수들은 저평가받고 완전히 공격수와 다른 대접을 받는다. 

 

강한 공격력은 가장 조밀한 수비를 실제로 이길 수 있을까? 이 논쟁의 승자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메노티가 제안한 가설은 다음과 같다 : 상대보다 더 많은 골을 넣는 것이 상대보다 실점을 적게 하는 것보다 우월하다. 다른 가설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데이터를 활용해 가설검정을 시행할 것이다. 데이터로 실험한 결과는 메노티의 주장이 타당하다고 이야기해줄까? 아니면 불편한 진실이 아름다운 가설을 깨뜨리는 결과를 불러올까? 


축구에서 "공격이 끝내는 승리한다" 라는 것만큼 아름다운 가설이 있을까? 축구에는 수많은 돈이 걸려있다. 클럽은 경쟁팀을 제치고 세계적 수준의 공격수를 데려오길 희망하며 또 그들에게 상당한 연봉을 제시한다. 스포츠에는 영웅이 존재하기 마련이고 성공과 실패의 차이를 결정짓는 선수가 끝내 영웅이 된다. 축구는 곧 골이고 골은 곧 축구다. 하지만 최고의 공격력을 가지고 있어도 수비를 하지 않으면 결코 우승이란 퀘스트를 성공할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득점에 더 신경을 써야할까? 아니면 상대의 득점을 막는 것에 더 집중해야할까? 클럽은 센터백이냐 센터포워드냐의 질문에 답을 내려야한다. 지난 100년간, 축구계 종사자들은 센터포워드의 가치를 더 높게 평가했다. 센터포워드를 센터백보다 더 높게 평가하는 것은 올바른 의사결정이었을까? 우리는 정말 객관적인 시선으로 경기를 바라보고 있었던 것일까?



이길 것인가 or 지지 않을 것인가


데이터를 통해 판단을 내릴 수 있는 근거를 찾아보자. 지난 20년간, 유럽 탑4 리그의 결과를 종합했다. 우리가 첫번째로 던질 질문은 바로 이것이다 : 최다득점팀은 항상 리그에서 우승하는가?


답은 '아니오'이다. 평균적으로 최다득점팀이 우승할 리그에서 우승할 확률은 51%다. 분데스리가는 20시즌 중 8번이 최다득점팀의 우승으로 마무리 되었고(40%) 프리미어 리그는 12차례(60%) 최다득점팀이 우승했다. 리그 최다득점은 리그 우승을 보장해주지 않는다. 그렇다면 수비 축구의 힘은 어떨까? 최소 실점을 기록하는 팀이 리그에서 우승을 차지하는가? 이 역시도 항상 그런 것은 아니다. 최소실점팀은 약 46%의 우승 확률을 기록하고 있다. 프리미어 리그의 40%에서 세리에 A의 55%까지가 그 범위다. 최다득점을 기록하는 것이 최소실점을 기록하는 것보다 조금 더 높은 확률을 보장해준다. 하지만 둘 다 완벽하게 챔피언 타이틀을 보장해주지 않는다.

 

그런데 최다득점과 최소실점을 동시에 기록하는 클럽이 있다. 20년간 4개의 리그를 조사했고 총 80차례의 챔피언을 사례로 분석하고 있다. 그 중 최다득점과 최소실점을 동시에 석권한 경우는 16차례였다. 리그 타이틀을 결정짓는데 골득실까지 영향을 미치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 물론 우리는 2012년 맨체스터 시티가 골득실로 우승을 차지한 것을 목격했지만 (그 횟수가 적기 때문에) 골득실이 아주 결정적이라 결론 짓기는 어려울 것 같다.

 


 



 

오히려 득점 수와 리그 승점의 관계, 실점 수와 리그 승점의 관계를 살펴보는 것이 더 괜찮은 접근법일 것이다. 골을 많이 넣을수록 더 높은 리그 순위를 기록한다면, 메노티와 그의 추종자들이 생각하는 것이 맞다고 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실점을 적게할수록 더 높은 리그 순위를 기록한다면 '우파' 축구라 불리는 것은 '좌파'의 주장만큼 거북하고 비참한 축구는 아닐 것이다. 아래 그림은 2001/2002시즌부터 2010/2011시즌까지 프리미어 리그 클럽의 득점과 실점, 그에 따른 승점을 그래프로 나타낸 것이다.

