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인 루니의 2골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리그 선두로 이끌었다.

 

알렉스 퍼거슨 감독은 긱스를 좌측으로 이동시키면서, 첼시와의 경기에서 최고의 까메오 역할을 했던 스콜스를 선발 투입시켰다. 스몰링은 부상여파로 출전할 수가 없었으며, 따라서 수비진은 선택 사항이 없었다.

 

크레익 벨라미와 앤디 캐롤이 최근 좋은 파트너쉽을 보여줬음에도, 케니 달글리쉬는 그 두 선수 모두 선택하지 않았으며 루이스 수아레즈를 원톱으로 출전시켰다. 호세 엔리케가 복귀하여 글렌 존슨이 본인의 원위치인 라이트백에 자리잡았다.

 

전반전은 치열한 경기가 예상되었던 기대감과 달리 상당히 지루한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경기 중 멈추었던 시간은 에브라와 퍼디난드의 충돌장면 뿐이였으며, 경기는 빠르게 진행되다가 템포 조절에 느려져갔다. 경기 속도가 느려졌을때 양팀 모두 중원에서의 패스 공급이 잘 되지 않았으며, 양측의 골문 근처에서의 패스도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

 

 

미드필드 대결

 

이 경기는 기본적으로 느리고, 소모적인 중원 대결이였다. 라이언 긱스의 왼쪽 미드필더 배치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3명의 패서들을 보유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셈이다. 이 세명의 선수는 볼의 흐름을 진정시킬 수 있는 선수들이며, 경기를 컨트롤 할 수 있는 선수들이다. 달글리쉬 감독은 찰리 아담 대신 조단 헨더슨을 기용했는데, 이는 유나이티드를 압박하고 경기를 지배하려는 그들의 계획을 무마시키기위한 선택이였을 것이다. 하지만 리버풀은 그들이 공을 가지고 있지 않을때 뒤로 내려가기만하면서 유나이티드의 플레이가 원활하게 이루어지게 내버려두었다. 초반에 유나이티드는 전방에 위치한 3명의 선수들에게 공을 보내고자 노력했으며, 리버풀은 괜찮은 공점유율을 가져갔다.

 

하지만 전반전이 진행되면서 유나이티드가 경기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마이클 캐릭이 서서히 전진하기 시작했고, 캐릭은 제라드를 마크했다. 리버풀의 미드필더가 왼쪽으로 빠지면서(제라드와 헨더슨은 이 역할을 번갈아가면서 담당했다) 스콜스에게는 더욱 공간이 생기게 되었다. 그리고 스콜스는 오늘도 깊은 위치에서 효율적인 플레이를 보여줬다. 공의 배분과 경기 템포 조절을 담당했다.

 

 

스피어링의 문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미드필더 라인과 공격 라인 사이에서 지배력을 가져갔다. 이론적으로 스피어링과 루니의 1:1 대결이 이루어질 장소였다. 스피어링은 자신의 포지션에서 좋은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 마치 그가 루카스 레이바의 부재 이후 처음 경기를 치루는 듯한 모습이였다. 그의 플레이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는 어느 범위까지 루니를 따라 경기장을 움직일 것인지 정해져있는 것 같지가 않았다. 그는 너무 많이 자리를 비우고 나오기까지 했다. 때로는 그는 자신의 위치에 머물러 있었지만, 루니는 계속 공을 소유할 수 있었다. 스피어링의 실수를 유나이티드는 영리하게도 전술적 용도로 사용했다. 긱스는 스피어링의 위치를 좁게 만들었고 FA컵에서 박지성이 가져갔던 움직임을 보여주었다.(발렌시아는 측면에서 플레이하지만, 박지성은 점차 중앙으로 와서 공을 받았다) 대니 웰백도 아래로 내려와서 공간을 더 좁혔으며,  레이나의 선방이 있었지만 스콜스는 즉각적으로 공격에 가담하여 헤딩슈팅을 시도했다.





유나이티드의 공격전술은 스피어링 근처를 중심으로 이루어졌고, 플레이가 그를 지나치면서 이루어졌다. 이는 4-1-4-1 포메이션에서 홀딩 미드필더가 공이 없을 상황에서 많은 측면공간을 담당할 때 발생하는 일이다. 이런 상황에서 발생하는 큰 위험요소는 10번 역할을 맡는 선수가 따라갈 수 없는 공간으로 이동한다는 것이다.

 

긱스는 이 역할 담당의 중심축이였다. 그는 공격에서 큰 역할을 했지만, 수비적인 부분에서는 아쉬운 부분이 있었다. 긱스는 글렌 존슨의 왼발 슈팅 장면에서 너무나 중앙으로 치우쳐있었으며, 만약 그 슈팅이 골로 연결되었다면, 긱스의 포지셔닝으로 인한 실점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긱스의 움직임은 득과 실이 있었다.

 

반대 측면에서 안토니오 발렌시아는 이번에도 호세 엔리케보다 나은 경기력을 선보였다. 스페인 출신의 수비수는 몸상태가 완전해 보이질 않았다. 엔리케는 많은 공격 과정을 무마시켰으며, 나중에는 발렌시아로 인한 위험성 때문에 공격적인 플레이를 선보이지 못했다.





후반전

 

미드필더 싸움이 경기의 승패를 좌우할 모든 것이였음에도, 달글리쉬 감독이 하프타임에 아무런 변화를 주지 않았던 것은 놀라운 일이였다. 제라드와 헨더슨에게 스피어링을 더 도와주면서 4-2-3-1 포메이션을 가져갔어야했다. 두명의 홀딩 미드필더를 두는 것은 훨씬 안정적으로 경기를 가져갈 수 있게 했을 것이다.

 

물론 유나이티드가 후반 시작과 동시에 리드를 잡아나갔다. 좋은 볼 소유권을 가져간 이후 코너킥에서 첫 득점이 나왔으며, 두번째 득점은 상징적이다. 그림으로 스피어링의 상태를 보여주듯이 그는 발렌시아에게 공을 줘버렸다. 그리고 그 찬스에서 루니의 두번째 골이 나왔다.

 

 

2-0

 

후반전은 훨씬 정적이며, 2-0 상황에서 역동적인 경쟁은 펼쳐지질 않았다. 퍼거슨 감독에게는 좋은 자원들(톰 클레버리를 포함)이 있었지만, 그는 단 한명도 교체시키지 않았다. 그가 오늘 내세운 전술에 얼마나 흡족해했는지 알 수 있다.

 

달글리쉬는 2명의 선수를 교체하면서 4-4-2 포메이션으로 전술을 바꿨다. 스피어링과 다우닝이 교체되었으며 이 두 선수는 이 경기에서 최악의 플레이를 보여준 두 선수이다. 캐롤은 수아레즈와 함께 공격진을 이루었고, 벨라미는 왼쪽 측면, 제라드와 헨더슨은 중앙 미드필더를 담당했다. 이 두 선수들에게 다행스러웠던 것은 유나이티드가 2-0 상태에서 공격을 열심히 하지 않는다는 것이였다.

 

 

경기 막바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경기를 느슨하게 가져갔지만, 공의 소유권을 가져가고 템포를 죽이는 것에는 여전히 집중하고 있었다. 헨더슨과 제라드가 여전히 깊은 위치에 있었으며, 캐롤과 수아레즈는 전방으로 나가있기에 30야드 정도에 리버풀 선수들이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유나이티드는 그 위치에서 공을 쉽게 점유해갈 수 있었다.

 

수아레즈를 침묵하게 만들었던 에반스와 퍼디난드의 파트너쉽에 캐롤은 최소한 새로운 위험 요소였다. 리버풀이 세트 피스에서 골을 기록했다. 아마 2-0 상황에서 유나이티드가 느슨한 모습을 보여줬던 것이 자아 도취일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들은 느린 템포를 가져가는게 맞았다. 최고의 모습은 아니였지만 경기 내내 리버풀보다 나은 경기력을 선보였다.

 

 

결론

 

유나이티드에게 가장 긍정적인 부분은 그들이 공간을 점유해나간 방식일 것이다. 스피어링을 중심으로 삼각형을 형성, 페널티 박스 근처에서 위협적인 장면들을 연출해냈다. 스피어링은 좋은 플레이를 보여주지 못했지만, 혼자서 너무 많은 선수들과 싸워야했고, 다른 선수들이 그를 도와줬어야만 했다. 루니와 웰백의 호흡은 그를 더욱 괴롭혔으며, 긱스의 패스는 종종 연결되지 못했지만, 긱스의 역할은 핵심적이였다.

 

리버풀은 안필드에서 크레익 벨라미와 앤디 캐롤을 통해 유나이티드를 괴롭힌 재미를 보았음에도 그 선수들을 선택하지 않았다. 다비드 데 헤아의 문제점은 과장되어서 말해지지만, 그가 점점 공중볼 처리에 대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또한 여전히 네마냐 비디치가 없는 유나이티드의 세트 피스 방어에는 문제가 있다. 리버풀이 2주 전에 데 헤아를 괴롭혔던 코너킥 전술을 시험해보지 않았다는 것은 이상한 점이였다.

 

리버풀은 교체 이후에도 나아진 점이 없었다. 리버풀은 경기 막바지에 추격에 성공했지만, 오픈 플레이에서 어떠한 기술을 보여주지도 못했다.

 

 

출처 : http://www.zonalmarking.net/2012/02/11/manchester-united-2-1-liverpool-united-exploit-the-space-around-spearing/




굉장히 흥미로운 경기였고, 전형적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역전을 거두는 방식인 경기였다.

 

안드레 비야스 보아스 감독은 에슐리 콜과 존 테리가 없이 싸워야했고, 조세 보싱와를 왼쪽으로 돌리면서 게리 케이힐의 데뷔전으로 그 공백을 막고자했다. 하미레스와 프랭크 램파드 마저도 빠진 상황에서 말루다가 측면으로 투입되면서 포메이션의 변화를 주어야했다.

 

알렉스 퍼거슨 경은 예상했던 4-4-1-1 포메이션을 내세웠고, 크리스 스몰링이 경기 전날 트레이닝에서 부상을 당함에 따라 그의 장기적인 파트너가 될 조니 에반스가 그 자리에 뛰게 되었다.

 

 

전반전

 

앞서 첼시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대결에서 이상했던 점은 유나이티드가 근소하게 잘했지만, 스코어는 이미 3-0이 되었었다는 것이였다. 이번에는 그와 반대 상황이 일어난 것이다. 첼시는 3골이나 넣었음에도 찬스를 잘 만들어내질 못했고, 보아스 감독의 전술 변화도 영향을 주지 못했다.

 

첼시는 올드 트래포드에서 하프 타임 이후에 괜찮은 변화를 보여주었다. 4-2-1-3 포메이션으로 후안 마타를 니콜라 아넬카, 다니엘 스터리지, 페르난도 토레스 바로 밑에 두는 형식을 취했었다. 마타를 3명의 공격진 바로 밑에 두어 재미를 보았던 기억때문인지, 보아스 감독은 자신이 신봉하는 4-3-3 포메이션에 변화를 주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다른 형태로 변해갔다.

