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Jonathan Wilson


점유율 축구를 상대로 엄격한 수비조직력과 빠른 역습이 승리를 거둔 것은 축구 전술의 또 다른 진보를 암시하고 있다.


사람들은 언짢아하고 있다. 바이에른 뮌헨처럼 계속해서 공을 지켜내면서 점유율을 유지해 끝내는 상대를 굴복시키려는 팀, 첼시처럼 수비를 깊숙히 내려 의도적으로 상대팀이 공을 소유하게 만들고 그걸 끊어내 역습만 시도하는 팀을 보는 것에 만족하고 있지 못하다. 지난 챔피언스 리그 4강전이 열린 경기에서 많은 사람들은 바이에른 뮌헨처럼 주도적인 경기를 펼치는 축구, 첼시처럼 수동적인 축구 모두에 재미가 없다는 평가를 내렸다.


주도적인 축구, 수동적인 축구 모두 다 재미없다는 말은 문자 의미 그대로는 모순적이라 할 수 있지만, 문자 그 자체의 의미를 벗어나면 실제로 그러하진 않다. 우리는 극단의 시대에 살고 있다. 바르셀로나가 펩 과르디올라 감독 아래서 티키-타카 축구를 시작했을 때, 그들은 전례없는 수준의 점유율을 보여줬었다. 아리고 사키가 이끈 밀란 이후, 약 20년만에 처음으로 등장한 압도적 점유율을 기록하는 팀이 등장한 것이었다. 그렇지만 사키의 밀란과 펩의 바르샤는 다른 철학을 지니고 있다. 포지션을 살짝 뒤트는 것, 1명의 센터포워드를 조금 더 후방으로 내리는 것, 풀백을 조금 더 전진시키는 것 정도의 차이가 아니라 두 축구는 완전히 다른 축구이다. 과르디올라의 철학은 사키의 그것과는 다른 완전한 새로운 스타일이라 할 수 있다.


과르디올라가 더 이전세대의 극단적 축구였던 토탈 풋볼에서 자신의 철학의 기본적인 색채를 가져왔다는 것은 분명하다. 특히 바르샤의 특정 선수들은 자신들만의 독특한 스타일인 라 마시아를 거쳐 1군 무대에 데뷔하기 때문이고, 과르디올라가 다소 공상가적인 감독인 부분도 있으며, 작지만 보다 기술적인 선수들이 풍부해진 상황, 오프사이드 규정의 완화로 인해 효율적인 플레이 범위가 보다 증대되었다는 것들은 과르디올라가 토탈 풋볼에서 자신만의 축구 철학을 만들어낼 수 있도록 만들었다.


토탈 풋볼(totaalvoetbal)이라는 단어는 70년대 초반 네덜란드에서 처음 등장했는데, 70년대 totaal 이라는 가치관은 네덜란드의 문화관 특히 건축쪽에서 두드러진 현상이었다. 건축 분야의 전문가인 JB 바케마가 주장하길, 당시 네덜란드의 건물들은 각각의 고유한 특징을 지녔지만, 전체적인 주변 환경을 고려해 주변과 조화되는 건물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바케마의 주장은 축구에도 적용이된다 : 선수들은 팀의 시스템을 이해하면서 자신들의 포지션을 인지하고 있다. 플레이하면서 위치가 변경되지만 선수들은 계속해서 전체적인 그림을 인지하며 자신의 위치를 재조정한다. 네덜란드에서 만들어진 토탈 풋볼은 네덜란드에서만이 아니라 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어느 선수이건 모든 것을 시행할 수 있다는 의미를 전세계에 던졌다 : 수비수도 공격을 할 수 있고 공격수도 수비를 할 수 있다.


티키-타카는 높은 수비라인, 지속적인 포지션 변화, 점유율을 통해 경기를 지배할 수 있다는 것, (토탈 풋볼의 특징과는 거리가 조금 있지만)모든 것은 패스로 이루어질 수 있다는 철학을 토탈 풋볼과 공유하고 있다. 센터 포워드는 팀 움직임의 유동성 증가와 공이 움직일 수 있는 추가적인 선택지를 늘리기 위해 과르디올라 감독 아래서 펄스 나인(false nine)으로 변형되었고, 풀백은 이전보다 더 높은 위치에서 경기를 펼치기 시작했으며, 미드필더들은 후방에서부터의 패스가 중요시되면서 수비수로 기용되기도 했다. 심지어 골키퍼는 후방에서 이전보다 더 많은 볼터치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한동안 우리는 티키-타카에 어떻게 대응해야하는지를 몰랐다. 첼시가 2009년 챔피언스 리그 4강전에서 바르샤를 탈락 직전까지 몰고 갔기에 우리는 프리미어리그 클럽의 뛰어난 신체조건이 티키-타카를 막게해줄 것이라 믿었다. 그렇지만 결승전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아무 것도 해보지 못하고 패배했다. 그 다음시즌 조세 무리뉴가 이끈 인터나치오날레가 바르셀로나를 잡았다. 이 승리는 티키-타가를 대응하는데 있어서 아주 획기적인 승리였다. 인테르가 어느정도 운이 좋았던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이 경기에서 바르셀로나는 경기 도중 창의성을 잃어버리고 사이드로 향하는 패스를 줄이면서 수직적인 축구를 구사했다. 물론 바르샤가 평소에는 넣었을만한 기회를 이 경기에서는 넣지 못했고 특히 보얀 크르키치의 슈팅은 득점으로 연결되었어야했지만, 이 경기가 우리에게 가르쳐준 사실은 분명하다 : 극도의 점유율 축구는 극도로 점유율을 포기한 축구에 패배할 수 있다. 


이제는 과르디올라와의 정반대 축구로 대조되는 조세 무리뉴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조세 무리뉴는 레알 마드리드에서 높은 수준의 팀을 상대할 때 다음과 같은 매뉴얼을 활용했다고 한다. 특히 원정 경기에서 말이다.



1) 경기는 실수를 적게하는 팀이 승리하게 되어있다.

2) 축구는 상대팀에게서 더 많은 실수를 이끌어내도록 해야한다.

3) 원정 경기에서 우리는 상대보다 우수한 경기를 펼치려고 노력하기보다, 그들이 실수하도록 만들어야한다.

4) 어떤 선수가 공을 가지고있던간에 그 선수는 실수할 가능성이 더 높다.

5) 점유율을 포기하는 선수는 실수를 범할 가능성이 줄어든다.

6) 공을 가지고 있는 선수는 실패할까봐 두려워하게 되고, 그렇지 않은 선수는 두려울게 없어서 더욱 강해진다



무리뉴는 첼시를 이끌고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와의 챔피언스 리그 4강 1차전, 리버풀과의 리그 경기에서 위의 철학을 그대로 실행했다. 다소 다른 형태지만 다른 팀들도 무리뉴와 비슷한 철학을 공유했다. 레알 마드리드는 홈과 원정 구분할 것 없이 바이언을 상대로 기꺼이 수비 라인을 내렸고 카운터를 다시 카운터로 때리지 않는 바이언의 속성을 그대로 이용했다. (UEFA 기술 보고서에 따르면, 2005-2006시즌 전체의 득점의 40%가 역습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역습의 비중은 지난시즌 27%까지 떨어졌다고 한다. 지난 10년간 공격에서 수비로 효율적으로 전환하는 것이 급격하게 전환되었다는 소리다) 더불어 과르디올라가 이끄는 팀의 취약부분 중 하나인 세트 피스에서의 부주의도 레알의 승리를 도왔다고 볼 수 있다. 선수를 마크하고 공중전을 이기는 선수보다 패스 능력이 출중한 선수를 우선 기용하는 과르디올라의 성향이 세트 피스 상황에서 그의 팀의 결점으로 드러나곤 한다.


첼시에 다시 부임한 이후 이전보다 공격적인 축구를 구사하던 무리뉴 감독은 시즌 도중에 다시 수비적인 경기로 전환하기로 마음먹었다. "우리 팀은 수비 라인을 더 안정화시키기 위해서 뒤로 물러나서 경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더 많은 역습을 시도해야하는건 제가 원하던 바가 아닙니다. 그렇지만 저는 심사숙고하고 결정을 내렸습니다. 제가 만약 1:0으로 경기를 이기겠다고 마음을 먹는다면 저는 제가 그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1:0 승리를 만드는 것은 축구에서 가장 쉬운 일 중 하나입니다. 선수들이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기회를 억제하면 되기에 그다지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무리뉴는 선더랜드와의 캐피탈 원컵 8강전을 끝내고 나서 이렇게 말했었다.


선더랜드와의 경기가 끝나고 9일 뒤 펼쳐진 아스날과의 경기에선 0:0으로 경기가 끝났고  그 때부터 첼시엔 새로운 색깔이 입혀졌다. 상대팀은 공격적인 첼시에 대해 준비했으나 첼시는 그러하지 않았고 첼시의 시즌 도중 변화는 아주 큰 효과를 불러일으켰다. 무리뉴는 리버풀과의 경기를 수비적인 마인드로 준비했고 선수들은 무리뉴가 준 미션을 완전히 수행했다. 경기 후 무리뉴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저는 미디어들이 정의하는 수비적인 플레이가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수비적인 자세로 나서서 정말 잘 막아낸다면 당신들은 그걸 수비적인 플레이라 말하겠죠. 그렇지만 (수비적인 자세로 나와도) 좋은 수비를 보이지 못해서 2~3골을 실점한다면 수비적인 플레이라 말하지 않을 것 입니다."


