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Jonathan Wilson


이제 상대는 2015/2016 챔피언에 대해서 잘 알고 있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전에서 레스터 시티는 우려스러운 점을 노출했다.


1962년 입스위치 타운은 승격 후 바로 1부리그 우승에 성공했다. 이는 실로 대단한 성과로 여전히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잉글랜드에서 가장 놀랄만한 우승 3가지 중 하나로 손꼽힌다. 1962년 8월 FA컵 우승팀인 토트넘 핫스퍼와 포트먼 로드(Portman Road)에서 채리티 실드 경기를 가졌는데 스퍼스에게 5-1로 패배했다. 이는 입스위치 성적 디플레이션의 시작에 불과했다. 입스위치는 1962/1963시즌을 17위로 마쳤고 시즌이 진행되는 도중에 알프 램지는 잉글랜드 국가대표팀으로 자리를 옮겼다.


레스터 시티가 필연적으로 비슷한 쇠퇴를 겪을 것이라 예상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역사는 깜짝 챔피언은 뜻밖의 경우인 것에 다 이유가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이유는 바로 다른 많은 팀들이 디펜딩 챔피언보다 더 강하다는 것이다. 또 다른 깜짝 우승 3가지 중 하나로 거론되는 1977/1978 시즌 챔피언 노팅엄 포레스트의 경우는 1978/1979시즌을 2위로 마감했다. 하지만 그것은 상당히 드문 케이스일 뿐이다. 노팅엄 포레스트의 선전은 브라이언 클러프 감독의 천재성과 부분적으로 잉글랜드 최초로 이적료 £1m을 기록한 프레버 프랜시스 케이스 같은 상당한 투자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하지만 클러프의 이야기는 지금과 다른 시기의 성공 스토리다. 자본이 현재만큼 막대한 영향을 미치지 못했던 시기였고 유러피언 컵 대회가 존재했지만 기껏해야 1시즌 동안 9경기가 추가되는 수준이었으며 비교적 약한 클럽들과 경기를 치렀다. 오늘날 깜짝 챔피언으로 등장한 클럽은 대다수 다음 시즌에 고전을 면하지 못하고 있다.


1995년 프리미어 리그 우승을 차지한 블랙번 로버스, 2013년 프랑스 리그 우승을 차지한 몽펠리에는 12월에 강등권 경쟁을 펼쳐야만 했다. 물론 최종 순위는 각각 7위와 9위로 회복하는 추세를 보여줬지만 말이다. 독일에서 등장한 3차례 깜짝 우승, 카이저슬라우테른(1998/1999), 슈투트가르트(2007/2008), 볼프스부르크(2009/2010)는 5위, 6위, 8위로 그 다음 시즌을 마감했다.


부진의 원인은 복합적이다. 입스위치 타운은 레프트 윙어인 지미 레드베터를 미드필더처럼 활용했는데 상대팀이 다음 시즌부터 그 전술에 대한 해결책을 발견하기 시작하면서 붕괴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레스터와 입스위치는 이 부분에서 평행선을 타지 않는다. 오늘날은 TV중계로 상당수 경기를 시청할 수 있기 때문에 팀의 전술은 더 빠르게 상대에게 노출되고 있는데 지난 시즌 상대가 레스터의 역습이 무섭다는 것을 간파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레스터를 상대로 여러 구단이 대응책을 내놓기 시작하면서 라니에리의 팀은 이전만큼의 공격력을 선보이지 못하게 되었다. 다가오는 1라운드부터 이제 킹 파워 스타디움에서 공격적인 자세로 경기에 나설 팀은 없다.


뛰어난 재능을 보여준 인물들은 빅클럽의 유혹에 팀을 떠난다. 레스터는 이미 은골로 캉테를 잃었고 선수 수급에 있어서 수장이었던 스티브 왈시마저 에버턴에게 내주고 말았다. 크리스마스까지 적어도 6경기를 소화해야하는 챔피언스 리그 역시 레스터에게 상당한 피로감으로 작용할 것이다. 지난시즌 라니에리는 매경기 동일한 선발 라인업을 내보냈었고 그 는 이번 시즌만큼은 라인업을 경기마다 수정해야한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있다. 5명의 선수 영입은 팀의 스쿼드 두께에 도움이 되겠지만, 이제 그들은 지난 시즌 그 다이나믹했던 라인업을 스스로 깨야하는 위험에 직면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지난 시즌이 정말 기형적인 결과였던 것이다. 레스터 시티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커뮤니티 실드 경기에서 충분히 잘 싸웠지만 특히 실점 장면에서는 문제점을 노출했다. 제시 린가드가 중앙을 돌파하는 장면에서 레스터 선수들은 신중하지 못하게 덤벼들었다. 우선 지난 시즌에는 그렇게 상대가 돌파할 공간이 없었고 캉테가 있었기 때문에 상대는 빠른 속도로 태클을 피하며 요리조리 쑤시고 다닐 수 없었다. 기존 캉테의 포지션에서 뛰었던 앤디 킹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도 있겠지만, 지난 시즌에도 캉테가 햄스트링 부상으로 빠졌던 WBA전에서 살로몬 론돈이 비슷하게 중앙을 돌파하는 장면을 볼 수 있었다. 캉테가 그립지 않으려면 킹과 남팔리스 멘디가 이례적일 정도의 퍼포먼스를 보여줘야할 것이다.


캉테의 이탈에 대처하기 위해서 일부 전술적 수정이 시행될 수 있고 또한 두 선수가 어느 정도는 캉테의 빈자리를 채울 수 있을 것이라 기대를 받고 있다. 레스터가 더 신경써야할 실점은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가 웨스 모건을 공중에서 제압하면서 기록한 골이다. 그리고 모건은 린가드의 득점 장면에서도 섣부르게 공을 빼앗으려했다. 물론 모건 말고도 많은 수비수들이 이브라히모비치와의 경합에서 상당한 어려움을 소호할 것으로 보이지만, 모건은 지난 시즌 157차례의 공중 경합에서 93회 승리할만큼 공중전에 강한 선수였다. 그리고 레스터는 지난 시즌 상대가 박스를 향해 크로스를 올리도록 유도했고 모건과 로베르토 후트는 늘상 그래왔다는 듯이 걷어냈다. 


그렇기 때문에 모건이 공중볼 경합에서 패배해 실점을 내줬다는 것이 일종의 경고성 신호라는 것이다. 모건은 지난 시즌 자신의 평균적인 기량을 뛰어넘는 활약을 선보였다. 문제는 다른 선수들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6명 정도의 선수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인생 시즌을 맞이했고 끝내는 평균으로 회귀하기 때문에 뛰어난 활약이 계속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레스터가 평균으로 돌아와 받아들일 성적이 2년 전 우리가 레스터에게 기대하던 성적보다는 높을 수 있다. 하지만 레스터 시티를 우승으로 이끌었던 폭풍은 사라질 것이다. 




출처 : https://www.theguardian.com/football/blog/2016/aug/11/leicester-city-premier-league-champions-community-shield





by Jonathan Wilson


UEFA는 대회 출전국을 늘리면서 경기의 quantity를 위해 quality를 희생했다. 웨일스와 아이슬란드의 선전만으로 지금 이 대회가 굉장히 나쁜 축구를 구사하고 있다는 것을 만회할 수 없다. (원문은 2016년 6월 29일에 작성되었습니다)



유로2016 대회가 마침내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독일과 슬로바키아의 대결, 이탈리아와 스페인의 대결은 마침내 대회 수준을 만족시킨 경기였다. 그런데 그런 경기가 대회가 개막한지 2주가 지난 후에야 나왔다. 지금까지는 16개국으로 대회를 진행하는 것이 딱 알맞는 것처럼 보인다.


다음은 루카스 포들스키의 발언이다. "그룹 스테이지가 다소 이상해졌다. UEFA가 기존 시스템에 바보같은 짓을 해버렸다 조별 리그에서 이미 2경기를 졌지만 3번째 경기를 통해 다음 라운드에 진출할 수 있는 가능성이 남아있다. 나는 그게 다소 이상하다고 생각하지만 독일 입장에서는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 이제야 토너먼트가 제대로 시작하는 것이다."


일부는 굉장히 독일이 오만한 태도를 보였다고 이야기할 수 있겠지만 포돌스키의 말이 맞다 : 유러피언 챔피언십의 포맷 변화는 약 2주간 재미없는 경기와 무의미한 축구를 양산해냈다. 대표팀 경기는 클럽 경기 수준을 따라가지 못하는데 출전국을 늘린 이번 결정은 클럽 경기 수준을 쫓아가려는 노력에 결코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다.


(대회의 수준이 떨어졌다는 것에 대한) 반론으로 아이슬란드와 웨일스를 이야기한다. 두팀은 출전국이 늘어났기 때문에 8강까지 올라올 수 있었고 그런 언더독의 스토리가 토너먼트를 더욱 재밌게 만든다고 말한다. 그러나 언더독의 반란만으로 2주간 우리가 지켜본 나쁜 축구를 가릴 수 없다. 교묘한 속임수, 퀄리티, 똑부러지는 아이디어가 사라진 야망없는 축구를 언더독의 반란 하나만으로 만회할 수 없다. 


월드컵과 유로가 몸집을 불릴 때마다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지만 항상 반론으로 출전국 현행 유지는 강팀의 잘난 척이며 약팀도 토너먼트에 참가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한다. 모두가 참가할 수 있는 것이 건전한 제도이며 모든 이들이 접근할 수 있는 시장을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허나 출전국의 실력을 분명하게 하지 못하고 최대한 많은 국가의 대회 참여를 장려한다는 방침은 끝내 대회 수준의 평범함'이란 문제를 만들게 되었다.


모든 국가에는 대회에 참가할 수 있는 자격이 있지만 실력을 갖춘 국가라면 자연스레 대회에 참가할 수 있다.  


유로2016 지역예선을 되돌아보라. 각 그룹에서 3위를 차지한 팀들 중 5개국(터키, 아일랜드, 헝가리, 우크라이나, 스웨덴)이 플레이오프를 거쳐 이 대회에 참가했다. 이탈리아와 스페인 경기를 보면, 이탈리아가 아일랜드와의 조 마지막 경기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던 것을 느낄 수 있다. 조직이 잘 되어있고 영리하게 축구한 헝가리는 수준낮은 축구를 보여준 오스트리아를 떨어뜨렸지만, 여전히 하나의 팀보다는 그저 개인의 모임에 그치고 있는 벨기에를 상대로 0:4 대패를 당하면서 기본적인 실력 부족을 증명했다.


서로 다른 능력을 지닌 두 팀을 맞대결을 펼치게 하면 약자는 기본적으로 수비를하게 된다. 약자는 반드시 수비를 해야하고 그것이 그들에게 주어진 임무이기도 하다. 약자가 수비를 탄탄히하는 것은 경기에서 최선의 결과를 이끌어내는 가장 확률높은 방법이다. 약팀이 수비를 하면서 승리 확률을 높이는건 클럽 레벨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되는 사안이다. 수비에서는 클럽과 국가대표의 퀄리티 차이가 심각하지 않으나 국가대표 레벨이 클럽 레벨과 크게 다른 것은 그 수비를 깰 수 있는 공격 구조를 클럽의 수준만큼 끌어올리지 못한다는 것이다.


수비는 각 팀마다 크게 다르지 않다. 대다수의 팀은 첫 압박을 시행한 후에 즉시 두줄 수비를 시행한다. 물론 그 두줄 사이에 추가로 한 명의 선수를 더 배치하는 경우도 있지만 절대적인 원칙은 수비를 우선시하는 팀마다 크게 다르지 않다. 매일 클럽에서 뛰다가 대표팀에 합류하는 선수들은 이런 수비적 요구사항을 비교적 빠르게 수용해낸다.


하지만 공격은 형태나 스타일 면에서 굉장히 다양한 선택지를 가질 수 있다. 하지만 국가대표 레벨에서는 매주, 매일 동료 선수들과 끊임없이 상호간 움직임 이해를 향상시킬 수 없다. 그렇게 국가대표 레벨에서 공격은 속도가 느려지고 매끄럽지 못하게 되며 그 결과 수비 입장에서는 방어하기 쉬워진다. 즉 국가대표 레벨 경기에서는 수비가 더 쉽다. 상대방의 축구를 좌절시키려는 시도는 클럽 레벨보다 국가대표 레벨에서 더 쉽게 이행될 수 있다. 따라서 지난 10년간 큰 성공을 거둔 국가대표팀은 1~2개 클럽 선수들을 팀의 코어로 삼고 있다. 스페인과 독일이 딱 그런 케이스고 칠레같은 경우도 많은 선수들이 오랫동안 하나의 응집된 시스템 속에서 발을 맞춰온 효과를 누리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 3국가의 대표선수들은 클럽에서 경기하는 것과 같은 익숙함을 플러스 효과로 누릴 수 있다.


유벤투스의 수비조직과 함께하는 안토니오 콩테의 이탈리아 역시도 역습하는 순간에 중점을 두고 있는데 콩테는 적절한 시점에 선수들이 사전에 설정된 움직임을 반복적으로 구사하길 요구하고 있다. 또한 콩테는 역습 상황에서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을 줄여 선수들이 보다 간결하게 판단할 수 있게하고 그 결과 속도를 높이고 있다. 요하임 뢰브도 2010년 독일이 순수하게 역습 전술을 펼치는 팀이었을 때 이와 유사한 접근법을 시도했었다. 어쨌든 지금 콩테의 효율성은 분명하다.


하지만 역습 전술의 문제는 상대가 공격을 가하는 순간에만 공격을 시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탈리아는 지역예선에서 몰타, 아제르바이잔과 같은 조였지만 10경기에서 16골만 기록했었다. 이탈리아의 최고 퍼포먼스는 벨기에와 스페인처럼 상대가 먼저 스스로 공격하는 자세를 취할 때 나올 수 있었다. 로이 호지슨은 잉글랜드가 역습 상황에서 더 좋은 경기를 펼칠 수 있다고 주장했지만 (호지슨의 주장도 분명 일리가 있으나) 본선에서는 같은 조에 잉글랜드를 상대로 주도적으로 경기를 펼칠 팀은 없었다. 2014년 9월 스위스전 이후로 잉글랜드는 잉글랜드를 상대로 경기를 주도하려는 팀과 경기를 하지 않았다. 심지어 그 경기조차도 후반전만 그런 양상이었다.