 

프리미어 리그에서 승점을 쌓기 위해서 2가지 전략을 수행해야 한다 : 골을 넣어야 더 높은 승점을 쌓을 수 있지만, 골을 적게 내주는 것 역시 동등한 효과를 가지고 있다. 두 추세선의 기울기는 비슷하고 추세선 근처에서 여러 점들이 집단을 이루고 있다. 숫자는 메노티의 주장을 입증하지 못하지만, 그가 틀렸다고 말하지도 못한다. 데이터는 한쪽으로 치우치지 말라고 이야기한다. 즉 축구는 흑과 백의 논리가 아닌 (두가지를 섞은) 회색의 스포츠인 것이다.

 

하지만 이 분석에도 한가지 결점이 있다. 최종적인 승점에 대해서 언급했을 뿐, 어떻게 승점을 쌓았는가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다. 승점3점 제도로 인해 1승 2패는 3무와 동일한 승점을 기록하게 된다. 이제는 경기에서 이길 것인가, 패배하지 않을 것인가의 대결인 것이다. 두 가지 중에서 어떤 것을 선택하는가가 메노티가 주장하는 축구적 가치관을 결정짓는데 상당한 역할을 할 것이다. 당신은 메노티처럼 '좌파'를 선택할 수 있고 '우파'를 선택할 수도 있다. 1승 2패를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적어도 지지않는 축구로 3무를 선택할 것인가? 특히 조세 무리뉴 같은 감독은 후자를 선택할 것이다. 어느 것이 더 미적이고 도덕적으로 우위인가의 싸움이 아니다. 이것은 승부의 세계에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질문이다 : 승리하기 위해 패배의 가능성을 열어두어야 하는가? 아니면 적어도 패배는 피해야 하는가?


 


 

 


공격이 더 많은 승리를 이끌어내고 수비가 더 적은 승리와 더 많은 무승부를 발생시키는지 알아보기 위해서 우리는 보다 정교한 회귀분석을 시행해야한다. 이 기법은 수비, 공격 퍼포먼스를 종합한 정보를 바탕으로 팀의 경기 결과를 예측할 수 있게 한다. 그리고 공격과 수비 중 어느 것이 더 강력한 무기인가에 대한 답을 내줄 것이다. 수비 기록을 고려하면서 동시에 팀 득점이 승리 수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 실험했고 그와 반대의 케이스도 실험했다. 데이터는 2001/2002시즌부터 2010/2011시즌까지의 기록을 활용했다.

 

다른 조건이 동일한 경우, 전반적인 추세보다 10골을 더 기록하는 것은 추가적인 2.3승을 보장해준다. 마찬가지로 10골을 덜 실점하는 것은 추가적인 2.16승을 보장한다. 따라서 잉글랜드 축구에서 골을 기록하는 것과 골을 막는 것은 승리 수에 사실상 동등한 기여를 한다고 볼 수 있다.

 

패배를 면하는 것에 있어서 마찬가지로 두가지 요소가 영향을 주지만 여기서 득점과 실점은 그 중요성이 다르다. 좋은 공격력은 팀의 패배를 줄여주지만, 팀의 패배 횟수에 통계적으로 더 강력한 설명력을 지니는 것은 득점이 아닌 실점이었다. 어떻게 더 설명력이 강한가? 득점과 마찬가지로 다른 조건이 동일한 경우, 전반적 추세보다 10골을 더 기록하는 것은 팀의 패배를 약 1.76경기 줄였다. 한편 10골을 적게 실점하는 것은 팀의 패배를 약 2.35경기 줄였다. 따라서 패배를 면하기 위해서 실점하지 않는 것이 득점을 기록하는 것보다 약 33%가량 더 가치있다. 

 

이것이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할까? 메노티는 오직 공격만이 성공을 위한 유일한 방법이라 주장했지만, 그의 주장이 틀렸다. 5월에 리그 챔피언이 되기 위해서 우리는 공격과 수비를 동등하게 중요시 해야한다. 오직 공격만으로 팀을 우승으로 이끌기엔 충분하지 않다. 패배하지 않는 것도 신경써야 한다. '좌파'의 방법론, '우파'의 방법론 모두 성공을 위한 완벽한 길이 아니다. 우리가 추구해야할 지점은 그 사이에 있다.