그렇지만 AT와의 챔피언스 리그 4강 2차전은 첼시의 수비가 문제점을 노출한 날이었다. 에당 아자르는 후안프란을 내러벼뒀고 결국 후안프란의 오버래핑은 AT의 동점골로 이어졌고 첼시는 다시 쫓기는 입장이 되어버렸다. 무리뉴는 골을 넣기 위해 사무엘 에투를 두번째 스트라이커로 투입했는데 에투가 페널티킥을 내줬다는 사실을 떠나서 에투는 기꺼이 미드필더가 되려하지 않았다. "(에투의 투입은) 우리 팀이 5명의 미드필더를 활용할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우리에겐 더 많은 공간이 생겼고 경기를 지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에투가 투입된 후 12분만에 아드리안 로페즈를 빼고 라울 가르시아를 투입한 디에고 시메오네 감독이 말했다.


과르디올라의 철학이 녹아든 팀과 무리뉴의 철학이 녹아든 팀이 만나면, 한 팀은 공을 계속해서 점유할 것이고 다른 한 팀은 공을 잡는 것에 전혀 관심이 없을 것이다. 한 팀이 75~80%의 점유율을 기록하겠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부분이다- 실질적으로 경기를 지배한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기존의 체계와 새로운 체계가 맞붙는 것은 진화의 자연스러운 부분이다. 하나의 특징(극도의 점유율)이 등장하고 그에 반대되는 특징(극도의 점유율 포기)이 등장해 대결을 펼친다. 그러다 어느 선에서 두가지 특징이 통합될 것이고 다수의 클럽은 그렇게 통합된 방식의 축구를 구사하게 될 것이다. 두가지 양극단의 축구는 현재 그다지 사람들 입맛에 맞지않는 것 같다. 극도의 점유율, 극단적 점유율 포기가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가 없는 것은 앞으로 전술적 발전에 영향을 줄 요소를 암시하고 있다 : 물론 다수의 팬들은 승리하는 것을 최우선의 가치로 두고 있지만, 축구가 세계화되면서 해외에서 경기를 시청하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는데 이들은 현지인들보다 덜 충직한 팬들이다. 이들과 광고주들에게 더욱 어필하기 위해서는 미학적인 축구가 더 좋은 선택지가 아닐까?


필자는 바이언이 챔피언스 리그에서 탈락한 이후 과르디올라 감독을 향한 비난 여론이나 티키-타카가 죽었다는 식의 반응에 대해 의아하게 생각한다. 과르디올라가 지난 5시즌간 감독으로서 수많은 타이틀을 획득한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슈퍼 클럽들이 유럽 무대를 장악하고 있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과르디올라의 업적은 정말 대단한 것이다. 지난 시즌의 바르샤가 바이언에게 패배했고 올 시즌의 바이언이 레알 마드리드에게 패배했다고 티키-타카에 대해 평가절하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전술에는 절대적 옳고 그름이 없으며 완벽한 공식이란 있을 수 없다. 전술 이론가들은 과거의 연금술사처럼 모든 것을 설명해줄 수 있는 단 한가지 요소인 에테르(고대,중세 철학에서의 제 5원소)를 찾는 사람들이 아니다. 전술적 사고에는 진화와 한 단계의 발전이 있을 뿐이고 모든 요소들이 어우러져서 전술이란 것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앞서 언급했던 바케마씨도 서로에게 연관되어있지 않은 것은 없다라고 주장했다. 바르셀로나 선수들의 기술적 우수성, 상대팀이 여전히 오프사이드 규칙 변화에 적응하고 있었다는 점, 자신들만의 플레이를 펼치기 위한 높은 집중력이 모두 어우러져 티키-타카가 바르셀로나에서 성공적으로 구사되었던 것이다.


바르셀로나가 정점으로부터 내려온 것에는 집중력 저하가 한 몫을 했을지도 모른다. WhoScored.com의 통계를 참고하면, 리오넬 메시가 태클이나 가로채기로 공을 다시 탈취하는 횟수는 2010/2011시즌 경기당 2.1회에서 올 시즌 0.6회로 줄어들었다. 바이언도 레알 마드리드를 상대하는 경기에서 집중력과 열의가 레알만큼은 아니었다. 아니면 지난 2시즌간의 성공적인 행보로 헝그리 정신이 부족했다거나, 리그 우승을 너무나 빠르게 확정지으면서 최고조의 집중력을 발휘하기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물론 과르디올라가 전술적으로 잘못된 선택을 내렸을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다. 


지난 2012/2013시즌 바이언이 챔피언스 리그 4강에서 티키-타카를 붕괴시켰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간혹 있는데, 그와 똑같이 올 시즌 티키-타카의 색채를 입은 바이언에 그와같은 논리를 적용시키는 것은 아주 큰 시행착오라고 생각한다. 지난 2012/2013시즌의 바이언은 바르셀로나처럼 굉장히 주도적인 축구, 점유율을 기반으로하는 축구, 바르셀로나전을 제외하고는 모든 경기에서 상대보다 점유율 우위에 있었던 팀이다. 지난 시즌 바이언보다 자국리그에서 더 높은 점유율을 기록한 클럽은 유럽 톱5리그 클럽들 중에선 바르셀로나가 유일하다. 챔피언스 리그 무대에서만의 점유율을 놓고 보았을 때도 바이언보다 높은 점유율을 기록한 팀은 바르셀로나가 유일했다. 유프 헤인케스 감독은 바르셀로나가 자신들보다 공 점유에 더 능숙한 팀인 것을 인정했던 것이고 바르셀로나를 상대하기 위해 수동적인 전술을 선택해 큰 성공을 거둔 것 뿐이었다.


그 어떠한 것도 티키-타카가 하나의 전술로서 생명을 다했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 어떠한 사실도 더 이상 여러 클럽들이 점유율을 통해 경기를 지배하는걸 포기한다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2010년 인테르의 축구, 2012년 바이언과 바르샤를 상대한 첼시의 축구는 수동적인 전략을 선택하는 팀이 티키-타카를 상대로 극단적인 전술을 꺼낼 수 있다는걸 보여준 사례일 뿐이다. 2009년, 2011년에는 아무도 바르셀로나의 탁월함을 막지 못했지만, 2010년의 인테르와 2012년의 첼시는 그들을 막았다. 1973년 유러피언 컵 결승전 이후 아약스 세대가 해체된 이후, 바르셀로나처럼 높은 수비 라인과 압도적인 점유율을 보여준 팀은 없었다. 토탈 풋볼도 그러하고 과르디올라의 바르셀로나도 그러하듯이, 특정 부류의 선수들과 환경 그리고 시대가 어우러져 특정한 방식의 플레이 방식이 만들어진 것이다. 토탈 풋볼이 축구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듯이 과르디올라의 바르셀로나도 마찬가지로 축구계에 영향을 끼쳤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같은 스타일이 앞으로도 계속해서 트렌드를 지배할 것이냐는 질문은 또 다른 이슈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진화의 바퀴는 한 번 돌기 시작하면 거꾸로 가는 일은 없다시피하다.




출처 : http://www.theguardian.com/football/blog/2014/may/01/the-question-is-this-the-end-for-tiki-taka-football





by Omar Saleem 


누군가에게 있어서 루이 반 할이란 인물은 지난 20년간 엄격한 형식을 위해 화려함을 희생하는 출중한 감독이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심각할 정도의 원칙주의자로 여겨지며 팬들과 선수들로부터 거리를 만드는 인물로 여겨지고 있다. 당신이 루이 반 할에 대해서 어떤 입장을 취하고 있던간에 현대 축구에서 루이 반 할이라는 인물이 불화를 일으키는 감독 중에 한 명이라는 사실은 부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우리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감독은 7번의 리그 우승 타이틀, 4번의 유러피언 트로피를 획득한 감독이고 경험이 부족한 네덜란드 선수들을 데리고 월드컵 3위로 대회를 마감한 인물이다. 국내 컵대회 우승과 반 할 감독을 향한 긍정적인 코멘트들을 종합해보면, 그를 깎아내리는 평판들은 하찮아보일 수도 있다. 도대체 어디에서부터 불화가 시작되는 것일까?


1991년 10월 20일로 돌아가보자. PSV는 필립스 스타디움에서 라이벌 아약스와 경기를 앞두고 있다. 에레디비지에 5라운드에서 두 팀이 대결을 펼치게 되었고 새로운 감독 루이 반 할 아래서 인상적인 시즌 스타트를 기록한 아약스는 홈팀 PSV의 축제를 망치고자 한다.


자유롭게 유기적이며 모험적인 아약스 축구는 반 할 아래서 조직적이고 밸런스 있는 접근에 기반한 축구로 변했다.  아약스의 플랜은 아주 명확했다 : PSV가 활용할 공간을 죽여 호마리우가 경기에서 영향력을 미치지 못하게 하는 것. 이 경기는 루이 반 할이 데니스 베르캄프에게 후방으로 내려와서 상대의 패스 길목을 차단하라고 지시한 첫번째 경기다. 더불어 베르캄프가 공개적으로 반 할 감독의 수비 가담 요구에 어깨를 으쓱이며 달갑지 않음을 공개적으로 표현한 경기이기도 했다.


그 날부터 루이 반 할의 매니지먼트 성향이 급격히 변하기 시작했다. 더불어 리누스 미헐스, 요한 크루이프가 아약스에 심어놓은 화려한 축구 역시도 냉철한 강철 튤립(Iron Tulip, 반 할의 별명) 루이 반 할에 의해  변하게 되었다. 물론 어느 정도의 과장이 있는 표현이다. 그러나 de Godenzonen(아약스의 애칭, 신의 아들이란 의미)에서 반 할이 남긴 분열은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유효하다. 반 할에 대한 베르캄프의 의견은 아주 명확하다. 1993년 암스테르담을 떠나 인테르로 향한 베르캄프의 결단은 반 할의 코칭 스타일에 반기를 드는 첫번째 행동이라 할 수 있다. 이는 반 할에 대해 베르캄프의 자서전 <Stillness and Speed>에 자세하게 서술되어 있다. 


