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Jonathan Wilson


유로2016에서 웨일스, 이탈리아는 3-5-2 전술을 사용함으로서 성공적인 결과를 만들어 냈다. 허나 지금의 3-5-2는 관념적이기보다는 실용적인 부흥이다.



유로2016이 24개국으로 시작되었을 당시, 백3 시스템으로 대회를 시작한 국가는 2곳 있었다. 그 중 하나는 아직까지 이 대회에서 생명을 이어가고 있고 (웨일스) 또 다른 한 국가는 (이탈리아) 자신들을 잡기위해 백3 시스템으로 변형을 시도한 국가 (독일) 에게 패배해 8강에서 끝을 맞이했다. 유로 2016은 백3 시스템이 (시대에 뒤쳐진 전술이라는 비판에) 성난 반응을 보이는 대회라 할 수 있겠다.


백3가 성공을 거두고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여전히 국가대표 축구를 클럽 레벨에 모방하려는 사람이 있을까? 다음 시즌에 웨일스, 이탈리아, 독일이 백3를 통해 불러온 파장을 따라갈 클럽이 있을까? 그건 아니라고 본다. 국가대표 레벨과 클럽 레벨에는 이제 상당한 격차가 있고 클럽에서는 국가대표보다 훨씬 세련된 축구가 시행되고 있다. 새로운 아이디어의 흐름은 한 방향으로만 흘러갈 수 있는 것이다. 백3 시스템을 사용하는 팀들이 예상보다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는 것은 단지 이번 대회에서 상대의 전략에 반응하는 수동적인 축구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입증하는데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백3 시스템을 사용하는 국가가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두는 것이 놀랄 일은 아니다. 2년 전 과거와 비교해 평범한 선수들로 구성된 네덜란드는 루이 반 할의 철학과 대비되는 5-3-2 역습축구로 준결승까지 진출했다. 2014년 3월 프랑스와 친선전에서 0:2 패배를 당한 이후 로날드 쿠만이 이끄는 PSV 아인트호번 경기에서 반 할은 그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었다.


80년대 중반 널리 퍼져있던 백3 시스템은 90년대 후반 1명의 스트라이커를 두는 전략이 널리 퍼지면서 시대의 흐름에서 뒤쳐져갔다. 과정은 이러했다 : 전통적인 윙어가 사라졌고 따라서 풀백들은 더 이상 수비적으로만 플레이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따라서 풀백은 미드필드 진영까지 가세해 3명의 수비수가 2명의 상대팀 공격수를 방어하게 된다. 2명이 각각 1명씩을 마크하고 1명의 리베로가 남아 공간을 커버한다. 하지만 상대가 1명의 공격수를 배치하면 2명의 선수가 잉여자원으로 남고 그것은 결국 백3 시스템을 사용하면 피치 어딘가에서 팀이 수적 열세에 마주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특히 상대가 4-3-3 혹은 4-2-3-1 시스템을 사용해 윙포워드를 배치하는 경우 윙백이 상당히 자기진영 깊숙히 내려와야만 했다.


하지만 펩 과르디올라의 바르셀로나 덕분에 사고방식이 조금 달라졌다. 과거보다 65~70%의 점유율이 더욱 흔해졌고 그 결과 30% 미만의 점유율을 기록하면서 경기를 펼치는 것에 더 많은 팀들이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깊숙히 내려앉아 공간을 방어하고 상대가 미드필드 지역에서 패스를 돌리도록 허용하는 것에 점차 자연스러워지고 있다. 한 때 이런 방식의 플레이는 굉장히 불편한 것으로 받아들여졌지만, 이제는 경기에서 승리할 수 있는 하나의 방식으로 통용되고 있다.


따라서 이제는 미드필드 지역에서 수적열세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제 후방에 잉여자원이 남는 것은 큰 이점이다. 공간과 선수에 대한 추가적인 커버가 될 수 있고 루즈볼 상황에 대한 경쟁력 우위를 불러올 수 있다. 다만 이것은 백3 시스템뿐만 아니라 무실점을 목표로하는 팀이 빈번하게 사용하는 전술적 선택으로로 볼 수 있다.