 


우리는 경기를 본다


지구상 최강의 풀백 다니 알베스는 바르셀로나에서 뛰고있기 때문에 메노티의 관점과 동일한 눈을 가지고 있다. 그는 2009년 첼시와의 챔피언스 리그 4강전 종류 후 이렇게 말했다. "첼시는 겁이 많아서 결승전에 진출하지 못했다. 첼시는 바르셀로나보다 1명 많은 상황이었고 홈경기였으며 심지어 이기고 있었기 때문에 더 공격적인 경기를 했어야만 했다. 바르셀로나의 컨셉처럼 경기하지 않는다면, 그렇게 뒤로 물러선 축구만 한다면 대회에서 탈락한다. 뒤로 물러나면 패배자가 되고 전진하면 승리자가 된다. 첼시는 전진해서 우리를 공격할 용기가 부족했다. 첼시가 공격을 주저할 때, 우리는 그들이 경기를 포기했다고 판단했다."

 

'뒤로 물러나면 패배자가 되고 전진하면 승리자가 된다' 축구에 대해 알베스와 동일한 가치관을 가진 사람이 여럿 존재한다. 그들은 축구를 하는데 있어서 올바른 방식과 잘못된 방식이 있다고 판단하고 언제나 올바른 방식이 옳다고 (결과를 통해) 증명되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극명한 관점 차이는 축구가 시작된 초창기에도 존재했다. 1882년 11월 <Scottish Athletic Journal>에서 자기진영에 2명의 선수를 배치하는 것을 비난하는 기사를 찾아볼 수 있다. 수비를 하는 것 자체가 경기를 진행하는데 있어서 올바르지 못한 태도라 생각된 것이다. 사람들은 축구가 오로지 공격을 위한 스포츠라 생각했고 무조건 상대보다 더 많은 골을 넣는데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초창기부터 낙인된 '좌파'의 시선은 지금까지도 우리가 경기를 보는 관점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탈리아의 완벽한 카테나치오는 세리에A를 지루하게 만드는 요소라 비판받고 있으며, 그리스의 유로2004 우승을 축하하는 곳은 그리스 외에 존재하지 않았다. 심지어 이탈리아, 그리스 사람들 조차도 실점하지 않아 승리하는 것보다 골을 잘 넣어서 승리하는 것을 더 선호한다. 스트라이커는 값비싼 이적료와 고연봉을 받고 상과 대중의 사랑까지 가져간다. 하지만 센터백은 그러지 못한다. 

 

특히 즐거운 축구를 선호하는 아르헨티나에서는 이런 경향이 더욱 두드러진다. 아르헨티나의 축구 비전은 드리블의 예술성, 개인기에 상당한 관심을 두고 있다. 유럽보다 개인에게 더 집중된 형태이며 따라서 메노티가 공격에 확고한 태도를 지닌 것이 놀랍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그가 살고있는 곳의 축구 문화가 그렇게 생각하도록 만든 것이다. 그게 잘못된 것은 아니다. 사실 우리에 기억 속에 남아있는 장면도 유려한 움직임, 아름다운 골이지 않은가. 대다수가 바비 무어, 카를레스 푸욜보다 조지 베스트, 리오넬 메시를 우상으로 삼는다. 축구가 공격에 강박관념을 가지는 것은 단 한가지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한다. 수비수와 수비적 역할을 수행하는 선수들은 저평가받고 있다. 골키퍼와 수비수가 발롱도르를 수상하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다.

 

우리가 골을 더 잘 기억하는 원인으로 심리학적 요인을 언급할 수 있다. 보다 더 넓은 범위로 확장시켜 심리학적 요인으로 우리가 수비보다 더 공격을 중요시하는 이유까지 이야기할 수 있다. 실제로 숫자는 수비가 만만치않게 중요하다고 이야기하는데 말이다.