 

 

첼시의 포메이션

 

재미를 보았던 4-2-1-3이 아닌 4-2-3-1에 가까운 포진이였다. 미묘한 차이이겠지만,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첼시는 더 이상 전방부터 강하게 압박하지 않는 팀이되었다. 시즌 초반에는 말루다와 스터리지가 토레스와 동일 선상에 존재할 정도로 유나이티드의 풀백들을 깊숙히 내려가게 만들었다면, 이번에는 포백보다 더 뒤로 빠져있는 상태였다. 공이 없는 상황에서 마타는 최전방에서 2번째로 존재하는 선수였고, 보아스 감독은 공격적인 성향이 익숙한 스터리지에게 뒤로 내려올 것을 지시했다.(페널티킥을 내주기 전 상황)

 

한가지 영향력이 있던 포메이션 변화는 바로 웨인 루니가 공이 없는 상황에서의 포지션 변화인 것이였다. 보통 4-3-3 포메이션을 상대할 상황에서 루니는 존 오비 미켈과 같이 홀딩 미드필더 옆에 존재하여 미드필더 숫자를 늘려주는 역할을 담당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런 선수가 없었고, 하울 메이렐레스와 마이클 에시앙은 모두 전방으로 올라갈 수 있었다. 따라서 루니는 단지 공격에만 집중하면 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유나이티드의 공격

 

전반전 유나이티드는 페널티 박스에서 좋은 찬스들을 많이 잡아나갔다. 영은 자주 아래로 내려오기도 했으며, 변칙적인 움직임을 가져가 이바노비치가 무엇을 해야할지 모르게 만들었다. 영은 다양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선수이다. 안으로 들어올 수도 있는 선수이고, 혼자서 뚫을 수도 있으며, 터치라인에서 떨어지지 않고 플레이할 수 있는 선수다. 이는 상대 선수가 수비하기 곤란하게 만드는데, 영은 공을 가진 상황에서 좋은 움직임을 보여주었다.

 

영과 발렌시아(첼시는 발렌시아를 어떻게 막아야할지 상당히 고민했겠지만, 활약하지는 못했다)는 중원에 더욱 힘을 보태줘야했는데, 그렇지 못했고 첼시에게 중원에서의 숫자에 압도당하기 시작했다. 전반전 라이언 긱스의 볼배급은 형편없었다.

 

대니 웰백과 게리 케이힐의 맞대결은 2가지 점에서 흥미로웠다. 웰백은 공간을 찾아내는데 탁월한 능력을 지니고 있고, 경기 나중에는 그런 모습이 사라지기는 했지만 익숙하지 않은 포백 라인에게 웰백은 위협적인 존재일수 밖에 없다. 게리 케이힐은 커버링에 굉장히 능숙한 선수이다. 물론 그가 태클이 조금 서툴러서 그의 능력에 의문을 다는 사람들도 있긴 하지만 말이다.

 

첼시는 다니엘 스터리지가 에브라를 손쉽게 제쳐내면서 첫번째 득점에 성공했다. 에브라는 또한 3번째 실점장면에서도 위치 선정이 굉장히 좋지 못했다.

 

 

후반전

 

마타는 토레스의 크로스를 완벽하게 마무리지었다. 토레스는 사이드로 자주 빠져나갔는데, 중앙 지향적인 마타, 말루다, 스터리지에게 이는 최적의 조건이였다. 루이즈의 세번째 골은 퍼거슨에게 변화를 요구했다.

 

3-0 스코어부터 경기 종료 직전까지 전술 변화의 흥미로운 부분들이 발견된다. 웰백을 미드필더로 내리고 하비에르 에르난데스의 투입. 에르난데스는 급조된 첼시 포백라인을 뒤로 물러나게 만들었다. 경기 후 퍼거슨 감독은 그를 선발로 쓰지 않은 것이 후회된다고 말하기까지 했다.





스콜스의 투입, 마타가 사이드로 빠진다

 

두번째 교체는 굉장히 중요했다. 하파엘과 스콜스의 교체였고, 이는 발렌시아가 우측 수비수를 담당한다는 의미였다. 웰백은 오른쪽에 위치하고 긱스는 왼쪽으로 이동했다. 교체 선수들의 활약은 동점을 만들었다는 측면에서 모두 임팩트가 있었지만, 스콜스의 역할은 매우 핵심적이였다. 경기의 템포를 조절하고, 나중에는 유나이티드의 공격 방향을 지시하기도 했다.

 

스콜스가 맹활약함에도 첼시는 그가 그렇게 하도록 내버려두었다. 오히려 라인을 더 내렸다. 그들은 볼의 소유권을 되찾고 다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게 바로 돌려주는 모습을 보였다. 공의 소유권을 잡아도 첼시는 너무 빠르게 진행했고, 너무 수직적으로만 달려나갔다. 첼시는 리드를 잡았으므로 정신없이 빠르게 진행되는 경기를 원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에게는 경기를 읽고 템포를 조절해줄 선수가 필요했다. 스터리지가 로메우로 교체되어 템포 조절을 해줄 수 있는 마타가 측면으로 빠지게 되었다. 이는 유나이티드가 공의 소유권을 더욱 잘 잡을 수 있도록 만들어준 셈이고, 스콜스는 자유로운 상태가 되었고 이러면 유나이티드의 동점골은 터지는게 뻔한 셈이였다.

 

 

결론

 

프리미어리그 빅 매치에서 정신없이 골이 마구마구 터지는 경기에는 이런 3가지 요소가 존재한다.

 

1) 양 팀 모두 수비수들이 정신줄을 놓는다.

 

2) 무분별한 태클 - 2개의 골이 PK로 나왔으며, 프리킥 상황에서 발생하기도 했다.

 

3) 중원에서의 영리한 플레이의 실종. 스콜스의 투입과 마타를 사이드로 돌린 것은 큰 영향을 주었다.


출처 : http://www.zonalmarking.net/2012/02/05/chelsea-3-3-manchester-united-chelsea-move-into-3-0-lead-but-lose-control/




4-5-1 과 4-5-1의 싸움은 4-4-2 와 4-4-2의 싸움으로 변했다. 리버풀은 단지 경기에서 이기는 것뿐이다.

 

케니 달글리쉬 감독은 놀랍게도 리버풀의 3명의 센터백을 동시 기용했다. 벨라미는 벤치에 있고 앤디 캐롤은 나홀로 기용되었다.

 

알렉스 퍼거슨 경은 나니,루니,존스 없이 경기를 치뤄야했고, 4-5-1 카드를 선택했다. 웰백을 최전방 공격수로 스콜스를 3명의 중앙 미드필더 중 가장 깊숙히 배치시켰다.

 

격렬한 경기가 진행될 것으로 예상되었지만, 경기는 매끄럽게 진행되었다. 중앙에서 안정적으로 경기를 가져가고자했으며, 오픈 플레이에서 창조성은 결여된 상태였다.

 

 

리버풀의 포진

 

첫번째 의문은 리버풀이 어떠한 포진으로 경기에 임하는가였다. 언론들은 리버풀이 3-4-2-1 포메이션으로 경기에 임할 것으로 생각했다. 제이미 캐러거는 예상과 달리 '센터 하프'로 배치되었다. 두명의 센터백 앞에 미드필더 위치에 고정되었다.

 

달글리쉬의 리버풀이 어떠한 전략으로 경기에 나서는지에 대해서 예상할 수가 없었다. 캐러거까지 포함하여 3명의 선수를 수비에 둘 수도 있겠지만, 유나이티드가 단 한 명의 공격수를 선택한 상태에서 캐러거까지 사용하는 것은 불필요한 것이였다. 그는 미드필드에서 공간이 남는 자리에 캐러거가 뛰기를 바랬을 것이다. 캐러거는 리버풀 전술에 유연성을 불어넣었고, 유나이티드가 공격수 수를 늘려도 효과적으로 대체할 수 있는 것이였다. 이런 선수에 대해 과소평가해서는 안된다.

 

 

미드필드 싸움

 

다시 말하자면 캐러거는 미드필드에서 임기응변으로 홀딩 역할을 맡는 것이였다. 홀딩 미드필더 소화가 가능한 센터백들처럼말이다.(좋은 예로는 에버튼의 욘 헤이팅하를 들 수 있다) 캐러거는 상대 선수를 쫓는 것을 선호한다.이런 점에서 루카스는 다른 유형의 선수라 할 수 있다. 루카스는 두 역할 모두 잘할 수 있지만, 상대 선수를 쫓아다니는것 보다는 수비와 미드필더들 사이에서 에너지 넘치게 쓸어버리는 것을 더 잘하는 선수이다.

 

어쨋든 유나이티드는 미드필더 라인을 깊숙히 내렸다. 따라서 캐러거가 따라다닐 선수가 없게된 상황이다. 그는 무엇을 해야할지 모르는 듯했다. 리버풀이 중원대결하는데 캐러거의 패싱 능력과 기동력은 모자랐다. 따라서 유나이티드가 전반에 중원에서의 플레이를 성공적으로 할 수 있었다. 그들은 볼을 굉장히 잘 돌렸다. 미드필드에서 트라이앵글을 형성하는 것에 유연성을 갖고 있었다. 또한 스콜스는 페널티 박스에 나타나기도했다.

 

미드필드에서 어웨이팀이 우위를 가져갔다. 물론 이는 4-3-3과 4-3-3의 싸움이였기 때문에 예상할 수 있던 일이였다. 양 팀의 미드필더 중 가장 여유롭게 공간이 남던 선수들은 바로 스콜스와 캐러거다. 과연 누가 볼을 많이 다루면서 경기에 영향을 더 미칠 것인가? 논쟁거리 조차되지 않는다. 캐러거가 23개의 패스를하는데 그친 반면 스콜스는 75회의 패스를 시도했다.

 

 

득점

 

유나이티드가 소유권을 지배했지만, 지속적인 압박으로 이어가지는 못했다. 이 경기에서 흥미로웠던 전술을 그들이 양 윙어를 이용하는 방식이였다. 클래식 윙어답게 발렌시아는 터치라인 부근에서 경기를 소화했다. 하지만 박지성은 경기가 진행될수록 더욱 중앙 지향적으로 변해갔다. 실제로 전반이 끝나기 전에는 4-4-1-1 포메이션을 형성한 것 같았다. 박지성이 웰백 아래서 뛰고 긱스는 박지성의 빈 자리인 왼쪽을 담당하는 형식으로 말이다. 왼쪽에서는 파트리스 에브라가 계속해서 전진하여 스튜어트 다우닝을 뒤로 밀어내고 있었다. 이 전술을 요약하는 바가 바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득점 상황이다. 오른쪽에서 오는 크로스를 박스 안으로 침투한 박지성이 마무리 지으면서 득점이 나왔다.

 

리버풀은 코너킥 상황에서 선제골을 뽑아냈다. 다비드 데 헤아 주위에 선수들이 몰리게 만드는 것은 효과적이였고, 공은 데 헤아가 나설 수 없는 곳으로 올렸다. 가장 이상했던 점은 상대 선수들은 데 헤아가 공을 잡지 못하게 시도하는중인데, 데 헤아는 마치 불안하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고자한다는 듯이 자꾸 공을 잡으려 나왔다는 것이다. 만약 데 헤아가 앞으로 나오지 않고 그 자리에 머물러있었더라면, 그는 쉽게 그 슛을 막아냈을 것이다.