"물론 반 할은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반 할 스스로가 보급시켰다고 생각하는 축구는 크루이프와 벵거의 축구이기도 하다. 반 할의 방식이 다른 것일 뿐이지 그게 전부다. 크루이프의 코칭 스타일은 자신이 선수였을 때 어떻게 했는가에 기반한다. 모험적이고 볼거리 풍부하고 공격적인 모습 말이다. 그에게 분석은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 그는 본능에 충실하고 기술을 중요시한다."


"루이는 남을 가르치고 싶어한다. 그는 시스템이 돌아가게 하기 위해서 선수들에게 지시를 내린다. 그에게 시스템은 아주 성스러운 것이다. 반 할에게 모든 선수들은 평등하다. 빅네임이란 것은 그에게 결코 존재할 수가 없다. 모든 구성원은 팀과 시스템, 정확히 이야기하면 그의 시스템의 부속물이다. 크루이프는 위대한 선수들에게 개인주의자가 되도록 독촉했다. 왜냐면 그들 스스로가 경기를 결정지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반 할은 결코 그렇게 내버려두지 않는다. 왜냐면 그건 그가 추구하는 방식에 어긋나는 것이거든."


"그런데 이렇게 생각해보자. 10명의 평범한 화가가 있고 1명의 렘브란트가 있다고 하자.  당신은 렘브란트에게 "어짜피 너도 다른 10명과 다를 것이 없어"라고 말하며 다른 평범한 10명의 화가들과 동등하게 대할 것인가? 스스로 독창적인 상상을 펼치지 못하게 막을 것인가? 아니면 그에게 특별하다는 인상을 심어주어 우수한 작품이 나올 수 있도록 유도할 것인가?"


베르캄프의 이야기는 팀을 중심으로 생각하는 반 할의 방식을 보여준다. 크루이프는 트레이닝에 대해 굉장히 자유로운 생각을 가진 인물이고 경기에서 아주 사소한 부분에 신경을 쏟는 인물이었다 : 개인의 퀄리티, 테크닉, 점유율과 압박. 반면에 반 할의 방식은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구조와 형태의 패러다임이 우선이다. 아마 이러한 이유 때문에 유명 선수들이 반 할 밑에서는 뛰기 까다롭다고 느끼고 있지 않을까 한다.


아약스에서 237경기 122골이라는 우수한 득점 기록을 남겼음에도 베르캄프는 반 할의 권위적인 지도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사실 베르캄프와 반 할 사이의 이런 미묘한 감정은 바르셀로나에서 드러난 반 할과 히바우두 사이의 갈등과 결코 비교되기 어려운 수준이다.


68.7%의 승률을 기록한 아약스를 떠나게 되었고 그는 유럽에서 가장 많은 구애를 받는 감독이 되었다. 아약스에서 6년간 11개의 우승을 차지했고 아약스의 주요한 역사 한 페이지를 장식하게 되었다. 트로피는 물론이고 다수의 선수들이 아약스가 자체적으로 배출해낸 선수라는 것 역시 의미가 컸다. 일부 사람들은 6년 사이에 단 1차례만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기록했다는 것이 완벽한 실패라고 주장하지만 그건 당시 세리에A의 강세, 잉글랜드에서 부상하고 있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당시에도 여전히 막강했던 레알 마드리드, 바르셀로나의 존재를 아주 완벽히 간과한 잘못된 의견이라 할 수 있다.


1992년 유러피언 컵 우승을 비롯해 1991년부터 1994년까지 4연속으로 라 리가 타이틀을 안겨줬고 현재의 바르셀로나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강력했던 팀을 이끌었던 감독 요한 크루이프는 미래를 위한 틀을 만들고 있었다. 칸테라에 미치는 크루이프의 영향력은 아주 상당했고 이 시스템을 거쳐서 성장하는 선수들의 테크니컬 퀄리티를 향상시키기 위한 트레이닝 프로그램 마련에 크루이프는 열정적으로 참여했다. 당시보다 더 많은 선수들을 자급자족하기 위한 노력이었던 것이다. 또한 네덜란드식 코칭 방법을 적용해 클럽은 스페인 전역, 특히 바스크 지역으로 스카우터를 점차 파견하기 시작했고 그 인원 수를 더욱 늘리게 되었다. 라틴 아메리카 역시 마찬가지로 스카우터를 파견하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크루이프의 장기적인 관점에 바탕을 둔 결정이었던 것이다.


크루이프는 끝내 1996년 바르셀로나를 떠나는데 그는 다양한 방면에서 클럽 운영의 컨셉을 잡아주고 팀을 떠나게 되었다. 클럽 아카데미의 코치 수급 방식, 인프라까지 개선해 놓았고 여기에서 크루이프가 아끼던 제자이자 홈그로운(home-grown), 바르셀로나 스타일로 철저하게 훈련이 된 펩 과르디올라가 배출되었다.


반면 크루이프와 달리 반 할이 아약스를 떠났을 때, 사람들은 테크닉을 중요시하는 트레이닝과 토탈 풋볼(totaalvoetbal)이 반 할 아래서 엄격한 규율에 따라야하는 구조에 기반하는 트레이닝으로 바뀐 것을 비웃었다. 크루이프는 자신의 방식을 바꿔놓은 반 할의 코칭 스타일에 대해 곱지않은 시선을 보냈다.


"우리는 축구를 바라보는 방법에 대해 나쁜 버릇을 가지게 되었다. 그의 방식으로 선수들을 훈련시키는 것은 축구장 피치 위에서 시도해야하는 것이 아닌 사무실에서나 시행되어야할 방법이다." 


반 할은 바르셀로나에서 메이저 스타들을 다루는 방식으로 인해 감독직에서 물러나게 되었고 히바우두가 아주 적절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히바우두는 세계 최고의 선수 중 하나로 손꼽히는 인물이었다. 그는 자신의 공격력에 제한선이 생길 것이라 생각해 윙으로 경기에 나서는 것을 거부했다가 벤치에 앉아야만 했다. 그는 특히 반 할이 빠른 속도를 이용해 역습 전개를 요구하는 상황에서 자신이 풀백을 커버하기 위해서 후방까지 내려오는게 과연 가치가 있는 움직임인가에 대해 의문을 품었다. 그로부터 시간이 많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바르셀로나에서 리오넬 메시는 항상 상대 진영에 머물러있다. 히바우두같은 재능에게는 어느 정도 타협을 해도 되지 않았을까? 


카탈루냐 관중들에게 히바우두가 벤치로 물러나야한다는 것은 상당히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세계 최고의 선수가 관중들을 즐겁게 해주는 것이 아니라 벤치에 머물러 있어야만 했고 이는 크루이프와 반 할의 가장 극명한 차이기도 했다. 


크루이프가 누 캄프에서 감독 생활을 했을 때, 그에게는 다루기 어려운 선수 3명이 있었다. 스토이치코프, 라우드럽, 호마리우. 추가로 크루이프의 마지막 시즌에 로베르토 프로시네츠키가 합류했다. 사소한 불화들이 없던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그는 메이저 스타들이 경기장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게 만들어 승리를 쟁취해냈다. 팬들이 즐거워하는 축구에는 결코 고집불통이란 것은 있지 않았다.


이것이 아마 2번의 라 리가 타이틀을 획득했음에도 루이 반 할의 바르셀로나가 잡음이 많은 이유이기도 하다. 55%의 승률과 최고 수준의 스쿼드에도 불구하고 2000년까지 챔피언스 리그 타이틀을 차지하지 못한 것이 바르셀로나 시절의 기억을 희석시킨다. 충분하지 않은 성적이었고 그 때부터는 팀이 쇠퇴하려는 조짐이 보이기까지 했다.


히바우두 이후로, 야리 리트마넨의 경기 소화시간 부족 역시 도마위에 올랐다. 리트마넨은 아약스시절 가장 영향력있는 퍼포먼스를 보여준 스트라이커였지만 바르셀로나에서는 골칫거리였다. 리트마넨에 대한 반 할 감독의 코멘트는 왜 그의 지도 방식이 양극단의 평가를 받게 되는지 아주 극명하게 보여준다.


"선수는 중요하지 않다. 팀이야 말로 모든 것이다. 나는 선수들의 피치 위에서의 퀄리티 이상의 가치를 요구한다. 특히 피치 위에서 모든 것을 다 던져놓을 수 있는가에 대한 자세같은 것 말이다. 아주 뛰어난 재능을 가진 선수임에도 불구하고 나의 방식에 따르지 않으려는 개성과 성향을 가진 선수들이 있다."


이번에도 반 할은 창조적인 자원들을 가지고 자유로움을 부여하지 않았다. 비슷한 구성원이었지만 크루이프는 득점을 바라본 반면, 반 할은 상대의 침투 공간을 허용하지 않는 것에 집중했다.


그는 네덜란드를 2002년 월드컵에 데려가지 못했다.  "네덜란드는 아일랜드보다 더 우수한 탤런트를 보유하고 있다."라는 오만한 그의 발언은 네덜란드의 월드컵 진출 실패로 인하여 그의 지도 방식에 궁극적인 의문을 불러일으켰다.  이제는 그의 방식에 대한 회의적인 시선이 더욱 많아졌다.


놀랍게도 2002년 후반, 그는 다시 바르셀로나 지휘봉을 잡게된다. 약 6개월간 30게임 정도를 소화한 이후 다시 바르셀로나 감독 자리에서 물러난다. 반 할은 바르셀로나와 맞지 않았던 것이다.



2년 반의 공백기를 청산하고 반 할 감독은 AZ 알크마르 감독직으로 복귀를 신고한다. 1988년 알크마르의 수석 코치로 일을 시작했기에 그에게는 결코 낯선 클럽이 아니었다. 나를 포함해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은 AZ 알크마르가 반 할 감독의 최대 업적이라 생각한다. 2006년 2위로 시즌을 마감하더니 2007년에는 3위를 기록하는 뛰어난 성과를 올렸다. 마침내 그는 2009년 리그 타이틀을 차지한다.