출전국간 경쟁력이 균형을 잃자 이 대회는 결국 형편없는 축구를 양산했으며 UEFA가 탈락의 위험이 줄어든 구조를 형성함으로써 그것은 더욱 악화되었다. 스위스와 루마니아는 1:1 무승부에도 만족했으며, 슬로바키아는 잉글랜드를 상대로 0:0 스코어를 위해서만 싸웠다. 또한 북아일랜드는 독일에게 0:1로 패배하는 것에만 집중했다.


유로는 세계 최고의 국가대표 대회였으나 이번 유로2016는 대회 초반부터 출전국의 정략적인 편의추구에 크게 상처를 입고 말았다. 2주간 대회를 진행했지만 남은 것은 기존 체계 출전국 수와 똑같은 16개 팀이었다. 16개국 참가 구조가 잘 돌아갈 수 있었던 것은 모든 경기가 중요했기 때문이다. 죽음의 조가 있었고 상대를 이김으로써 이전의 실수를 단번에 만회할 수 있었다. 위험하지 않은 상황에 있더라도 1경기 미끄러지면 바로 탈락 위기로 가는 구조였다.


우수한 팀끼리 서로 경쟁하며 좋은 경기를 펼쳐 수준높은 대회를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한 사항이나 지금 그것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려하는 사람들은 없는 것 같다.







출처 : https://www.theguardian.com/football/blog/2016/jun/29/euro-2016-italy-germany-group-stage-mediocrity





by Jonathan Wilson


브라질 사람들은 1982년 월드컵에서 이탈리아에게 패배한 것이 위대한 플레이 스타일에 사망선고를 내렸다고 주장하지만, 이탈리아의 승리는 '시스템'이 몰락하고 있는 방식의 축구를 상대로 승리를 거둔 것을 의미한다. (원문은 2012년 7월 25일에 작성되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30년 전인 1982년 7월 5일, 지쿠는 경기가 끝나고 '오늘 축구는 죽었다' 라고 말했다. 바르셀로나에서 텔레 산타나의 위풍당당한 브라질은 이탈리아에게 패했고 월드컵에서 탈락했다. 당시 브라질은 과거의 브라질 스타일, 즉 1958년부터 1970년까지 월드컵 3연패를 기록했었던 시기의 유동적인 공격쪽에서의 움직임을 바탕으로하는 축구를 구사했다.

 

브라질이 자유로운 축구를 구사했다고 하지만 완전히 무질서한 스타일의 축구는 아니었다. 1970년의 브라질 대표팀은 상대팀에 대한 철저한 조사를 했고 상당한 밸런스를 맞춘 팀이었다. 오른쪽 풀백인 카를로스 알베르토의 오버래핑이 활발할 수 있었던 것은 왼쪽 풀백인 에베랄도가 상당히 수비적인 선수였기 때문에 가능했다. 카를로스 알베르토가 전진하면 팀 수비는 스리백으로 전환되었다. 자일지뉴는 대회 매 경기마다 안쪽으로 파고드는 모습을 보였고 카를로스 알베르토는 앞으로 전진해 자일지뉴의 빈 자리를 채웠다. 펠레와 토스탕은 미드필드 지역까지 깊숙히 내려오면서 공간을 창출해냈다. 클로드알도는 포백 앞에서 공을 따내는 역할을 수행했고 제르송은 클로드알도 옆에서 딥-라잉 플레이메이커 역할을 수행했다. 후방에 위치한 에베랄도가 수비쪽에서 탄탄한 모습을 보였기 때문에 왼쪽에 배치된 히벨리누는 전형적인 공격형 미드필더 역할을 수행했다. 

 

1970년의 브라질은 축구를 좀 하는 11명의 사내들을 단순히 모아둔 것이 아니었다. 분명히 이들을 맞물리게 만드는 세련된 무언가가 있었다. 그렇지만 1970년의 브라질에는 1974년과 1978년에는 볼 수 없었던 플레이의 자유로움과 유동성이 있었다. 1982년 월드컵을 앞두고 브라질은 다시 자신들의 예전 스타일로 돌아갔다 : 리드미컬한 미드필더, 순간적으로 폭발하는 속도, 자신의 개성을 표현하는 플레이


토니뇨 세레조의 징계로 소련전에 출전했던 팔캉은 인상적인 경기를 펼치면서 세레조의 복귀 이후에도 주전 미드필더 자리를 차지했다. 지쿠와 소크라테스까지 있던 브라질은 4명의 미드필더를 모두 창조적인 선수로 채웠다. 세레조와 팔캉은 모두 레지스타였고 그 앞에서 뛰는 지쿠와 소크라테스는 트레콰르티스타였다. 에데르는 보조 공격수로 육중한 덩치를 보유한 세르지뉴 근처에서 뛰었다. 세르지뉴의 피지컬은 동료 선수들에게 공간을 만들어주는데 아주 유용하게 활용되었다. 브라질의 포메이션은 중앙에 아주 강력한 기둥을 세운 것과 같은 4-2-2-2였고 측면은 풀백인 레안드로와 주니오르의 몫이었다. 일반적인 유럽 팀이라면 브라질의 포메이션을 두고 측면에 약점이 있다고 말하겠지만, 브라질은 엄청난 유기성과 볼다루는 재주로 부족함을 충분히 채웠다. 

 

브라질은 1970년 이후로 가장 명랑한 축구를 펼쳤다. 소련을 2-1로 이겼고, 스코틀랜드를 4-1, 뉴질랜드를 4-0으로 이겼다. 2라운드 결선경기에서는 디펜딩 챔피언인 아르헨티나를 손쉽게 물리치면서 이탈리아를 상대로 비기기만 하더라도 준결승에 오를 수 있었다. 아르헨티나를 손쉽게 이겼기에 모두가 이탈리아전은 그저 형식적인 수준의 경기가 펼쳐질 것이라 생각했다.

 

한편 이탈리아는 완벽한 카테나치오에서 벗어나 '이탈리아식 축구' 국면에 접어들었던 시기다. 그러나 여전히 조심스런 접근은 이탈리아 축구의 기본적인 전제였다. '에스타디 데 사리아' 경기장에서 벌어진 브라질과 이탈리아의 맞대결은 어떤 면에서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 : 공격 축구 vs 수비 축구


에레라의 카테나치오는 미드필드 지역의 수적 열세를 초래했고 그 결과 이탈리아는 네덜란드, 독일식 축구를 받아들여 리베로를 보다 더 올라운더 형태의 선수로 만들었다. 스스로 공을 가지고 나오거나 이탈리아가 공을 소유한 시점에는 미드필더처럼 뛰는 형태로 이바노 블라손이나 아르만도 피키같은 변형된 풀백의 형태로 보는 것보다 가에타노 시에라 같은 변형 인사이드 포워드에 가까웠다.


브라질과 달리 이탈리아는 저조한 성적으로 대회를 시작했다. 이탈리아는 첫번째 3경기를 모두 비겼다. 카메룬도 이탈리아처럼 3무를 기록했지만 이탈리아는 득점수에서 앞서 1라운드를 통과했다. 승부조작 징계에서 벗어나서 갓 돌아온 파올로 로시는 최고의 컨디션이 아니었다. 그러나 아르헨티나를 2-1로 꺾으면서 이탈리아 선수들은 자신감을 갖기 시작했다. 브라질의 골키퍼 발디르 페레스는 로시의 컨디션이 갑자기 살아날까봐 두렵다는 인터뷰를 했다. 아마도 페레스는 골키퍼보다 예언가의 능력이 더 뛰어났던 것 같다.

 

이 경기는 월드컵 역사상 최고의 경기였을까? 1954년 월드컵 우루과이와 헝가리의 경기가 최고라 주장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이 경기는 충분히 월드컵 최고의 경기라 할 수 있을 경기였다. 브라질과 이탈리아의 경기에는 공식집계 44,000명보다 더 많은 관중들이 들어왔다. 만약에 브라질이 선제골을 넣었더라면 이탈리아는 쉽게 의기소침해졌을 것이시스템과 정신력으로 브라질을 따라잡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탈리아는 5분만에 선제골을 기록했다. 브루노 콘티가 40야드를 뚫고 전진하여 안쪽으로 파고들어온 공격적인 레프트백 안토니오 카브리니에게 공을 넘겨줬고 카브리니는 로시에게 크로스를 올렸다. 로시는 자신을 신뢰해준 베아르초트 감독의 기대에 부응하는 헤딩골을 기록했다.

 

이제부터는 브라질의 공격 vs 이탈리아의 저항 형태의 경기가 펼쳐졌다. 그렇지만 7분만에 브라질이 동점골을 기록했다. 소크라테스가 지쿠와 원투패스를 활용하여 전진했고 골키퍼 디노 조프의 니어포스트쪽으로 골을 성공시켰다. 사람들은 브라질의 승리를 예감했지만 25분 후에 세레조가 큰 실수를 저질렀다. 세레조는 무심코 주니오르 쪽으로 애매하게 횡 패스를 시도했다. 이 때 로시가 공을 가로채서 발디르 페레스를 뚫고 골을 성공시켰다. 브라질은 당황했고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파올로 로시는 후반전에 3-1로 만들 기회를 살리지 못했고, 2분 뒤 브라질이 팔상의 강한 슈팅으로 동점을 만들어냈다. 또 다시 브라질이 기세를 잡아가는 듯 했다.

 

앞서 말했듯이, 브라질은 비기기만 하더라도 준결승에 올라갈 수 있었다. 그렇지만 골문을 걸어잠그는 것은 브라질의 방식이 아니었다. 브라질은 계속해서 공격을 시도했고 결국에는 그 대가를 치르게 되었다. 콘티의 코너킥이 어정쩡하게 처리되었고 마르코 타르델리의 빗맞은 슈팅이 로시에게로 갔다. 그리고 로시는 그것을 골로 연결시켰다. 브라이언 글렌빌은 "브라질의 화려한 미드필드진이 시험에 들었던 순간에 그들은 전방과 후방에서의 불완전함을 극복해낼 수가 없었다." 라고 말했다.

 

이 경기는 축구 역사의 한 단층을 차지하는 경기로서 이 날은 지쿠의 말처럼 축구가 죽은 날이 아닌 천진난만한 축구가 죽은 날이었다 : 즉, 이 경기 이후로 최고의 선수를 뽑아놓고 독려하는 것만으로는 승리하는 것이 불가능한 시기가 도래했고 시스템이 승리하는 날이 왔다. 물론 여전히 공격적인 재능을 뽐낼 여지는 남아 있었지만, 그들의 재능을 품어줄 수 있는 시스템 속에서 선수를 보호해주고 받쳐줘야만 하는 형식으로 축구는 변해갔다. 사실 이전부터 그랬는데 1970년 멕시코 월드컵에서 브라질 선수들의 자유로운 움직임이 먹힐 수 있었던 것은 멕시코의 더위와 높은 고도 때문이었다. 상대팀은 더위와 높은 고도로 인해 지속적으로 브라질 선수들을 강하게 압박할 수 없었다.

 

아이러니한 부분은 1982년에 이미' 이탈리아식 축구'는 시들어가고 있었다는 것이다. 가제타의 저널리스트인 루도비코 마라데이는 이렇게 말했다. 

 

"이탈리아식 축구가 한동안 효과를 보기 시작하자 1970년대 말부터 1980년대 초까지 이탈리아에서는 모두가 똑같은 플레이를 시도하게 되었다. 이는 이탈리아식 축구가 실패하는 이유가 되었는데 모두가 똑같은 시스템을 사용했고 모두가 똑같은 방식으로 등번호를 정하기 시작했다. 9번은 센터 포워드, 11번은 왼쪽에서 뛰는 세컨 스트라이커, 10번은 중앙에서 뛰는 공격형 미드필더, 7번은 토르난테(측면을 따라 내려와 수비를 돕는 윙어), 4번은 딥-라잉 미드필더, 8번은 링커맨으로 보통 중앙 왼쪽에 위치한 3번이 전진할 수 있는 공간을 남겨두었다. 대인마크 역시 쉽게 예측이 가능했다. 2번이 11번을 막으며, 3번이 7번을 막고, 4번이 10번을, 5번이 9번을, 6번은 스위퍼이며, 7번이 3번을 8번은 8번, 10번은 4번, 9번은 5번, 11번은 2번을 대안방어할 것이라 예측이 가능했다."

 

1982년 월드컵에서 브라질을 물리친지 1년 만에 독일의 함부르크는 1983년 유러피언컵 결승에서 유벤투스를 꺾으면서 '이탈리아식 축구'가 쉽게 예측이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해보였다. 5년이 지나서 아리고 사키가 이끄는 AC 밀란은 경기에 임하는 이탈리아의 방식을 한 단계 발전시켰다. 그렇지만 그 때도 분명했고 지금까지도 변하지 않은 사실은 시스템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다.

 

 

 


 

출처 : http://www.guardian.co.uk/football/blog/2012/jul/25/italy-brazil-1982




by Jonathan Wilson


백3의 부활과 실패. 그러나 다시 부활한 백3


2014년, 백3에 대한 축구계의 반응은 전술에 대한 개념과 수용이 얼마나 민감하게 작용하는지를 보여줬다. 2014년에는 월드컵이 있었고 이 월드컵에서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킨 국가는 백3 시스템을 채택했던 네덜란드와 칠레였다. 물론 멕시코와 코스타리카도 색다르고 흥미로운 백3 시스템을 사용했다. 이것은 단순히 과거의 백3 시스템을 재사용한 것이 아니라, 국제 무대 레벨에서 구식의 전술로 여겨졌던 백3 시스템이 새롭게 돌아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호르헤 삼파올리 감독의 칠레는 피치 전방에서부터 긴급하게 압박을 시도하기 위해 미드필더 숫자를 1명 더 늘려야했고 그 때문에 백3 시스템을 선택하게 되었다. 수비수들은 급박한 상황에서나 상대 공격수를 상대해야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칠레가 구상한 이상적인 전술이 제대로 통한다면 수비수들에게 공이 가기 이전에 미드필드에서 상대로부터 공을 뺏어내야한다. 반면에 코스타리카는 후방에 수비 숫자를 늘리기 위해서 백3 시스템을 꺼내들었다 : 코스타리카는 기꺼이 라인을 내렸고 아주 정교한 오프사이드 트랩 전술을 활용했으며 빠른 역습을 통해 상대를 위협했다.


