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Jonathan Wilson
35년간 영국 축구 최고의 감독으로 군림해온 알렉스 퍼거슨 경의 여러가지 비범한 능력들 중에서 가장 뛰어난 능력은 바로 팀의 전술을 시기에 맞춰 수정할 줄 안다는 것이다. 퍼거슨은 언제나 팀 개편을 염두에 두고 있었고 또 그것을 시행에 옮겨왔다.
가장 두드러졌던 개편은 2000년에 있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바로 前시즌에 트레블을 달성했고 레알 마드리드와의 챔피언스 리그 8강전을 앞둔 시점에 프리미어 리그에서 2위와 10점차 선두를 달리고 있었다. 이 레알 마드리드전은 프리미어 리그 출범 이후 처음으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게 전술적 화두를 던지는 경기가 되었다.
유나이티드는 마드리드 원정에서 0:0 무승부를 기록했고 다수의 사람들은 올드 트래포드에서 유나이티드가 우세한 경기를 펼칠 것이라 예상했지만, 퍼거슨은 마드리드 원정에서 너무 소극적인 경기를 펼쳤던 것이 신경쓰였다. 마드리드는 기존에 백4 시스템을 사용했으나 이 때 델 보스케는 올드 트래포드에서 3-3-2-2 포메이션을 선택하며 변화를 줬다. 두 팀 모두에게 기회가 있었으며 특히 유나이티드는 전반전 카랑카의 핸드볼에 대한 페널티킥을 보상받았어야 했고 카랑카는 퇴장당해야만 했지만 그러지 않았다. 어쨌든 레알 마드리드는 올드 트래포드에서 3골을 넣었다. 유나이티드는 2:3 스코어까지 쫓아갔고 자신들이 불운했다고 주장할 수 있겠지만 결과는 전체적인 흐름에 부합하게 나왔다.
1996/1997시즌 유나이티드는 챔피언스 리그 준결승에서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를 만났다. 독일 원정에서 유나이티드는 0:1로 패했다. 올드 트래포드에서 만회를 노렸겠지만 이른 시간에 실점을 허용하면서 탈락하고 말았다. 다음해에 있었던 모나코와의 8강전에서 유나이티드는 프랑스 원정을 떠나 0:0 무승부를 기록했다. 그렇지만 올드 트래포드에서 또 다시 이른 시간 실점을 허용하면서 탈락의 고배를 마시고 말았다. 어느새 이른 시간에 실점을 내주는게 유나이티드의 특징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1998/1999시즌 시작부터, 정확히는 그들이 야프 스탐과 드와이크 요크를 영입하면서 그들 세대의 포메이션을 확립하게 되면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선제골을 내주더라도 좀처럼 패배하지 않았다. 스티브 맥클라렌 당시 수석코치는 "당시 우리는 결코 패배할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고 우리에게 그런 일은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라고 말했다.
퍼거슨도 "우리는 언제나 어려운 방식으로 승리를 쟁취해낸다. 이는 우리 클럽의 특징이기도 하다." 라고 말하면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그런 성향을 뛰어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란 클럽의 독특한 면에 지나지 않는다란 식으로 간주했으나 레알 마드리드에게 패배한 이후 그의 생각은 달라졌다. "레알 마드리드전 패배가 우리에게 준 교훈이 있습니다. 우리가 유럽 대회에서 상대의 역습을 방어하는 능력을 향상시킨다면 우리는 유럽 무대에서 더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습니다." 퍼거슨은 이렇게 말했다. 이전까지 15번의 득점 기회를 만들어내고 상대에게 5번의 기회를 내줬다면, 그 이후로부터 퍼거슨은 고작 5번의 기회만 만들더라도 상대에게는 단 한 번의 기회도 내주지 말겠다는 각오로 유럽 대회에 임했다. 물론 1999년부터 2007년 사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챔피언스 리그 토너먼트 경기에서 승리를 거둔건 2002년 데포르티보전이 유일하기 때문에 퍼거슨의 변화가 유효했는지 평가하긴 어려울 것 같다. 어쨌거나 퍼거슨이 경기 운영에 대한 변화를 준 것만큼은 사실이다.
퍼거슨은 언제나 냉철한 결정을 내리곤 했다. 1990년 FA컵 결승전 이후 짐 레이튼을 버렸고 1995년 FA컵 결승에서 패배하고 리그를 2위로 마무리 짓자 폴 인스, 마크 휴즈, 안드리 칸첼스키스를 내쳤다. 퍼거슨 경 입장에서는 신중한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이지만 다른 사람들 눈에는 급진적인 변화처럼만 보였다.