AZ 알크마르는 반 할의 커리어에 있어서 아주 신선한 곳이었다. 처음으로 그는 자신을 지키기 급급한 클럽 팀의 감독을 맡아보게 되었고 상황이 긍정적이지 못한 상황에서도 자신의 방법론을 밀고 갈 수 있는 클럽을 지휘한 것이다. 즉 AZ 알크마르는 과거 그가 지휘하던 아약스, 바르셀로나, 네덜란드와는 그 규모가 달랐던 곳이었다.


구단의 신뢰에 반 할 감독은 무사 뎀벨레, 저메인 렌스, 아리, 그라차노 펠레, 세르히오 로메로, 니클라스 모이산더 등의 선수들을 데리고 에레디비지에 타이틀을 획득으로 보답한다. 중위권으로 시즌을 마감할 것이라는 전망과 달리 알크마르는 FC트벤테와 아약스를 제치고 8개월의 무패 기간을 기록하며 타이틀을 따낸다. 


리그 최고의 수비 기록과 더불어 무니르 엘 함다위, 아리의 득점력 역시 알크마르 우승에 보탬이 되었다. 알크마르는 역습을 바탕으로 이기기 쉽지 않은 팀이 되었다. 빅클럽에서는 승리와 경기 스타일 모두가 중요하지만 알크마르에서는 스타일은 전혀 문제될 것이 없었다. 실재하는 승리야 말로 알크마르 입장에서 더욱 중요한 것이었다.


알크마르에서는 유스 선수 수급에 별다른 족적을 남기지 못했지만 뎀벨레, 모이산더, 로메로, 렌스, 펠레와 함께 성공을 거둔 것은 결코 과소평가 되어선 안 될 것이다. 선수들에게 목표를 정해주고 훈련을 통해 목표를 이뤄낼 수 있는 완벽한 팀을 만들어냈다. 슈퍼스타가 아닌 효율적인 축구 선수를 만들어냈다. 확실한 것은 슈퍼스타를 길러내진 못했다는 것이다. 현재 이들의 위상이 어떤지 생각해보라. 그런데 반 할은 이들을 조화시켜 에레디비지에 우승을 차지했다.


그 다음해 알크마르가 타이틀 방어에 실패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물론 반 할이 바이에른 뮌헨으로 떠났지만 다시 타이틀을 사수하는 것은 알크마르 입장에서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는 AZ 알크마르를 네덜란드 내에서 우수 클럽으로 발돋움시켰고 다시 한 번 자신의 명성을 입증했다. 알크마르 시절은 스페인과 네덜란드 대표팀을 맡으면서 쌓여온 부정적인 이미지 청산에 큰 도움이 되었다. 다음 단계는 바이에른 뮌헨이다.



반 할은 "나는 내가 꿈꾸던 클럽에 왔다" 라고 말하며 바이언에 입성했고 아르연 로번을 데려왔다. 지금까지 자신이 지도한 팀에서 우수한 재능을 컨트롤 하는데 있어서 다소간 마찰을 빛어온 감독이지만 그에게도 예외는 있기 마련이다. 챔피언스 리그 트로피를 차지한 아약스의 세대 그리고 20살도 안 된 시점에 네덜란드 국가대표팀 데뷔기회를 준 로번이 바로 그 예외라 할 수 있다.


반 할에게 있어서 바이에른 뮌헨 감독직은 자신의 커리어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분기점이기도 했다. 그러나 초반에는 또 다른 위르겐 클린스만이 부임한 것처럼만 느껴졌고 결과는 형편없었다. 반 할은 항상 자신의 방법론을 팀에 주입시키는데 시간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인물이다. 그런데 그렇지 않은 감독이 있기는 할까? 어느 감독에게나 시간은 당연히 필요하다. 그러나 충분한 시간 보장과 성적은 서로 틀어져있는 관계이다. 처음으로 그가 스타일을 바꿔야할 필요가 생긴 것이다.


반 할 아래서 홀거 바트슈트버, 토마스 뮬러같은 선수들이 1군 주전멤버로 성장하기 시작했고 가장 성공적인 변화는 윙어인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를 중앙 미드필더로 변화시킨 것이었다. 반 할은 바이언 코어(Bayern Core), 바이언 유스 출신들이 팀의 척추 라인을 휘어잡는 일을 해냈다.


뮬러는 반 할의 이상적인 포워드이다. 측면과 중앙 미드필드 지역까지 가리지않고 열심히 움직이는 선수고 팀을 우선시하며 자신을 희생할 줄 아는 선수다. 반 할이 그를 중용한 것은 아주 시기적절한 결단이었다. 그러나 여기에서도 빅스타와 반 할은 마찰을 일으키고 만다. 이번 상대는 박스 안에서는 효율적이지만 다른 곳에서는 그렇지 못한 루카 토니였다. 토니는 빌드업 과정에서 별다른 기여를 하지 못했고 역습 전개에도 그다지 효율적이지 못했다. 또한 상대의 뒷공간을 파괴하는데 적합한 유형도 아니었다. 반 할은 팀의 치밀한 구조를 원하면서 동시에 상대의 뒷공간을 파괴할 수 있는 모습을 원했다. 결국 토니는 전술의 희생양이 되었고 팬들은 크게 실망했다.


토니를 팀에서 제외시켰지만 그는 결국 2010년 분데스리가 타이틀을 차지한다. 독일에서 리그 우승을 차지한 첫번째 네덜란드 태생 감독이란 기록을 남긴 반 할의 시작은 아주 좋았다. 그렇지만 반 할에 대한 평가는 자국 리그가 아닌 유럽 대항전에서의 성적을 바탕으로 이루어진다. 


챔피언스 리그 조별라운드에서 보르도에 이어 2위를 차지한 바이언에 대해 팬들은 우승은 남들의 이야기일 것이라 생각했지만, 여전히 그들은 타이틀을 차지할 수 있는 유력한 후보였다. 토너먼트 매치업에서 피오렌티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리옹을 꺾으며 결승에 진출해 조세 무리뉴가 이끄는 인터나치오날레 밀라노를 상대한다.


반 할은 너무 신중하게 생각했고 묘책을 부리려다가 실패하고 말았다. 그의 제자 무리뉴는 보여줄 수 있는 모든 장점을 다 보여줬는데 정작 스승은 그러지 못했다. 무리뉴는 선수 개인의 탤런트와 자유를 보장하면서 팀이 최우선이라는 철칙을 효율적으로 섞어냈다. 그렇게 만들어진 인테르는 정말 상대하기 어려운 팀이 되었다. 규율을 중요시하면서 슈퍼스타를 위한 게임을 만들어줄 수 있는 무리뉴는 보다 현대적인 사고를 지닌 반 할이라 할 수 있다.


2010/2011시즌은 리그 3위라는 성적으로 누가봐도 용납할 수 없는 성적을 만들어냈다. 위르겐 클롭이 이끄는 도르트문트에게 승점 10점이 뒤쳐진 성적으로 시즌을 마감하는데 누가봐도 차이가 극명했다. 한쪽에는 신선하고 유머러스하고 팬, 선수들과 허물없이 지내는 위르겐 클롭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스타 플레이어와의 불화를 일으키고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하는 루이 반 할이 있다. 반 할에게 보내는 독일 축구의 짧았던 애정선은 이렇게 끝나고 말았다.


독일 저널리스트가 이렇게 물었다. 반 할 스스로 본인이 신(god)이라 생각하고 있는게 아닐까? 라는 물음에 울리 회네스는 아주 직설적으로 이렇게 말했다. "아니. 단순히 신이 아니라 그는 자신이 신의 애비라도 된다고 생각하고 있을껄?"



이 때부터 요한 크루이프와 반 할의 마찰이 본격적으로 대두되기 시작했다. 사실 두 사람의 첫번째 갈등은 1989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만 한다. 그는 공개적으로 반 할의 방법론에 대해 반감을 표출했다. 네덜란드에서는 결코 무시당할 수 없는 레전드 크루이프는 굉장히 직설적인 발언을 자주하는데 그의 발언은 이랬다. 


"반 할은 축구에 대한 훌륭한 시야를 가지고 있지만 축구에 대한 그의 사고방식은 나와 같지 않다. 그는 손발이 척척 들어맞고 마치 군대처럼 자신의 전술 철학을 시행할 수 있는 팀을 원한다. 나는 그런 팀을 원하지 않는다. 선수들 스스로가 생각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크루이프는 반 할이 아약스에서 시도한 훈련 방식과 선수 선발에 관해 마찬가지로 비판을 한적이 있다.


"선수를 평가할 때는 직감과 가슴이 시키는대로 행동해야 한다. 현재 반 할의 지시에 따라 아약스에서 사용되고 있는 표준치에 따라 선수를 선발하면 실수하게 된다. 내가 15살이던 시절에 나는 왼발로 볼을 약 15m 정도 밖에 차지 못했다. 오른발은 아마 20m 정도? 당시에 나는 코너킥을 담당할 수 없었고 신체적으로도 약했으며 상대적으로 느린 편이었다. 그러나 나에게는 훌륭한 테크닉과 통찰력이라는 2가지 퀄리티가 있었다. 그 2가지는 결코 컴퓨터로 측정할 수 없는 가치이다."


크루이프의 발언은 자신의 가치와 충돌하는 철학의 가치에 대해서는 조금도 고려하지 않은 실례되는 발언일 수도 있다. 크루이프가 다소 직선적으로 말하는 성향인 것도 고려해야한다. 그런데 어떤 면에서는 크루이프의 발언이 옳을 수도 있다. 왜냐면 크루이프의 시대 이후로 네덜란드가 국제 무대에서 세계를 주도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반 할과 크루이프의 철학 중에서 누구의 것을 더 선호하는가?