이들과 달리 루이 반 할 감독은 케빈 스트로트만의 부상으로인해 백3를 꺼내들었다. 네덜란드의 백3는 믿을만한 수비형 미드필더 케빈 스트로트만의 십자인대 부상과 프랑스와의 친선 경기에서 네덜란드의 수비수들이 상대 공격수와의 1:1 상황에서 무기력하게 제쳐지는 것을 직접 지켜본 반 할 감독의 선택이었다. 그는 당시 페예노르트를 이끌던 로날드 쾨만이 PSV를 상대로 어떻게 백3 시스템을 활용하는지 지켜보러갔고 실제로 월드컵에서 페예노르트가 시도했던 부분을 많이 끌어다가 사용했다. 더불어 페예노르트 선수들이 많이 기용되기도 하였다. 피치 전방부터 한 명의 미드필더가 더 생긴 네덜란드는 스페인과의 경기에서 칠레처럼 중원에서의 압박을 더욱 강화할 수 있었다.


유벤투스가 백3 시스템을 사용하면서 세리에A를 3년 연속 제패하고 있기에 이탈리아에서만큼은 백3가 '다시' 유행하고있다는 것은 다소간 놀랍게 여겨질 것이지만, 전세계적으로는 2014년을 기점으로 백3가 다시 유행을 타고 있다. 물론 백3가 다시 유행을 타고있는 것에는 출중한 윙어가 부족한 현세태가 반영되어있기도 하다.  


2014-2015시즌 초기에 프리미어 리그에서 3개의 팀이 백3 시스템을 사용했다. 헐 시티는 지난 2013-2014시즌에도 백3 시스템을 사용했었던 팀이고 이 팀은 수비적인 목적으로 백3 카드를 꺼내들었다. 퀸스 파크 레인저스도 3-5-2를 사용했다. 해리 레드냅 감독은 로익 레미가 두명의 스트라이커가 갖춰진 상황에서 최고의 기량을 발휘하는데 3-5-2를 사용하면 미드필드 중앙에서의 인원을 줄이지 않으면서 투스트라이커를 활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도 백3를 사용했는데 유나이티드가 백3를 사용한 것은 반 할이 그럴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이다. 


3팀 모두 시즌 초기에 좋은 경기력을 보이지 못했고 다시금 백3는 조롱거리가 되기 시작했다. 레드냅 감독은 로익 레미를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서 백3를 선택했으나 레미가 첼시로 이적하게 되었고 스위퍼 역할을 해야하는 리오 퍼디난드는 기량이 급격하게 하락했다. 더불어 리차드 던의 기동성 부족은 이들이 풀백까지 포함하여 4명이서 커버하던 공간을 3명의 수비수로 커버할 수 없음을 의미했다. 결국 레드냅은 백4를 다시 꺼내들게 되었다. 그러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시즌 도중 백4로 전환했다가 백3로 다시 복귀했다. 반 할의 구상은 레드냅이 처음 생각했던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는 로빈 반 페르시, 웨인 루니, 라다멜 팔카오, 후안 마타, 앙헬 디 마리아, 제임스 윌슨, 아드낭 야누자이가 있다. 반 할 감독에게는 걸출한 공격 재능들이 있고 이 선수들을 최대한 활용하면서 중앙에서 너무나 많은 공간을 내주지 않기 위해서는 3-4-1-2만한 포메이션이 없다.


리버풀이 시도하는 3-4-2-1 혹은 3-4-3 포메이션은 조금 다르다. 리버풀은 후방에 위치한 미드필더의 수비력 부족을 시즌 내내 지적받아왔는데 리버풀의 백3 전술은 다른 팀의 백3 전술에 비해서 후방 미드필더의 수비적 부담이 상대적으로 덜하다. 또한 아담 랄라나와 필리페 쿠티뉴가 평소 위치가 아닌 다른 곳에 위치하기 때문에 상대팀은 평소와 다른 곳에 위치한 두 선수를 방어하는데 애를 먹고 있다. 양쪽 측면에 위치하는 윙백들이 탁월한 수비력을 갖춘 것은 아니지만 리버풀은 새로운 전술로 점유율을 가져가고 있고 지난 2013-2014시즌의 공격쪽에서의 다이나믹함을 어느정도 회복하고 있다. 물론 아직까지 상대팀이 리버풀의 새로운 전술에 대응하는 카드를 만들어내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불안한 점은 아직 남아있다. 상대가 언제 대응전략을 만들어낼지 모르는 것이고 여전히 수비가 탄탄하지 못하다.



다이아몬드의 회귀


두 명의 공격수를 배치하면서 중앙에는 3명의 선수를 유지하는 또다른 방법은 다이아몬드 대형을 만드는 것이다. 다이아몬드 대형의 위험성은 2가지가 있다 : 공격은 전방에 위치한 두 선수에게 집중이 되고 이에 따라 이 팀은 상대가 예측할 수 있는 루트로 공격을 펼치게 된다. 또한 미드필더들이 중앙에 밀집하게 되면서 측면에서 상대 풀백들이 전진할 수 있는 공간을 내주게 된다. (2011년 챔피언스 리그 8강전에서 샬케04의 한스 사르페이와 우치다 아스토가 인테르의 다이아몬드 대형을 상대로 맹활약을 펼쳤던 것을 기억해보자) 브랜단 로저스가 리버풀에 3-4-2-1 포메이션을 접목시켰다는 것으로 크게 칭찬을 받고있지 못하지만, 그가 다이아몬드 형태를 다시 활발하게 활용되게 만든 것은 상당한 칭찬을 받아 마땅하다.


지난 2013-2014시즌의 리버풀의 공격진을 이끌었던 다니엘 스터리지와 루이스 수아레즈처럼 빠르고 기동성을 갖춘 두 명의 현대형 공격수가 투톱으로 짝을 이루면 두 선수는 언제든지 측면으로 이동할 수 있게되고 이에 따라서 사르페이와 우치다처럼 측면에 위치한 풀백이 수비적 부담이 줄어드는 것은 발생하지 않는다. 이런 움직임은 또한 다이아몬드 꼭짓점에 위치한 라힘 스털링에게 기회를 만들어준다. 상대팀 중앙 수비수는 굉장히 헷갈리는 상황을 맞이하게 된다. 상대 수비수가 '지금 내가 수아레즈를 막으러 측면으로 빠져야하는건지, 침투하는 스털링을 방어해야하는건지?'와 같은 상황을 마주하게 만들 수 있다. 결국 다이아몬드 꼭짓점에 위치하는 선수는 가짜 9번(false nine)과 흡사한 성향을 가지게 된다.


위에서 언급한 전술은 2013-2014시즌 리버풀이 성공을 거두는데 아주 톡톡한 역할을 했다. 루이 반 할 감독도 유나이티드에 다이아몬드 형태를 접목시켰었고 잉글랜드 역시 루니와 대니 웰백 아래에 스털링을 배치하는 전술을 활용했다. 아마도 2014-2015시즌에 다이아몬드 형태를 이용한 공격 전술을 가장 잘 활용하는 팀은 웨스트 햄이 아닐까 싶다. 처음에는 디아프라 사코와 에네르 발렌시아 밑에 스튜어트 다우닝이 배치된 형태였고 발렌시아보다는 움직임이 적은 앤디 캐롤이 나중에 추가되었지만, 앤디 캐롤의 가공할만한 공중전 능력으로 발렌시아의 기동성을 상쇄시키고 있다.


우리는 티키-타카(tiki-taka)로부터 완벽하게 벗어났나?


이제는 펩 과르디올라조차도 더 이상 티키-타카와 지속적으로 연결되는 것을 꺼려하고 있다. 


"나는 오로지 패스만을 위한 티키-타카를 혐오한다. 패스만을 위한 티키-타카는 아무 목적 의식이 없는 축구이고 쓰레기 같은 행동이다. 공을 패스하는데는 분명한 의도가 있어야한다. 결국에는 상대 골문에 골을 넣고야말겠다는 목적이 있어야한다. 패스를 위한 축구는 결코 옳지 않다.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던 믿지 말라! 바르샤는 결코 티키-타카를 하지 않았다. 바르샤가 티키-타카를 했다는 것은 철저하게 만들어진 이야기다. 그 말을 믿지 말아달라. 모든 팀스포츠에서 상대를 제압하는 비밀은 상대를 한쪽으로 치우치게 만드는 것이다. 상대를 한쪽으로 몰아놓으면 자연스럽게 반대편은 수비가 약해진다. 우리가 상대를 한쪽으로 끌어당기면, 우리는 반대편을 활용하여 공격하고 골을 기록한다. 바르샤는 이러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공을 돌린 것이다. 상대가 한쪽에 과부하가 걸리게 만들고 우리는 반대 공간을 불시에 공격했다. 우리가 원했던 경기는 이런 것이었지 우리가 티키-타카를 원하기 때문에 플레이를 그렇게 했던 것이 아니다."


티키-타카라는 용어는 과거 아슬레틱 빌바오를 지휘했던 하비에르 클레멘테에 의해 만들어졌고 그는 자신이 지휘했던 아슬레틱 빌바오가 남자다운 용맹함을 최고의 덕목으로 삼아 플레이했던 것과 달리 바르셀로나가 쓸데없이 공을 너무 이쁘게 차려는 것을 비꼬기 위해서 티키-타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바르셀로나를 겨냥하고 만들어진 용어를 과르디올라가 부정하고 있다. 만약 과르디올라가 자신이 이끌었던 바르셀로나가 티키-타카로 대변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극단적 수준의 점유율과 압박으로 표현되는 그의 철학을 표현할 수 있는 또 다른 용어가 필요하다는 것을 인지하게 된다.


바이에른 뮌헨이 지난 4월, 챔피언스 리그 준결승에서 레알 마드리드의 역습에 속절없이 무너져버렸던 것. 2012-2013시즌에 바르셀로나가 바이에른 뮌헨의 역습 전술에 패배한 것 때문에 티키-타카가 사형 선고를 받았다고 주장하는 목소리가 한 때 있었고 그러한 주장들은 스페인이 월드컵에서 조별 리그를 통과하지 못하자 다시 등장하게 되었다. 하나의 철학이 이끌어오는 팀이 나이가 들면서 쇠퇴하기 시작하자 그 철학 마저도 한 세대와 함께 같이 저물고 있다.


과르디올라가 자신의 경기 스타일을 어떻게 부르길 원하든, 현재 바이언에서도 과르디올라는 비슷한 전술을 꺼내들고 있다. 그가 언제나 진화해왔듯이 바이언에서 과르디올라의 스타일은 다소 수정되었고 새롭게 바뀌기도 하였다. 그는 가능한 전술이라 생각하면 그것의 한계치까지 전술을 구사해내고 선수들이 그로인한 전술적 이점을 누릴 수 있게 포지션을 이동시키고 있다. 과르디올라의 혁신적 능력은 과르디올라를 굉장히 매혹적인 감독으로 만들고 있으며, 지난 5년간 4번의 리그 우승, 2번의 챔피언스 리그 우승, 3번의 국내 대회 우승, 3번의 클럽 월드컵 우승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바이언이 분데스리가에서 압도적인 레이스를 펼치고 있고 이들이 5월에 리그 타이틀을 획득하는 것은 확실해보인다. 티키-타카가 이제는 죽었다고 하는데 여전히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걸 보면 굉장히 이상한 형태의 죽음인 것 같다. 



역습과 역습에 대응하는 능력


지난 2번의 챔피언스 리그 준결승전은 극단적인 점유율 축구가 '절대적인 우위를 가져갈 수 있는 축구'가 아님을 증명하는 무대가 되었다. 2010년 인테르가 바르샤를 꺾은 것, 2012년 첼시가 바르샤와 바이언을 꺾은 것은 극단적으로 점유율을 포기하더라도 철저한 준비가 되어있으면 상대를 꺾을 수 있음을 증명해보인 것이었고 이들의 승리로 '극단적인 점유율 포기'가 장려 되기도 하였다. 상대가 능동적으로 경기를 펼치는 것을 수동적인 축구인 점유율 포기로 대응하려면 철저한 준비와 조직력 그리고 어느 정도의 운이 따라줘야만 한다. 2013-2014시즌 챔피언스 리그 준결승전에서의 레알 마드리드, 2012-2013 챔피언스 리그 준결승전에서의 바이에른 뮌헨은 각각 앞서 언급했던 인테르와 첼시만큼 수비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았으나 그들은 상대가 공을 가지도록 내버려둔다는 것에서만큼은 같은 믿음을 공유한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축구에서 역습의 가치가 상승하고 있음을 의미하겠지만, 통계는 역습의 가치가 떨어지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  UEFA 기술 보고서에는 2013-2014시즌 챔피언스 리그에서 역습이 차지하는 득점 비중은 23%였다고 서술되어있다. 그러나 이 수치는 2012-2013시즌의 27%에서 더욱 하락한 것이며 2005-2006시즌의 40%에서는 더더욱 하락한 기록이다. 게겐프레싱(gegenpressing) - 역습에 대비하기 위한 압박 - 전술이 더 많은 클럽들에게 퍼지면서 역습은 이전만큼 위협적인 공격 전술이 되지 못하고 있다.


과르디올라가 바르셀로나 감독직을 수행했을 당시의 코칭스태프 일원이면서 현재 브뢴비의 수석코치를 담당하고 있는 알버트 세팔라스는 바르셀로나 선수들은 공을 뺏긴 그 상황에서부터 즉각적으로 공을 다시 뺏어내고자한다고 주장한다. 이들의 주장은 이러하다. 상대의 공격이 시작되기 이전에 공격을 차단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일 뿐만 아니라 상대가 공을 뺏어내 다시 공을 소유하게된 그 상황이 가장 다시 공을 뺏기기 쉬운 상태라고 주장한다 : 공을 뺏어낸 선수는 공을 뺏기 위해서 에너지를 소비하고 그 상황에 상당히 집중하게 된다. 이제 그 선수는 공없이 피치를 바라보는 상황에서 공을 가진 상황으로 전환이 이루어지고 그 짧은 찰나에는 패스할 길이 머릿 속에 떠오르지 않을 것이다.


과르디올라는 이러한 움직임마저 바이언에 접목시켰지만, 이미 보루시아 도르트문트가 게겐프레싱의 선두주자로 분데스리가에 게겐프레싱을 널리 퍼트렸다. 보루시아 도르트문트가 세계적인 무대에서 가장 많은 게겐프레싱 전술을 사용한 팀일 것이고 덕분에 이러한전술 경향성을 독일어로 짓게된 것이 아닐까 싶다. 게겐프레싱은 선수의 포지셔닝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선수들은 하나의 유닛으로 압박을 구사하기 위해 서로가 서로에게 근접해 있어야한다. 그러나 공을 점유한 상태에서 공을 순환시키기 위해서는 서로 밀집되지 않게 위치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 선수들은 언제 강한 압박을 멈추고 후퇴하여 수동적인 수비 구조를 형성해야하는지도 파악할 줄 알아야한다.