 

동시에 점차 2명의 중앙 스트라이커를 기용하는 것이 일반적인 흐름으로 가고 있다. 지난시즌 레스터 시티의 선택 역시 주목할만하다. 2명의 중앙 수비수가 1명의 공격수를 상대하는 것에 익숙해진 탓에 오히려 공격수 2명의 파트너십을 방어하는 것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따라서 지금의 흐름에서 백3 시스템을 사용하는 것은 그 어느 때보다 더 효율적일 수 있다.


모든 이론적 가능성을 다 제쳐두고서 웨일스와 이탈리아가 백3 시스템을 선택한 것은 그것이 선수단에 가장 잘 맞는 옷이기 때문이었다. 안토니오 콩테는 유벤투스 재임기간 안드레아 바르잘리-레오나르도 보누치-조르지오 키엘리니 라인을 만들었고 그 3명을 대표팀에서도 그대로 활용하길 희망했다. 그렇게 이탈리아 백3 시스템의 기반이 만들어진 것이다. (유벤투스 조합을 효과적으로 쓰려면 이탈리아는 필연적으로 백3를 선택할 수 밖에 없었다)


한편 웨일스의 크리스 콜먼같은 경우는 클럽 커리어를 통틀어 딱 1차례만 백3 시스템을 사용했었다. 그 때는 2005/2006시즌 최종전으로 풀럼은 미들즈브러를 상대해 1:0 승리를 기록했다. 그는 유로2016 지역예선 초기에 이 시스템을 웨일스에 안착시켜 조 레들리, 조 앨런, 애런 램지를 동시에 기용할 수 있었으며 동시에 가레스 베일에게도 큰 자율성을 부여할 수 있었다.


웨일스와 이탈리아 모두 자신이 가지고 있는 옵션을 활용할 수 있는 가장 실용적인 방법으로 백3 시스템을 선택했다고 할 수 있다. 결국 이것은 실용적인 문제일 뿐 관념적인 사항이 결코 아니다. 웨일스와 이탈리아의 전술적 결단은 경기시작 후 빠른 시간 내에 공격하는 팀과 수비하는 팀이 정해지는 이번 대회의 패턴과 굉장히 잘 들어맞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서로 치고박는 경기보다는 서로 다른 축구를 구사하는 팀 사이의 대결이 훨씬 많았다. 즉 이번 대회는 상당수의 경기가 공격팀 vs 수비팀 흐름이었고 웨일스와 이탈리아는 모두 자신들을 상대로 공격적으로 나선 팀에게 최선의 결과를 만들어냈으며 한편 소극적으로 경기에 나선 상대팀에게는 고전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지난 3월 독일은 이탈리아를 상대로 친선전에서 4:1 승리를 기록했지만 이번 대회에서는 똑같은 포메이션으로 맞대응을 했다. 뢰브의 결단은 상대의 전술에 반응하는 움직임이었고 어쩌면 상당히 자기 방어적인 선택이었다. 독일이 8강에서 가까스로 승리를 거두었기에 뢰브의 선택이 통했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만약 이탈리아가 승부차기에서 그 끔찍한 킥을 양산하내지 않았더라면 뢰브의 결정에 관대한 태도를 보일 수 있었을까란 질문을 던져보게 된다.


백3 시스템의 성격이 이번 대회의 특성을 잘 반영하고 있다고 할 수 있지만, 이것이 각 국가마다의 자국리그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 물론 이번 대회에서 영감을 얻어 모방하려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국가대표 레벨에서 통하는 것이 엘리트 클럽간의 경쟁에서 영향력을 행사할지는 미지수다. 루이 반 할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첫시즌에 백3 시스템으로 재미를 보려고 했지만 고전했었다.