퍼거슨이 유나이티드의 감독으로 부임하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팬들은 그의 개혁에 크나큰 실망감을 느끼고 말았다. 팬들은 "4-4-2"를 외치면서 퍼거슨의 성과없는 팀 개혁을 조롱했다. 이에 퍼거슨은 결코 4-4-2 포메이션을 사용한 적이 없다고 말하면서 응수했다. 사실 4-4-1-1이 4-4-2에서 파생된 것이기 때문에 4-4-1-1와 4-4-2은 한 가족이나 다름없으나 퍼거슨은 그렇게 팬들의 야유에 대응했다.
1983년 컵 위너스컵에서 레알 마드리드를 꺾었던 퍼거슨의 에버딘은 당시 잉글랜드에서 유행하던 한쪽으로 기울어진 4-4-2 포메이션과 유사한 전형을 활용했었다. 고든 스트라칸이 오른쪽 미드필더로 위치했었고 왼쪽에서 뛰었던 피터 위어는 스트라칸보다 더 공격적인 윙어 역할을 수행했다. 에릭 블랙은 중앙 스트라이커인 마크 맥기 밑에서 뛰었다. 퍼거슨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감독으로 부임한 후 첫번째 경기였던 옥스포드와의 경기에서도 에버딘과 비슷한 포메이션으로 경기에 임했다. 클레이턴 블랙보어는 창조적인 오른쪽 미드필더였으며 동시에 굉장히 근면한 플레이를 보여줬던 선수였다. 왼쪽에서 뛰었던 피터 반즈는 현란한 유형의 선수였고 피터 데븐포트는 팀의 주포였던 프랭크 스태플레튼을 보좌하는 역할이었다.
그렇다고 융통성없게 퍼거슨이라는 사람이 옛날의 성공했던 포메이션만 고수했던건 아니었다. 1991년 컵 위너스컵 결승전에서 유나이티드는 바르셀로나를 상대했다. 퍼거슨 감독은 오늘날 4-2-3-1로 표현되는 전형을 꺼내들었다. 마크 휴즈는 철저하게 센터 포워드 역할을 수행했고 브라이언 맥클레어가 밑에서 휴즈를 보좌했다. 아무래도 후방에서 바르셀로나의 템포를 조절하는 로날드 쾨만을 방해하려는 심산이었을 것이다. 마이크 펠란과 리 샤프가 측면에서 힘을 보탰고 폴 인스와 브라이언 롭슨이 포백 앞에 위치했다.
그 이후 유나이티드는 측면에 발빠른 선수들을 배치시키면서 성적 향상을 이뤄냈다. 칸첼스키스, 리 샤프, 라이언 긱스와 같은 선수들이 등장했고 이들은 역습 상황에서 많은 골을 만들어냈다. 그 결과 유나이티드는 1992/1993시즌 26년만에 처음으로 리그 우승을 달성했다. 3월 노리치 시티 원정 승리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승점 2점차 선두를 달리고 있는 상황에서 우승 경쟁에 아주 큰 영향을 미쳤다. 당시 경기에는 휴즈가 징계 때문에 나서지 못했고 이에 퍼거슨은 1명의 수비형 미드필더 인스 앞에 샤프, 칸첼스키스, 맥클레어를 기용했다. 투톱을 담당했던 선수는 에릭 칸토나와 긱스였다. 유나이티드는 노리치에게 3:1 승리를 거뒀고 특히 2번째 골이었던 칸첼스키스의 골은 역습의 정석과 같은 골이었다.
그렇게 탄생한 경기 운영 철학은 1999년 유나이티드가 트레블을 달성하는데 영향을 끼쳤다. 칸토나가 떠났지만 드와이트 요크와 앤디 콜은 칸토나와 휴즈 못지않게 다이나믹한 모습을 보였다. 미드필드에는 데이비드 베컴, 로이 킨, 폴 스콜스, 라이언 긱스가 있었다. 굉장히 활발하고 창조적인 선수들이 미드필드에 배치 되었다. 그렇지만 레알 마드리드에게 패배한 이후 퍼거슨의 4-4-1-1, 4-4-2에 대한 믿음이 약해지기 시작했다.
2000/2001시즌에도 유나이티드는 이전과 비슷한 선수단과 포메이션을 유지했다. 그렇지만 유럽 대회에서는 눈에 띌 정도로 조심스러운 경기 운영을 펼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요크와 콜의 영향력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2001년 후안 세바스티안 베론을 영입해 베론을 후방에 두고 스콜스를 앞으로 전진시킨다. 루드 반 니스텔루이 밑에서 뛰었던 스콜스가 언제든지 미드필드 싸움에 가세할 수 있는 형태가 만들어진 것이다. 그런데 단기적으로 이 변화는 실패였다. 애초 스콜스는 공개적인 발언을 잘 하지 않는 선수인데 그는 자신의 새로운 역할이 맘에 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리그 타이틀을 수없이 만들어낸 라인 (긱스-스콜스-킨-베컴)을 스스로 깨버렸다. 그 변화는 프리미어 리그에서는 물론 챔피언스 리그에서도 성공적이지 못했다.