새로운 갈락티코


하나의 이론(극단적인 점유율 확보)이 등장했고 그에 반대되는 전술(극단적인 점유율 포기)이 등장했으며 그 혼합체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는 양 극단의 어느 지점에서 2014-2015시즌을 보내고 있다. 최고의 공격수들로 공격진을 구성한 바르셀로나는 불가피하게 이전보다 정통파 스타일로 공격을 개시하게 되었다. 카를로 안첼로티 휘하의 레알 마드리드는 큰 전술적 혁명을 보여주고있지는 못하지만, 열심히 뛰고 지능적으로 압박하는 선수들을 활용하고 있으며 전방에서 강한 에너지와 체격을 활용하는 전술을 펼치고 있다. 이제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는 상대를 부셔버릴 수 있는 조금 더 다양한 루트를 가지게된 것이다. 완벽을 추구하는 과르디올라는 마치 퀘스트를 하는 것처럼 새로운 형태와 공식을 창조해내고 있고 실용주의적 성향을 가진 안첼로티는 위대한 선수들을 데리고 이기는 경기를 펼치고 있다.




출처 : http://www.theguardian.com/football/blog/2014/dec/30/tactical-review-of-2014-tiki-taka-exile-counter-counterattack


출처 : http://www.theguardian.com/football/blog/2014/dec/29/tactical-review-of-2014-three-at-the-back-back-in-fashion-football



by Jonathan Wilson


과거의 루이 반 할 감독은 대담했고 확고한 전술적인 시스템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올드 트래포드에서 보여주는 모습으로는 물음표 밖에 나오지 않는다. 전술의 천재가 이제는 늙은 것일까?



올드 트래포드에 굉장히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리그 4위에 위치해있고 2015년 이후 리그에서 단 2패만을 기록하고 있지만 불만의 목소리는 갈수록 점점 더 높아지고 있다. 일부는 엉터리같은 경기력을 지적하면서 특히 언론과 대중들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더욱 볼거리 많은 경기를 펼쳐야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와 정반대의 주장을 펼치는 사람들도 있기 마련이다. 루이 반 할 감독의 업적을 보라고 주장하며 동시에 루이 반 할이라는 인물은 지난 25년간 축구에 미학적인 부분이 존재함을 믿었던 인물이라고 말한다. 더불어 그들은 언론인들과 팬들은 루이 반 할 감독이 주장하는 '발전'을 알아볼 수 있는 안목이 있을 수가 없다고 주장한다.


현대 축구 최악의 미덕은 참을성이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분명히 맞는 말이다. 현대 축구에서는 허버트 채프먼, 돈 레비, 빌 샹클리, 브라이언 클러프와 같은 감독들 (클러프는 특히 2번!) 에게도 위대한 팀을 만들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주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알렉스 퍼거슨 경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첫번째 트로피를 획득하는데까지 4년의 시간이 걸렸고 그제서야 알렉스 퍼거슨 경은 안정적으로 팀을 지휘할 수 있었다. 과거 하나의 제국을 건설했던 감독들은 모두 현재 63세인 루이 반 할 감독보다 어린 나이에 위대한 팀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루이 반 할 감독은 위대한 팀을 만들어내는데 역사적으로도 시간이 걸렸던 것을 이야기하며 새로운 시즌에도 믿어달라고 주장할 것이다. 반 할 감독은 스스로가 놓은 덫에 걸려들었다. 우선 반 할 감독은 자신의 철학이 팀에 정착하는데 3주의 시간이 걸릴 것이라 주장했다. 그 이후에 3개월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고 이제는 다음 시즌에 평가해주길 부탁하고 있다.

 

문제는 그 철학에 대해서 상당한 의문점이 제기되고 있다는 것이다. 결코 포메이션의 변화가 주된 의심의 원인이 아니다. 반 할 감독은 자신의 철학은 결코 특정 포메이션이 아니고 모든 포메이션을 통틀어 적용될 수 있는 것이라 말했다. 그런데 우리가 받아들이고 있는 성적은 그렇게 성공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커리어 초반 반 할 감독은 토탈 풋볼의 전통을 이어받은 감독이었다. 아약스에서 반 할 감독이 사용했던 시스템은 60년대 중반부터 클럽의 스타일로 자리잡은 축구의 발전된 양상이라 평가받았었다. 점유율을 강조했고 기본적인 토대는 4-3-3 시스템이었다. 물론 1명의 중앙 수비수가 종종 미드필드까지 올라가 3-4-3 시스템을 형성했다. 또한 에드가 다비즈와 클라렌스 쉐드로프를 딥-라잉 미드필더로 활용하며 중앙 미드필더들은 삼각형 형태로 배치되었고 아약스의 4-3-3은 유기적으로 4-2-3-1 시스템으로 변화하기도 했다.






반 할 감독이 급진적인 이미지를 가지게 된 것은 약간의 변화를 시도했기 때문이다. 반 할 감독은 10번 역할의 선수도 수비적인 기여를 해야한다고 생각했고 현대 축구에서 중앙 수비수는 경기를 풀어나갈 수 있는 플레이메이커 역할도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센터 포워드를 평가할 때 얼마나 많은 골을 넣는가보다 연계 플레이에 얼마나 도움을 줄 수 있는가를 더욱 중점적으로 평가했고 측면 미드필더들에게는 역습 상황에 놓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과도한 전진을 자제하도록 했다. 반 할 감독의 팀은 강한 압박을 시도했고 공을 뺏어내 후방에서 전방을 향해 공을 빠르게 전환시켰다. Opta가 정의하듯이 25m 거리 이상의 패스를 '롱볼'이라 할 경우, 반 할 감독의 아약스는 아마도 롱볼을 많이 시도하는 팀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바르셀로나에서도 반 할 감독의 철학은 결코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많은 전술적 요구를 설정하기 시작했다. 골키퍼는 발로 공을 다룰 수 있어야하고 패스도 할 줄 알아야 한다. 로베르토 엔케같이 반 할 감독의 요구사항을 수행할 수 없는 선수들은 철저하게 내버려졌다. 또한 모든 선수들은 수비적 기여를 할 수 있는 역동성을 갖춰야만 했고 때문에 반 할 감독은 히바우두, 지오바니, 소니 안데르손과 마찰이 있었다. 또한 반 할 감독은 후안 로만 리켈메에게 바르셀로나 어린이용 유니폼을 선물하면서 "자네(리켈메)보다 자네 아들한테 이 옷(바르셀로나 유니폼)이 더 많이 필요할꺼야" 라고 말했다. 수비를 하지 않으려는 리켈메의 생각을 간파하고 있었고 반 할 감독은 결코 스타 선수들에게 자신의 철학을 강요하는 것을 꺼리지 않았다.


네덜란드 대표팀을 이끌고 4-2-3-1을 활용했지만 2002년 월드컵 진출에 실패했으며 바르셀로나 감독으로 다시 부임했지만 실패하고 말았다. 아약스의 스포팅 디렉터(sporting director) 역할도 성공적이지 못했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어느 누구도 루이 반 할이라는 인물을 원하지 않았다. 정상을 달리던 루이 반 할 감독의 게임은 끝나는 듯 했고 결국 반 할 감독은 AZ 알크마르행을 선택했다. AZ 알크마르에서 루이 반 할 감독은 자신의 원칙을 수정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빠르게 깨달았다. AZ 알크마르가 가진 자원으로는 점유율을 기반으로하는 4-3-3 혹은 4-2-3-1 시스템을 구현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전술을 수정하는데 4년의 시간이 필요했고 4년만에 완벽히 효율적인 시스템을 만들어냈다. 2008-2009시즌의 AZ 알크마르는 4-4-2 시스템으로 플레이했고 과거 반 할 감독이 추구하던 경기 방식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었다. AZ는 공보다 뒤쪽에 선수들이 배치되어 상대팀의 압박을 버텨냈고 백4 라인 앞에 위치한 스테인 스하르스는 전방에 위치한 발빠른 2명의 공격수 무사 뎀벨레와 무니르 엘 함다위에게 롱패스를 시도했다. AZ 알크마르가 우승할 것이라 예상하지 않았지만 루이 반 할 감독의 AZ는 리그 타이틀을 획득해냈다. 반 할 감독은 "이 우승은 내 사소한 업적일 뿐" 이라 말했지만, 분명히 반 할 감독은 빠른 공수 전환과 전체적인 역습 전술로 재미를 보았다. 점유율 축구를 구사하던 루이 반 할 감독에게 전술적 컨셉의 변화를 통해 우승을 차지한 것은 중요한 결과였다.





루이 반 할 감독은 AZ 알크마르에서 절대적인 권력을 행사하는 것에 만족하고 있는 듯 했지만, 바이언이 접촉해오자 그들의 제의를 거절할 수가 없었다. 과거처럼 사고방식을 틀어서 새로운 만들어내려는 반 할 감독의 열정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또한 세계의 축구팬들을 향해 '축구란 이렇게 하는 것이다'라는 것을 보여주려 하지도 않았다. AZ 감독으로 배웠던 것들은 바이언에서도 찾아볼 수 있었다. 4-3-3과 3-4-3 시스템은 더 이상 없었고 4-2-3-1 포메이션이 바이언의 주된 포메이션이었다. 마크 반 봄멜이라는 확실한 홀딩 미드필더가 팀 수비 안정을 위해 활용되었다. 90년대 반 할이라면 결코 1명의 선수에게 모든 부담을 지우는 결정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전술적인 부분에서는 과거의 본인과 달라졌지만 과도한 자신감만큼은 변하지 않았다. 결국 피치 바깥에서 너무나 많은 사람들의 기분을 나쁘게 만든 반 할 감독은 21개월만에 바이언 감독직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2012년 다시 네덜란드 대표팀 감독직을 맡았지고 이번에는 10년 전처럼 초라한 마무리가 아니었다. 네덜란드 대표팀에서는 실용적인 색깔이 루이 반 할 감독의 철학에 녹아들었다. 2009년 반 할 감독은 자신의 자서전에 "때때로 나는 경기에서 이기는 것보다 좋은 플레이를 펼치는 것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일 때가 있다"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2012년 새롭게 네덜란드 대표팀을 이끌게 된 루이 반 할 감독은 결코 이상주의자가 아니었다. 


반 할 감독이 축구를 새롭게 해석한 감독이지만, 프랑스와의 2014년 3월 친선전에서 0:2로 패배한 것은 반 할 감독에게 크나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게다가 네덜란드 미드필드진의 핵심적인 요소였던 케빈 스투르트만의 무릎 인대 부상으로 반 할 감독은 새판을 짜야했다. 그러나 스투르트만보다 더 문제였던 것은 수비수들이었다 : 네덜란드 수비수들은 상대와의 1:1 경합에서 좀처럼 이기질 못했고 커버를 해줄 수 있는 여분의 선수가 수비에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PSV를 꺾은 로날드 쿠만의 페예노르트 경기에서 반 할 감독은 아이디어를 얻었고 월드컵에서 3명의 중앙 수비수를 기용하기로 결정했다. 62세 반 할 감독은 자신이 단 한 번도 활용한 적이 없었던 포메이션을 사용하기로 결정했고 전체적인 경기 스타일은 AZ 알크마르에서 임시적으로 활용했던 그 스타일을 선택하기로 했다. 반 할 감독은 세계에 자신의 철학을 항상 보여줄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고 반 할 감독이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은 상당한 진보였다.


실용주의를 택한 반 할 감독의 선택은 성공적이었을까? 네덜란드는 스페인을 5:1로 이겼다. 그러나 첫번째 경기에서 멋진 승리를 거둔 것이 다른 경기들을 가려주고 있다. 만약 로빈 반 페르시의 동점골이 있기 이전에 다비드 실바가 찬스를 살려서 2:0을 만들었다면 네덜란드가 따라잡을 수 있었을까? 호주를 상대로 확실하게 제압을 하지 못했고 공격 축구의 맞대결로 예상되었던 칠레와의 경기는 네덜란드가 수비 전략을 꺼내들면서 예상과 다르게 진행되었다. 멕시코와 굉장히 힘든 승부를 펼쳤고 코스타리카를 승부차기 끝에 꺾었지만 아르헨티나에게는 준결승에서 승부차기 끝에 패배하고 말았다.





아르헨티나와의 준결승전에서 네덜란드는 결코 화려한 축구를 보여주는 팀이 아니었고 멕시코와의 경기에서는 쿨링 브레이크 시간에 전술적 변화를 주었다. 코스타리카와의 경기에서는 승부차기를 앞두고 골키퍼를 교체하는 대담한 결단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러나 스페인과의 첫번째 경기에서 시원하게 이긴 이후로 네덜란드는 상대보다 완전히 우위에 있는 경기를 펼치지 못했다. 승부차기를 앞두고 팀 크룰을 투입하는 대담한 결과가 네덜란드를 승리로 이끌었고 크룰을 투입한 것은 단연 최고의 결정이라 칭찬할 수 있지만, 승부차기까지 갔다는 것은 120분간 네덜란드가 코스타리카를 상대로 승리하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아르연 로번을 반 페르시의 공격수 파트너로 선택한 것은 의심할 여지없이 성공적인 전략이었다. 로번은 역습 상황에서 빠른 발을 활용해 위협적인 장면들을 만들어냈다. 우선 반 할 감독은 앙헬 디 마리아에게 로번과 유사한 역할을 부여했다. 디 마리아가 로번보다 기술적인 섬세함은 부족하지만 빠르고, 역동적이며, 에너지 넘치는 모습 때문에 충분히 기대해볼만한 시도였다. 그러나 디 마리아 저택에 강도가 침입한 이후로 디 마리아는 자신감을 잃은 모습을 보이고 있고 역습 상황에서 디 마리아의 빠른 발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상대하는 클럽들이 공격적으로 경기를 진행해야 하지만, 절대 다수의 프리미어 리그 클럽들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상대로 수비 라인을 내리며 이 때문에 디 마리아에게 로번과 비슷한 역할을 요구한 것은 통하지 않았다.


네덜란드가 월드컵 때 겪었던 상황이 유나이티드에서 똑같이 발생하고 있다 : 더욱 강력한 팀을 상대할 때 역습 전략이 생각보다 잘 먹혀들고 있지만, 유나이티드를 상대로 수비를 우선시하는 클럽을 상대로 전술이 통하지 않는 유나이티드는 결국 마루앙 펠라이니를 투입하여 롱볼을 때리는 축구를 구사하고 있다.