 

가장 기본적인 이야기부터 시작해보자. 사람은 기본적인 생물학적, 심리학적 니즈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기쁨을 추구하고 고통을 피하고자 한다. 축구는 이미 오랫동안 득점과 승리가 상당한 연관성을 지니고 있었다. 반대로 실점과 패배는 또 비슷한 부류로 엮여있다. 즉 상대의 골문에 공을 집어넣는 것은 즉각적인 즐거움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상대의 득점을 막는 것은 곧 상대팀의 즐거움을 차단하는 것이다. 축구의 긍정적인 감정은 공격과 연관되어 있다. 공격은 창조적이며, 상대를 제압하는 것이며 동시에 위기를 극복하여 심리적 편안함을 불러온다. 반면에 수비에 대해서는 근본적으로 부정적 인식이다. 패배를 면하기 위해서 욕구를 억누른채 경기하고 있다는 인상이다.


우리는 긍정적인 것을 더 잘 기억해낸다. 심리학자들은 이런 현상을 두고 동기화된 추론(motivated reasoning)과 결정 편향(decision bias)을 이야기한다. 우리는 기존의 신념과 상반되는 데이터를 편향된 시선으로 받아들이게 만들어져있고 객관적인 증거, 정보를 조사할 때 우리가 이미 신뢰하고 있는 것을 뒷받침하는 방향으로 결과를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보고싶은 것만 보고 (볼 수 있을거라) 예상하는 것만 보게 된다. 그 결과 우리는 데이터를 해석하고 수집하는데 있어서 선천적인 어려움을 가지고 있다. 

 

1954년 알버트 하스토프(Albert Hastorf)와 해들리 캔트릴(Hadley Cantril)은 <They Saw a Game> 이란 논문을 발표했다. 미식축구팀 다트무스 대학과 프린스턴 대학의 경기로 두 사람은 연구를 시행했다. 1951년에 있었던 이 경기는 프린스턴의 승리로 끝났는데 상당히 거친 경기였고 수차례 페널티가 선언되었다. 2쿼터에 프린스턴의 쿼터백은 뇌진탕&코뼈 골절을 당한채 경기장을 떠나야했고 3쿼터에서 다트무스의 쿼터백은 거친 태클에 다리가 부러진 채 경기장을 떠나야만 했다. 


다트무스의 교수인 하스토프와 프린스턴의 교수 캔트릴은 관중들에게 정확히 무슨 사건이 발생했는가에 대해서 물어보았다. 녹화된 경기영상을 다시 한 번 피실험자들에게 보여준 후 경기가 거칠어진 원인이 어느 팀의 잘못인지 물어보았다. 대답은 서로 달랐다. 다트무스가 거친 경기를 펼쳤다는 주장에 다트무스 학생의 36%가 프린스턴 학생의 86%가 동의했다. 한편 경기가 거칠어진 원인이 프린스턴에 있는가에 대한 질문에 다트무스 학생은 53%가 동의했고 프린스턴 학생은 11%만 동의했다. 페어플레이가 이루어졌냐는 질문에 프린스턴 학생의 93%가 동의하지 않았고 다트무스 학생은 42%가 동의하지 않았다. 또한 프린스턴 학생들은 실제 다트무스의 반칙 횟수는 기록의 2배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사실(facts)을 마주할 때, 우리는 우리가 옹호하는 입장에서 그것을 바라보게 된다. 예일대 로스쿨 교수인 댄 카한(Dan Kahan)은 두 사람의 연구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학생들은 각자의 학교에 대한 애정이 있고 그런 감정적 요인은 학생들 시선에 영향을 미쳤다. 학생들은 자신의 대학과 연대감을 느끼고 싶었다. 하지만 그것이 의식적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어쩌다보니 같은 경기를 봐도 서로 다르게 인식하게 된 것이다." 우리는 이 현상을 자주 목격한다. 잉글랜드 사람들은 1966년 월드컵에서 공이 골라인을 넘었다고 믿는다. 하지만 독일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어떤 이에게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는 거친 파울을 자주 당하는 아티스트겠지만, 일부에게는 그저 다이버일 뿐이다. 우리의 뇌는 우리가 보고싶어하는 것을 보고 만약 우리가 어떤 것을 믿기 시작한다면, 우리의 믿음은 거기서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다.