출처 : https://www.theguardian.com/football/2016/jul/05/the-question-why-has-3-5-2-worked-at-euro-2016-jonathan-wilson









by Jonathan Wilson


UEFA는 대회 출전국을 늘리면서 경기의 quantity를 위해 quality를 희생했다. 웨일스와 아이슬란드의 선전만으로 지금 이 대회가 굉장히 나쁜 축구를 구사하고 있다는 것을 만회할 수 없다. (원문은 2016년 6월 29일에 작성되었습니다)



유로2016 대회가 마침내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독일과 슬로바키아의 대결, 이탈리아와 스페인의 대결은 마침내 대회 수준을 만족시킨 경기였다. 그런데 그런 경기가 대회가 개막한지 2주가 지난 후에야 나왔다. 지금까지는 16개국으로 대회를 진행하는 것이 딱 알맞는 것처럼 보인다.


다음은 루카스 포들스키의 발언이다. "그룹 스테이지가 다소 이상해졌다. UEFA가 기존 시스템에 바보같은 짓을 해버렸다 조별 리그에서 이미 2경기를 졌지만 3번째 경기를 통해 다음 라운드에 진출할 수 있는 가능성이 남아있다. 나는 그게 다소 이상하다고 생각하지만 독일 입장에서는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 이제야 토너먼트가 제대로 시작하는 것이다."


일부는 굉장히 독일이 오만한 태도를 보였다고 이야기할 수 있겠지만 포돌스키의 말이 맞다 : 유러피언 챔피언십의 포맷 변화는 약 2주간 재미없는 경기와 무의미한 축구를 양산해냈다. 대표팀 경기는 클럽 경기 수준을 따라가지 못하는데 출전국을 늘린 이번 결정은 클럽 경기 수준을 쫓아가려는 노력에 결코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다.


(대회의 수준이 떨어졌다는 것에 대한) 반론으로 아이슬란드와 웨일스를 이야기한다. 두팀은 출전국이 늘어났기 때문에 8강까지 올라올 수 있었고 그런 언더독의 스토리가 토너먼트를 더욱 재밌게 만든다고 말한다. 그러나 언더독의 반란만으로 2주간 우리가 지켜본 나쁜 축구를 가릴 수 없다. 교묘한 속임수, 퀄리티, 똑부러지는 아이디어가 사라진 야망없는 축구를 언더독의 반란 하나만으로 만회할 수 없다. 


월드컵과 유로가 몸집을 불릴 때마다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지만 항상 반론으로 출전국 현행 유지는 강팀의 잘난 척이며 약팀도 토너먼트에 참가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한다. 모두가 참가할 수 있는 것이 건전한 제도이며 모든 이들이 접근할 수 있는 시장을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허나 출전국의 실력을 분명하게 하지 못하고 최대한 많은 국가의 대회 참여를 장려한다는 방침은 끝내 대회 수준의 평범함'이란 문제를 만들게 되었다.


모든 국가에는 대회에 참가할 수 있는 자격이 있지만 실력을 갖춘 국가라면 자연스레 대회에 참가할 수 있다.  


유로2016 지역예선을 되돌아보라. 각 그룹에서 3위를 차지한 팀들 중 5개국(터키, 아일랜드, 헝가리, 우크라이나, 스웨덴)이 플레이오프를 거쳐 이 대회에 참가했다. 이탈리아와 스페인 경기를 보면, 이탈리아가 아일랜드와의 조 마지막 경기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던 것을 느낄 수 있다. 조직이 잘 되어있고 영리하게 축구한 헝가리는 수준낮은 축구를 보여준 오스트리아를 떨어뜨렸지만, 여전히 하나의 팀보다는 그저 개인의 모임에 그치고 있는 벨기에를 상대로 0:4 대패를 당하면서 기본적인 실력 부족을 증명했다.


서로 다른 능력을 지닌 두 팀을 맞대결을 펼치게 하면 약자는 기본적으로 수비를하게 된다. 약자는 반드시 수비를 해야하고 그것이 그들에게 주어진 임무이기도 하다. 약자가 수비를 탄탄히하는 것은 경기에서 최선의 결과를 이끌어내는 가장 확률높은 방법이다. 약팀이 수비를 하면서 승리 확률을 높이는건 클럽 레벨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되는 사안이다. 수비에서는 클럽과 국가대표의 퀄리티 차이가 심각하지 않으나 국가대표 레벨이 클럽 레벨과 크게 다른 것은 그 수비를 깰 수 있는 공격 구조를 클럽의 수준만큼 끌어올리지 못한다는 것이다.