유럽 상위 5개 리그에서 유나이티드보다 더 많은 롱볼을 시도하는 팀은 볼프스부르크가 유일하다. 유나이티드 바로 밑에는 바이언이 위치해있다. 아스날과의 FA컵 경기에서 75분 이후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펠라이니를 향한 롱볼을 과도하게 사용하는 실책을 저질렀다. 그러나 동시에 루이 반 할 감독의 철학에서 수비에서 전방으로 빠른 속도로 공을 전환시키는 것은 핵심적인 요소이다. 전방을 향한 롱볼처럼 동시에 골키퍼를 향해 백패스를 시도한 횟수에서도 리그 1위를 달리고 있다. 그러나 반 할 감독은 언제나 골키퍼를 11번째 필드 플레이어라고 생각하고 있다 : 아약스를 지휘하던 당시에도 에드윈 반 데 사르가 발로 공을 다루는 것에 굉장한 자신감을 보였고 루이 반 할 감독이 바이언에 남긴 유산의 일부 덕분에 마누엘 노이어가 자유로운 플레이를 펼칠 수 있게 되었다.



클럽

롱볼 횟수

1. 볼프스부르크

45.8

2.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44.3

3. 바이에른 뮌헨

43.1

4. AS 로마

41.9

5. 마인츠

40.6

6. 삼프도리아

38.2

7. 아우크스부르크

37.6

8. AC 밀란

37.2

9. 하노버96

37.1

10. 라요 바예카노

36.2


















그러나 전방을 향해 빠르게 공을 투입시키기 위한 롱볼, 골키퍼를 향한 백패스를 제외하고는 어느 부분에서 루이 반 할 감독의 철학이구현되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루이 반 할 감독은 인터뷰마다 철학을 언급하고 있지만 과연 그것이 90년대 자신이 보여준 축구를 의미하는 것인가? 아니면 최근에 자신이 보여줬던 실용주의적 축구를 이야기하는 것인가? 2014-2015시즌의 유나이티드는 굉장히 조심스러운 경기 운영을 보여준 적도 있으며, 공격할 의사가 없는 팀을 상대로 역습 찬스를 기다리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는 반 할 감독이 혼란스러워하고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 아닐까? 루이 반 할 감독은 감독으로서 정점에 있던 시절에 과감한 결단으로 명성을 얻었지만, 나이를 먹으면서 신중함을 더하고 있는 것 같다. 올 시즌에 루이 반 할 감독이 화가 난 것처럼 보이는 장면은 있었지만 화산이 폭발할 것처럼 화를 내는 장면은 없었다. 활화산에서 휴화산으로 바뀌어가는 것 같다. 아마도 전술의 천재가 늙어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모든 것이 반 할 감독의 탓은 아니다. 막대한 돈을 투자했지만 투자한만큼 상황이 진행되지 않고 있다. 나이를 먹어가는 2명의 스트라이커는 충분한 골을 기록하지 못하면서 현재의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들어버렸고 반 할 감독이 한 때 그토록 열망했던 센터백과 딥-라잉 플레이메이커를 동시에 수행할 수 있는 선수가 현재의 선수단에 단 1명 밖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역시 지금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맞이한 문제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런데 그 선수가 33살인 마이클 캐릭이다. 더불어 끊임없이 수비수들이 부상을 당하면서 수비진이 좀처럼 응집력있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것 역시 반 할 감독에게 불리하게 상황이 돌아갔다고 할 수도 있다. 아스날전에서 2골을 내준 것 역시 수비진의 응집력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반 할 감독은 물론, 전 세계의 어떠한 감독도 모든 것을 정상적으로 작동시키기 위한 시간이 필요하다. 루이 반 할 감독의 경질을 주장하는 것은 가까운 미래만 바라보는 것이며 클럽이 마주하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들을 무시하는 것이다. 또한 퍼거슨 이후의 시대를 보내고 있는 스쿼드 구조의 취약성 역시 무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2014-2015시즌 루이 반 할 감독에 대하여 의심의 눈초리를 가지지 않을 수가 없다. 지금까지는 그가 주장하고 있는 철학이 굉장히 어설픈 것처럼 보이며 그 철학에 도대체 무엇이 담겨있는지를 알 수가 없다.




출처 : http://www.theguardian.com/football/blog/2015/mar/12/louis-van-gaal-manchester-united-philosophy?CMP=share_btn_tw



by Jonathan Wilson


이번 월드컵은 원칙과 팀을 위한 선택 사이에서 적절한 타협점을 찾아내고 있는 노련한 감독을 주목하게 만들고 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팬들은 새로운 감독을 기대해도 좋을 것이다.



1980년대 말, 지구 반대편에 있는 서로 다른 두 명의 감독은 축구가 어떠한 방식으로 구사되어야하는지에 대한 비슷한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두 명의 감독 모두 70년대 초반 네덜란드의 토탈 풋볼로부터 상당한 영향을 받았지만, 그러한 매력적인 축구를 구사하기 위해서는 선수들의 몸상태가 더 향상되어야하고 압박이 보다 더 전방위에서 이루어져야한다고 여겼다.


이번 월드컵에서 수많은 팀들은 전원공격과 역습을 빠르게 진행시키고 있으며, 이전보다 더 전방에서부터 공을 뺏어내려고 하고있다.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이번 월드컵에 참가한 거의 모든 국가들의 감독들은 마르셀로 비엘사나 루이스 반 할의 영향을 받았던 것이다. 그리고 루이스 반 할은 직접 네덜란드를 이끌고 대회에 참여하고 있다.


그렇지만 정작 반 할만큼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철학에 틀어박혀있지 않았다. 물론 확고한 규율 준수, 언론에 대한 공격적 태도, 뻔뻔해보일 정도의 자기 확신적 태도는 이전과 같으나 자신이 추구하고 있는 축구 철학에 대한 태도에는 보다 유연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칠레를 2:0으로 잡은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는 반 할의 현실과 이상이 타협한 경기라 뽑을 수 있다. 비엘사의 제자인 호르헤 삼파올리가 이끄는 칠레를 보며 반 할은 거울을 보고있는 것처럼 느꼈을 것이다. 왜냐면 칠레의 모습은 자신이 추구하는 네덜란드의 모습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옛날이었으면 칠레처럼 똑같이 플레이하면서 응수했겠지만) 노련해진 반 할은 수비 라인을 내리고 세트 피스 상황에서 칠레의 약점인 높이를 집중적으로 공략했다. 반 할은 칠레가 경기가 약 10~15분 정도 남은 상황부터 급격하게 페이스가 떨어진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그는 이 시간대를 정확하게 노렸고 적중했다. 후반전 추가 시간에 아르연 로벤이 칠레의 수비진을 돌파해 크로스를 내줬고 멤피스 데파이가 2번째 득점을 기록했다.


경기 후 반 할은 기자들로부터 거센 질문 세례를 받았다. 네덜란드의 스타일인 공격 축구를 버렸다고 말이다. 기자의 질문에 돌아온 반 할의 대답은 이러하다 "당신이 정의내리는 공격 축구란 무엇입니까?" 


반 할의 이야기는 이러하다. 공격 축구는 쉽게 정의될 수가 없는 용어이다. 관중들의 시선에 결정되기 마련인 것이며 최근 10년간은 이전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축구를 시청하기 때문에 경기를 보는 관중들의 시선은 이전보다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전 세대에서 일컫는 공격 축구란 공을 소유하는 축구와 비슷한 맥락에서 해석되는데 지금의 축구는 그렇지 않다. 지난 2010년 우리는 독일이 가장 공격적인 축구를 구사했던 것으로 기억하지만, 사실 그들은 역습을 주 전술로 꺼낸 팀이었다. 반면 점유율을 중시하는 축구를 했던 스페인이 지루한 축구를 구사한다고 지탄 받았었다. 


반 할의 철학은 리누스 미헐스, 요한 크루이프가 주장하는 여전한 아약스와 바르셀로나의 축구가 아니다. 바이에른 뮌헨에서 보여준 반 할의 철학은 분명히 과거 네덜란드식 축구에서 파생된 것이지만 미헐스, 크루이프와 아약스 동료들이 보여준 축구에 머물러있는 것이 아니다. 반 할이 여전히 4-3-3을 선호하고 미드필더처럼 플레이메이킹을 해줄 수 있는 센터백을 선호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그는 추가적인 홀딩 미드필더를 기용하면서 4-2-3-1 포메이션을 채택하기도 했다.


이번에 네덜란드를 이끌면서 역습 스타일의 팀을 만들었지만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AZ 알크마르를 이끌던 당시 반 할은 전통적인 윙어를 두지 않으면서도 역습 위주의 팀을 만들어 팀을 에레디비지에 우승으로 이끌었다. 이번 월드컵에서 더욱 주목할 변화는 케빈 스트로트만의 부상으로 인한 스리백으로의 전환이다.


AS 로마 소속의 스트로트만은 네덜란드와 프랑스의 친선 경기에서 부상을 당했는데 이 경기가 네덜란드가 포메이션을 바꾸게 만든 결정적 계기를 만든 경기였다. 이 경기에서 카림 벤제마는 브루노 마르틴스-인디를 완전히 갈기갈기 찢어버렸는데, 이 경기로 반 할이 대표팀 수비수들이 월드 클래스 선수들과의 1:1 대결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것을 확실히 인지하게 된 것이다. 세 명의 중앙 수비수가 있으면 바로 다른 선수가 공간을 커버해줄 수 있으며 나아가 스리백을 활용하면서 5명의 수비수를 배치할 수도 있게 된 것이다. 이렇게 결정된 네덜란드의 5백을 구성하는 선수들 중 마르틴스-인디, 스테판 데 브라이, 데릴 얀마트는 페예노르트 동료로 팀에서 3명의 중앙 수비수 역할을 맡았던 경험이 있는 자원들이었다. 이들을 지도하는 감독이 반 할과 개인적 감정이 좋지 못한 로날드 쾨만이지만, 반 할은 새로운 포메이션을 팀에 안착시키기 위한 실용주의 정신으로 반 페르시와 함께 페예노르트 경기를 지켜보러 갔다. 그 후 반 할은 아르연 로벤에게 전화를 해 전통적 네덜란드식 플레이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음을 설명했다.


반 할은 이미 네덜란드를 이끌고 2002 한일 월드컵 본선행 좌절이라는 실패를 맛본 경험이 있었다. 이 때 그가 얻었던 교훈은 이런 내용이었을 것이다.'대표팀에서는 시간이 부족하다. 클럽 축구에서처럼 자신의 철학을 완전히 팀에 녹이려는 시도는 옳지 못하다' 그래서 이번 2014년에는 단기전에 알맞는 전술적 선택을 내렸고 그는 베슬리 스네이더가 최대한 창조성을 활용할 수 있도록 배려했고 로벤의 속도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특히 멕시코와의 경기에서 쿨링 브레이크를 이용해 로벤의 위치를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바꾼 것은 완벽하게 적중했다.


반 할은 수많은 네덜란드 감독들이 옳은 방식이라고 여기는 네덜란드의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있지 않다. 이번 월드컵을 통해 반 할의 전술적 유연함과 더불어 섬세한 준비성이 각광을 받고 있다. 그가 말했었듯이, 그의 관심사는 오로지 승리하는 것이다. 승리를 위해서라면 실용주의적 결단, 급진적 변화 모두를 시도할 사람이 바로 루이스 반 할이다.




출처 : http://www.theguardian.com/football/blog/2014/jul/03/louis-van-gaal-tempers-idealism-holland-strengths



by Jonathan Wilson

 

(원문은 2013년 12월 27일에 올라왔습니다.)

 

스트라이커들의 파트너십이 다시 중요해졌다.

 

근래 10년 정도는 톱 클래스팀이 두 명의 스트라이커를 기용하는걸 좀처럼 보기 힘들었다. 현대 축구에서 미드필드 장악이 굉장히 중요해져 두 명의 스트라이커를 기용한다는 것은 중앙에서의 지배력을 어느 정도 손실하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축구에서 혁신이란 부분에서 대표팀은 언제나 클럽팀에 뒤쳐질 수 밖에 없다. 그렇지만 4-2-3-1에 충실치 못했던 유로 2008 대회는 클럽팀보다 먼저 혁신을 보여줬다. 올 시즌 클럽팀들은 유로 2008 대회처럼 4-2-3-1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지않는다. 다시 공격수 두 명을 배치하는 것이 등장했다!

 

맨체스터 시티는 알바로 네그레도와 세르히오 아게로를 주전 공격수로 기용하고 있다. 두 선수가 짝을 이루는 것은 맞지만 두 선수가 동등한 라인에서 경기를 소화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정 선수가 포메이션을 4-2-3-1이라고 표현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공격형 미드필더 역할을 꾸준하게 수행하고 있지도 않다. 리버풀도 루이스 수아레즈와 다니엘 스터리지를 비슷한 방식으로 기용하고 있고 리버풀은 이를 통해 엄청난 효과를 누리고 있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는 디에고 코스타와 다비드 비야, 파리 셍제르망은 에딘손 카바니와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 유벤투스는 페르난도 요렌테와 카를로스 테베즈(유벤투스가 스리백을 활용하는 경우)를 전방에 짝을 이뤄 배치시키고 있다.

 

두 명의 스트라이커를 기용하는 것이 성공하고 있는 이유 중 하나는 수비수들이 두 선수간의 파트너쉽에 어떻게 대처해야하는지 잊어버렸다는 것이다. 두 명의 센터백이 있고 한 명의 센터 포워드가 있다면, 한 명이 대인 방어를 해주고 다른 한 선수가 추후 발생하는 상황을 커버해주는 방식의 수비가 이루어진다. 수비를 하기위한 과정이 굉장히 쉬웠는데 수비수 2명과 공격수 2명이 대결을 펼치게되면 커버를 해주는 선수가 부재하게된다. 커버를 풀백이 해줄 수도 있겠지만, 현대 축구에서 풀백들은 윙어와의 개개인 싸움을 펼쳐야하고 기회가 발생하면 매번 공격적인 움직임을 보여줘야만 한다. 게다가 많은 팀들이 경기를 풀어가기 위한 빌드업 과정에 센터백을 포함시키고 있다는 것이 두 명의 공격수를 방어하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한 선수는 사실상 플레이메이킹을 담당하고 있고 한 선수는 뒤쪽에서 수비 라인을 형성하는 임무를 부여받고 있다. 마크를 해야하는 선수는 하나 더 늘었는데 말이다. 그러면 공격 전개를 담당하고 있던 센터백은 제한을 받을 수 밖에 없다. 두 명의 공격수를 기용하는 것이 수비적인 전략에 도움이 되는 부분이 있다.