코넬 대학교의 심리학자 톰 길로비치(Tom Gilovich)는 이러한 과정이 발생하는 명확한 이유를 찾고자 한다. 그는 사람이 어떻게 정보를 처리하고 의사결정을 내리는가에 대해 연구한다. 그는 스포츠계에서 유명한 논문 중 하나인 '농구의 핫 핸드 현상 : 임의 순서에 대한 오해(The Hot Hand in Basketball : On the Misperception of Random Sequences)의 공동 저자이기도 하다. 이 논문은 짧은 기간동안 자신의 평균 이상의 슈팅 능력을 보여주는 핫 핸드 현상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핫 핸드 현상은 근거없는 믿음일 뿐이다.


"농구 선수들과 팬들은 슈팅을 한 번 성공시킨 이후 시도되는 슈팅이 한 차례 실패한 이후 시도된 슈팅보다 더 잘들어간다고 믿는다. 하지만 슈팅 기록에 대한 분석을 해본 결과 과거의 슈팅 기록과 새로운 슈팅이 양의 상관관계를 가진다는 증거가 없다고 결론지을 수 있다. 보스턴 셀틱스의 자유투 기록도 마찬가지 결과를 나타냈고 코넬 대학교의 남녀 농구 대표팀 역시 새로운 슈팅은 이전 슈팅과 연관성이 없다는 것을 보여줬다. 선수들은 이전의 기록이 새로운 슈팅에 영향을 미친다고 판단하지만, 실제로는 퍼포먼스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다른 스포츠와 마찬가지로 농구에서도 선수가 계속해서 뛰어난 활약을 선보이면 물이 올랐다고 표현한다. 선수 당사자 스스로, 상대팀, 팀동료, 팬들, 심판까지 모두 뛰어난 활약을 보이는 선수가 마치 불타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길로비치의 연구는 그런 느낌이 완전히 틀려먹었다고 말한다. 실전에서나 연습에서나 선수의 평균적인 성공률에 기반해 일련의 순서에 따라 사건이 발생하는 것일 뿐이다. 슈팅의 정확도가 50%인 선수가 있다고 하자. 이 선수의 슈팅 결과는 우리가 동전을 던지는 것과 동일한 패턴을 보일 것이다.


실험의 결과는 굉장히 직설적이고 이런 종류의 실험은 여러차례 반복적으로 시행되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연구 결과를 믿고싶어하지 않는다. 


길로비치는 사람들이 자신의 연구를 받아들일 것이라 낙관적으로 예상했고 심지어 NBA의 전설적인 감독이자 길로비치가 응원하는 보스턴 셀틱스의 아이콘인 레드 아워백(Red Auerbach) 마저도 자신의 연구를 받아들여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워백은 길로비치의 연구에 깊은 인상을 받지 못했다. 길로비치는 아워백과 같은 시큰둥한 반응이 전형적인 반응이라는 것을 인정한다. "셀틱스의 팬이기에 나는 레드가 내 연구를 조금 더 좋아해줬더라면 기뻤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사람들이 내 연구 자료를 묵살하는 것을 기쁘게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연구 자료를 묵살할수록 내 메세지가 가지는 힘은 더 커진다. 핫 핸드에 대한 믿음은 인지적 착각(cognitive illusion)이며 사람들은 경기에서 자신들의 눈으로 직접 바라본 것을 핫 핸드 존재성의 증거로 삼는다. 그렇게 사람들은 점차 나의 발견에 거세게 저항하게 된다."


스포츠에서 우리는 보고싶은 것을 보게 된다. 그리고 교육받은 시각에 갇혀 경기를 바라보게 되고 또한 믿는 것만 보게 된다. 아워백은 핫 핸드가 존재한다고 알았지만 사실 핫 핸드는 존재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축구에서 공격이 수비를 이길 것이라 예상하지만 실제로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말디니의 원칙 : 짖지 않는 개


영국에서 가장 성공한 감독인 알렉스 퍼거슨 경도 때로는 인지적 착각에 빠진다. 2001년 퍼거슨은 네덜란드 수비수 야프 스탐을 라치오로 이적시킨다. 사이먼 쿠퍼는 퍼거슨의 결단에 대해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사람들은 스탐의 이적에 깜짝 놀랐다. 그리고 스탐이 자서전에 엉뚱한 소리를 담는 바람에 퍼거슨이 그를 내쫓은 것이라 말하고 있다. 하지만 퍼거슨이 공개적으로 이야기하지 않았을 뿐 스탐의 판매는 경기 데이터에 기반해 이루어졌을 것이다. 경기 기록을 지켜본 퍼거슨은 스탐의 태클 횟수가 이전만 못한 것을 발견했고 29살 스탐이 기량이 떨어지기 시작했다고 판단해 그를 판매한 것이다."