 

 

후반전

 

전술적인 부분에서 15분 동안 변한 것은 없었다. 단 한가지를 제외하고는 말이다. 바로 리버풀이 코너킥 전략을 바꾼 것이다. 더 이상 데 헤아 근처에 있지 않았다. 이것이 데 헤아가 눈에 띄게 불안해보이게 만들었다. 성공적인 전술이 꼭 영리한 속임수는 아니다. 이런 상황은 단지 유나이티드가 대처하지 못한 상황인 것이다. 리버풀은 오픈 플레이에서 계속 창조성을 보이지 못했고, 이상하게도 데드볼 찬스에서 유나이티드에게 이득이 되는 모습들을 보였다.

 

60분에 달글리쉬감독은 포메이션은 유지한 상태로 두 선수를 교체했다. 찰리 아담은 캐러거의 역할을 그대로 이어받았고, 막시 로드리게스를 빼고 카윗을 투입, 다우닝을 왼쪽으로 옮겼다.

 

(최소한 그러한 교체가 피치 위에서는 효과적으로 먹혔다. 사실 약간 다른 방식의 교체였다. - 아담과 막시를 캐러거와 카윗을. 확실히 자연스러운 교체는 아니였다. 4-3-3에서는 보통 윙어는 윙어와 중앙 미드필더는 중앙 미드필더와 교체를 한다. 물론 의도적으로 이렇게 된 것은 아닐 것이다. 대기심에게 교체 서류를 주는 과정에서 엉킨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이렇게 잘못 교체되는 상황은 상대에게 혼란을 준다는 점에서 효과적이기도 하다.)

 

제라드가 잠시 홀딩 역할을 수행했지만, 아담이 이어 받았다. 물론 아담이 홀딩 미드필더는 아니다. 볼튼과의 경기에서 리버풀은 제라드와 아담이 상대 선수의 질주를 막지 못하는 것에서 문제점을 드러냈다. 하지만 패스를 중심으로 두는 인내심이 필요했던 이 경기에서 아담은 홀딩 역할을 충분히 소화해낼 수 있다. 유나이티드에게는 전형적인 10번(공격형 미드필더)나 질주가 가능한 미드필더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제 리버풀이 교체로 한결 편해보였다. 자연스럽게 패스를 해줄 수 있는 선수가 투입되었고, 패스가 한층 빨라지기 시작했다.





4-4-2

 

종료 15분 정도를 남겨두고 양팀의 감독은 같은 변화를 추구했다. 두 감독 모두 베테랑 미드필더를 빼고 스피드를 갖춘 공격수를 투입했다. 제라드와 벨라미가 교체되었고, 스콜스와 에르난데스가 교체되었다. 두 감독 모두 재경기를 원치 않았던 것 같다. 모두 공격적인 선택을 취했으니 말이다.

 

더욱 개방적인 경기가 진행될 수 있게 되었다. 수비 라인은 뒤로 내려가게되고 남는 선수는 존재하지 않았다. 미드필더들도 수비수들과 같은 이유로 달라졌고, 스콜스를 잃은 유나이티드는 경기 컨트롤을 못해가고 있었고, 리버풀은 뒤늦게 점차 나아지고 있었다.

 

 

카윗의 결승골

 

여지껏 미드필더들에 대해서 이야기했지만, 승부를 결정지은 것에 미드필더들은 아무런 관여가 없었다. 페페 레이나의 롱킥, 캐롤의 헤딩, 카윗의 마무리로 리버풀이 승리를 가져갔다. 에브라의 위치선정은 아쉬웠다. 이날 경기에서 두 골 모두 캐롤이 관여했다. 아마 지금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꺼낼 수 있는 수비 조합중 에반스-스몰링 조합이 최선이겠지만, 몸싸움이 강한 스트라이커에게 고전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과연 벨라미의 투입이 유나이티드 수비진을 뒤로 밀어냈고, 이것이 골을 만들어냈는가?

 

55분에 비슷한 상황으로 레이나의 롱킥 상황이 있었고, 실점 장면에서는 유나이티드 수비진들은 그 때보다 10~15야드 정도 더 뒤로 위치해있었다. 만약 스몰링이 더 뒤로 내려가지 않았더라면, 카윗은 오프사이드에 걸렸을 것이고 1-1로 경기를 마무리지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결론

 

양 팀 모두 그들이 보여줄 수 있는 최상의 축구를 보여주진 않았다. 경기에서 있던 사건으로 잊혀진 리그 경기에서는 독창성과 창조성이 부족했다. 골들은 코너킥, 크로스, 긴 골킥으로부터 나왔다. 경기에는 인내심이 필요했다. 패싱에 기반을 두었지만, 아름다운 경기는 아니였다.

 

이 경기는 두 번의 싸움이 있었다. 4-5-1로 맞붙은 75분 동안은 유나이티드의 패싱 능력이 뛰어났기에 그들이 경기를 지배했다. 하지만 4-4-2로 맞붙은 싸움에서는 리버풀이 다이렉트 플레이에 적합한 장신의 공격수를 보유했기에 승리를 가져갔다고 볼 수 있다.

 

캐롤이 득점 장면에서 화려해보이지는 않았지만, 정말로 도움되는 플레이를 선보였다. 아마도 이 경기가 캐롤의 리버풀 커리어의 시발점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by Daniel Taylor


사실 이런 질문과 관련해서 정말 대답하기 어려운 부분은 정답이 없다는 것이다. 정말로 던컨 에드워즈가 세계 축구사에 이름을 남길만한 선수로 기억될 수 있었을까? 지난 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리버풀의 경기를 관전하기 위해서 안필드에 방문했던 펠레처럼 사람들은 던컨 에드워즈를 기억해줄 수 있었을까? 사람들은 던컨 에드워즈를 축구 역사상 최고로 위대했던 선수로 생각하게 되었을까?


이러한 물음에 우리는 정확한 대답을 할 수가 없다. 만약 1958년 끔찍했던 뮌헨 참사에서 에드워즈가 사망하지 않았더라면 1966년 잉글랜드의 줄리메 트로피(Jules Rimet trophy)는 바비 무어가 아닌 던컨 에드워즈가 들어올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사실 던컨 에드워즈에 대해서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그에 대한 짧은 고증이 있을 뿐이며 흑백 화면을 통해서만 그의 플레이를 볼 수 있다. 거기에 에드워즈가 공을 잡은 순간에 한정해서만 볼 수 있다. 우리가 던컨 에드워즈에 대해서 알고 있는 내용의 절대 다수는 그와 같은 시대에서 직접 눈으로 지켜보았던 사람들의 증언에 의존하고 있다. 바비 찰튼 경이 대표적인 인물인데 그는 던컨 에드워즈야말로 자신이 직접 목격했던 최고의 축구 선수였다고 증언한다. 물론 바비 찰튼 경말고도 던컨 에드워즈가 정말 대단한 선수였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지난 주 목요일은 던컨 에드워즈가 잉글랜드 국가대표로 데뷔한지 60년이 지난 날이었다. 당시 던컨 에드워즈는 18세 183일의 나이로 잉글랜드 국가대표로 데뷔했으며 무척 당당한 태도로 축구계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젊은 선수가 탄생했음을 전세계에 알리는 듯한 풍채를 뿜어냈다고 한다.


뮌헨 참사 사건 이후 15일만에 던컨 에드워즈는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그 때까지 에드워즈는 잉글랜드 국가대표로 18경기를 뛰었다. 바비 찰튼 경의 말에 따르면, 사람들은 던컨 에드워즈의 죽음에 '위대한 던컨이 세상을 떠났다' (Big Duncan has gone) 라는 표현을 했다고 한다. 여기서도 마찬가지로 우리는 던컨 에드워즈가 뮌헨 참사를 극복해 살아남았다면 얼만큼 대표팀 경기를 소화했을지에 대해서 추측을 할 수밖에 없다. 찰튼 경은 "던컨은 모든 것을 다 갖춘 선수였다. 개성이 강하며 강인한 성격이었으며 이러한 기질은 피치 위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만약 던컨이 자신의 축구 선수 커리어를 유지할 수 있었다면, 우리가 목격한 최고의 선수라는 증언을 증명해줄 업적을 남겼을 것이라 확신한다. 물론 나는 펠레, 마라도나, 베스트, (데니스) 로, (지미) 그리브스, 내가 좋아하는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같이 위대한 선수들을 알고 있지만 던컨은 경기 모든 부분에서 뛰어난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스탠리 매튜스나 톰 피네이도 던컨 에드워즈의 재능을 갖추지는 못했다." 라고 말한다.


보는 이를 즐겁게 만드는 최초의 원더 보이였던 던컨 에드워즈의 자리를 물려받아 후세에 조지 베스트, 폴 개스코인, 라이언 긱스, 웨인 루니같은 선수들이 등장했다. 이번 칼럼을 작성하기 위해서 나는 과거의 언론 보도를 찾아보게 되었고 1953년 4월 1일 기사를 여기에 소개해보고자 한다. 이 기사는 던컨 에드워즈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1군 데뷔를 며칠 앞둔 시점에서 작성된 기사였다. 내가 과거의 언론 보도를 찾아보면서 느낀 점은 그 시대의 기자들은 오늘날의 언론인들처럼 섵부른 예측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내가 소개하고자하는 기사를 작성했던News Chronicle의 조지 팔로우 기자는 던컨 에드워즈에 대해 기사를 작성하면서 시대를 앞서간 것 같다. 아래는 그의 기사 일부이다.


"최초의 원자 폭탄의 등장처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정말이지 멋진 일을 앞두고 있다. 이들이 던컨 에드워즈라는 재능을 발견한 것은 축구계에 있어서 정말로 대단한 일이다. 이제 던컨 에드워즈는 16살에 불과한데 우리가 에드워즈에게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 것 같냐고? 일단 에드워즈는 소년이 아닌 사내 녀석이다. 벌써부터 신장이 5피트 10인치(178cm)다. 에드워즈의 신체 조건은 굉장히 강력한 힘이 발휘될 수 있도록 만들어주고 있다. 에드워즈가 공을 잡으면 연약한 소년이 발재간을 부리는 것이 아니라 대담한 돌파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에드워즈가 태클을 시도하면 마치 사람을 잡아먹을 듯한 강도의 태클이 나온다. 게다가 던컨은 올드 트래포드의 자랑이었던 잭 로리(Jack Rowley,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통산 211골)에 버금하는 양발 슈팅 능력을 지니고 있다. 1부 리그에서 던컨 에드워즈가 언제부터 폭발력있는 모습을 보여줄 것이며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에 대해서 정확히 알고있는 사람은 없지만, 이것 하나 만큼은 확실하다 : 던컨 에드워즈는 사람들의 시선을 이끄는 선수가 될 것이다(It will be spectacular)."


에드워즈는 곧바로 완벽한 축구 선수로 자리잡기 시작했고 주로 미드필더로 경기를 소화했지만 어떤 포지션에서든 피치 위에서 강력한 존재감을 뿜어냈다. 에드워즈의 국가대표 첫번째 경기는 잉글랜드가 스코틀랜드에게 7:2로 이긴 경기였다. 데니스 윌쇼가 최초로 1경기 4골을 기록한 선수가 되었고 냇 로프하우스가 2골을 기록했지만 헤드라인은 전적으로 에드워즈의 차지였다. 스코틀랜드의 공격수 로리 라일리는 동료 토미 도허티에게 "저런 선수는 도대체 어디서 발견한거야? 클라이드 강(스코틀랜드의 강)에 더 작고 강력해진 전투함(던컨 에드워즈)이 있잖아!" 라고 말한 일화가 있다.