 

전방에 두 명의 공격수를 배치하는 것이 장점만 있는건 아니다. 두 명의 공격수를 기용하면 미드필드에서의 수적 열세에 놓이게 될 것이다. 올 시즌 맨체스터 시티가 이러한 문제를 아주 잘 보여주고 있는 팀이라 할 수 있겠다. 3명의 중앙 미드필더를 데리고 있는 팀은 2명의 중앙 미드필더를 기용하고 있는 팀을 상대할 때 보다 쉽게 중원에서의 우위를 차지할 수 있다. 그렇지만 숫자가 모든 것을 해결해주진 않는다. 4-4-2는 여전히 간결하고 가장 견고한 수비 구조이고 충분히 3명의 중앙 미드필더의 힘을 누그러뜨릴 수 있다. 로이 호지슨 감독의 잉글랜드 대표팀이 그러하고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역시 마찬가지다. 도르트문트는 공을 점유한 상황에서는 4-2-3-1 포메이션을 활용하지만 자신들이 공을 점유하지 못했으며 전방부터 압박을 시도하지 않는 경우엔 빠르게 4-4-2로 전환해 4명이 서있는 2개의 콤팩트한 라인을 후방에 형성한다. 2개의 선이 콤팩트하면서 공간마저 없다면 상대팀이 페너트레이션으로 공격을 풀어나가기 어려워진다.

 

시티가 자신들의 홈에서 바이에른을 상대로 공격적인 4-4-2를 꺼내들었을 때 시티는 아주 무참한 패배를 맛보았다. 반면 호지슨 감독이 잉글랜드 대표팀을 이끌 때 활용하는 수비적이고 모험심 없는 4-4-2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굉장히 답답한 블록이 있는 듯한 느낌을 주게 만든다. 포메이션은 중립적이다. 어느 포메이션은 공격적이고 어느 포메이션은 수비적이지 않다. 그 포메이션을 공격적으로 적용하느냐 수비적으로 적용하느냐가 문제인 것이다.

 

지금의 투톱은 예전처럼 정형화된 (타깃맨과 발 빠른 선수 : 존 토샥과 케빈 키건, 니얼 퀸과 케빈 필립스, 마크 헤이틀리와 앨리 맥코이스트 // 창조자와 피니셔 : 케니 달글리시와 이안 러시, 피터 비어즐리와 게리 리네커, 테디 셰링험과 앨런 시어러) 형태가 아니라 굉장히 유동적이고 창조자, 골스코어러, 타깃맨을 모두 해줄 수 있는 완전체에 가까운 선수들끼리 이루어지고 있다. 따라서 상대 수비수들에게는 더더욱 예측 불가능한 형태의 공격이 쏟아지고 있다.

 

 

압박과 점유율


티키-타카는 2012년부터 광채를 잃어가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스페인의 독무대를 지루해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2013년 반향의 가능성이 보였다. 바이에른 뮌헨과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는 챔피언스 리그에서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를 붕괴시켰고 이는 트렌드가 변화할 것이라는 상징적인 승리였다. 그렇지만 경기 스타일의 완전한 변화가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바이에른과 도르트문트도 압박을 시행했고 피치 높은 지점부터 상대에게서 공을 되찾기 위한 움직임을 보였다. 그리고 빠른 공수 전환이 도드라졌다. 스페인식 모델보다 독일식 모델은 더욱 빨랐고, 체격적으로 더욱 강인했고, 공을 뺏길 수도 있음에도 스페인의 그것보다 더 결단력있게 전진 패스를 시도하는 것이었다.

 

압박과 안전함을 최우선시하는 패스는 반드시 상관관계일 필요가 없다. 이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팀이 사우스햄튼이 아닐까 싶다. WhoSocred.com에서 산출하는 데이터에 의하면, 사우스햄튼은 프리미어리그 팀들 중 3번째로 태클을 많이 시도하는 클럽이다. 사우스햄튼이 어느 정도로 거세게 압박하는지 보여줄 수 있는 수치라 말하고 싶다. 최근 주줌하고 있는 소튼에겐 리그에서 2번째로 높은 점유율을 기록했던 시기가 있었다. 그렇지만 이들은 가장 많은 롱패스를 시도하는 팀이고 현재는 패스 성공률 부분에서 리그 10등밖에 되지 않는다. 이들은 공을 소유하면서 점유율을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에게서 효율적으로 공을 뺏어내면서 점유율을 유지하고 있다.

 

프리미어리그 팀들의 점유율 기록을 보면 흥미로운 격차가 있다. 아스날은 올 시즌 54.7%의 점유율로 리그에서 9번째로 높은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지만 점유율 부분에서 10등인 스토크 시티의 평균 점유율은 47.9%이다. 경기마다의 변칙적인 상황들이 있겠지만 이러한 수치는 프리미어리그 팀들이 2가지 분류로 나누어져있음을 보여준다. 9개 클럽들은 공을 점유하면서 싸우길 희망하고 있다는 것이고 나머지 11개 클럽들은 후방에서 상대의 압박을 흡수하겠다는 전략을 이용한다는 것이다.


펄스나인(The False Nine)

 

2013년에 투톱이 부활했고 '펄스나인'이 이전보다 덜 언급되고 있지만, 여전히 펄스나인은 충분히 거론될만한 가치가 있는 개념이다. 펄스나인에서 최고의 권위를 지니고 있는 리오넬 메시도 이제는 펄스나인으로만 뛰지 않는다. 바르셀로나에서는 상대팀의 마크 구조를 허물기 위해서 더 후방으로 내려간다던가 측면으로 나와 연계 플레이를 시도한다. 아르헨티나 대표팀에서는 정통 9번 역할을 해줄 수 있는 곤잘로 이과인이 있기 때문에 오른쪽에서 뛰고 있다.

 

메시의 부상 공백 속에서 바르셀로나는 왼쪽에서 뛰었던 네이마르를 펄스나인으로 1경기 기용했었고 유로2012에서 펄스나인 역할을 수행했던 세스크 파브레가스가 3경기를 뛰었다. 펄스나인에 대한 파브레가스의 해석은 메시의 그것과는 다르다. 파브레가스는 미드필더보다 더 후방에서 플레이하는 공격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고 그가 메시처럼 날렵한 돌파를 보여주는 것도 아니다. 다만 그는 타깃맨 역할을 수행할 뿐이다. 우리가 보통 알고 있는 타깃맨은 높게 날아오는 긴 패스나 크로스를 받아주는 타깃맨이지만 파브레가스는 땅으로 오는 패스를 받아주는 타깃맨 역할을 수행한다.

 

칠레 역시 펄스나인에 대한 다른 해석을 내고 있다. 물론 이는 움베르토 수아조가 복귀할 경우 달라질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월드컵 최종예선 기간에 칠레는 알렉시스 산체스를 오른쪽에, 에두아르도 바르가스를 왼쪽에 배치시켜 이 선수들이 '진짜 9번'이 있었어야할 위치로 돌진하는 식의 공격을 구사했고 호르헤 발디비아 혹은 마티아스 페르난데즈가 10번 역할을 수행하면서 공격형 미드필더는 9번 역할을 수행하지 않았다.

 

 

반대발

 

펄스나인이라는 개념이 발생했던 근본적 원인은 바로 반대발 윙어(Inverted winger)의 등장이었다. 등장 초기에는 생소했지만 이제는 하나의 포지션 구분으로 확고하게 자리 잡아내렸다. 왼발잡이 선수가 오른쪽에 위치하는 것은 한 때는 '잘못된' 배치라고 생각되었지만 이제는 이러한 결정이 자연스러운 귀결이라고 생각하는 시대에 이르렀다. 예를 들면, 안드로스 타운젠드는 왼발잡이지만 오른쪽에서 더욱 자신감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반대발 윙어가 진짜로 윙어가 아니라는 인식 또한 존재한다. 공격수들 중에서도 측면에 위치하여 대각선 방향으로 이동하면서 골을 기록하는 선수가 있는데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이러한 범주를 독자적으로 만들다시피했다. 이제는 네이마르도 이 범주에 속하고 가레스 베일도 지금의 기세로 득점을 올릴 수 있다면 이 범주에 포함될 것이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4-3-3 포메이션을 구사했을 때, 알렉스 퍼거슨 경은 웨인 루니를 측면에 배치시켰고 그는 루니를 측면에 배치시키는 것이 루니가 공간을 찾아내는데 더욱 도움이 되었을 것이라 판단했다. 결국 루니는 풀백과 윙어 사이, 풀백과 두 명의 홀딩 미드필더 사이의 공간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반대발 윙어를 방어하는데 있어서 최선의 방법은 풀백 역시 반대발로 배치시키는 것이다. 라파 베니테즈는 2007년 바르셀로나를 상대한 경기에서 이러한 전술적 선택의 선구자 역할을 맡았다. 베니테즈는 메시를 방어하기 위해 알바로 아르벨로아를 왼쪽에 배치시켰다. 오른발잡이인 필 바슬리, 세자르 아츠필리쿠에타 역시 올 시즌 왼쪽에서 경기를 소화하고 있다. 가엘 클리쉬 같은 경우는 앞서 말한 바와는 반대의 예시라할 수 있다. 오른발 잡이지만 왼쪽에서 뛰어왔었고 풀럼과의 경기에서 오른쪽에 배치되었을 때 물 밖으로 벗어난 물고기같은 경기력을 보여줬다. 반대발 풀백의 단점은 공격 상황에서 드러난다. 오른발잡이 선수가 왼쪽에서 오버래핑을 시도하긴 쉽지 않아 수비적인 접근이 필요할 때 반대발 풀백을 활용하게 된다. 더군다나 측면에서의 너비를 가져가기 위해서는 반대발 윙어가 있는 라인에 반대발 풀백을 두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다.

 

 

스리백


50년대 후반에서 60년대 초반에 포백이 상대팀 윙어와의 대결에 유리하다는 사실이 분명해졌고, 풀백들이 전진하면서 추가적인 공격력을 제공할 수 있다는 사실에 스리백의 인기는 사그라들었다. 80년대에 여러 팀들이 윙어를 활용한 공격을 멈추면서 다시 스리백은 축구계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상대방이 2명의 공격수를 기용할 때 3명의 수비수를 기용하면 2명이 개개인을 마크하고 여분으로 남는 한 명의 선수가 뒷정리를 하는 방식이 스리백의 장점이었다. 그렇지만 1명의 스트라이커를 두는 전략이 투톱보다 더욱 흔해지면서 스리백은 다시 자리를 잃었다. 왜냐하면 이제는 여분의 선수가 2명이나 되는 인력 낭비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이제 다시 스리백이 등장하고 있다. 윙어가 웬만해선 존재하지않는 이탈리아에서 풀백은 의미가 없다시피하다. 윙백을 배치하는 것은 전술 대결이 밀집되어 벌어지고 있는 중원의 숫자를 줄이지 않으면서도 측면에서의 위력을 더할 수 있는 방식이다.

 

또한 스리백은 수비적인 시스템으로서 활용될 수 있다. 후방에 여분의 선수를 배치시키면서 안정감을 꾀할 수 있다. 헐 시티는 공격 의사가 없다시피한 경기에서 스리백을 활용하면서 쏠쏠한 재미를 봤었고 아스톤 빌라도 비슷한 취지로 스리백을 활용하고 있다.

 

스리백을 활용하는 세번쩨 모델이 있다. 이는 토탈 풋볼의 개념을 기반으로한다. :  '1명의 공격수를 줄이는 대신 한 명의 중앙 수비수를 늘렸고 이 선수를 언제든지 미드필드로 나아갈 수 있는 리베로 역할로 활용하는 것' 따라서 상대를 압박하는 것과 공을 따내는 것은 더욱 쉽다. 따라서 상대팀이 전방에 단 한명의 공격수를 기용하더라도 스리백을 선호하는 클럽들이 있다. 두 명의 여분의 선수가 유동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것이 어찌보면 장점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는 수비수가 공을 잘 다룰 수 있는 선수여야한다는 전제 조건이 필요하다.

 

 

 

 

출처 : http://www.theguardian.com/football/2013/dec/30/jonathan-wilson-tactical-review-of-2013

 

 

 

 

 

출처 : http://www.theguardian.com/football/blog/2013/dec/27/tactical-review-strike-partnerships



by Jonathan Wilson 

 

35년간 영국 축구 최고의 감독으로 군림해온 알렉스 퍼거슨 경의 여러가지 비범한 능력들 중에서 가장 뛰어난 능력은 바로 팀의 전술을 시기에 맞춰 수정할 줄 안다는 것이다. 퍼거슨은 언제나 팀 개편을 염두에 두고 있었고 또 그것을 시행에 옮겨왔다.

 

가장 두드러졌던 개편은 2000년에 있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바로 前시즌에 트레블을 달성했고 레알 마드리드와의 챔피언스 리그 8강전을 앞둔 시점에 프리미어 리그에서 2위와 10점차 선두를 달리고 있었다. 이 레알 마드리드전은 프리미어 리그 출범 이후 처음으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게 전술적 화두를 던지는 경기가 되었다.

 

유나이티드는 마드리드 원정에서 0:0 무승부를 기록했고 다수의 사람들은 올드 트래포드에서 유나이티드가 우세한 경기를 펼칠 것이라 예상했지만, 퍼거슨은 마드리드 원정에서 너무 소극적인 경기를 펼쳤던 것이 신경쓰였다. 마드리드는 기존에 백4 시스템을 사용했으나 이 때 델 보스케는 올드 트래포드에서 3-3-2-2 포메이션을 선택하며 변화를 줬다. 두 팀 모두에게 기회가 있었으며 특히 유나이티드는 전반전 카랑카의 핸드볼에 대한 페널티킥을 보상받았어야 했고 카랑카는 퇴장당해야만 했지만 그러지 않았다. 어쨌든 레알 마드리드는 올드 트래포드에서 3골을 넣었다. 유나이티드는 2:3 스코어까지 쫓아갔고 자신들이 불운했다고 주장할 수 있겠지만 결과는 전체적인 흐름에 부합하게 나왔다. 