수비는 각 팀마다 크게 다르지 않다. 대다수의 팀은 첫 압박을 시행한 후에 즉시 두줄 수비를 시행한다. 물론 그 두줄 사이에 추가로 한 명의 선수를 더 배치하는 경우도 있지만 절대적인 원칙은 수비를 우선시하는 팀마다 크게 다르지 않다. 매일 클럽에서 뛰다가 대표팀에 합류하는 선수들은 이런 수비적 요구사항을 비교적 빠르게 수용해낸다.


하지만 공격은 형태나 스타일 면에서 굉장히 다양한 선택지를 가질 수 있다. 하지만 국가대표 레벨에서는 매주, 매일 동료 선수들과 끊임없이 상호간 움직임 이해를 향상시킬 수 없다. 그렇게 국가대표 레벨에서 공격은 속도가 느려지고 매끄럽지 못하게 되며 그 결과 수비 입장에서는 방어하기 쉬워진다. 즉 국가대표 레벨 경기에서는 수비가 더 쉽다. 상대방의 축구를 좌절시키려는 시도는 클럽 레벨보다 국가대표 레벨에서 더 쉽게 이행될 수 있다. 따라서 지난 10년간 큰 성공을 거둔 국가대표팀은 1~2개 클럽 선수들을 팀의 코어로 삼고 있다. 스페인과 독일이 딱 그런 케이스고 칠레같은 경우도 많은 선수들이 오랫동안 하나의 응집된 시스템 속에서 발을 맞춰온 효과를 누리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 3국가의 대표선수들은 클럽에서 경기하는 것과 같은 익숙함을 플러스 효과로 누릴 수 있다.


유벤투스의 수비조직과 함께하는 안토니오 콩테의 이탈리아 역시도 역습하는 순간에 중점을 두고 있는데 콩테는 적절한 시점에 선수들이 사전에 설정된 움직임을 반복적으로 구사하길 요구하고 있다. 또한 콩테는 역습 상황에서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을 줄여 선수들이 보다 간결하게 판단할 수 있게하고 그 결과 속도를 높이고 있다. 요하임 뢰브도 2010년 독일이 순수하게 역습 전술을 펼치는 팀이었을 때 이와 유사한 접근법을 시도했었다. 어쨌든 지금 콩테의 효율성은 분명하다.


하지만 역습 전술의 문제는 상대가 공격을 가하는 순간에만 공격을 시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탈리아는 지역예선에서 몰타, 아제르바이잔과 같은 조였지만 10경기에서 16골만 기록했었다. 이탈리아의 최고 퍼포먼스는 벨기에와 스페인처럼 상대가 먼저 스스로 공격하는 자세를 취할 때 나올 수 있었다. 로이 호지슨은 잉글랜드가 역습 상황에서 더 좋은 경기를 펼칠 수 있다고 주장했지만 (호지슨의 주장도 분명 일리가 있으나) 본선에서는 같은 조에 잉글랜드를 상대로 주도적으로 경기를 펼칠 팀은 없었다. 2014년 9월 스위스전 이후로 잉글랜드는 잉글랜드를 상대로 경기를 주도하려는 팀과 경기를 하지 않았다. 심지어 그 경기조차도 후반전만 그런 양상이었다.


출전국간 경쟁력이 균형을 잃자 이 대회는 결국 형편없는 축구를 양산했으며 UEFA가 탈락의 위험이 줄어든 구조를 형성함으로써 그것은 더욱 악화되었다. 스위스와 루마니아는 1:1 무승부에도 만족했으며, 슬로바키아는 잉글랜드를 상대로 0:0 스코어를 위해서만 싸웠다. 또한 북아일랜드는 독일에게 0:1로 패배하는 것에만 집중했다.


유로는 세계 최고의 국가대표 대회였으나 이번 유로2016는 대회 초반부터 출전국의 정략적인 편의추구에 크게 상처를 입고 말았다. 2주간 대회를 진행했지만 남은 것은 기존 체계 출전국 수와 똑같은 16개 팀이었다. 16개국 참가 구조가 잘 돌아갈 수 있었던 것은 모든 경기가 중요했기 때문이다. 죽음의 조가 있었고 상대를 이김으로써 이전의 실수를 단번에 만회할 수 있었다. 위험하지 않은 상황에 있더라도 1경기 미끄러지면 바로 탈락 위기로 가는 구조였다.