에드워즈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잉글랜드에서 최연소 국가대표팀 데뷔 기록을 가진 인물이었다. 이 기록은 1998년 마이클 오언에 의해서 깨지기 이전까지 유지되었고 에드워즈의 아우라 덕분인지 매트 버스비 경이 유스팀 경기에 던컨 에드워즈를 출전 시키려할 경우 상대 팀은 이미 1군에 멀쩡히 자리잡은 국제적인 실력의 선수를 유스팀 경기에 내보낸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에드워즈는 전술에 제약되지 않는 위대한 선수였을 뿐만 아니라 동나이대 선수들에 비해 탁월히 앞서있는 기량을 갖춘 선수였다. 


"던컨 에드워즈의 힘으로 상대를 이긴 경기들이 있었다. 특별히 유스컵 첼시와의 준결승 2경기가 기억에 남는다. 우리는 첼시 원정에서도 올드 트래포드에서도 각각 2:1 승리를 기록했는데 4골 모두 던컨이 기록한 골이었다. 상대에도 좋은 선수들이 있었기 때문에 결코 쉬운 경기가 아니었다는 점을 말해두고 싶다. 난 당시 코너킥을 찰 때 이렇게 생각했다. "여기서 내가 올려주면 던컨이 알아서 해결해주겠지." 정확하게 던컨이 상대팀 10명의 선수를 완벽히 따돌리고 결승골을 만들어냈다. 정말 대단한 선수였다. 오늘날의 밀집된 수비를 상대하더라도 던컨은 그들을 충분히 무력화시킬 것이다." 바비 찰튼 경은 이렇게 말하며 매트 버스비 경은 "던컨은 우리가 그를 데려왔던 16살 때부터 결코 소년이 아닌 한 명의 사내 자식이었다."라고 말했다.


던컨 에드워즈를 바라보는 버스비 경의 눈빛은 반짝였을 것이다. -처음에는 아버지와 같은 애정을 느겼겠지만, 뮌헨 참사 이후 깊은 슬픔으로 바뀌었을 것이다.- 버스비 경의 표현에 따르면 에드워즈는 "큰 경기를 좋아하는 타입의 선수, 큰 무대에서 뛰는 것을 더욱 즐기는 청년"이라고 한다. 1956년 잉글랜드가 세계 챔피언 서독을 상대하기 위해 베를린으로 원정 경기를 떠났을 때, 에드워즈는 자신의 명성에 걸맞는 활약을 펼쳤다. 이 날 경기에서 던컨 에드워즈가 기록한 골은 걸작 그 자체였다. 25야드 거리에서 3:1 승리의 기반을 다지는 득점을 기록하기 이전에 상대 수비의 견제를 풀어내는 모습도 대단했다.


이번에는 팀의 주장인 빌리 라이트로부터의 칭찬을 소개하고자 한다. "던컨 에드워즈라는 이름은 경기를 지켜본 모든 사람의 입에 오르내리게 되었다. 에드워즈는 정말로 대단한 선수였다. 오늘날에 에드워즈가 보여준 선수 개인의 퍼포먼스에 버금가는 모습을 보여줄 선수는 거의 없다고 봐야한다. 사자처럼 용맹하게 태클을 시도했고 모든 득점 기회에 연관 되었고 멋진 마무리로 기회를 마무리 지어냈다. 19살에 불과한 나이였음에도 던컨 에드워즈는 이미 월드 클래스 선수였다."


뮌헨 참사 이후 던컨 에드워즈가 세상을 떠나기 이전까지 던컨 에드워즈의 동료 7명은 이미 세상을 떠났고 에드워즈는 15일을 버텼지만 끝내 사망하고 말았다. 당시 에드워즈가 15일씩이나 버틴 것은 기적과도 같은 일이라고한다. 에드워즈는 사고로 인해 신장 기능에 손상을 입었고 폐 허탈 증세에 골반뼈 골절과 오른쪽 허벅지에 여러 골절상을 입었으며 갈비뼈 골절에 추가로 여러 내상을 당한 상태였다.


던컨 에드워즈는 의식이 절반 정도 돌아온 상태에서도 수석 코치인 지미 머피에게 토요일 주말에 있는 울버햄턴과의 경기 킥-오프 시간을 물어봤고 이 이야기는 이미 널리 알려져있다. 던컨 에드워즈는 지미 머피 코치에게 그 경기를 놓칠 수 없다고 간절히 뛰고 싶다는 의사를 전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프랭크 테일러의 <The Day a Team Died>라는 저서에는 '던컨 에드워즈의 죽음은 젊은 위인(young Colossus)가 한창 재능을 펼쳐야할 시기에 세상을 떠난 것'이라고 표현되어 있다.


던컨 에드워즈의 죽음으로 우리는 수없이 많은 답이 없는 질문을 마주하게 되었다. 만약 던컨 에드워즈가 살았다면 1958년 월드컵에서 잉글랜드는 어떤 성적을 낼 수 있었을까? 축구계 위인들 사이에 던컨 에드워즈가 이름을 올릴 수 있었을까? 던컨 에드워즈를 향한 지미 머피의 찬사로 글의 마지막을 장식하고자 한다. "나는 항상 무하마드 알리의 '나는 위대하다!'라는 전세계를 향한 외침을 보면 미소를 머금게 된다. 수많은 위대한 인물들 중에서 가장 위대한 인물은 바로 던컨 에드워즈라는 축구 선수이다."



출처 : http://www.theguardian.com/football/blog/2015/mar/28/duncan-edwards-original-boy-wonder-greatest 





by Daniel Taylor

  

알렉스 퍼거슨 감독은 축구를 주제로 글을 써서 밥을 먹는 사람들이 하는 충고를 귀담아듣지 않는다. 그렇지만 나는 대담하게 퍼거슨 감독에게 충고를 남기고 싶다. 특히 골키퍼에 관련해 퍼거슨 감독에게 한 마디 하고 싶어서 이 글을 쓴다.

 

조나단 윌슨의 <The Outsider>라는 책에는 포메이션에 대한 깊이있는 이야기가 담겨있다. 조나단 윌슨은 포메이션에 대한 논의를 심도있게 다뤘고 그 포메이션에서 선수가 담당하는 여러가지 복잡한 역할에 대해서 서술했다. 나는 "Tommy & JoJo"로 불렸던 토마스 은코노와 조셉-앙트완 벨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다. 그리고 이 부분은 퍼거슨 감독이 지금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부분에 대해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를 제공할 것이다.

 

약 20년간 은코노와 벨은 카메룬 대표팀에서 주전 자리를 놓고 경쟁을 펼쳤다. 지금까지도 두 선수가 아프리카 축구 역사상 최고 골키퍼로 언급되고 있다. 두 선수가 서로 다른 시대를 살고 있었다면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마치 다비드 데 헤아와 아네스 리니고르처럼 두 선수는 역할을 분담하고 있었다. 두 선수는 서로의 역할 분담이 별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겠지만, 골키퍼의 잦은 교체는 수비진에게 혼란을 주었다.

 

잉글랜드에서도 비슷한 예를 찾아볼 수 있다. 피터 쉴튼과 레이 클레멘스는 서로 번갈아 가며 경기를 소화했다. 1979년 오스트리아를 상대로 잉글랜드가 4-3 승리를 거둔 경기에서 론 그린우드 감독은 전반에는 쉴튼을 후반에는 클레멘스를 기용했다. 수비수들이 골키퍼의 성향도 파악해야한다는 것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던 결정이었다. 보통 골키퍼 자리는 확고한 주전이 차지하게 된다. 그리고 그 선수가 자리를 굳건히 지키는 것이 가장 일상적인 일이다. 앞서 예시를 들었던 2가지 경우도 모두 로테이션이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다. (물론 세자르 산체스와 이케르 카시야스의 대결에서 비센테 델 보스케 감독이 금방 카시야스가 더 좋은 옵션이라는걸 눈치챘다는 다른 예도 있긴 하다) 현재 퍼거슨 감독은 잇따른 실점에 대해서 우려를 표하면서 계속해서 데 헤아와 리니고르를 번갈아가가며 출전시키고 있다.

 

퍼거슨 감독이 이렇게 오랫동안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경우도 드물다. 그렇지만 리니고르와 데 헤아를 놓고 고민하는 시간이 너무나 길어지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데 헤아는 리그 1,2라운드를 소화했지만, 2라운드 풀럼전에서 실수를 했던 탓에 리니고르에게 자리를 내줬다. 리니고르도 리그 2경기를 뛴 이후에 다시 데 헤아에게 자리를 내줬다. 다시 자리를 차지한 데 헤아는 리그 5경기 연속 출전했다. 그렇지만 다시 데 헤아가 사랑니 발치로 결장하게 되면서 다시 리니고르가 골키퍼로 나서기 시작했다.

 

데 헤아가 CFR 클루이전에 나서기 전까지 리니고르는 5경기를 연속으로 출전했다. 두 선수가 출전 시간을 나눠먹는 사이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지금까지 33골이나 실점했고 퍼거슨 감독은 지금 자기가 이끄는 팀이 만화같은 수비를 하고있다고 호되게 꾸짖고 있다. 물론 골키퍼 로테이션이 실점 상승에 영향을 미쳤다는 정확한 증거는 없다. 그렇지만 두 가지가 연관되어 있지 않다고 볼 수는 없다.


역사를 통해서도 알 수 있지 않은가? 피터 슈마이켈은 92/93 시즌 모든 경기에 출전했고 93/94, 95/96, 96/97시즌은 2경기를 제외하고는 모두 출전했다. 98/99 시즌에는 4경기를 제외하고는 모두 피터 슈마이켈이 경기에 나섰다. 마시모 타이비가 유명세를 탔던 바로 그 99/00시즌에도 주전 골키퍼 마크 보스니치는 38경기 중 23경기에 선발출전했다. 이후 영입된 파비앙 바르테즈는 00/01시즌에 32경기를 뛰었고 02/03시즌에는 30경기를 소화했다. 에드윈 반 데 사르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합류했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우승 트로피를 차지했던 06/07, 07/08, 08/09, 10/11시즌에 반 데 사르는 각가 32, 29, 33, 33경기를 소화했다.

 

그렇다. 성공한 팀에게는 확고한 주전 골키퍼가 존재한다. 첼시가 우승을 차지했던 04/05, 05/06, 09/10시즌 페트르 체흐는 11경기를 제외하고 모두 출전했다. 그리고 지난 시즌에는 맨체스터 시티의 조 하트가 전경기 출전을 기록하며 맨체스터 시티의 우승을 이끌었다. 퍼거슨 감독도 슈즈버리 타운에서 고작 £100,000에 데려올 수 있었던 하트를 데려오지 못했던 것을 실수라고 말하고 있으니...