퍼거슨은 스탐을 판매한 것이 자신의 가장 큰 실수 중 하나였다고 말했다. 어떤 이에게는 퍼거슨의 실수가 데이터의 홍수 속에서 축구를 잘못된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에 대한 경고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렇게 생각한다 : 우리는 수비수의 가치를 평가절하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완전히 잘못된 방식으로 평가하고 있다. 우리는 여기서 다시 한 번 심리적 현상에 대해서 이야기할 것이다. 무엇 때문에 우리는 수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일까? 우리는 실제 발생한 사건을 필요 이상으로 강조한다. 그리고 발생하지 않은 사건에 대해서는 무시한다. 심리학자 엘리엇 허스트(Eliot Hearst)는 이렇게 말한다. "사람과 동물은 존재하지 않는 것을 이해하는 것에 상당한 어려움을 소호한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것이 존재하는 것보다 덜 중요하고 덜 유익하다고 생각한다." 결국 사람은 발생하지 않은 사건보다 발생한 사건을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현상은 축구에 대한 우리의 사고관에 영향을 미친다 : 우리 팀의 무실점보다 우리 팀의 1득점을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또한 수비수가 사전에 포지셔닝을 통해 영리하게 상대의 길목을 차단하는 것보다 태클을 시도하는 것을 더 높게 평가한다. 사실 영리하게 수비했다면 태클을 할 필요도 없었을텐데 말이다. 퍼거슨은 여기서 잘못된 판단을 내렸던 것이다. 그는 반사실적 사고(counterfacual thinking)을 했어야만 했다. 스탐이 태클을 이전만큼 시도하지 않았지만 그것만으로 스탐의 기량 하락을 이야기할 수는 없었다. 퍼거슨은 스탐의 '시도되지 않은 태클(unmade tackles)'을 고려하지 못했다.


과거 리버풀 선수로 활약했던 사비 알론소는 우리가 하고자하는 이야기를 직관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알론소는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리버풀의 어린 선수들이 '태클'을 자신의 장점으로 언급하는 것에 놀랐다고 이야기했다. "축구에서 태클을 자신의 장점으로 거론하는 것을 이해하기 어렵다. 그리고 태클을 하나의 퀄리티라 생각해서 가르치고 배우는 것 역시 이해하기가 어렵다. 태클이 어떻게 경기를 바라보는 능력 중 하나인가. 태클은 그저 최후의 수단일 뿐이다. 결코 동경해야할 능력이 아니다." 알론소의 관점에서 태클은 무엇인가 잘못되었을 때만 시행하는 것일 뿐이다.


이 부분에서 AC밀란과 이탈리아의 세계적인 수비수 파올로 말디니만한 선수가 없다. 말디니는 좀처럼 태클을 하지 않는 선수였다. 말디니는 스스로 위험을 사전 차단할 수 있는 공간으로 가있었기에 유니폼을 더럽히는 태클을 시도하지 않았다. 최고의 수비수는 태클을 하지 않는 수비수다. 수비의 예술은 바로 짖지 않는 개와 같은 것이다.


심지어 최고의 감독인 퍼거슨조차 이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했다. 반사실적 사고를 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사실과 반대되는 사고를 해야하며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 생각해야만 한다. 톰 길로비치는 인간이 본래 사건에 대해 인과적 설명을 형성하기 때문에 반사실적 사고를 하기 어렵다고 주장한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결과를 설명하기 위해 시행되지 않은 것보다 시행한 것에 더 집중하게 된다.