1996/1997시즌 유나이티드는 챔피언스 리그 준결승에서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를 만났다. 독일 원정에서 유나이티드는 0:1로 패했다. 올드 트래포드에서 만회를 노렸겠지만 이른 시간에 실점을 허용하면서 탈락하고 말았다. 다음해에 있었던 모나코와의 8강전에서 유나이티드는 프랑스 원정을 떠나 0:0 무승부를 기록했다. 그렇지만 올드 트래포드에서 또 다시 이른 시간 실점을 허용하면서 탈락의 고배를 마시고 말았다. 어느새 이른 시간에 실점을 내주는게 유나이티드의 특징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1998/1999시즌 시작부터, 정확히는 그들이 야프 스탐과 드와이크 요크를 영입하면서 그들 세대의 포메이션을 확립하게 되면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선제골을 내주더라도 좀처럼 패배하지 않았다. 스티브 맥클라렌 당시 수석코치는 "당시 우리는 결코 패배할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고 우리에게 그런 일은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라고 말했다.


퍼거슨도 "우리는 언제나 어려운 방식으로 승리를 쟁취해낸다. 이는 우리 클럽의 특징이기도 하다." 라고 말하면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그런 성향을 뛰어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란 클럽의 독특한 면에 지나지 않는다란 식으로 간주했으나 레알 마드리드에게 패배한 이후 그의 생각은 달라졌다. "레알 마드리드전 패배가 우리에게 준 교훈이 있습니다. 우리가 유럽 대회에서 상대의 역습을 방어하는 능력을 향상시킨다면 우리는 유럽 무대에서 더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습니다." 퍼거슨은 이렇게 말했다. 이전까지 15번의 득점 기회를 만들어내고 상대에게 5번의 기회를 내줬다면, 그 이후로부터 퍼거슨은 고작 5번의 기회만 만들더라도 상대에게는 단 한 번의 기회도 내주지 말겠다는 각오로 유럽 대회에 임했다. 물론 1999년부터 2007년 사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챔피언스 리그 토너먼트 경기에서 승리를 거둔건 2002년 데포르티보전이 유일하기 때문에 퍼거슨의 변화가 유효했는지 평가하긴 어려울 것 같다. 어쨌거나 퍼거슨이 경기 운영에 대한 변화를 준 것만큼은 사실이다.

 

퍼거슨은 언제나 냉철한 결정을 내리곤 했다. 1990년 FA컵 결승전 이후 짐 레이튼을 버렸고 1995년 FA컵 결승에서 패배하고 리그를 2위로 마무리 짓자 폴 인스, 마크 휴즈, 안드리 칸첼스키스를 내쳤다. 퍼거슨 경 입장에서는 신중한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이지만 다른 사람들 눈에는 급진적인 변화처럼만 보였다.

 

퍼거슨이 유나이티드의 감독으로 부임하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팬들은 그의 개혁에 크나큰 실망감을 느끼고 말았다. 팬들은 "4-4-2"를 외치면서 퍼거슨의 성과없는 팀 개혁을 조롱했다. 이에 퍼거슨은 결코 4-4-2 포메이션을 사용한 적이 없다고 말하면서 응수했다. 사실 4-4-1-1이 4-4-2에서 파생된 것이기 때문에 4-4-1-1와 4-4-2은 한 가족이나 다름없으나 퍼거슨은 그렇게 팬들의 야유에 대응했다.

 

1983년 컵 위너스컵에서 레알 마드리드를 꺾었던 퍼거슨의 에버딘은 당시 잉글랜드에서 유행하던 한쪽으로 기울어진 4-4-2 포메이션과 유사한 전형을 활용했었다. 고든 스트라칸이 오른쪽 미드필더로 위치했었고 왼쪽에서 뛰었던 피터 위어는 스트라칸보다 더 공격적인 윙어 역할을 수행했다. 에릭 블랙은 중앙 스트라이커인 마크 맥기 밑에서 뛰었다. 퍼거슨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감독으로 부임한 후 첫번째 경기였던 옥스포드와의 경기에서도 에버딘과 비슷한 포메이션으로 경기에 임했다. 클레이턴 블랙보어는 창조적인 오른쪽 미드필더였으며 동시에 굉장히 근면한 플레이를 보여줬던 선수였다. 왼쪽에서 뛰었던 피터 반즈는 현란한 유형의 선수였고 피터 데븐포트는 팀의 주포였던 프랭크 스태플레튼을 보좌하는 역할이었다.

 

그렇다고 융통성없게 퍼거슨이라는 사람이 옛날의 성공했던 포메이션만 고수했던건 아니었다. 1991년 컵 위너스컵 결승전에서 유나이티드는 바르셀로나를 상대했다. 퍼거슨 감독은 오늘날 4-2-3-1로 표현되는 전형을 꺼내들었다. 마크 휴즈는 철저하게 센터 포워드 역할을 수행했고 브라이언 맥클레어가 밑에서 휴즈를 보좌했다. 아무래도 후방에서 바르셀로나의 템포를 조절하는 로날드 쾨만을 방해하려는 심산이었을 것이다. 마이크 펠란과 리 샤프가 측면에서 힘을 보탰고 폴 인스와 브라이언 롭슨이 포백 앞에 위치했다.


그 이후 유나이티드는 측면에 발빠른 선수들을 배치시키면서 성적 향상을 이뤄냈다. 칸첼스키스, 리 샤프, 라이언 긱스와 같은 선수들이 등장했고 이들은 역습 상황에서 많은 골을 만들어냈다. 그 결과 유나이티드는 1992/1993시즌 26년만에 처음으로 리그 우승을 달성했다. 3월 노리치 시티 원정 승리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승점 2점차 선두를 달리고 있는 상황에서 우승 경쟁에 아주 큰 영향을 미쳤다. 당시 경기에는 휴즈가 징계 때문에 나서지 못했고 이에 퍼거슨은 1명의 수비형 미드필더 인스 앞에 샤프, 칸첼스키스, 맥클레어를 기용했다. 투톱을 담당했던 선수는 에릭 칸토나와 긱스였다. 유나이티드는 노리치에게 3:1 승리를 거뒀고 특히 2번째 골이었던 칸첼스키스의 골은 역습의 정석과 같은 골이었다.



그렇게 탄생한 경기 운영 철학은 1999년 유나이티드가 트레블을 달성하는데 영향을 끼쳤다. 칸토나가 떠났지만 드와이트 요크와 앤디 콜은 칸토나와 휴즈 못지않게 다이나믹한 모습을 보였다. 미드필드에는 데이비드 베컴, 로이 킨, 폴 스콜스, 라이언 긱스가 있었다. 굉장히 활발하고 창조적인 선수들이 미드필드에 배치 되었다. 그렇지만 레알 마드리드에게 패배한 이후 퍼거슨의 4-4-1-1, 4-4-2에 대한 믿음이 약해지기 시작했다.


2000/2001시즌에도 유나이티드는 이전과 비슷한 선수단과 포메이션을 유지했다. 그렇지만 유럽 대회에서는 눈에 띌 정도로 조심스러운 경기 운영을 펼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요크와 콜의 영향력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2001년 후안 세바스티안 베론을 영입해 베론을 후방에 두고 스콜스를 앞으로 전진시킨다. 루드 반 니스텔루이 밑에서 뛰었던 스콜스가 언제든지 미드필드 싸움에 가세할 수 있는 형태가 만들어진 것이다. 그런데 단기적으로 이 변화는 실패였다. 애초 스콜스는 공개적인 발언을 잘 하지 않는 선수인데 그는 자신의 새로운 역할이 맘에 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리그 타이틀을 수없이 만들어낸 라인 (긱스-스콜스-킨-베컴)을 스스로 깨버렸다. 그 변화는 프리미어 리그에서는 물론 챔피언스 리그에서도 성공적이지 못했다.


유나이티드는 크리스마스 전까지 10패를 기록했고 전지전능한 아우라를 잃어가는 듯 했다. 반 니스텔루니의 짝으로 올레 군나르 솔샤르가 낙점되었고 유나이티드는 4-4-2 포메이션으로 복귀했다. 어느정도의 위용은 되찾았지만 우승을 이뤄낼 정도의 수준에는 미치지 못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2002/2003시즌 다시 4-4-1-1 포메이션을 활용했고 스콜스는 다시 한 번 자신이 좋아하는 위치에서 벗어나 경기를 소화해야만 했다. 2002/2003시즌은 반 니스텔루이와 스콜스가 가장 최절정의 시기를 보냈던 시즌이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반등은 베론이 부상으로 명단에서 제외되면서 빠른 템포의 축구로 변환했기 때문에 이루어질 수 있었다.

 

2003/2004시즌은 4-2-3-1을 시도했던 시즌이었다. 필 네빌은 홀딩 미드필더로 기용되는 경우가 잦았다. 2004/2005시즌은 느슨한 4-3-3 포메이션을 시도했다. 라이언 긱스와 웨인 루니는 종종 측면 공격수로 경기를 소화했고 중앙으로 파고드는 움직임을 보였다. 스콜스는 속도가 느려진 킨을 도와주기 위해서 이전보다 더 후방에서 뛰기 시작했다. 두 시즌 모두 리그는 물론 유럽 대회에서의 우승이 없었다. 그 다음 시즌이었던 2005/2006 시즌에는 챔피언스 리그 16강 진출에도 실패했다. 퍼거슨이 가장 신뢰하는 몇 안되는 기자들 조차도 "세계에서 가장 용맹한 감독이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는 시점이 왔다" 라고 혹평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퍼거슨은 언제나 그래왔듯이 사람들의 예상과는 정반대의 결과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2007년 챔피언스 리그 8강전, 유나이티드는 AS 로마를 7:1로 이겼다. 유나이티드는 평소처럼 4-4-1-1 포메이션을 활용했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라이언 긱스가 측면을 담당했고 마이클 캐릭과 대런 플레쳐가 중앙 미드필더를 앨런 스미스가 최전방 공격수를, 루니가 살짝 뒤에 처진 공격수로 경기에 나섰다. 당시 로마는 스타디오 올림피코에서 있었던 8강 1차전 경기에서 2:1 승리를 거두었다. 당시 로마는 형식적인 공격수 프란체스코 토티가 미드필더로 내려오면서 사실상 공격수가 없는 형태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상대했다. 2006/2007시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밀라노 원정에서 발이 무거운 모습을 보여주며 4강에서 떨어졌다. 유나이티드는 로마를 합계 스코어 8:3으로 꺾었지만, 그 다음 시즌인 2007/2008시즌부터 AS 로마의 공격 방식을 모방했다. 호날두, 웨인 루니, 카를로스 테베즈, 라이언 긱스 혹은 나니가 2명의 홀딩 미드필더(오언 하그리브스, 마이클 캐릭, 폴 스콜스, 안데르손) 앞에서 뛰었을 뿐 어느 누군가가 분명한 최전방 공격수 역할을 수행하지 않았다. 대신 전방에 위치한 4명의 선수가 번갈아가면서 최전방 공격수 역할을 수행했다.

 

명확한 스트라이커를 두지 않는다는건 시도하기 어려운 전술이다. 그렇게 유나이티드는 2007/2008시즌 초반에 득점력 빈곤에 시달렸다. 수비수 존 오셰이를 임시방편으로 공격수처럼 기용했지만 레딩과의 개막전에서 0:0으로 비기고 말았다. 그렇지만 퍼거슨이 시도한 전술이 팀에 녹아들기 시작하자 이 전술은 위용을 뽐내기 시작했다. 루니와 테베즈의 이타적인 플레이 덕분에 호날두는 2007/2008시즌 리그에서만 31골을 기록하는 위력을 보여줬다. 

 

새로운 전술이 성공적으로 활용되고 있었지만 퍼거슨은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에서 전형적인 4-4-2 포메이션을 꺼내들었다. 당시 결승전은 1999년처럼 유나이티드에게 행운이 따른 승리였다. 퍼거슨의 전술에 대해 비판할 것이 있다면 그가 때로는 빅매치를 앞두고 과도한 생각을한다는 것이다. 당시 결승전에서 퍼거슨은 에슐리 콜을 고려하여 오언 하그리브스를 오른쪽 미드필더로 기용했다. 호날두를 왼쪽 미드필더로 기용해 오른쪽 수비수로 출전한 마이클 에시앙을 공략하겠다는 의도였다. 30분 정도는 이 전술이 효과적으로 먹혀들었고 호날두가 직접 골을 기록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 이후부터 에시앙이 계속해서 호날두를 제치고 나아가기 시작했다. 프랭크 램파드의 동점골도 그렇게 에시앙의 전진에서부터 만들어졌다. 그 이후부터 승부차기 전까지 첼시가 더 우세한 경기를 펼쳤다. 퍼거슨의 선택에 정당성을 부여한 것은 경기 내용이 아닌 결과였다. 2000년 레알 마드리드에게 패배한 이후 수비적인 시스템으로 변하지 않았더라면 그가 2번째 유러피언컵을 쟁취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2007/2008시즌부터 긱스가 후방에서 역할 수행을 하기 시작했고 따라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포메이션은 4-2-4와 4-3-3-0의 중간 형태였다. 2008/2009 시즌부터는 4-3-30에 더 가까웠다. 특히 유럽무대에서는 더 그랬고 '수비적인 공격수'를 만들어낸 선구자 역할을 했다. FC 포르투의 알리 시소코가 8강 1차전에서 지속적인 오버래핑으로 유나이티드를 힘들게 만들자 퍼거슨은 2차전에서 호날두를 중앙에 기용했다. 호날두는 올드 트래포드에서 있었던 1차전 경기에서 알리 시소코의 전진을 적절하게 제지하지 못했다. 대신 루니가 오른쪽에 배치되어 시소코의 전진을 방해했다. 유나이티드는 포르투 원정에서 비교적 쉽게 1:0 승리를 쟁취했다. 2007/2008시즌에도 루니는 바르셀로나와의 4강전에서 리오넬 메시를 막기 위해 사실상 2번째 풀백 역할을 수행하기도 했다. 박지성은 유럽 대회에서 퍼거슨 감독의 이런 요구를 아주 잘 수행했던 선수였다. 2009년 인터나치오날레와의 16강전에서는 박지성이 마이콘을 아주 인상적으로 봉쇄했다.


그렇지만 2009년 로마에서 있었던 바르셀로나와의 결승전에서 퍼거슨은 박지성의 위치를 잘못배치시켰다. 유나이티드의 4-3-3 포메이션에서 박지성은 실빙요를 마주치게 되었는데 사실 박지성은 반대편에 위치한 웨인 루니와 자리를 바꿨어야했다. 박지성이 카를레스 푸욜의 전진을 막았어야했고 루니가 푸욜보다 공략하기 쉬운 실빙요를 노려야했다. 유나이티드는 바르셀로나의 매끄러운 플레이에 0:2으로 무릎을 꿇었고 결승전 이후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까지 팀을 떠나면서 퍼거슨은 다시 한 번 팀을 개편해야하는 상황을 맞이했다.