 

여기서 조 하트가 흠잡을데 없는 모습을 보여줬다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게 아니다. 이야기를 조금 더 심화시켜보자. 올시즌 프리미어리그에서는 현재까지 로버트 그린, 페페 레이나, 셰이 기븐, 아담 페트리치가 치명적인 실수로 자신들의 확고한 입지를 잃어버렸다. 사우스햄튼은 켈빈 데이비스, 아르투르 보누치, 파올로 가자니가를 모두 기용하고 있는데 이들은 현재 리그에서 가장 많은 골을 내주고 있다. 아스날의 보이치에흐 슈체즈니와 비토 마노네 모두 데이비드 시먼의 안정감을 그리워하는 팬들을 미치게 만들고 있다. 반면 팀 하워드, 유시 야스켈라이넨, 마크 슈워처, 시몬 미놀렛, 알리 알-합시는 자신들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아직까지도 주전 골키퍼가 정해지지 않은 클럽이 바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다. 퍼거슨 감독이 이토록 오랫동안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것도 보기 드문 일이다. 그리고 굉장히 복잡한 이유로 결장이 잦아지는 것 같고 일관적인 모습도 보이지 않고 있다. 다비드 데 헤아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이적했던 초기에 데 헤아는 불안함 그 자체였다. 그렇지만 퍼거슨 감독은 크리스마스 시즌에 데 헤아가 끔찍한 실수를 저지르기 전까지 계속해서 데 헤아를 믿어줬다. 그런데 이번 시즌에는 실수 한 번 하면, 바로 다음 경기에서는 리니고르에게 자리를 내주고 있다.

 

문제는 데 헤아와 리니고르가 아주 특출나게 뛰어난 골키퍼까지는 아니라는 것이다. 며칠 전 과거 프로에서 공격수로 뛰었던 익명의 선수를 만났는데 그 분은 두 선수 모두 아직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걸맞는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게리 네빌도 골키퍼 로테이션 정책에 달갑지 않아하는 모습이다. 네빌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코너킥 실점 장면에서 골키퍼의 페널티 박스 지배력 부족을 지적했다. "수비수들은 자신들 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까봐 두려워하고 있을꺼에요." 네빌이 이렇게 말했다.

 

도대체 누구를 선택해야하는가? 1978녀에는 이런 일이 있었다. 22명의 선수에게 쉴튼과 클레멘스 중에 누구를 선택해야할지 물어보았는데 9명이 쉴튼을 2명이 클레멘스를 선택했다. 클레멘스를 선택했던 2명 중 한 명은 클레멘스와 리버풀에서 발을 맞추고 있었던 데이비드 존슨이었다. 11명의 선수는 기권을 선택했다.

 

나는 데 헤아를 선택하고 싶다. 아직까지는 완벽한 모습과는 동떨어져 있으나 데 헤아는 지금까지 번뜩이는 장면을 여럿 연출했다. 조만간 22살이 되는 데 헤아는 상당한 잠재성을 지닌 선수다. 그걸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은 없을 것이다. 퍼거슨 이후도 바라보면 더더욱 데 헤아이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데 헤아의 실수가 잦다는 것도 인정해야한다. 데 헤아의 실수를 만회할 정도의 공격력을 뿜어내고 있다는 것이 데 헤아 입장에서는 다행스러운 일일 것이다.

 

물론 데 헤아가 새로운 국가에서의 생활에 적응하는데 어려움을 겪었을 것도 고려해줘야한다. 전체적으로 데 헤아는 빠른 속도로 적응에 성공했다. 그렇지만 유감스럽게도 퍼거슨 감독은 선수들에게 기회를 공평하게 주면서 데 헤아의 자신감을 깎아먹고 있다.

 

골키퍼는 예외적인 케이스다. 골키퍼 로테이션은 수비수들에게 혼란만 가중시킬 뿐이다. 앞서 언급했던 카메룬의 2명의 골키퍼를 통해 말해보고자 한다. 은코노는 세트 피스에서 양쪽 골대에 모두 수비수들을 배치시켰다. 반면에 벨은 골대에 수비수를 세우지 않았다. 또한 은코노는 수비수들이 라인을 뒤로 내리면서 수비해주길 요구했지만, 벨은 자신이 뒷공간을 담당하겠다면서 수비수들에게 앞으로 나가라고 말했다.

 

쉴튼과 클레멘스도 서로 달랐다. 쉴튼은 상대와 과감하게 맞서는 것을 꺼려했지만, 클레멘스는 공격적으로 앞으로 나갔다. 또한 쉴튼은 수비수들이 자신의 움직임을 방해하지 않도록 수비수들과 거리를 두었지만, 클레멘스는 수비수들이 자기 근처에 위치해주길 희망했었다. 아주 미묘한 차이라 볼 수 있겠지만 아주 중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재능은 넘치지만 안정감이 부족한 데 헤아, 멋드러진 세이브는 없지만 안정감 있는 리니고르는 서로 다른 스타일을 가지고 있다. 현재까지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리그 선두를 달리고 있지만, 칼럼을 쓰는 이 시점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맨체스터 시티보다 10골이나 더  실점했다. (맨체스터 더비 승리로 현재는 9골차)

 

퍼거슨 감독은 현재까지 두 선수 모두에게 확신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로테이션을 시행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사실 두 선수 모두에게 강한 인상을 받는다는건 두 선수에게 아직까지 확고한 신뢰를 보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출처 : http://www.guardian.co.uk/football/blog/2012/dec/08/sir-alex-ferguson-manchester-united



다른 팀들은 전성기일때 특정한 포메이션을 활용했지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전성기였던 3시즌 동안 고정적인 포메이션을 활용하지 않았다. 알렉스 퍼거슨 경은 4-3-3 , 4-4-2, 4-5-1, 4-2-3-1, 4-4-1-1 과 가끔 다른 포메이션을 활용했다.


여러 포메이션의 활용, 엄격한 로테이션 시스템과 핵심 선수들의 활약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3시즌동안 강자로 있게 만들어주었다. 딱 11명의 선수를 선정하여 '이들이 3시즌동안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라고 말할 수가 없다.

 

그들이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경험했던 2007/2008시즌 명단을 통해 자세하게 말하고자 한다. 중요한 경기에서만큼은 퍼거슨 감독은 고정적인 포백 라인, 두명의 딥라잉 미드필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카를로스 테베즈, 웨인 루니와 추가적인 미드필더를 기용했다.

 

호날두, 테베즈, 루니가 다재다능한 선수들이고 측면 공격수 및 중앙 공격수를 소화할 수 있었기 때문에 퍼거슨 감독은 포메이션의 틀을 깰 수 있었다. 세 명의 선수들은 페널티박스 근처에서 상호간의 이해력이 높았고, 이에 퍼거슨 감독은 세 명의 선수에게 프리롤을 맡기고 벤치에서 편하게 경기를 관전할 수 있었다. 또한 세명의 선수들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수비적인 임무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이러한 전술적 활용은 루치아노 스팔레티 감독의 AS 로마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게는 최전방에 위치할 특정한 선수가 없었다. 기본적으로 윙어였던 호날두는 기술적, 신체적인 장점을 십분 활용하여 수많은 골을 집어넣었다. 필요할 때만 최전방 공격수로 기용되기도 했다. 반면 본래 공격수인 웨인 루니와 카를로스 테베즈는 키가 작은 선수들이고 밑으로 내려오는 경향이 있는 창의적인 공격수들이다. 또한 루니와 테베즈는 굉장히 열심히 뛰어다니는 선수들이기도 하다.

 

그러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항상 3명의 공격수를 활용하진 않았다. 유럽대회 원정경기에서만큼은 3명 중 1명의 선수(테베즈)가 박지성처럼 열심히 뛰어다디는 미드필더에게 자리를 뺏겼다. 유나이티드는 07/08시즌 로마원정에서 승리했고, 이는 잉글랜드팀이 유럽대회에서 거둔 가장 완벽한 승리로 기억될 것이다.루니는 왼쪽 측면에서 미드필더처럼 뛰었고, 호날두가 최전방에서 원톱으로 뛰었다. AS 로마는 프란체스코 토티를 이용하여 미드필더 라인까지 내려오는 최전방 공격수를 뜻하는 '펄스 9'이라는 개념을 만들었지만,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는 '펄스 9'에 추가적으로 측면으로 빠지는 움직임도 선보였다. 팀 동료인 토티와 다른 움직임을 가져가는 호날두를 본 로마 선수들은 당황한 듯 보였다. 호날두가 밑으로 내려오면 박지성 혹은 루니가 최전방으로 나섰고, 유나이티드는 2-0으로 승리했다. 특히 첫번째 헤딩골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대단한 헤딩 득점이었다.


최전방 선수들이 다재다능했기 때문에 퍼거슨 감독은 상대에 따라서 팀에 변화를 줄 수 있었다. 로마원정에서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최전방에 웨인 루니가 왼쪽 측면에 위치했지만, 첼시와의 결승전에서는 루니가 최전방에 나섰고 호날두는 본래의 오른쪽에서 벗어나 왼쪽 측면에 배치되어 마이클 에시앙을 위협했다. 호날두와 에시앙의 대결이 펼쳐졌고, 결국 호날두의 제공권을 이기지 못한 에시앙은 선제골을 내주는데 빌미를 제공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전체적인 구조를 깨뜨리지 않고도 전방에 위치한 공격수들간의 역할 교체가 가능했다. 이러한 부분들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게 성공을 가져다주었다.


몇몇의 저널리스트 사이에서는 퍼거슨 감독이 전술적으로는 그다지 뛰어난 감독이 아니라는 인식이 존재했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그런 목소리는 줄어들고 있다. 지난 몇년간 퍼거슨 감독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유럽대회 원정경기에서 강한 모습들을 보여주었다. 에미레이츠 스타디움에서 올 시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아스날을 이겼을 때(3-1승),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지난 10년간 변해온 전술의 집합체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오늘날 퍼거슨 감독은 4-3-3 포메이션과 4-4-2 포메이션을 번갈아가면서 활용하고 있다. 퍼거슨 감독은 4-3-3 혹은 4-4-2 포메이션 중 적어도 하나의 포메이션에서 활용할 수 있는 선수들을 스쿼드에 보유하고 있다. 박지성은 4-3-3 포메이션에서 수비적인 측면 공격수 역할로 매우 훌륭한 경기력을 선보여왔다. 안데르손은 4-3-3 포메이션에서 두명의 수비형 미드필더 앞에 배치될 경우에 가장 효율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반대로 디미타르 베르바토프는 4-4-2에서 활용할 옵션이지 4-3-3에서는 그의 자리가 없다. 퍼거슨 감독의 미드필더 자원인 마이클 캐릭, 폴 스콜스, 대런 플레쳐, (몸이 멀쩡한) 오웬 하그리브스는 4-4-2 와 4-3-3 일때의 역할이 조금씩 다르다.

 

2006년부터 2009년까지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알렉스 퍼거슨 감독이 처음으로 만들어낸 위대한 팀은 아니다. 그러나 이 당시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전술적인 혁신이 이루어진 것들을 체화한 팀으로 기억될 것이다.

 

 

 

출처 : http://www.zonalmarking.net/2010/03/20/teams-of-the-decade-3-manchester-united-2006-09/

 




사실 로테이션 시스템을 축구의 전술이라 보기 힘들다. 그러나 이제 유럽 톱클럽을 이끄는 감독들에게 스쿼드 로테이션은 필수사항이 되어버렸다. 로테이션은 감독이 선발명단을 구성하는데 고려하는 요소로 자리잡았다.