우수한 팀끼리 서로 경쟁하며 좋은 경기를 펼쳐 수준높은 대회를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한 사항이나 지금 그것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려하는 사람들은 없는 것 같다.







출처 : https://www.theguardian.com/football/blog/2016/jun/29/euro-2016-italy-germany-group-stage-mediocrity





by Jonathan Wilson


브라질 사람들은 1982년 월드컵에서 이탈리아에게 패배한 것이 위대한 플레이 스타일에 사망선고를 내렸다고 주장하지만, 이탈리아의 승리는 '시스템'이 몰락하고 있는 방식의 축구를 상대로 승리를 거둔 것을 의미한다. (원문은 2012년 7월 25일에 작성되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30년 전인 1982년 7월 5일, 지쿠는 경기가 끝나고 '오늘 축구는 죽었다' 라고 말했다. 바르셀로나에서 텔레 산타나의 위풍당당한 브라질은 이탈리아에게 패했고 월드컵에서 탈락했다. 당시 브라질은 과거의 브라질 스타일, 즉 1958년부터 1970년까지 월드컵 3연패를 기록했었던 시기의 유동적인 공격쪽에서의 움직임을 바탕으로하는 축구를 구사했다.

 

브라질이 자유로운 축구를 구사했다고 하지만 완전히 무질서한 스타일의 축구는 아니었다. 1970년의 브라질 대표팀은 상대팀에 대한 철저한 조사를 했고 상당한 밸런스를 맞춘 팀이었다. 오른쪽 풀백인 카를로스 알베르토의 오버래핑이 활발할 수 있었던 것은 왼쪽 풀백인 에베랄도가 상당히 수비적인 선수였기 때문에 가능했다. 카를로스 알베르토가 전진하면 팀 수비는 스리백으로 전환되었다. 자일지뉴는 대회 매 경기마다 안쪽으로 파고드는 모습을 보였고 카를로스 알베르토는 앞으로 전진해 자일지뉴의 빈 자리를 채웠다. 펠레와 토스탕은 미드필드 지역까지 깊숙히 내려오면서 공간을 창출해냈다. 클로드알도는 포백 앞에서 공을 따내는 역할을 수행했고 제르송은 클로드알도 옆에서 딥-라잉 플레이메이커 역할을 수행했다. 후방에 위치한 에베랄도가 수비쪽에서 탄탄한 모습을 보였기 때문에 왼쪽에 배치된 히벨리누는 전형적인 공격형 미드필더 역할을 수행했다. 

 

1970년의 브라질은 축구를 좀 하는 11명의 사내들을 단순히 모아둔 것이 아니었다. 분명히 이들을 맞물리게 만드는 세련된 무언가가 있었다. 그렇지만 1970년의 브라질에는 1974년과 1978년에는 볼 수 없었던 플레이의 자유로움과 유동성이 있었다. 1982년 월드컵을 앞두고 브라질은 다시 자신들의 예전 스타일로 돌아갔다 : 리드미컬한 미드필더, 순간적으로 폭발하는 속도, 자신의 개성을 표현하는 플레이


토니뇨 세레조의 징계로 소련전에 출전했던 팔캉은 인상적인 경기를 펼치면서 세레조의 복귀 이후에도 주전 미드필더 자리를 차지했다. 지쿠와 소크라테스까지 있던 브라질은 4명의 미드필더를 모두 창조적인 선수로 채웠다. 세레조와 팔캉은 모두 레지스타였고 그 앞에서 뛰는 지쿠와 소크라테스는 트레콰르티스타였다. 에데르는 보조 공격수로 육중한 덩치를 보유한 세르지뉴 근처에서 뛰었다. 세르지뉴의 피지컬은 동료 선수들에게 공간을 만들어주는데 아주 유용하게 활용되었다. 브라질의 포메이션은 중앙에 아주 강력한 기둥을 세운 것과 같은 4-2-2-2였고 측면은 풀백인 레안드로와 주니오르의 몫이었다. 일반적인 유럽 팀이라면 브라질의 포메이션을 두고 측면에 약점이 있다고 말하겠지만, 브라질은 엄청난 유기성과 볼다루는 재주로 부족함을 충분히 채웠다. 