다음 그림을 통해 이야기를 이어가자. 위에서 O를 찾는 것과 아래서 Q를 찾는 것은 확실히 다르다. 위에서 O를 찾는 것은 어렵고 아래서 Q를 찾는 것은 상당히 쉽다. Q와 O의 차이는 선이 하나 더 있는가 없는가의 차이인데, 우리는 없는 것보다 있는 것을 더 잘 찾아낸다. 태클 시도와 태클을 시도할 필요도 없던 것을 비교할 때 우리는 비슷한 현상을 체험한다. 무존재성은 존재성과 확실히 다르고 우리는 그것 때문에 실수를 하게 된다.


똑같이 페널티킥 상황에서도 판단 오류를 내리게 된다. 과학자들은 긴장한 선수가 골키퍼를 더 자주 쳐다본다고 말한다. (골을 넣어야할) 골키퍼 주변의 빈 공간이 아니라 그 넓은 공간 속에서 골키퍼만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골키퍼의 커버 범위 내로 절대 킥을 하지 말란 지시를 받은 선수는 골키퍼를 더 의식한다. 정신 통제의 역설적 현상(irnoic process of mental control)이 나타나는 것이다. 무엇인가를 하지 말라고 했지만, 금지한 사항을 더 하게 된다.


존재하는 것에 대한 편향적 시선은 수비를 평가하는데 큰 어려움으로 다가온다. 공격은 '골'이라는 아주 간단하면서도 최상의 결과물로 평가받을 수 있다. 하지만 수비가 만들어낼 수 있는 최선의 결과는 실점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실점하지 않는 것은 어떤 현상이 실제로 발생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 인지적 과정 때문에) 수비수가 발롱도르를 수상하지 못하는 것이 놀랍지 않다.


메노티가 우리에게 던졌던 질문에 대답하는데 있어서, 결과적으로 우리는 득점과 실점을 동등하게 바라보지 못한다. 보다 세련된 분석기법이 필요하다. 우리는 공격과 수비 모두가 중요하고 서로 비슷한 수준의 중요성을 지닌다는걸 이미 알아냈다. 물론 무실점이 패배를 면하는 관점에서만큼은 득점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도 알아냈다. 공격과 수비를 타당하게 평가하기 위해서 득점과 무실점에 대한 보다 적절한 비교가 시행되어야만 할 것이다.


이 챕터에 앞서 우리는 1득점이 대략적으로 승점 1점의 가치가 있다는걸 확인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이번에 클린 시트의 승점 가치를 계산해볼 것이다. 이번에도 우리는 2001/2002~2010/2011시즌 프리미어 리그 데이터를 활용할 것이고 클린 시트가 평균적으로 가져다주는 승점의 가치에 대해서 계산했다.





클린 시트는 평균적으로 승점 2.5점에 가까운 결과를 보여줬다. 1골이 평균적으로 승점 1점에 가까운 가치를 지닌다는 것과 비교해보자. 실점하지 않는 것은 1골 넣는 것보다 2배에 가까운 결과를 만들어낸다. 설사 1골 내줬다 할지라도 평균적으로 1.5점에 가까운 승점을 기록할 수 있다. 즉 1골만 실점하는 것이 1골 넣는 것보다 승점 가치 측면에서 30% 더 높다.


클린 시트와 동일한 승점 가치를 만들어내기 위해서 어느 수준까지 골을 넣어야하는가? 프리미어 리그 데이터로 지켜본 결과, 무실점과 동등한 가치를 지니려면 2골 넘게 넣어야만 한다. 탑레벨에서 실점하지 않는 것, 즉 클린 시트를 기록하는 것은 1골을 기록하는 것보다 더 가치있는 일이다. 0>1 : 이것은 숫자로 축구를 이해하는 것이다. 골이 발생하지 않는 것(무실점을 기록하는 것)은 실제로 골이 발생하는 것보다 더 가치있는 일이다.



음과 양


축구를 즐기는 사람과 축구를 분석하는 사람들은 오랫동안 수비의 진정한 가치를 알아보지 못했다. 또한 숫자로 축구를 바라보던 사람들도 수비의 진정한 가치를 알아보지 못했다. 찰스 리프는 메노티만큼 자신의 철학을 전파하지 못했지만, 두 사람 모두 축구가 공격과 수비로 양극화 되어있다고 생각했다. 축구 데이터를 직접 수기기록했던 리프는 그 데이터를 득점하는 것에만 집중활용했다. 그는 데이터를 가지고 효율적으로 공격하는 것에만 집중했고 수비를 소홀히 했다. 그에게도 축구는 전적으로 공격을 위한 스포츠였다.