 

출전 시간에 대한 불만이 있었던 테베즈의 이적, 들쭉날쭉하는 디미타르 베르바토프 때문에 루니는 2009/2010 시즌부터 정통 센터 포워드 역할을 수행하기 시작했다. 특히 루니는 AC 밀란을 꺾는데 선봉장 역할을 수행했다. 2009/2010 시즌은 1930년대 포워드들에게서 볼 수 있었던 파워풀한 헤더를 루니에게서 볼 수 있었던 시즌이다. 그러나 이 방식은 너무나도 옛날 축구였고 한 선수에게 과도하게 집중되는 형태였다. 챔피언스 리그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상대한 바이에른 뮌헨은 루니가 발목을 다치기 이전부터 그런 전술적 허점을 간파해 우세한 경기를 펼쳤다.


2010/2011시즌부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다시 4-4-1-1 혹은 4-2-3-1 포메이션으로 복귀했다. 하비에르 에르난데스와 로빈 반 페르시가 정통 센터 포워드의 역할을 수행했다. 또한 지난 2시즌간 유나이티드는 후방 미드필드 지역에서의 역동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꾸준하게 받았는데 퍼거슨은 때때로 필 존스를 수비형 미드필더로 기용하면서 중앙의 역동성 부족을 보완했다. 또한 루니를 보조 미드필더 형태로 사용하면서 문제를 해결해왔다.


1990년 FA컵 우승 이후, 2005/2006 시즌은 퍼거슨이 맞이한 가장 위태로운 시기였다. 그러나 이후 그는 5번의 리그 우승, 3번의 챔피언스 리그 결승 진출을 이뤄냈다. 최고 수준의 레벨에서 퍼거슨처럼 이토록 오랫동안 성공을 누려온 감독은 없었고 또한 퍼거슨만큼 경기 방식의 발전에 따라 그 변화를 잘 흡수해온 인물도 없었다.  


 


 

 

 

출처 : http://www.guardian.co.uk/football/blog/2013/may/08/sir-alex-ferguson-tactics-evolution

 



by Jonathan Wilson



때로는 팀이 보유하고있는 강점이 약점을 만들어낸다. 베슬리 스네이더는 유로 2012에서 네덜란드가 보유한 가장 위협적인 공격 옵션이었지만, 지나치게 공격적인 스네이더 때문에 전술적인 문제가 발생하기도 했다. 네덜란드전에서 자신의 장점을 뽐내며 팀을 승리로 이끌었던 호날두도 마찬가지 잣대로 바라보면, 호날두 때문에 포르투갈의 전술에 흠집이 생길 가능성도 있다.

 

호날두와 스네이더의 사례는 서로 다르다. 호날두의 경우에는 팀의 밸런스를 깨는 결과를 초래한다.

 

前 잉글랜드 국가대표였던 크리스 워들은 잉글랜드 대표팀이 프랑스를 상대로 무승부를 거둔 경기에서 수비적인 방어막 형성에는 매우 훌륭한 모습을 보였지만 수비 방어막 형성에 치우친 결과 공격력을 희생해야했다고 말했다. 워들과 리버풀에서 뛰었던 존 반스는 보비 롭슨 감독이 잉글랜드 대표팀을 이끌었던 시기에 이와같은 전술적 제약에 얽매였어야했다. 이전에 반스는 리버풀에서는 마음대로 뛰어다닐 수 있었는데, 잉글랜드 대표팀에서는 상대의 풀백을 방어하라는 지시도 받았다고 말했다.

 

호날두는 이번 대회에서 상대의 풀백을 방어하는 일은 하지않는다. 대신 모든 힘을 상대의 골문을 노리는데 집중한다. 그러나 이번 대회에서 포르투갈의 실점이 모두 측면 공격에서 나왔다는 것을 주목해봐야한다.독일의 결승골을 기록한 마리오 고메즈도 크로스를 골로 연결시켰다. 니클라스 벤트너도 측면에서 올라온 공을 머리를 이용해 넣었다. 라파엘 반 더 바르트의 득점도 포르투갈의 왼쪽 측면에서 만들어졌다.

 

아직까지 호날두는 공격적인 풀백을 만난 적이 없다. 그러나 체코와의 경기에서는 상황이 다를 것이다. 체코의 오른쪽 측면에는 게브레 셀라시에와 페트르 이라체크가 존재하며, 셀라시에는 이라체크와의 연계 플레이를 계속해서 시도할 것이다. 호날두는 코엔트랑과 함께 측면을 방어해야한다. 필립 람과 로벤이 챔피언스리그 준결승 1차전에서 코엔트랑을 고립시켰던 것처럼 이라체크와 셀라시에도 비슷한 시도를 할 것이다.

 

호날두는 왼쪽에 배치되길 선호하는 선수지만 포르투갈의 최전방 자원이 부족하다는 것을 고려해본다면 센터 포워드로 나서도 괜찮을 것이다. 그리고 코엔트랑의 앞을 보호해줄 다재다능한 선수가 왼쪽 측면에 배치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수비가담을 하지않는 호날두가 센터 포워드로 나선다면 팀의 전체적인 구조도 깨지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네덜란드와의 경기에서 호날두가 기록한 2골도 호날두가 중앙에서 움직일 때 만들어졌다. 호날두의 공격 치중이 팀의 수비적인 부담을 가중시키는가? 라는 질문에는 '아니오' 보다는 '예'라는 답이 더 맞다고 느껴진다.

 

반면, 스네이더의 경우에는 더 근본적인 문제를 발생시킨다. 스네이더의 문제는 지난 시즌부터 분명해지고 있다. 현대 축구에서 스네이더와같은 공격형 미드필더는 4-2-3-1 에서만 자리가 있다. 과거의 스네이더는 지금과는 다른 선수였다. 아약스의 4-3-3에 맞춰서 성장한 스네이더는 전형적인 네덜란드식 공격형 미드필더였다. 그러나 스네이더가 월드컵에서 5골을 넣은 이후로부터 그는 더 이상 상대를 쫓아다니질 않는다. 스네이더는 인테르에서 측면에 배치되자 불평을 했고, 이제는 뒤에 두명의 홀딩 미드필더가 존재해야지 빛나는 선수가 되어버렸다. 측면에 위치한 이브라힘 아펠라이와 아르옌 로벤의 수비가담도 없었고 홀딩 미드필더로 배치된 니겔 데 용과 반 봄멜이 탁월한 기술적 재능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네덜란드의 공수는 분리될 수밖에 없었다. 단지 분리된 수준이 아니라 팀 전체적으로 보면 장애가 있는 모습이었다.

 

18살의 예트로 빌렘스는 호된 메이저 무대 신고식을 치렀다. 네덜란드의 문제는 선수 개개인의 약점이 뚜렷했다기보다는 하나의 팀으로 뭉치지 못했다는 것이다. 남아공에서 수비 가담을 해주고 미드필더와 공격수간 연결고리 역할을 수행한 디르크 카윗의 역할이 상당히 과소평가되었다고 볼 수 있다. 남아공에서는 당시 35세였던 지오반니 반 브롱크호스트도 왼쪽 측면에서 공격 가담을 통해 네덜란드의 공격력을 배가시켰다. 보통 데 용과 반 봄멜에게 비난의 화살이 가겠지만, 네덜란드의 문제점은 전방에 위치한 선수들의 수비가담 부족과 풀백들의 공격 가담 부족이었고 만약 그런 움직임이 있었다면 유기적인 움직임이 만들어졌을 것이다.

 

앞으로 반 마르바이크 감독이든 그를 대신할 감독이든, 그들이 직면해야할 문제는 스네이더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일 것이다. 포르투갈과의 경기에서 네덜란드는 반 봄멜 대신 라파엘 반 더 바르트를 후방에 배치시켜 창조성은 강화시켰지만, 수비적인 약점을 더 노출시켰다. 패스 능력과 운동량을 동시에 갖춘 케빈 스트로트만이 아주 적합한 대체자가 될 수 있겠지만, 앞으로도 전방에 위치한 4명의 선수들이 수비가담을 소홀히 한다면 문제는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다. 로벤을 공격에 치중하도록 만들어주려면 4-3-3 포메이션을 활용할 필요성이 있고, 요한 크루이프는 마르코 반 바스텐 감독이 유로 2008을 앞둔 시점에 포메이션을 바꾸자 4-3-3 포메이션을 사용하라고 충고하기도했다. 현대 축구에서 스네이더에게 알맞는 포메이션을 찾아주는 것이 쉽지가 않다.

 

스네이더는 네덜란드 대표팀에서 가장 창조적인 선수여왔다. 그러나 네덜란드가 공격을 더욱 날카롭게 만들기 위해서는 스네이더를 희생시킬 필요가 있다.

 

 

 

출처 : http://www.guardian.co.uk/football/blog/2012/jun/19/euro-2012-freedom-star-player

 



by Jonathan Wilson (본문은 2015년 4월 3일에 작성되었습니다)


어린 재능이 등장했다. 써보니까 그저 잘하는 선수가 아니라 정말 뛰어난 재능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다른 클럽에서 이 선수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이 어린 재능이 더 많은 주급을 요구하면서 자신의 소속팀과 협상을 펼치기 시작한다. 자본주의적 시각에서 바라보면 결코 이상할 것이 없는 스토리다. 그러나 현재 라힘 스털링과 리버풀이 당면하고 있는 상황은 에미레이츠 스타디움에서 아스날을 상대하는 일정보다 더 큰 주목을 받고 있다.


리버풀 입장에서 이번 아스날전은 사실상의 마지막 기회처럼 여겨진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승점 5점차로 4위에 위치해있다. 물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맨체스터 시티, 첼시, 아스날과의 경기를 남겨두고 있지만 (리버풀이 아스날에게 패배하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빌라를 잡으면서) 8점차로 승점이 벌어질 경우, 남은 7경기에서 그 격차가 줄어드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 된다. 게다가 리버풀은 단 한 경기도 미끄러져서는 안 된다.


리버풀보다 승점 6점이 많은 아스날은 확실한 상승세를 타고 있으며 앞으로 다가오는 2경기에서 승리를 거둘 경우, 3주 후에 만나는 첼시와의 홈경기를 우승 가능성에 대한 희망을 품으면서 대비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난 3~4개월간 리버풀과 아스날은 굉장한 행보를 이어왔다. 미켈 아르테타, 마티유 드뷔시, 알렉스 옥슬레이드-체임벌린, 아부 디아비, 대니 웰백은 리버풀전에 나설 수 없지만 아스날은 최초로 풀스쿼드가 정상적으로 훈련에 참가하는 기이한? 현상을 맞이했다. 시즌 막바지라는 굉장히 중요한 시기에 리버풀과의 시합을 앞둔 아스날에게 굉장한 추진력을 불어넣어줄 반가운 소식이다.


스티븐 제라드와 마틴 스크르텔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전에서의 행동으로 아스날전에 나설 수 없는데 스털링의 행보는 리버풀의 또 다른 근심거리임에 틀림없다. 스털링은 구단 측에서 별도로 승인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 BBC와의 인터뷰를 통해 재계약과 관련된 자신의 입장을 발표했다. 분명 리버풀 팬들은 스털링이 구단에 잔류하길 희망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 안필드에는 경종의 소리가 울리고 있다. 


리버풀은 리그 18회 우승으로 잉글랜드 축구 역사상 2번째로 성공적인 커리어를 보유한 클럽이다. 또한 유러피언 컵/챔피언스 리그 우승 5회로 이 부분에서 유럽 3위에 해당하는 기록을 보유한 클럽이다. 그러나 현대 축구의 기준인 '부'라는 관점에서 리버풀은 전혀 이와같은 위상을 보유하고 있지 못하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와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와 마찬가지로 이는 한층 넓은 범위의 전쟁이다. : 만약에 혁신적인 감독이 이끌고 있는 굉장한 정통을 보유한 클럽이 클럽 최고의 선수를 붙잡지 못한다면, 슈퍼 클럽의 금전적 제안이 너무나도 우수해서 그 선수를 붙잡을 수 없다면, 최고 레벨의 축구는 아마 6개 클럽 카르텔의 전유물이 될 것이다. 


지난 여름 루이스 수아레즈를 떠나보낸 것도 마찬가지의 맥락이다. 소란스러웠던 잉글랜드에서의 커리어도 분명 이적을 결정하게 된 이유지만 바르셀로나가 히스패닉 문화를 제공할 수 있다는 것 역시 수아레즈를 유혹하는 하나의 원인이었다. 리버풀은 스털링에게 주급 £100,000을 제시했다. 현재 받고있는 금액의 3배를 제시한 것인데 20살 스털링은 이를 거절했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다른 클럽에서 스털링에게 무려 £180,000을 제시했다고 한다.


스털링 역시도 어린 선수들에게 풍부한 기회를 제공하려는 로저스 감독의 의도가 자신의 성장에 큰 역할을 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을 것이다. (어린 잉글랜드 출신의 재능을 데리고 있으면서 좀처럼 이 선수들을 기용하지 않는 것은 잉글랜드 빅클럽들의 분명한 문제점이다. 아담 존슨, 잭 로드웰, 마이카 리차즈, 스캇 싱클레어같은 선수들이 적절한 예시다) 그러나 계속되는 스털링을 모셔가려는 다른 클럽들의 움직임, 지금보다 더 많은 금전적 보상을 원하는 스털링의 의도는 분명하다.


스털링 에이전트의 역할은 굉장히 중요할 것이다. 리버풀 입장에서 최선의 방법은 스털링을 잔류하도록 설득하면서 다음 시즌 챔피언스 리그 진출권을 획득하는 것이다. 챔피언스 리그 진출권은 리버풀의 퀄리티를 입증하는 것뿐만 아니라 스쿼드를 보강하기 위한 추가적인 자금 투입을 원활하게 만들 것이다. 유나이티드에게 패배하기 이전까지 13경기에서 무패행진을 기록해온 것은 정말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13경기 무패행진으로는 부족하다.


앞으로 다가올 6주간의 일정과 그에 따른 결과는 2014-2015시즌의 리버풀 성적에 결정적일 뿐만 아니라 로저스 감독 프로젝트의 미래에도 굉장히 중요한 영향을 행사할 것이다. 



출처 : http://www.si.com/planet-futbol/2015/04/03/arsenal-liverpool-raheem-sterling-brendan-rodgers-ep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