 

1980/1981시즌 아스톤 빌라는 71년만에 리그 우승에 성공했다. 아스톤 빌라 우승 당시에 주목받았던 것은 그들이 얻어낸 승점, 그들의 득점수가 아니었다. 바로 활용한 선수들의 수가 많은 이목을 끌었다. 당시 잉글랜드 1부리그는 시즌 전체 42경기가 있었고, 아스톤 빌라는 단 14명의 선수로 우승을 만들어냈다. 절반에 해당하는 7명의 선수는 42경기 모두 선발출전했다.

 

2008/2009시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우승으로 이끌었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감독 알렉스 퍼거슨 경이 몇명의 선수를 활용했는지 알고 있는가? 정답은 글 맨 아래에 적어두겠다.

 

퍼거슨 감독이 챔피언스리그를 우승했던 시즌에 퍼거슨 감독은 스쿼드 로테이션을 굉장히 잘 활용했다.1998/1999시즌 퍼거슨 감독에게는 드와이트 요크, 앤디 콜, 올레 군나르 솔샤르, 테디 셰링엄이 있었다. 요크와 콜은 좋은 호흡을 보여주면서 첫번째 옵션으로 자리매김했지만 솔샤르와 셰링엄 역시 좋은 선수들이었다. 퍼거슨 감독은 충분히 첫번째 옵션인 선수에게 휴식의 기회를 줄 수 있었고, 플레이의 질은 전혀 떨어지지 않았다. 빌라파크에서 펼쳐졌던 1999년 FA컵 4강전 재경기에서 퍼거슨 감독은 과감하게 앤디 콜을 스쿼드에서 제외시켰으며 폴 스콜스, 드와이트 요크, (결승골을 기록한) 라이언 긱스를 모두 벤치에 앉혔다.

 

퍼거슨 감독의 로테이션 정책은 약 10년후에 다시 주목받았다. 2007/2008시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프리미어리그 우승과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동시에 이뤄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같은 라인업으로 연속 2경기를 치른 적이 없었다. 따라서 정해진 베스트11 역시 없었지만, 가장 중요한 2개의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비슷한 사례를 펩 과르디올라 감독의 바르셀로나에서 찾아볼 수가 있다. 올 시즌(2009/2010시즌) 지금까지(2010년 1월 28일) 과르디올라 감독은 같은 선발명단을 딱 2차례 활용하는데 그쳤다. 반면 라파 베니테즈 감독은 너무 심할 정도로 로테이션을 시킨다는 이유로 비난받아왔다. 그러나 잦은 로테이션이 문제가 아니라 선수층의 문제, 토레스와 제라드가 없을 경우 리버풀의 경기력의 문제라 봐야한다. 왜 로테이션이라는게 필수적이게 되었는가?


첫번째, 챔피언스리그의 규모가 커지면서 빅클럽들이 이전보다 더 많은 경기를 치르게 되었다. 경기수가 많아지면 필연적으로 선수들은 지치게 된다. 따라서 매경기 같은 라인업으로 경기에 임할 수가 없다. (아스톤 빌라가 14명의 선수로 리그우승을 거머쥔 1980/1981 시즌 후에 그들은 유러피언컵에 나가게 되었다. 유럽대회 참가로 빌라의 리그성적은 하락하게 되었다. 그들은 11위로 1981/1982시즌을 마감했다) 모든 대회에서 성공적인 시즌을 보내고자한다면 한 시즌동안 60경기를 치를 각오를 해야만한다. 60경기에서 선수들이 경기마다 최고의 모습을 보여주기 힘들다.

 

가장 핵심적인 원인은 현대축구에서 속도와 격렬함이 중요시되기 때문이다. 이는 선수들에게 상당한 체력을 요구한다. 흔히 범하는 오류는 선수들이 단지 쉬기만한다면 피곤함을 느끼지 않는다는 생각이다. 몸상태가 완전하지 않으며 90분을 뛸 수없다는 의미를 내포한 피곤함은 그다지 적절한 단어 선택이 아닌 것 같다. 매경기 100%로 경기에 임할 수 없다는 것으로 표현하는게 더 맞겠다. 따라서 한 포지션에 한 선수만 주구장창 기용하여 매경기 전체 능력에 70%만 활용하는 것보다 한 포지션에 로테이션을 해줄 수 있는 2명의 선수를 보유하여 경기력을 100% 발휘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무리뉴 감독이 신뢰하는 루이 파리아 체력담당코치의 말을 들어보자.

 

"로테이션을 실시하고자 한다면 2~3경기를 동시에 고려해야만 합니다. 팀의 전체적인 밸런스를 깨지않는 적정선은 3명이고 최대 4명까지 변화를 줄 수 있습니다. 문제는 자신의 팀에 대해서 얼마나 잘 꿰뚫고 있는지와 그 시점에서의 선수의 경기력을 고려해야한다는 것입니다."

 

팀에 지속적인 변화를 주는 부분에서 또 다른 큰 요소는 선수들의 부상의 빈도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클럽들이 부상에 대해서 민감해짐에 따라 최대한 선수들을 건강하게 유지시키고자 하려고 한다. 믹 맥카시 감독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원정경기에서 리저브 선수들을 내보냈다는 이유로 엄청난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그의 생각에도 옳은 부분이 있다. 맥카시 감독은 비난 여론에 다음과 같이 말하며 대응했다.

 

"나는 카를로 안첼로티 감독이 이탈리아에 있을때 경기에서 부상이 일어날 확률은 10%라 말한적이 있는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러나 격렬한 경기가 3~4일 간격으로 연속해서 벌어진다면 부상 가능성은 30~40%로 부쩍 상승하게 된다고 말했던 것도 기억합니다.AC 밀란에서 구단 의료진에서 통계를 내린 것이기 때문에 저는 그의 말을 믿었습니다."

 

로테이션에 대해서 팬들은 그다지 달가워하지 않는다. 특히 유력 언론매체들 역시 마찬가지다. (주전에서 밀린 선수들에 대한 이적기사를 쓰는게 불가능해지니까라고 추정됩니다) 클럽이 이미 체계가 잘 잡혀져있는 포지션에 빅네임을 영입하는 경우에 '영입된 빅네임 선수를 어떻게 팀에 녹아들게 할 것인가?'라는 문제는 항상 제기된다. 그러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바르셀로나와 같이 정해진 베스트 11이 없는 팀은 그런 걱정이 없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경기 중계를 들으면 이와같은 말을 자주 들을 수 있다. "오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선발 라인업에는 4명의 변화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선발 명단에 변화가 있다는 것이 발표될 때 이미 지난 경기에 뛰었던 선수가 바뀔 것이라고 인식하고 있다.

 

(지난 경기에 뛰었던 선수가 빠지는) 뻔한 교체가 이루어지는 것이지만 스쿼드 로테이션은 현대 최고수준의 클럽들이 기본적으로 활용해야하는 것이다.

 

 

앞서 언급했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대한 문제의 대답은 33명이다. (아스톤 빌라가 우승을 기록했을 당시의 2배 이상의 인원을 활용했다)

 

안데르손, 베르바토프, 브라운, 켐벨, 캐릭, 하파엘 다 실바, 드 라엣, 에커슬리, 에반스, 에브라, 퍼디난드, 플레쳐, 포스터, 깁슨, 긱스, 하그리브스, 박지성, 쿠쉬착, 마케다, 마누초, 마틴, 나니, 네빌, 오셰이, 포제봉, 호날두, 루니, 스콜스, 테베즈, 토시치, 반 데 사르, 비디치, 웰백

 

아스톤 빌라의 14명의 선수 중 7명의 선수가 42경기 전부 선발출전했지만 유나이티드의 리그 경기수는 38경기였고 오직 비디치, 호날두만 30경기 이상 출전했다.

 

 

 

출처 : http://www.zonalmarking.net/2010/01/28/how-the-2000s-changed-tactics-7-squad-rotation/



by Jonathan Wilson 

 

35년간 영국 축구 최고의 감독으로 군림해온 알렉스 퍼거슨 경의 여러가지 비범한 능력들 중에서 가장 뛰어난 능력은 바로 팀의 전술을 시기에 맞춰 수정할 줄 안다는 것이다. 퍼거슨은 언제나 팀 개편을 염두에 두고 있었고 또 그것을 시행에 옮겨왔다.

 

가장 두드러졌던 개편은 2000년에 있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바로 前시즌에 트레블을 달성했고 레알 마드리드와의 챔피언스 리그 8강전을 앞둔 시점에 프리미어 리그에서 2위와 10점차 선두를 달리고 있었다. 이 레알 마드리드전은 프리미어 리그 출범 이후 처음으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게 전술적 화두를 던지는 경기가 되었다.

 

유나이티드는 마드리드 원정에서 0:0 무승부를 기록했고 다수의 사람들은 올드 트래포드에서 유나이티드가 우세한 경기를 펼칠 것이라 예상했지만, 퍼거슨은 마드리드 원정에서 너무 소극적인 경기를 펼쳤던 것이 신경쓰였다. 마드리드는 기존에 백4 시스템을 사용했으나 이 때 델 보스케는 올드 트래포드에서 3-3-2-2 포메이션을 선택하며 변화를 줬다. 두 팀 모두에게 기회가 있었으며 특히 유나이티드는 전반전 카랑카의 핸드볼에 대한 페널티킥을 보상받았어야 했고 카랑카는 퇴장당해야만 했지만 그러지 않았다. 어쨌든 레알 마드리드는 올드 트래포드에서 3골을 넣었다. 유나이티드는 2:3 스코어까지 쫓아갔고 자신들이 불운했다고 주장할 수 있겠지만 결과는 전체적인 흐름에 부합하게 나왔다. 


1996/1997시즌 유나이티드는 챔피언스 리그 준결승에서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를 만났다. 독일 원정에서 유나이티드는 0:1로 패했다. 올드 트래포드에서 만회를 노렸겠지만 이른 시간에 실점을 허용하면서 탈락하고 말았다. 다음해에 있었던 모나코와의 8강전에서 유나이티드는 프랑스 원정을 떠나 0:0 무승부를 기록했다. 그렇지만 올드 트래포드에서 또 다시 이른 시간 실점을 허용하면서 탈락의 고배를 마시고 말았다. 어느새 이른 시간에 실점을 내주는게 유나이티드의 특징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1998/1999시즌 시작부터, 정확히는 그들이 야프 스탐과 드와이크 요크를 영입하면서 그들 세대의 포메이션을 확립하게 되면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선제골을 내주더라도 좀처럼 패배하지 않았다. 스티브 맥클라렌 당시 수석코치는 "당시 우리는 결코 패배할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고 우리에게 그런 일은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라고 말했다.