우리는 이제 반 할의 커리어 막바지에 도달했다. 반 할이 2번째로 네덜란드 국가대표팀을 맡으며 이뤄낸 발전은 결코 과소평가되어선 안 된다. 그는 유망한 더치 스타들이 월드컵 경험을 쌓을 수 있도록 만들었고 심지어 그들로 월드컵 준결승까지 이끌고 갔다. 사람들은 네덜란드가 고전을 면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월드컵 4강 진출은 상당한 성과물이라 할 수 있다.


반 할의 네덜란드는 아주 전형적인 반 할스러운 팀이었지 네덜란드스러운 느낌을 뿜어내는 팀이 아니었다 : 엄격한 대열 유지, 조직력, 역습을 바탕으로 하는 반 할스러운 팀이었다. 물론 네덜란드 내부에서는 이러한 경기 접근법에 대해 비판적인 여론이 있지만, 이것은 그토록 헐거운 수비를 가지고 펼칠 수 있는 유일한 해답이었다. 지난 20년간의 커리어를 돌이켜보면 고유한 스타일이란 것은 반 할 아래서 언제나 희생되기 일쑤였던 것이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도 루이 반 할의 매니지먼트 결과물을 받아들이고 있다. 4위로 시즌을 마감하면서 다시 챔피언스 리그 무대에 복귀를 신고하지만 빅네임과의 충돌은 다시 시작되고 말았다. 세계에서 반 할과 가장 친분을 쌓고 있다는 평이 자자했던 로빈 반 페르시는 순식간에 우선 순위에서 밀려났고 팔카오는 반 페르시보다는 조금 더 괜찮은 대우를 받았지만 몸상태가 정점에 도달하지 못했다. 경기에 꾸준히 나서지 못한 것은 팔카오에게 (몸상태를 끌어올리기 위한) 결코 반가운 해결책이 아니었다. 앙헬 디 마리아의 경우는 왜 그토록 폼이 다시 살아나지 못했는지 여전히 미스테리한 부분으로 남아있다.


다비드 데 헤아까지도 떠날지 모르는 상황에서 이제 반 할에겐 위한 테스트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야누자이, 맥네어, 윌슨, 페레이라같은 올드 트래포드의 유망한 어린 자원들을 가지고 어떤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최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아카데미에서 배출해낸 자원들이 시원찮으나 이들의 퀄리티는 충분히 좋다. 다만 성적이 더 중요한 상황에서 반 할은 어린 선수들에게 경험을 쌓을 기회를 부여할 수 있을까?


에슐리 영은 개인의 우수한 퍼포먼스 뿐만 아니라 반 할의 철학에 딱 들어맞는 모습을 보이면서 부활을 선언했다. 호전적이며 열심히 뛰는 영과 발렌시아는 반 할의 철학에 부합하는 선수들로 2014/2015시즌 재기에 성공했다. 시스템 속에서 철저하게 움직이는 마테오 다르미안, 모르강 슈네들렝,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가 영입되었고 다가오는 2015/2016시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클래식한 반 할의 모델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된다.


다만 창조적인 멤피스 데파이, 후안 마타, 웨인 루니에게 어느 정도의 공격적 자유도 희생이 따르는지가 관건이다. 반 할의 축구 모델이 잘 돌아가느냐 역시 중요하지만 공격 자원들이 만족할 수 있게 자유도 제한에 있어서 적정선을 유지하는 것 역시 중요할 것이다.  



우리는 직선도로 한 가운데에 위치해있다. 한쪽 방향은 요한 크루이프가 있고 그와 함께 베르캄프, 과르디올라가 위치해있고 숏패스를 선보이고 있다. 다른 방향은 반 할이 위치해있고 그 옆에는 론 블라르, 토마스 뮬러같은 선수들이 마치 기계마냥 반복적인 세트피스 훈련을 연습하고 있다. 선택은 당신의 몫이다. 어디를 선택할 것인가?


당신이 생각하는 축구의 아름다움은 어떤 것인가? 여기에 대한 당신의 의견은 지난 20년간 분열과 함께 성공 스토리를 기록한 루이 반 할에 대해 당신이 어떠한 평가를 내릴지에 대한 해답을 줄 수 있다. 




출처 : http://thesefootballtimes.co/2015/08/02/louis-van-gaal-divisive/





바이에른 뮌헨에서의 수많은 영광을 뒤로 하고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이적을 앞두고 있다. 정녕 월드컵 우승 트로피를 차지한 슈바이니는 자신의 전성기 기량을 유지한 채 프리미어 리그 무대에 안착할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루이 반 할 감독이 2013년 이후 팀에 첫번째 리그 우승 트로피를 가져다 주는데 앞장 설 것인가?



지난 시즌 바이에른 뮌헨에서 보여준 슈바이니의 경기력은?


지난 여름 독일이 월드컵에서 우승하는데 크게 기여한 슈바인슈타이거는 이후 부상으로 11월 22일에서야 분데스리가 첫번째 경기를 뛸 수 있었다. 당시 바이언은 자국 리그는 물론 유럽 무대에서도 단 1패도 기록하지 않았기 때문에 펩 과르디올라 감독은 서둘러 슈바이니를 복귀시킬 이유가 하나도 없었다. 


그러나 몸상태가 완전히 회복된 이후에는 홀딩 미드필더 역할을 수행하는 사비 알론소와의 경쟁에서 우위를 가져가지 못했고 결국 과르디올라 감독의 우선 순위에서 밀리게 되었다. 34라운드까지 치러지는 분데스리가에서 슈바이니는 선발 출전 횟수가 단 15번에 불과했다.


숫자로 보는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

독일 대표팀에서 111경기 23골 기록

분데스리가 8회 우승, 7번의 포칼컵 7회 우승, 챔피언스 리그 1회 우승, 월드컵 1회 우승

342 바이언에서만 분데스리가 342경기를 소화, 레버쿠젠의 슈테판 키슬링의 345경기에 이어 두번째로 높은 기록  

지난 2014/2015시즌 슈바이니는 리그에서 총 20경기를 뛰었는데, 이는 데뷔 시즌이었던 2002/2003시즌 14경기 출전 이후 가장 적은 횟수



바이언은 왜 그를 놓아줬을까?


독일 국가대표팀 캡틴인 슈바인슈타이거의 이적을 허용한 것은 바이언 입장에서도 상당히 대담한 결정이었다. 그러나 지난 시즌 모습만 놓고 본다면, 슈바이니의 이탈은 크게 우려할 상황이 아니다. 오히려 바이언 측은 슈바이니 판매로 금전적 이득을 얻게 되어서 만족스러운 딜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지난 시즌 슈바이니가 부상을 당한 시기에 알론소가 상당히 큰 역할을 했고 두 선수 중 한 명을 골라야하는 상황에서 과르디올라 감독은 슈바이니보다 3살 많은 알론소를 선택하는데 망설임이 없었다. 또한 바이언은 2010/2011 시즌 이후로 몸상태에 의심을 품을 수가 없는 선수들은 결코 쉽게 놓아주지 않았다.



그렇다면 슈바이니의 몸상태에 의구심을 품어야 하는가?


최근들어서 슈바이니는 무릎, 발목 부상을 여러 차례 당하고 있다. 과연 슈바이니가 프리미어 리그에서 매주 경기를 소화할 수 있을까? 확실한 것은 올드 트래포드에서 아주 철저한 관리를 받아야만 한다는 것이다. 


슈바이니가 퇴물이라는 소리는 정말로 잘못된 소리지만, 그렇다고 현재 슈바이니가 최고의 시기를 보내고 있는 것은 아니다. 만약 슈바이니가 프리미어 리그에서 30경기 이상을 소화한다면 난 정말로 깜짝 놀랄 것 같다. 이게 내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슈바이니 영입이 위험한 딜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다.



슈바이니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적응할 수 있을까? 


바이언을 떠나는 상황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가는 것은 결코 놀라운 사실이 아니다. 과거 루이 반 할과 함께한 경험이 있고 이와 마찬가지인 토마스 뮬러 역시 지난 시즌부터 계속해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행 이적설이 나오고 있다.


지금까지는 원클럽맨이었지만, 지금은 팀을 떠나야할 시기라고 느꼈고 루이 반 할이 있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아주 운명과도 같은 행선지라고 할 수 있다. 슈바이니는 부상없는 시즌을 소화하길 바라는 동시에 지난 시즌 마이클 캐릭이 아주 우수한 경기를 선보였던 딥-라잉 미드필더 포지션에서 활약하길 고대하고 있을 것이다.



올드 트래포드는 슈바이니에게서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까?


독일의 요하임 뢰브 감독은 슈바이니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행이 선수에게 긍정적인 효과를 줄 것이라 예상했다. 그렇지만 이득을 보는 것은 선수만이 아니다. 결코 잊지 말아야할 것이 있는데 그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8번의 리그 우승, 7번의 포칼컵 우승, 챔피언스 리그 우승, 거기에 월드컵 우승과 더불어 3번이나 월드컵에 참가한 선수를 영입했다는 것이다. 


최근 5시즌 슈바인슈타이거의 분데스리가 기록

시즌출전 횟수

선발 출전

득점

어시스트

2014-15

20

15

5

4

2013-14

23

22

4

4

2012-13

28

27

7

3

2011-12

22

18

3

3

2010-11

32

31

4

7


만약 슈바이니가 필립 람, 페어 메르테사커처럼 국가대표팀 은퇴를 선언한다면 신체적으로 더 강인함, 속도를 요구하는 잉글랜드 무대에서 더 현명한 대처를 할 수 있으리라 본다. 잉글랜드가 독일보다 경기 수가 많은 것 고려해야할 요소 중 하나다. 그러나 유로 2016을 앞둔 상황에서 독일 대표팀 주장이 돌연 은퇴를 선언한다?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선수를 면밀히 관리해야 한다.



프리미어 리그 무대는 슈바이니가 적응할 수 있는 곳일까?