유나이티드는 크리스마스 전까지 10패를 기록했고 전지전능한 아우라를 잃어가는 듯 했다. 반 니스텔루니의 짝으로 올레 군나르 솔샤르가 낙점되었고 유나이티드는 4-4-2 포메이션으로 복귀했다. 어느정도의 위용은 되찾았지만 우승을 이뤄낼 정도의 수준에는 미치지 못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2002/2003시즌 다시 4-4-1-1 포메이션을 활용했고 스콜스는 다시 한 번 자신이 좋아하는 위치에서 벗어나 경기를 소화해야만 했다. 2002/2003시즌은 반 니스텔루이와 스콜스가 가장 최절정의 시기를 보냈던 시즌이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반등은 베론이 부상으로 명단에서 제외되면서 빠른 템포의 축구로 변환했기 때문에 이루어질 수 있었다.
2003/2004시즌은 4-2-3-1을 시도했던 시즌이었다. 필 네빌은 홀딩 미드필더로 기용되는 경우가 잦았다. 2004/2005시즌은 느슨한 4-3-3 포메이션을 시도했다. 라이언 긱스와 웨인 루니는 종종 측면 공격수로 경기를 소화했고 중앙으로 파고드는 움직임을 보였다. 스콜스는 속도가 느려진 킨을 도와주기 위해서 이전보다 더 후방에서 뛰기 시작했다. 두 시즌 모두 리그는 물론 유럽 대회에서의 우승이 없었다. 그 다음 시즌이었던 2005/2006 시즌에는 챔피언스 리그 16강 진출에도 실패했다. 퍼거슨이 가장 신뢰하는 몇 안되는 기자들 조차도 "세계에서 가장 용맹한 감독이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는 시점이 왔다" 라고 혹평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퍼거슨은 언제나 그래왔듯이 사람들의 예상과는 정반대의 결과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2007년 챔피언스 리그 8강전, 유나이티드는 AS 로마를 7:1로 이겼다. 유나이티드는 평소처럼 4-4-1-1 포메이션을 활용했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라이언 긱스가 측면을 담당했고 마이클 캐릭과 대런 플레쳐가 중앙 미드필더를 앨런 스미스가 최전방 공격수를, 루니가 살짝 뒤에 처진 공격수로 경기에 나섰다. 당시 로마는 스타디오 올림피코에서 있었던 8강 1차전 경기에서 2:1 승리를 거두었다. 당시 로마는 형식적인 공격수 프란체스코 토티가 미드필더로 내려오면서 사실상 공격수가 없는 형태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상대했다. 2006/2007시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밀라노 원정에서 발이 무거운 모습을 보여주며 4강에서 떨어졌다. 유나이티드는 로마를 합계 스코어 8:3으로 꺾었지만, 그 다음 시즌인 2007/2008시즌부터 AS 로마의 공격 방식을 모방했다. 호날두, 웨인 루니, 카를로스 테베즈, 라이언 긱스 혹은 나니가 2명의 홀딩 미드필더(오언 하그리브스, 마이클 캐릭, 폴 스콜스, 안데르손) 앞에서 뛰었을 뿐 어느 누군가가 분명한 최전방 공격수 역할을 수행하지 않았다. 대신 전방에 위치한 4명의 선수가 번갈아가면서 최전방 공격수 역할을 수행했다.
명확한 스트라이커를 두지 않는다는건 시도하기 어려운 전술이다. 그렇게 유나이티드는 2007/2008시즌 초반에 득점력 빈곤에 시달렸다. 수비수 존 오셰이를 임시방편으로 공격수처럼 기용했지만 레딩과의 개막전에서 0:0으로 비기고 말았다. 그렇지만 퍼거슨이 시도한 전술이 팀에 녹아들기 시작하자 이 전술은 위용을 뽐내기 시작했다. 루니와 테베즈의 이타적인 플레이 덕분에 호날두는 2007/2008시즌 리그에서만 31골을 기록하는 위력을 보여줬다.