 

브라질은 1970년 이후로 가장 명랑한 축구를 펼쳤다. 소련을 2-1로 이겼고, 스코틀랜드를 4-1, 뉴질랜드를 4-0으로 이겼다. 2라운드 결선경기에서는 디펜딩 챔피언인 아르헨티나를 손쉽게 물리치면서 이탈리아를 상대로 비기기만 하더라도 준결승에 오를 수 있었다. 아르헨티나를 손쉽게 이겼기에 모두가 이탈리아전은 그저 형식적인 수준의 경기가 펼쳐질 것이라 생각했다.

 

한편 이탈리아는 완벽한 카테나치오에서 벗어나 '이탈리아식 축구' 국면에 접어들었던 시기다. 그러나 여전히 조심스런 접근은 이탈리아 축구의 기본적인 전제였다. '에스타디 데 사리아' 경기장에서 벌어진 브라질과 이탈리아의 맞대결은 어떤 면에서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 : 공격 축구 vs 수비 축구


에레라의 카테나치오는 미드필드 지역의 수적 열세를 초래했고 그 결과 이탈리아는 네덜란드, 독일식 축구를 받아들여 리베로를 보다 더 올라운더 형태의 선수로 만들었다. 스스로 공을 가지고 나오거나 이탈리아가 공을 소유한 시점에는 미드필더처럼 뛰는 형태로 이바노 블라손이나 아르만도 피키같은 변형된 풀백의 형태로 보는 것보다 가에타노 시에라 같은 변형 인사이드 포워드에 가까웠다.


브라질과 달리 이탈리아는 저조한 성적으로 대회를 시작했다. 이탈리아는 첫번째 3경기를 모두 비겼다. 카메룬도 이탈리아처럼 3무를 기록했지만 이탈리아는 득점수에서 앞서 1라운드를 통과했다. 승부조작 징계에서 벗어나서 갓 돌아온 파올로 로시는 최고의 컨디션이 아니었다. 그러나 아르헨티나를 2-1로 꺾으면서 이탈리아 선수들은 자신감을 갖기 시작했다. 브라질의 골키퍼 발디르 페레스는 로시의 컨디션이 갑자기 살아날까봐 두렵다는 인터뷰를 했다. 아마도 페레스는 골키퍼보다 예언가의 능력이 더 뛰어났던 것 같다.

 

이 경기는 월드컵 역사상 최고의 경기였을까? 1954년 월드컵 우루과이와 헝가리의 경기가 최고라 주장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이 경기는 충분히 월드컵 최고의 경기라 할 수 있을 경기였다. 브라질과 이탈리아의 경기에는 공식집계 44,000명보다 더 많은 관중들이 들어왔다. 만약에 브라질이 선제골을 넣었더라면 이탈리아는 쉽게 의기소침해졌을 것이시스템과 정신력으로 브라질을 따라잡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탈리아는 5분만에 선제골을 기록했다. 브루노 콘티가 40야드를 뚫고 전진하여 안쪽으로 파고들어온 공격적인 레프트백 안토니오 카브리니에게 공을 넘겨줬고 카브리니는 로시에게 크로스를 올렸다. 로시는 자신을 신뢰해준 베아르초트 감독의 기대에 부응하는 헤딩골을 기록했다.

 

이제부터는 브라질의 공격 vs 이탈리아의 저항 형태의 경기가 펼쳐졌다. 그렇지만 7분만에 브라질이 동점골을 기록했다. 소크라테스가 지쿠와 원투패스를 활용하여 전진했고 골키퍼 디노 조프의 니어포스트쪽으로 골을 성공시켰다. 사람들은 브라질의 승리를 예감했지만 25분 후에 세레조가 큰 실수를 저질렀다. 세레조는 무심코 주니오르 쪽으로 애매하게 횡 패스를 시도했다. 이 때 로시가 공을 가로채서 발디르 페레스를 뚫고 골을 성공시켰다. 브라질은 당황했고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파올로 로시는 후반전에 3-1로 만들 기회를 살리지 못했고, 2분 뒤 브라질이 팔상의 강한 슈팅으로 동점을 만들어냈다. 또 다시 브라질이 기세를 잡아가는 듯 했다.