슈바이니는 독일의 겨울 휴식기에 익숙해진 상태다. 지금까지 독일에서만 선수 생활을 해왔기에 겨울에 오히려 더 바빠지는 잉글랜드의 스케쥴에 적응할 수 있는지 지켜봐야한다. 지난 여름 많은 사람들의 기대를 받았던 라다멜 팔카오가 기대치만큼 못해준 것도 슈바이니 딜을 부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만드는 요소다.


슈바이니는 누구보다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팀에 긍정적인 효과를 줄 것이다. 한가지 확실한 것은 유나이티드가 독일의 전사를 데려왔다는 것이다. 슈바이니의 최전성기는 지났다 할지라도 그는 여전히 독일 국가대표팀의 영웅이다.




출처 : http://www.bbc.com/sport/0/football/33494019

펩의 바이에른 뮌헨 vs 펩의 바르셀로나

Michael Cox 2016. 5. 25. 00:10 Posted by Seolskjaer



by Michael Cox (본문은 2015년 5월 5일에 작성된 글입니다)


슈퍼 클럽이 현대 축구를 지배하는 시기에 그것도 특히 챔피언스 리그 토너먼트 무대에서 슈퍼 클럽들이 강세를 보이고 있는 시기에 펩 과르디올라 감독이 이끄는 바이에른 뮌헨이 바르셀로나를 만나는 것은 사실 시간의 문제였다. 이번에 펩 과르디올라 감독이 바르셀로나를 4강 무대에서 만나는 것은 굉장히 흥미로운 부분이기도 하다. 2013년에 두 팀이 4강에서 맞대결을 펼칠 당시 과르디올라 감독은 어느 팀도 지휘하고 있지 않았지만, 당시의 바르셀로나는 과르디올라 없이 살아가기 시작했던 시기였고 바이에른 뮌헨은 유프 하인케스 감독의 은퇴 이후 팀을 이끌 후계자가 펩 과르디올라임을 공식적으로 발표한 상황이었다. 그러니까 그 때 두 팀의 대결은 '과르디올라가 이끌었던 팀' vs '과르디올라가 앞으로 이끌어갈 팀' 이라는 구도였다. 


결과는 정말 놀라웠고 바이언이 바르샤를 상대로 7:0 승리를 거두었다! 사실 두 팀의 스코어차는 가혹했다. 양 팀의 경기력에 대해서 이야기하려는 것이 아니라 바르셀로나가 시즌 후반기 대다수의 시간을 故티토 빌라노바 감독의 투병으로 인해 팀을 정상적으로 이끌지 못했던 것을 말하려는 것이다. 빌라노바 감독은 바이언과의 준결승에 앞서 팀에 복귀했지만 이미 몇 달전부터 바르샤의 경기 집중력은 떨어져가고 있었다.


당시의 바이언은 바르셀로나 못지않은 패스 성공률과 점유율을 기록하는 팀이었다. 따라서 사람들은 바이언이 바르셀로나의 방식으로 똑같이 응수해 바르셀로나를 이기려들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바이언은 결코 사람들이 예상하는 방식으로 경기를 펼치지 않았다. 바이언은 바르셀로나의 분명한 약점인 피지컬 싸움을 집요하게 노렸고 이러한 바이언의 전략은 세트 피스 상황에서 명확하게 드러났고 바이언은 여기에 역습까지 추가해서 확실히 본인들에게 유리한 경기를 펼쳤다. 바르샤에 심어진 과르디올라의 축구는 과르디올라게에 자리를 물려주고 떠나는 유프 하인케스 감독에 의해서 철저하게 붕괴되었다. 


과르디올라 감독이 바르셀로나만의 이데올로기이며 자신의 10대 시절을 보냈던 라 마시아의 컨셉을 빌려왔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사실이다. 바르셀로나에 심어진 리누스 미헐스와 요한 크루이프의 철학은 오늘날 상위 레벨의 감독들의 지도 원칙과도 같다. 2014-2015시즌 챔피언스 리그 8강 무대에 진출한 8개의 클럽 중 4개의 클럽을 바르셀로나 출신인 루이스 엔리케, 로랑 블랑, 펩 과르디올라, 훌렌 로페테기가 이끌고 있던 것만 봐도 이는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과르디올라 감독은 바르셀로나만의 방식만 추구하지 않고 거기에 실용주의 색채를 더하고 있어 탁월한 전술가적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물론 여전히 과르디올라 감독은 기본적인 컨셉에 대해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다 : 공을 빠르게 순환시키는 것, 높은 수비 라인을 유지하는 것, 선수들이 동일한 수직선 상에 놓이는 것을 원하지 않는 것


네덜란드 대표팀이 4-3-3 시스템이 아닌 두 명의 피보테를 배치하는 것을 요한 크루이프는 극도로 싫어하지만, 과르디올라 감독은 이런 세세한 부분에서 보다 유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과르디올라 감독은 선수 개인 기량의 최대치를 뽑아낼 수 있는 전술을 만들어내는 것을 즐기며 이는 펩 과르디올라의 바이에른 뮌헨이 마냥 바르셀로나의 복제품처럼 결코 느껴지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물론 전체적인 경기 접근 방식은 여전히 유효하다. 바이언 전술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전술적 포인트는 스위퍼-키퍼인 마누엘 노이어의 역할을 바이언이 굉장히 광범위하게 활용한다는 것이다. 스위퍼-키퍼라는 개념이 새롭게 등장한 것은 결코 아니지만 마누엘 노이어처럼 단호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그 역할을 이렇게까지 성공적으로 수행해낸 선수는 지금까지 없었다.


2008년으로 돌아가서 과르디올라가 바르샤 스쿼드에 전달한 첫번째 메세지는 모든 플레이는 골키퍼로부터 시작되어야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골키퍼는 높은 수비라인 뒤에서 스위퍼 역할을 수행해줘야 한다는 것이었다. 당시 바르셀로나의 골키퍼이자 외향적인 성격이 아닌 것으로 알려진 빅토르 발데스는 과르디올라 감독의 요구에 걱정 가득한 채 면담을 요구했고 수비수들이 감독의 요구를 잘 수행하지 못할 것 같다고 전했다. 이에 과르디올라는 걱정하지 말라고 발데스를 다독였고 결과는 우리 모두가 알다시피 과르디올라의 요구는 정상적으로 잘 이루어졌다.


굉장히 특수한 포지션에서 자신의 포지션을 현대적 버전으로 한 단계 발전시킨 리오넬 메시와 마누엘 노이어는 어찌보면 비교 대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어찌보면 정신나간 소리라고 할 수도 있는데 각자의 포지션을 발전시켰다는 점에선 충분히 비교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일반적으로 골키퍼와 센터-포워드는 페널티 박스에서 다수의 시간을 보내는 포지션이지만 메시는 False 9이라는 개념으로 노이어는 스위퍼-키퍼의 개념으로 박스를 벗어나고 있다. 두 선수 모두 과르디올라의 팀이 공을 소유할 수 있게 도와주고 있고 특히 피치 중앙에서의 지배력을 높일 수 있도록 만들고 있다. 게다가 선수 본인의 뛰어난 기량으로 팀을 전세계적인 수준의 경기력을 선보이는 팀으로 이끌고 있다.


과르디올라 감독은 마리오 괴체를 메시의 복사본으로 만드려고 했지만 아직까지는 그게 성공적이지 못한 모습이다. 과르디올라 감독의 바르셀로나와 바이언의 가장 큰 차이점은 9번 로베르토 레반도프스키의 활용 방법이다. 레반도프스키가 전방에서 전봇대와 같은 역할을 해주기도 하지만 마리오 만주키치를 내치고 레반도프스키를 선택한 것은 레반도프스키가 공을 소유하는 능력과 창조적인 기술력을 선보인다는 점에서 더 우위에 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과르디올라 감독이 전형적인 9번 유형의 공격수를 싫어한다고 생각하는데 그전에 과르디올라 감독이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와의 개인적 관계가 좋지 않았다는 점과 메시가 중앙 공격수로 뛰길 원했다는 것을 반드시 고려해야한다. 분명한 사실은 이브라히모비치 영입을 위해서 과르디올라 감독은 사무엘 에토를 내줬고 거기에 어마어마한 금액까지 얹혀주었다. 정통 스트라이커 유형 자체만 놓고 봤을 때 과르디올라 감독은 정통 스트라이커에 대한 어떠한 나쁜 감정도 가지고 있지 않다.


센터백은 공통점을 찾기가 훨씬 수월하다. 제롬 보아텡은 바이언의 헤라르드 피케이고 두 선수는 젊고 실수하는 경우가 종종 있으며 맨체스터에서 성공적이지 못한 시절을 보낸 후 자국으로 돌아와 성공했다는 점에서도 공통 분모를 가지고 있다. 다만 바이언에 부족한 것이 있다면 바르셀로나의 카를레스 푸욜같은 유형의 선수가 없다는 것이며 푸욜과 피케 조합에 버금가는 파트너십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과르디올라 감독이 바이언에서 백3 시스템과 백4 시스템을 번갈아 활용해 전술적 유연성을 뽐내고 있는 와중에 많은 선수들이 부상으로 이탈한 상황까지 더해져 지금의 바이언이 강력한 파트너십을 보여주는 것은 사실 쉽지 않은 일이다.