새로운 전술이 성공적으로 활용되고 있었지만 퍼거슨은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에서 전형적인 4-4-2 포메이션을 꺼내들었다. 당시 결승전은 1999년처럼 유나이티드에게 행운이 따른 승리였다. 퍼거슨의 전술에 대해 비판할 것이 있다면 그가 때로는 빅매치를 앞두고 과도한 생각을한다는 것이다. 당시 결승전에서 퍼거슨은 에슐리 콜을 고려하여 오언 하그리브스를 오른쪽 미드필더로 기용했다. 호날두를 왼쪽 미드필더로 기용해 오른쪽 수비수로 출전한 마이클 에시앙을 공략하겠다는 의도였다. 30분 정도는 이 전술이 효과적으로 먹혀들었고 호날두가 직접 골을 기록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 이후부터 에시앙이 계속해서 호날두를 제치고 나아가기 시작했다. 프랭크 램파드의 동점골도 그렇게 에시앙의 전진에서부터 만들어졌다. 그 이후부터 승부차기 전까지 첼시가 더 우세한 경기를 펼쳤다. 퍼거슨의 선택에 정당성을 부여한 것은 경기 내용이 아닌 결과였다. 2000년 레알 마드리드에게 패배한 이후 수비적인 시스템으로 변하지 않았더라면 그가 2번째 유러피언컵을 쟁취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2007/2008시즌부터 긱스가 후방에서 역할 수행을 하기 시작했고 따라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포메이션은 4-2-4와 4-3-3-0의 중간 형태였다. 2008/2009 시즌부터는 4-3-30에 더 가까웠다. 특히 유럽무대에서는 더 그랬고 '수비적인 공격수'를 만들어낸 선구자 역할을 했다. FC 포르투의 알리 시소코가 8강 1차전에서 지속적인 오버래핑으로 유나이티드를 힘들게 만들자 퍼거슨은 2차전에서 호날두를 중앙에 기용했다. 호날두는 올드 트래포드에서 있었던 1차전 경기에서 알리 시소코의 전진을 적절하게 제지하지 못했다. 대신 루니가 오른쪽에 배치되어 시소코의 전진을 방해했다. 유나이티드는 포르투 원정에서 비교적 쉽게 1:0 승리를 쟁취했다. 2007/2008시즌에도 루니는 바르셀로나와의 4강전에서 리오넬 메시를 막기 위해 사실상 2번째 풀백 역할을 수행하기도 했다. 박지성은 유럽 대회에서 퍼거슨 감독의 이런 요구를 아주 잘 수행했던 선수였다. 2009년 인터나치오날레와의 16강전에서는 박지성이 마이콘을 아주 인상적으로 봉쇄했다.
그렇지만 2009년 로마에서 있었던 바르셀로나와의 결승전에서 퍼거슨은 박지성의 위치를 잘못배치시켰다. 유나이티드의 4-3-3 포메이션에서 박지성은 실빙요를 마주치게 되었는데 사실 박지성은 반대편에 위치한 웨인 루니와 자리를 바꿨어야했다. 박지성이 카를레스 푸욜의 전진을 막았어야했고 루니가 푸욜보다 공략하기 쉬운 실빙요를 노려야했다. 유나이티드는 바르셀로나의 매끄러운 플레이에 0:2으로 무릎을 꿇었고 결승전 이후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까지 팀을 떠나면서 퍼거슨은 다시 한 번 팀을 개편해야하는 상황을 맞이했다.
출전 시간에 대한 불만이 있었던 테베즈의 이적, 들쭉날쭉하는 디미타르 베르바토프 때문에 루니는 2009/2010 시즌부터 정통 센터 포워드 역할을 수행하기 시작했다. 특히 루니는 AC 밀란을 꺾는데 선봉장 역할을 수행했다. 2009/2010 시즌은 1930년대 포워드들에게서 볼 수 있었던 파워풀한 헤더를 루니에게서 볼 수 있었던 시즌이다. 그러나 이 방식은 너무나도 옛날 축구였고 한 선수에게 과도하게 집중되는 형태였다. 챔피언스 리그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상대한 바이에른 뮌헨은 루니가 발목을 다치기 이전부터 그런 전술적 허점을 간파해 우세한 경기를 펼쳤다.
2010/2011시즌부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다시 4-4-1-1 혹은 4-2-3-1 포메이션으로 복귀했다. 하비에르 에르난데스와 로빈 반 페르시가 정통 센터 포워드의 역할을 수행했다. 또한 지난 2시즌간 유나이티드는 후방 미드필드 지역에서의 역동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꾸준하게 받았는데 퍼거슨은 때때로 필 존스를 수비형 미드필더로 기용하면서 중앙의 역동성 부족을 보완했다. 또한 루니를 보조 미드필더 형태로 사용하면서 문제를 해결해왔다.
1990년 FA컵 우승 이후, 2005/2006 시즌은 퍼거슨이 맞이한 가장 위태로운 시기였다. 그러나 이후 그는 5번의 리그 우승, 3번의 챔피언스 리그 결승 진출을 이뤄냈다. 최고 수준의 레벨에서 퍼거슨처럼 이토록 오랫동안 성공을 누려온 감독은 없었고 또한 퍼거슨만큼 경기 방식의 발전에 따라 그 변화를 잘 흡수해온 인물도 없었다.
출처 : http://www.guardian.co.uk/football/blog/2013/may/08/sir-alex-ferguson-tactics-evolu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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