퍼거슨도 "우리는 언제나 어려운 방식으로 승리를 쟁취해낸다. 이는 우리 클럽의 특징이기도 하다." 라고 말하면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그런 성향을 뛰어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란 클럽의 독특한 면에 지나지 않는다란 식으로 간주했으나 레알 마드리드에게 패배한 이후 그의 생각은 달라졌다. "레알 마드리드전 패배가 우리에게 준 교훈이 있습니다. 우리가 유럽 대회에서 상대의 역습을 방어하는 능력을 향상시킨다면 우리는 유럽 무대에서 더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습니다." 퍼거슨은 이렇게 말했다. 이전까지 15번의 득점 기회를 만들어내고 상대에게 5번의 기회를 내줬다면, 그 이후로부터 퍼거슨은 고작 5번의 기회만 만들더라도 상대에게는 단 한 번의 기회도 내주지 말겠다는 각오로 유럽 대회에 임했다. 물론 1999년부터 2007년 사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챔피언스 리그 토너먼트 경기에서 승리를 거둔건 2002년 데포르티보전이 유일하기 때문에 퍼거슨의 변화가 유효했는지 평가하긴 어려울 것 같다. 어쨌거나 퍼거슨이 경기 운영에 대한 변화를 준 것만큼은 사실이다.

 

퍼거슨은 언제나 냉철한 결정을 내리곤 했다. 1990년 FA컵 결승전 이후 짐 레이튼을 버렸고 1995년 FA컵 결승에서 패배하고 리그를 2위로 마무리 짓자 폴 인스, 마크 휴즈, 안드리 칸첼스키스를 내쳤다. 퍼거슨 경 입장에서는 신중한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이지만 다른 사람들 눈에는 급진적인 변화처럼만 보였다.

 

퍼거슨이 유나이티드의 감독으로 부임하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팬들은 그의 개혁에 크나큰 실망감을 느끼고 말았다. 팬들은 "4-4-2"를 외치면서 퍼거슨의 성과없는 팀 개혁을 조롱했다. 이에 퍼거슨은 결코 4-4-2 포메이션을 사용한 적이 없다고 말하면서 응수했다. 사실 4-4-1-1이 4-4-2에서 파생된 것이기 때문에 4-4-1-1와 4-4-2은 한 가족이나 다름없으나 퍼거슨은 그렇게 팬들의 야유에 대응했다.

 

1983년 컵 위너스컵에서 레알 마드리드를 꺾었던 퍼거슨의 에버딘은 당시 잉글랜드에서 유행하던 한쪽으로 기울어진 4-4-2 포메이션과 유사한 전형을 활용했었다. 고든 스트라칸이 오른쪽 미드필더로 위치했었고 왼쪽에서 뛰었던 피터 위어는 스트라칸보다 더 공격적인 윙어 역할을 수행했다. 에릭 블랙은 중앙 스트라이커인 마크 맥기 밑에서 뛰었다. 퍼거슨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감독으로 부임한 후 첫번째 경기였던 옥스포드와의 경기에서도 에버딘과 비슷한 포메이션으로 경기에 임했다. 클레이턴 블랙보어는 창조적인 오른쪽 미드필더였으며 동시에 굉장히 근면한 플레이를 보여줬던 선수였다. 왼쪽에서 뛰었던 피터 반즈는 현란한 유형의 선수였고 피터 데븐포트는 팀의 주포였던 프랭크 스태플레튼을 보좌하는 역할이었다.

 

그렇다고 융통성없게 퍼거슨이라는 사람이 옛날의 성공했던 포메이션만 고수했던건 아니었다. 1991년 컵 위너스컵 결승전에서 유나이티드는 바르셀로나를 상대했다. 퍼거슨 감독은 오늘날 4-2-3-1로 표현되는 전형을 꺼내들었다. 마크 휴즈는 철저하게 센터 포워드 역할을 수행했고 브라이언 맥클레어가 밑에서 휴즈를 보좌했다. 아무래도 후방에서 바르셀로나의 템포를 조절하는 로날드 쾨만을 방해하려는 심산이었을 것이다. 마이크 펠란과 리 샤프가 측면에서 힘을 보탰고 폴 인스와 브라이언 롭슨이 포백 앞에 위치했다.


그 이후 유나이티드는 측면에 발빠른 선수들을 배치시키면서 성적 향상을 이뤄냈다. 칸첼스키스, 리 샤프, 라이언 긱스와 같은 선수들이 등장했고 이들은 역습 상황에서 많은 골을 만들어냈다. 그 결과 유나이티드는 1992/1993시즌 26년만에 처음으로 리그 우승을 달성했다. 3월 노리치 시티 원정 승리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승점 2점차 선두를 달리고 있는 상황에서 우승 경쟁에 아주 큰 영향을 미쳤다. 당시 경기에는 휴즈가 징계 때문에 나서지 못했고 이에 퍼거슨은 1명의 수비형 미드필더 인스 앞에 샤프, 칸첼스키스, 맥클레어를 기용했다. 투톱을 담당했던 선수는 에릭 칸토나와 긱스였다. 유나이티드는 노리치에게 3:1 승리를 거뒀고 특히 2번째 골이었던 칸첼스키스의 골은 역습의 정석과 같은 골이었다.



그렇게 탄생한 경기 운영 철학은 1999년 유나이티드가 트레블을 달성하는데 영향을 끼쳤다. 칸토나가 떠났지만 드와이트 요크와 앤디 콜은 칸토나와 휴즈 못지않게 다이나믹한 모습을 보였다. 미드필드에는 데이비드 베컴, 로이 킨, 폴 스콜스, 라이언 긱스가 있었다. 굉장히 활발하고 창조적인 선수들이 미드필드에 배치 되었다. 그렇지만 레알 마드리드에게 패배한 이후 퍼거슨의 4-4-1-1, 4-4-2에 대한 믿음이 약해지기 시작했다.


2000/2001시즌에도 유나이티드는 이전과 비슷한 선수단과 포메이션을 유지했다. 그렇지만 유럽 대회에서는 눈에 띌 정도로 조심스러운 경기 운영을 펼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요크와 콜의 영향력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2001년 후안 세바스티안 베론을 영입해 베론을 후방에 두고 스콜스를 앞으로 전진시킨다. 루드 반 니스텔루이 밑에서 뛰었던 스콜스가 언제든지 미드필드 싸움에 가세할 수 있는 형태가 만들어진 것이다. 그런데 단기적으로 이 변화는 실패였다. 애초 스콜스는 공개적인 발언을 잘 하지 않는 선수인데 그는 자신의 새로운 역할이 맘에 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리그 타이틀을 수없이 만들어낸 라인 (긱스-스콜스-킨-베컴)을 스스로 깨버렸다. 그 변화는 프리미어 리그에서는 물론 챔피언스 리그에서도 성공적이지 못했다.


유나이티드는 크리스마스 전까지 10패를 기록했고 전지전능한 아우라를 잃어가는 듯 했다. 반 니스텔루니의 짝으로 올레 군나르 솔샤르가 낙점되었고 유나이티드는 4-4-2 포메이션으로 복귀했다. 어느정도의 위용은 되찾았지만 우승을 이뤄낼 정도의 수준에는 미치지 못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2002/2003시즌 다시 4-4-1-1 포메이션을 활용했고 스콜스는 다시 한 번 자신이 좋아하는 위치에서 벗어나 경기를 소화해야만 했다. 2002/2003시즌은 반 니스텔루이와 스콜스가 가장 최절정의 시기를 보냈던 시즌이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반등은 베론이 부상으로 명단에서 제외되면서 빠른 템포의 축구로 변환했기 때문에 이루어질 수 있었다.

 

2003/2004시즌은 4-2-3-1을 시도했던 시즌이었다. 필 네빌은 홀딩 미드필더로 기용되는 경우가 잦았다. 2004/2005시즌은 느슨한 4-3-3 포메이션을 시도했다. 라이언 긱스와 웨인 루니는 종종 측면 공격수로 경기를 소화했고 중앙으로 파고드는 움직임을 보였다. 스콜스는 속도가 느려진 킨을 도와주기 위해서 이전보다 더 후방에서 뛰기 시작했다. 두 시즌 모두 리그는 물론 유럽 대회에서의 우승이 없었다. 그 다음 시즌이었던 2005/2006 시즌에는 챔피언스 리그 16강 진출에도 실패했다. 퍼거슨이 가장 신뢰하는 몇 안되는 기자들 조차도 "세계에서 가장 용맹한 감독이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는 시점이 왔다" 라고 혹평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퍼거슨은 언제나 그래왔듯이 사람들의 예상과는 정반대의 결과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2007년 챔피언스 리그 8강전, 유나이티드는 AS 로마를 7:1로 이겼다. 유나이티드는 평소처럼 4-4-1-1 포메이션을 활용했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라이언 긱스가 측면을 담당했고 마이클 캐릭과 대런 플레쳐가 중앙 미드필더를 앨런 스미스가 최전방 공격수를, 루니가 살짝 뒤에 처진 공격수로 경기에 나섰다. 당시 로마는 스타디오 올림피코에서 있었던 8강 1차전 경기에서 2:1 승리를 거두었다. 당시 로마는 형식적인 공격수 프란체스코 토티가 미드필더로 내려오면서 사실상 공격수가 없는 형태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상대했다. 2006/2007시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밀라노 원정에서 발이 무거운 모습을 보여주며 4강에서 떨어졌다. 유나이티드는 로마를 합계 스코어 8:3으로 꺾었지만, 그 다음 시즌인 2007/2008시즌부터 AS 로마의 공격 방식을 모방했다. 호날두, 웨인 루니, 카를로스 테베즈, 라이언 긱스 혹은 나니가 2명의 홀딩 미드필더(오언 하그리브스, 마이클 캐릭, 폴 스콜스, 안데르손) 앞에서 뛰었을 뿐 어느 누군가가 분명한 최전방 공격수 역할을 수행하지 않았다. 대신 전방에 위치한 4명의 선수가 번갈아가면서 최전방 공격수 역할을 수행했다.

 

명확한 스트라이커를 두지 않는다는건 시도하기 어려운 전술이다. 그렇게 유나이티드는 2007/2008시즌 초반에 득점력 빈곤에 시달렸다. 수비수 존 오셰이를 임시방편으로 공격수처럼 기용했지만 레딩과의 개막전에서 0:0으로 비기고 말았다. 그렇지만 퍼거슨이 시도한 전술이 팀에 녹아들기 시작하자 이 전술은 위용을 뽐내기 시작했다. 루니와 테베즈의 이타적인 플레이 덕분에 호날두는 2007/2008시즌 리그에서만 31골을 기록하는 위력을 보여줬다. 