바르샤에서 미드필드 지역에 많은 에너지를 쏟은 과르디올라 감독은 바이언에선 측면으로 볼을 연결시키는 것에 집중하고 있다. 바르셀로나에서는 일반적으로 에릭 아비달이 다니 알베스만큼 적극적으로 공격을 펼치지 않아 풀백의 공격 가담에 있어서 조심스러운 모습을 보여줬지만, 바이언에서는 양쪽 풀백 모두를 과감하게 전진시키고 있고 전진하는 풀백들을 향한 장거리 패스 역시 자주 나오고 있다. 글에 앞 부분에서 과르디올라 감독이 선수들이 동일한 수직선 라인을 형성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 그 말을 조금 더 정확하게 풀어서 쓰자면 윙어와 풀백이 나란히 있는걸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풀백이 측면으로 폭을 넓히면 윙어는 중앙으로 가야하고 윙어가 폭을 넓히면 풀백은 중앙으로 침투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바르셀로나에서는 풀백이 측면을 따라 오버래핑을 시도하고 윙어들이 중앙으로 침투하는 형태였다. 그러나 바이언에서는 윙어들이 터치라인을 타고 움직이며 바이언이 풀백이 중앙에서 미드필더 역할을 수행하는 경우가 많다. 알베스와 아비달은 그런 역할을 할 수 없었지만 필립 람과 다비드 알라바는 중앙 미드필더로서도 뛰어난 활약을 펼치고 있다. 람과 알라바가 상대 풀백을 홀리는 과정에서 프랭크 리베리와 아르연 로번이 더 깊숙한 위치까지 침투해서 공을 연결받을 수 있는 가능성을 만들어 준다. 지난 2013-2014시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챔피언스 리그 경기에서 이런 패턴의 플레이가 아주 잘 통했다.


프랭크 리베리야말로 과르디올라의 바르셀로나와 과르디올라의 바이언을 구분짓게 해주는 집약체와도 같다. 선수의 전술적 역할이라는 부분에서 리베리는 성숙하지 못한 선수이다. 천방지축 어린이처럼 피치 위에서 가능한 많은 선수를 제쳐내려는 플레이를 펼치는 선수가 바로 리베리다. 'Pep Confidential' 저자인 Marti Perarnau는 과르디올라 감독이 리베리에게 자신의 전술적 컨셉을 가르치는 것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라 판단했다고 말한다. 그의 주장은 단지 리베리가 과르디올라 감독이 요구하는 사항들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리베리와 달리 페드로 로드리게스는 완벽하게 바르셀로나스러운 선수였다. 페드로는 리베리처럼 기술적으로 굉장히 특출난 선수는 아니지만 페드로의 교묘한 플레이는 다른 공격수들이 모두 부러워할 수준이었다. 게다가 페드로는 과르디올라 감독의 요구를 아주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었고 메시와 알베스를 위한 공간 창출 및 적절한 위치 선정, 적절한 침투를 바탕으로 팀의 공격이 진행되는데 크게 일조했다. 과르디올라 감독 지도 아래서 페드로는 4-3-3 포메이션의 측면 공격수로서 아주 완벽한 예시였다.


비슷한 차이점은 미드필드 지역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세르히오 부스케츠, 챠비 에르난데스, 안드레스 이니에스타는 완벽한 밸런스를 갖춘 조합이었다. 3명의 선수 모두 완벽한 패서였고 각자만의 장점 또한 갖추고 있었다 : 챠비는 순전히 패서였고 부스케츠는 다소 수비적인 역할을 전담했으며 이니에스타는 상대 선수를 드리블로 제치는 것도 가능했다. 과르디올라 감독은 3명의 선수 조합을 웬만해서는 깨지 않으려고 했고 3명의 조합을 깨는 경우는 거의 세스크 파브레가스를 투입할 경우가 전부였다. 사실 파브레가스 투입은 그렇게 성공적이지 못했다.


바이언은 미드필드 지역에서 바르셀로나만큼의 조직력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부상의 여파가 분명히 있지만 바이언에는 부스케츠 역할을 수행하는 선수가 없다. 부스케츠 역할을 수행하는 선수의 부재는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와의 DFB 포칼컵 경기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홀딩 미드필더였던 람과 사비 알론소는 도르트문트의 강력한 압박 속에서 공을 제대로 연결받지 못했고 상대의 강력한 압박 속에서 방향을 전환해내지 못했다. 도르트문트의 강력한 압박에 바이언은 공을 다시 뒤로 보냈을 뿐 공을 앞으로 연결시키지 못했다.


홀딩 미드필더의 역할을 피치 위에서 가장 중요하다. 과르디올라 감독이 람을 굉장히 아낄지라도, 알론소의 패스 기록이 훌륭할지라도 현재 바이언에는 부스케츠만한 미드필더가 없다. 티아고 알칸타라가 바이언의 부스케츠가 될 수 있겠지만, 지금까지는 2년간의 부상 문제로 성장을 이어가지 못했고 미드필드 지역 중 가장 후방인 곳에서 알칸타라가 잘해낼 수 있는지도 아직 더 지켜봐야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런 부분에서 토니 크로스의 이탈은 굉장히 큰 손실이다. 바이언에 계속 남았더라면 과르디올라 감독은 크로스를 세계 최고의 미드필더로 만들어줄 수 있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사실 페드로와 부스케츠는 과르디올라 감독이 바르셀로나 B팀을 지도했을 때부터 그의 철학을 공유한 선수들이다. 누구보다 먼저 과르디올라 감독의 철학을 몸소 배운 선수들이고 피치 위에서 감독이 원하는 바를 완벽히 수행해내던 선수였다. 과르디올라 감독은 페드로와 부스케츠를 가장 그리워하고 있을 것이다.


바르셀로나 B팀에서 보냈던 2007-2008시즌은 과르디올라 감독에게 있어서 훈련 방식을 확실히 설계하고 1군 무대에 진입시킬 선수를 성장시키는 준비 단계였던 것이다. 반면에 바이언 감독직 부임에 앞서서 과르디올라 감독은 1년의 시간을 단지 독일어 공부에만 투자했고 바이언은 아직까지 바르셀로나만큼의 조직력을 선보이지 못하고 있다. 


물론 지금의 바르셀로나 역시 과르디올라 감독 시절만큼의 조직력이 아니다. 루이스 엔리케 감독도 과르디올라 감독과 마찬가지로 바르셀로나 B팀을 지도하며 과르디올라 감독이 앞서서 만든 (1군 감독이 되는) 시스템을 따라가는 모습을 보였다. 지금 메시, 네이마르, 루이스 수아레즈 3명의 콤비 플레이가 굉장히 우수한 편이나 전체적으로 지금의 바르셀로나가 예전보다 개인의 기량에 더 포커스를 맞춘 팀인 것은 분명하다.


바르셀로나와의 2번의 경기는 뮌헨에서 2년의 시간을 보낸 과르디올라 감독의 성과를 확인할 수 있는 경기가 될 것이다. 2년 연속 분데스리가 타이틀은 훌륭한 성과지만 상대적으로 약한 분데스리가 리그 내에서의 경쟁과 지난 2013-2014시즌 4강 무대에서 레알 마드리드에게 철저히 무너졌던 것을 생각했을 때, 분데스리가 타이틀만으로 바이언의 진정한 레벨을 평가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출처 : http://www.espnfc.com/uefa-champions-league/2/blog/post/2433390/pep-guardiola-barcelona-vs-pep-guardiola-bayern






by Jonathan Wilson


시즌이 시작할 때가 되면,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는 31살이 된다. 아마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측에서 가장 크게 걱정하는 부분이 이게 아닐까 싶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미드필더진 보강에 완벽한 옵션이 될 것으로 보이지만 이 선수는 지난 시즌 분데스리가에서 고작 15경기만 선발 출전했을 뿐이다.


지안프랑코 졸라가 EPL 무대에 늦은 나이에 도전했고 빠르게 적응한 이후, 수없이 많은 선수들이 늦은 나이에 잉글랜드 무대로 도전장을 내밀었다. 이와 관련해서 가장 최근의 사례는 바로 라다멜 팔카오라고 할 수 있는데, 팔카오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합류 이전에 십자 인대 부상을 당했었고 슈바이니 역시 비슷하게 지난 시즌 발목 부상으로 경기 출전에 어려움이 있었다.


"물론 굉장히 치열했던 월드컵 때문에 10월까지 경기에 나설 수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그 이후 바이언에서 아주 멋진 시간을 보냈고 부상 없이 시즌을 보냈습니다. 현재 모든 것이 정상이고 느낌이 좋습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모든 것을 바칠 수 있길 고대하고 있습니다." 슈바이니가 MUTV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부상은 선수 본인이 문제 없다고 하니까 넘어가자. 그렇지만 슈바이니를 향한 의구심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 슈바이니는 원클럽맨이었다. 그런데 왜 그가 결국엔 평생을 몸담았던 클럽을 떠나게 되었을까? 이케르 카시야스와 비슷한 시기에 팀을 떠난다는 것은 단순한 우연이겠지만, 더 이상 축구계에 원클럽맨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느낌은 누구나 다 받고 있을 것이다.


축구계에서 '감성'이 지배하는 시기는 점차 시들어져가고 있다. 효율적인 게임을 추구하면서 가혹한 결정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탑클럽으로 우수한 재능들이 모이면서 클럽 레전드들은 기준치에 미달한 시즌을 소화할 경우 급격하게 자리를 잃고 만다. 자리를 잃은 레전드의 가치는 즉각 현금으로 환원되어야 한다.


슈바이니가 벌써부터 바이언의 기준치에 미치지 못했다고 말하려는건 아니다. 그러나 그건(슈바이니의 기량이 하락하는 것) 충분히 다음 시즌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계약 기간이 1년 남은 상황에서 내년에 슈바이니의 시장 가치가 얼마나 될 수 있는지 확신할 수가 없고 내년 여름 프리로 떠나 보내느니 지금 돈을 받고 넘기는게 더 낫다고 판단했을지도 모른다.


"감성적인 부분에서 우리는 여전히 슈바이니를 상당히 존중하고 있지만 이성적으로 따져보면 그는 최근 부상 빈도가 잦아졌고 그 결과 지난 2년간은 우리가 언제나 믿고 의지할 선수가 아니었다." 라고 바이언의 마티아스 잠머가 이야기하기도 했다.