데이터를 수집하는 업체 역시도 한쪽에 치우진 (공격에 치우친) 데이터를 제공했었다. 공격과 관련된 지표들 : 패스, 어시스트, 크로스, 슈팅, 득점은 쉽게 기록할 수 있고 셀 수 있으며 코드화할 수 있다. 태클, 클리어링, 볼 경합같은 수비적 지표도 측정될 수 있지만, 수비수의 영리한 사전 예방 조치는 객관적으로 수치화하기가 어렵다. 공과 관련된 사건들은 추적되지만, 공과 관련 없는 것들은 무시된다. 뛰어난 마크, 패스 길목 차단, 경이로운 포지셔닝을 표현해내지 못한다.


보이지 않는 사건을 단번에 볼 수 있는 것은 어쩌면 이해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발생하지 않은 사건은 실제 우리가 눈으로 목격한 것, 측정되는 것만큼 중요하다. 아니 그것보다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


클린 시트는 정말 중요하다. 사실 0>1이지만, 우리는 득점이 나오면 격렬하게 기뻐한다. 스트라이커에게 엄청난 사랑을 표현하지만 수비수에게는 그저 조용히 존중심을 표현한다. 심지어 탑레벨 구단에서 의사결정을 내리는데 있어 공격을 애호하는 현상을 목격할 수 있다. 수비에 대해서 완벽한 이해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고 사람들은 수비를 높게 평가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수비수나 골키퍼 출신 감독도 그 숫자가 자체가 적다. 2011/2012시즌 프리미어 리그에서 골키퍼 출신 감독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리고 시즌이 끝나는 시점에 현역시절 수비수로 활동했던 감독은 5명 뿐이었다. 


축구말고도 다른 스포츠도 수비의 가치를 소홀히한다. 야구 통계에 있어서 대부와 같은 존재 빌 제임스는 이렇게 말한다. "수비는 근본적으로 측정하기 매우 어렵다. 그건 다른 스포츠에서도 마찬가지다. 공격부분 통계에 비해서 수비부분 통계는 여전히 초기 단계에 머물러있다."






선택적 기억과 축구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축구를 이성적으로 올바르게 이해하는 것을 방해하고 있다. 메노티는 '좌파' 축구가 옳다고 이야기하면서 '우파'가 잘못된 것이라 주장했다. 그는 상대보다 더 많은 골을 넣는 팀이 항상 이길 것이라 말하지만, 현실은 상대보다 더 적은 골을 내주는 팀이 이긴다. 요한 크루이프는 이탈리아 축구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었다 : 이탈리아는 우리를 이길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이탈리아에게 질 수도 있다.


축구에서 공격과 수비가 조화를 이루는 지점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바르셀로나의 패스나치오(passnaccio)처럼 수비 속에 공격이 있고 공격 속에 수비가 있다. 축구에서 가장 참된 길은 좌우가 아닌 중도다. 메노티 스스로도 승리를 중요시한 경기가 있다고 고백했고 만약 메노티가 철저한 좌파였다면, 그는 월드컵 우승을 이뤄내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의 기억과 사고방식은 목격하는 사건에 큰 의미를 부여한다. 하지만 그렇게 공격을 과대평가하고 수비를 희생하는 것은 옳은 행동이 아니다. 1골을 넣는 것은 1골도 넣지 못하는 것보다 중요하다. 여기서는 1>0 이다. 하지만 1골도 내주지 않는 것은 1골 넣는 것보다 중요하고 여기선 0>1 이다. 공격수에 수백만 달러를 투자하는 것은 수비가 견고한 경우에나 가치있는 일인 것이다.


과르디올라는 좌파의 축구를 다시 정의내리고 있다. 모든 선수들이 피치 위에서 발생하는 모든 사항을 처리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공격이라는 빛만 바라봐 실명해선 안 된다. 팀이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 우리는 수비란 어둠과 협력해야만 한다.




출처 : THE NUMBERS GAME : WHY EVERYTHING YOU KNOW ABOUT SOCCER IS WRONG Chap.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