 

앞서 말했듯이, 브라질은 비기기만 하더라도 준결승에 올라갈 수 있었다. 그렇지만 골문을 걸어잠그는 것은 브라질의 방식이 아니었다. 브라질은 계속해서 공격을 시도했고 결국에는 그 대가를 치르게 되었다. 콘티의 코너킥이 어정쩡하게 처리되었고 마르코 타르델리의 빗맞은 슈팅이 로시에게로 갔다. 그리고 로시는 그것을 골로 연결시켰다. 브라이언 글렌빌은 "브라질의 화려한 미드필드진이 시험에 들었던 순간에 그들은 전방과 후방에서의 불완전함을 극복해낼 수가 없었다." 라고 말했다.

 

이 경기는 축구 역사의 한 단층을 차지하는 경기로서 이 날은 지쿠의 말처럼 축구가 죽은 날이 아닌 천진난만한 축구가 죽은 날이었다 : 즉, 이 경기 이후로 최고의 선수를 뽑아놓고 독려하는 것만으로는 승리하는 것이 불가능한 시기가 도래했고 시스템이 승리하는 날이 왔다. 물론 여전히 공격적인 재능을 뽐낼 여지는 남아 있었지만, 그들의 재능을 품어줄 수 있는 시스템 속에서 선수를 보호해주고 받쳐줘야만 하는 형식으로 축구는 변해갔다. 사실 이전부터 그랬는데 1970년 멕시코 월드컵에서 브라질 선수들의 자유로운 움직임이 먹힐 수 있었던 것은 멕시코의 더위와 높은 고도 때문이었다. 상대팀은 더위와 높은 고도로 인해 지속적으로 브라질 선수들을 강하게 압박할 수 없었다.

 

아이러니한 부분은 1982년에 이미' 이탈리아식 축구'는 시들어가고 있었다는 것이다. 가제타의 저널리스트인 루도비코 마라데이는 이렇게 말했다. 

 

"이탈리아식 축구가 한동안 효과를 보기 시작하자 1970년대 말부터 1980년대 초까지 이탈리아에서는 모두가 똑같은 플레이를 시도하게 되었다. 이는 이탈리아식 축구가 실패하는 이유가 되었는데 모두가 똑같은 시스템을 사용했고 모두가 똑같은 방식으로 등번호를 정하기 시작했다. 9번은 센터 포워드, 11번은 왼쪽에서 뛰는 세컨 스트라이커, 10번은 중앙에서 뛰는 공격형 미드필더, 7번은 토르난테(측면을 따라 내려와 수비를 돕는 윙어), 4번은 딥-라잉 미드필더, 8번은 링커맨으로 보통 중앙 왼쪽에 위치한 3번이 전진할 수 있는 공간을 남겨두었다. 대인마크 역시 쉽게 예측이 가능했다. 2번이 11번을 막으며, 3번이 7번을 막고, 4번이 10번을, 5번이 9번을, 6번은 스위퍼이며, 7번이 3번을 8번은 8번, 10번은 4번, 9번은 5번, 11번은 2번을 대안방어할 것이라 예측이 가능했다."

 

1982년 월드컵에서 브라질을 물리친지 1년 만에 독일의 함부르크는 1983년 유러피언컵 결승에서 유벤투스를 꺾으면서 '이탈리아식 축구'가 쉽게 예측이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해보였다. 5년이 지나서 아리고 사키가 이끄는 AC 밀란은 경기에 임하는 이탈리아의 방식을 한 단계 발전시켰다. 그렇지만 그 때도 분명했고 지금까지도 변하지 않은 사실은 시스템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다.

 

 

 


 

출처 : http://www.guardian.co.uk/football/blog/2012/jul/25/italy-brazil-19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