뮌헨에서 태어난 슈바이니는 여전히 뮌헨을 가슴 속에 품고 있을 것이다. 팀에 남아서 팀의 분데스리가 4연패 퀘스트를 함께하길 원했을 것이다. 그러나 유나이티드는 그에게 3년 계약을 제시했고 이는 바이언이 슈바이니에게 제시하려고 계획한 것 이상으로 좋은 조건이었다. 펩 과르디올라 감독은 루이 반 할, 유프 하인케스 감독과 달리 슈바이니에게 중앙 미드필더로 중책을 맡기지 않았다. 아마 그가 바이언 고위층에게 슈바이니 없이도 충분히 팀을 이끌어 갈 수 있다고 이야기했을 것이라 추측한다. 카시야스와 레알 마드리드의 작별을 보면, 이들의 작별은 상당히 평화롭게 해결되었다.


과르디올라 감독에게는 다양한 후방 미드필더 옵션이 있다 : 필립 람, 사비 알론소, 하비 마르티네스, 티아고 알칸타라, 심지어 필요시 다비드 알라바까지 활용한다. 반 할 감독은 슈바이니가 최고의 활약을 펼치는 홀딩 미드필더 자리를 발견했지만, 과르디올라 감독이 그 자리에 슈바이니를 기용한 경우는 지난 시즌 고작 4차례에 불과하다.


어쨌든 바이언의 과르디올라 감독은 그를 중용하지 않았지만, 루이 반 할 감독은 슈바이니를 활용할 의사가 충분한 것으로 보인다. 대개 우리는 슈바이니가 마이클 캐릭을 보조하거나 그의 부재를 대체할 역할을 부여받을 것이라 본다. 캐릭은 지난 시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한창 잘나가던 시기에 팀의 핵심 자원으로 활약했지만, 부상으로 선발 출전 횟수가 단 16번에 불과했다. 여기에 모르강 슈네들렝까지 추가되면서 유나이티드는 후방 미드필더 3명을 보유하게 되었다. (추가로 데일리 블린트까지 있지만, 지난 시즌 앵커로 확신을 주지 못했다)


지난 시즌 지속적인 부상으로 팀 운영에 어려움을 겪었던 반 할 감독이 스쿼드를 빵빵하게 만들어서 선수 수급에 애를 먹지 않으려고 스쿼드를 탄탄하게 보강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2명의 홀딩 미드필더를 기용하면서 슈바이니를 후방에서 전진하는 역할로 활용할지도 모른다. 또한 어쩌면 캐릭의 미래를 중앙 수비수로 여기고 있는 것일지도...


수많은 우승 경력을 갖춘 리더, 터프하면서 볼배급 능력까지 갖춘 선수, 과거 루이 반 할 아래서 기량을 만개한 선수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데려왔다. 그를 향한 의구심은 30살의 나이, 과거 발목 부상 경력, EPL 적응 여부 정도 뿐이다. 슈바이니 영입을 위해 £14.5m을 투자하는건 충분히 시도해볼만한 도박이다. 물론 바이언이 그를 팔기로한 결정 역시 이해할 수 있다. 이번 딜은 두 팀을 모두 만족시키는 아주 보기드문 거래라고 생각한다.




출처 : http://www.si.com/planet-futbol/2015/07/14/bastian-schweinsteiger-manchester-united-bayern-munich-transfer



by Jonathan Wilson


디에고 시메오네가 2011년 12월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감독으로 부임하게 되었고 그 말은 즉슨 시메오네가 이제 아르헨티나에서 자신의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는데 상당한 시간적 제약이 생긴다는 것을 의미했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감독 부임이 확정되었을 때 그의 아들은 그에게 이렇게 물었다. "그럼 아빠는 이제 메시, 호날두랑 싸우는 거에요?" 아들도 그게 쉽지만은 않을 것이라 생각했을거다.


시메오네는 마드리드에서 보낸 4년 반의 시간 동안 메시에게 딱 2번의 승리를 거두었다. 그러나 그 2차례의 타이밍은 매우 절묘해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는 챔피언스 리그에서 바르셀로나를 또 다시 8강에서 좌초시켰다. 아틀레티코의 바르셀로나전 승리는 상대의 스타 선수를 무력화시키는 탁월한 예시로 설명될 수 있을만큼 훌륭했다. 지금껏 시메오네에게 메시는 골칫덩어리였으나 이번에는 그 문제를 해결했다.


아틀레티코는 호날두로 대표되는 레알 마드리드와 또 한차례의 대결을 펼칠 수 있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또 다른 거인을 물리쳐야만 한다. 1974년 유러피언 컵 결승전, 아틀레티코는 루이스 아라고네스의 프리킥으로 바이에른 뮌헨을 상대로 1:0 리드를 가져갔다. 종료가 임박한 시점에서 아틀레티코는 스페인 클럽 2번째로 유러피언 컵을 차지하는 팀이 될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종료가 임박한 시점에 게오르그 슈바르첸벡이 동점골을 넣어버렸다. 바이언은 재경기에서 아틀레티코에게 4:0 승리를 거두었고 아틀레티코는 그로부터 40년 후에야 다시 결승전에 진출할 수 있었다. 그런데 또 다시 세르히오 라모스에게 아틀레티코는 추가시간 동점골을 내주었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관점에서 바이언을 4강에서 꺾고 결승에서 레알 마드리드를 꺾는 것이 유러피언 결승전 악몽을 씻어낼 수 있는 가장 좋은 시나리오일 것이다.


다가올 바이언과 아틀레티코의 대결은 1974년 결승전 이후 두 팀의 첫번째 대결이다. 시메오네는 과르디올라와 딱 1번 경기해봤고 당시 바르셀로나가 2:1 승리를 기록했다. 이번에 아틀레티코가 8강에서 바르셀로나를 상대한 것은 바이언을 상대하기에 아주 좋은 훈련이 되었을 것이다. 과르디올라는 바이언에서 더 진화했고 더 이상 4-3-3에 얽매이지 않으며 이제는 위험을 조금 더 감수하며 플레이 펼치고 롱볼 활용에도 마음의 문을 열어둔 상태다. 어찌되었건 과르디올라가 바르셀로나에 심은 축구주의는 뮌헨에서도 똑같이 뿌리내렸다.


분명 두 팀의 대결에서 바이언은 아틀레티코를 상대로 점유율을 지배할 것이다. 바르셀로나가 2경기 합쳐서 72%의 점유율을 기록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상대의 점유율이 높은 것은 시메오네에게 골칫거리가 되지 못한다. 시메오네의 아틀레티코는 공없는 상황에서 경기를 펼치는 것에 상당히 숙련된 모습이며 그가 내세울 4명의 미드필더들은 언제든지 뒤로 물러서 수비 라인으로부터 10야드 미만으로 배치될 가능성이 높다. 아틀레티코 선수들은 바이언의 공간을 죽일 것이며 동시에 적극적으로 앞에서부터 바이언을 압박하기도 할 것이다.


바르셀로나와의 2차전 경기에서 주목할 부분은 아틀레티코가 세르히오 부스케츠와 풀백 사이의 공간에서 효율적으로 공을 차단했다는 점이다. 바르셀로나가 전형적으로 후방에서 볼을 뿌리는 방식을 방해한 것인데 이런 성향은 과르디올라의 바이에른 뮌헨과 교집합적 성향을 보이고 있다. 딥-라잉 미드필더인 사비 알론소 혹은 티아구 알칸타라가 부스케츠의 역할을 맡고 좌우에 위치한 공격적인 풀백(필립 람과 다비드 알라바)이 바이언이 바르셀로나와 똑같은 전개를 펼칠 수 있게 만든다. 시메오네는 이 공간을 반드시 노릴 것이다.


수비의 마스터 시메오네 vs 가장 강력한 파괴자, 티키-타카의 대부이자 현대 축구에서 가장 변화무쌍한 전략을 보유 중인 과르디올라의 대결이라는 점에서 이 대진은 상당히 흥미롭다. 경기가 시작되기 이전까지 과르디올라가 주어진 선수 자원을 어떻게 배치할지 확신할 수가 없다. 과르디올라의 선택을 예측할 수 없다는 점에서 그걸 대비하고 직접 맞서 싸워야하는 시메오네에게는 큰 도전이 될 것이다.


시메오네에게만 골칫거리가 있는 것은 아니다. 이번에도 바이언은 후반기에 살짝 리듬을 잃어버린 모습이다. 더글라스 코스타는 크리스마스 이전의 경기력이 아니고 유벤투스, 벤피카와의 경기에서는 지나치게 공을 점유하려는 모습도 있었다. 바이언이 겨울 휴식기 이후에 놓친 승점이 12경기에서 단 7점뿐이라는 사실은 바이언의 후반기 부진이 상대적이라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유럽 대항전에서 수비력에 약점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 분명한 고민거리가 될 수 있다. 마누엘 노이어는 유벤투스, 벤피카와의 2차전에서 실수를 저질렀고 바이언을 벼랑 끝으로 내몰았던 유벤투스의 압박은 시메오네에게 분명한 참고사항이 될 것이다.


과르디올라는 최근 3차례 모두 4강에서 고배를 마셨다. 지난 시즌에는 자신이 기반을 다져두고 떠난 바르셀로나의 뛰어남에 무릎을 꿇었지만, 그 이전의 2차례 패배는 모두 실용적인 경기를 펼치면서 결정적인 역습 상황을 노리는 팀에게 당한 것이었다. (레알 마드리드와 첼시) 아틀레티코는 이 사실에도 주목할 것이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2015/2016 UEFA 챔피언스 리그는 시메오네 아들의 체크리스트를 따를 수 있을까. 메시를 이긴다? 그건 이번에 해냈다. 호날두를 이긴다? (최근 마드리드 더비 전적을 본다면) 아마 그럴 수 있다고 예상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이전에 아틀레티코는 펩 과르디올라를 무찌르고 다음 단계로 올라가야 한다.



출처 : http://www.theguardian.com/football/blog/2016/apr/15/diego-simeone-pep-guardiola-atletico-madrid-bayern-munich-champions-league-semi-fin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