 

새로운 전술이 성공적으로 활용되고 있었지만 퍼거슨은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에서 전형적인 4-4-2 포메이션을 꺼내들었다. 당시 결승전은 1999년처럼 유나이티드에게 행운이 따른 승리였다. 퍼거슨의 전술에 대해 비판할 것이 있다면 그가 때로는 빅매치를 앞두고 과도한 생각을한다는 것이다. 당시 결승전에서 퍼거슨은 에슐리 콜을 고려하여 오언 하그리브스를 오른쪽 미드필더로 기용했다. 호날두를 왼쪽 미드필더로 기용해 오른쪽 수비수로 출전한 마이클 에시앙을 공략하겠다는 의도였다. 30분 정도는 이 전술이 효과적으로 먹혀들었고 호날두가 직접 골을 기록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 이후부터 에시앙이 계속해서 호날두를 제치고 나아가기 시작했다. 프랭크 램파드의 동점골도 그렇게 에시앙의 전진에서부터 만들어졌다. 그 이후부터 승부차기 전까지 첼시가 더 우세한 경기를 펼쳤다. 퍼거슨의 선택에 정당성을 부여한 것은 경기 내용이 아닌 결과였다. 2000년 레알 마드리드에게 패배한 이후 수비적인 시스템으로 변하지 않았더라면 그가 2번째 유러피언컵을 쟁취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2007/2008시즌부터 긱스가 후방에서 역할 수행을 하기 시작했고 따라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포메이션은 4-2-4와 4-3-3-0의 중간 형태였다. 2008/2009 시즌부터는 4-3-30에 더 가까웠다. 특히 유럽무대에서는 더 그랬고 '수비적인 공격수'를 만들어낸 선구자 역할을 했다. FC 포르투의 알리 시소코가 8강 1차전에서 지속적인 오버래핑으로 유나이티드를 힘들게 만들자 퍼거슨은 2차전에서 호날두를 중앙에 기용했다. 호날두는 올드 트래포드에서 있었던 1차전 경기에서 알리 시소코의 전진을 적절하게 제지하지 못했다. 대신 루니가 오른쪽에 배치되어 시소코의 전진을 방해했다. 유나이티드는 포르투 원정에서 비교적 쉽게 1:0 승리를 쟁취했다. 2007/2008시즌에도 루니는 바르셀로나와의 4강전에서 리오넬 메시를 막기 위해 사실상 2번째 풀백 역할을 수행하기도 했다. 박지성은 유럽 대회에서 퍼거슨 감독의 이런 요구를 아주 잘 수행했던 선수였다. 2009년 인터나치오날레와의 16강전에서는 박지성이 마이콘을 아주 인상적으로 봉쇄했다.


그렇지만 2009년 로마에서 있었던 바르셀로나와의 결승전에서 퍼거슨은 박지성의 위치를 잘못배치시켰다. 유나이티드의 4-3-3 포메이션에서 박지성은 실빙요를 마주치게 되었는데 사실 박지성은 반대편에 위치한 웨인 루니와 자리를 바꿨어야했다. 박지성이 카를레스 푸욜의 전진을 막았어야했고 루니가 푸욜보다 공략하기 쉬운 실빙요를 노려야했다. 유나이티드는 바르셀로나의 매끄러운 플레이에 0:2으로 무릎을 꿇었고 결승전 이후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까지 팀을 떠나면서 퍼거슨은 다시 한 번 팀을 개편해야하는 상황을 맞이했다.

 

출전 시간에 대한 불만이 있었던 테베즈의 이적, 들쭉날쭉하는 디미타르 베르바토프 때문에 루니는 2009/2010 시즌부터 정통 센터 포워드 역할을 수행하기 시작했다. 특히 루니는 AC 밀란을 꺾는데 선봉장 역할을 수행했다. 2009/2010 시즌은 1930년대 포워드들에게서 볼 수 있었던 파워풀한 헤더를 루니에게서 볼 수 있었던 시즌이다. 그러나 이 방식은 너무나도 옛날 축구였고 한 선수에게 과도하게 집중되는 형태였다. 챔피언스 리그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상대한 바이에른 뮌헨은 루니가 발목을 다치기 이전부터 그런 전술적 허점을 간파해 우세한 경기를 펼쳤다.


2010/2011시즌부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다시 4-4-1-1 혹은 4-2-3-1 포메이션으로 복귀했다. 하비에르 에르난데스와 로빈 반 페르시가 정통 센터 포워드의 역할을 수행했다. 또한 지난 2시즌간 유나이티드는 후방 미드필드 지역에서의 역동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꾸준하게 받았는데 퍼거슨은 때때로 필 존스를 수비형 미드필더로 기용하면서 중앙의 역동성 부족을 보완했다. 또한 루니를 보조 미드필더 형태로 사용하면서 문제를 해결해왔다.


1990년 FA컵 우승 이후, 2005/2006 시즌은 퍼거슨이 맞이한 가장 위태로운 시기였다. 그러나 이후 그는 5번의 리그 우승, 3번의 챔피언스 리그 결승 진출을 이뤄냈다. 최고 수준의 레벨에서 퍼거슨처럼 이토록 오랫동안 성공을 누려온 감독은 없었고 또한 퍼거슨만큼 경기 방식의 발전에 따라 그 변화를 잘 흡수해온 인물도 없었다.  


 


 

 

 

출처 : http://www.guardian.co.uk/football/blog/2013/may/08/sir-alex-ferguson-tactics-evolution

 



아마도 그가 10대이기때문에 새로운 포지션에 적응을 잘 할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어떻게 본다면 그가 큰 무대에서의 가장 위대한 선수가 되기 위해서 최정상의 기량을 갖추지 못한다는 말이 될 수도 있다. 그의 신체적인 파워가 강점으로 뽑혀왔지만, 이제는 그뿐일 수도 있다.

 

보비 찰튼 경은 필 존스를 던컨 에드워즈와 비교했다. 보통 과대평가를 하질 않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역사상 최고의 선수에게서 나온 말이였고, 그의 말에는 무엇인가 담겨있는 것 같았다. 파비오 카펠로 감독도 필 존스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던 사람이다. 필 존스를 프랑코 바레시와 페르난도 이에로에 견주면서 그의 앞날이 창창할 것이라 말했다. 스튜어트 피어스, 마이카 리차즈, 미셸 살가도까지 필 존스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은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들은 필 존스가 미래의 잉글랜드 대표팀 주장감이라 말했고, 그의 미래는 정해져있는 것만 같았다.

 

필 존스가 유로 2012에 참가하지 못하고 집에서 있어야할 가능성도 있다. 결정의 기준은 누가 감독으로 선임되느냐가 아니라 존스가 이번 시즌을 어떻게 보내는가에 달려있다. 선수의 다재다능함은 그의 가치를 높이기도 하지만, 현재의 존스는 어느 한 분야에 완성된 실력을 보여주질 못하고 있다.

 

그가 팀에서 담당하고 있는 3가지 역할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그는 센터백으로서는 5순위에 위치해있다. 그가 뛰기 위해서는 네마냐 비디치, 리오 퍼디난드, 죠니 에반스, 크리스 스몰링 중에 3명이 나오지 못해야한다. 3골을 내준 바젤과의 경기를 떠올려보면 그와 퍼디난드의 호흡은 문제점이 많다는 것이 드러난다. 이 두 선수는 이번 여름 이후로 떨어져야만 한다. 피어스 감독이 네덜란드와의 경기에서 필 존스가 아니라 중앙 수비를 자주 담당하지 않는 마이카 리차즈를 중앙 수비로 이동시킨 것을 주목해야 한다.

 

피어스 감독은 스몰링과 게리 케이힐을 필 존스보다 우선적인 옵션으로 생각하고 있다. 이번 유로 2012에 존 테리와 리오 퍼디난드의 발탁 가능성도 고려해봐야만 한다. 또한 여기에 스페인을 꺾을 당시에 조합이였던 필 쟈기엘카와 졸레온 레스콧의 좋은 호흡도 고려대상이 될 것이다.


존스는 두드러진 성장을 보였지만, 수비적 측면에서는 이전만 못해진 것으로 보인다. 그가 앞으로 가져야할 임무는 블랙번에서 최후방 수비수로서 보여줬던 안정감을 되찾는 것이다. 물론 블랙번 시절에 샘 앨러다이스 감독이 그를 중앙 미드필더로 기용하기도 했지만, 존스는 지금만큼 공격적인 성향을 보이질 않아서 그가 센터백 자리로 배치된 이유도 있긴하다.

 

그가 가장 좋은 모습을 보여줬던 포지션은 라이트백이다. 그의 저돌적인 전진은 유나이티드 공격진에 힘을 실어주었고, 수비도 왠만해서는 뚫리지 않았었다. 딱히 경쟁자가 다 실바 형제들을 제외하고는 없던 것이 그의 라이트백 출전에 영향을 주었지만, 그가 최근 몇달간 보여준 플레이는 딱히 눈에 띄지 않았다. 알렉스 퍼거슨경은 전문 라이트백과 전문은 아닌 선수들을 오른쪽 수비수로 기용하지만, 잉글랜드는 그렇지 않다. 피어스 감독이 존스를 네덜란드전을 앞두고 대표팀에 선발했을때 당시 프리미어리그 최고 우측 수비수 마이카 리차즈가 있었고, 클럽에서 수비적인 약점을 노출하긴하지만 대표팀에서는 괜찮은 활약을 펼치는 글렌 존슨이 있으며, 존스를 충분히 대체할 수 있는 자원인 카일 워커도 있다. 워커는 상대진영까지 올라가는 초강수를 두기도하는 선수지만, 오른쪽 수비수로의 완벽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렇다면 중앙을 따져보도록 하자. 스콧 파커, 스티븐 제라드, 가레스 배리, 제임스 밀너, 잭 윌셔는 몸상태만 완벽하다면 무조건 뽑힐 선수들이다. 어느 감독이 부임하든 변함없을 것이다. 올드 트래포드에서 중앙 미드필더로 확실한 자리를 잡고있는 선수는 마이클 캐릭뿐이다. 캐릭은 잉글랜드가 필요로하고 있는 능력을 갖췄고, 최근에는 홀딩 미드필더가 갖출 포지셔닝 능력도 갖춰버렸다. 아슬레틱 빌바오를 상대로 실망스러운 밤을 보냈던 존스. 이제 그가 중앙 미드필더로 적합한지 물음을 던져야할 시간이다.

 

전반적으로 보면 존스는 분명히 대단한 잠재성을 지닌 선수이다. 하지만 지금 그는 자신에게 맞는 옷을 찾고있지 못하고 있다. 유로 2012는 그가 경험하게될 6~7차례의 국제대회 중에 첫번째가 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대표팀 선발은 그가 특정 포지션에서 가장 적합한 인물 2명 안에 들어야만 이뤄질 것이다. 현재의 존스로는 어림도 없다.

 

그가 블랙번에서 수비수로서 보여줬던 기본적인 플레이를 다시 생각해보는 것이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존스가 이우드 파크에 처음 모습을 드러냈을때 사람들은 그와 존 테리의 유사성을 발견했다. 나중에 이러한 비교는 또 이뤄져야한다. 존스가 센터백으로 자리를 잡고 잉글랜드 대표팀의 주장이 되는 것으로 장기적인 목표를 설정해야만 한다. 하지만 그 길은 순탄하지 않을 것이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오른쪽 수비수로 뛰면서 수비수로서의 능력을 쌓아가는 우회적인 방법도 있을 것이다. 당장 대표팀에서의 자리가 없을지도 모른다. 현재의 존스가 유로2012 대표팀에 선발된다면, 그것은 존스의 미래가 기대되기때문에 선발하는 것이지 현재의 경기력 때문이 아닐 것이다.



기사 출처 : http://soccernet.espn.go.com/columns/story/_/id/1038657/norman-hubbard:-phil-jones---a-jack-of-all-trades?cc=4716



 

By Alan Hansen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여전히 약점으로 지적받는 중앙 미드필더 영입에 실패하고 있다.

 

웨인 루니, 하비에르 에르난데스, 대니 웰백, 디미타르 베르바토프만으로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스트라이커 옵션은 매우 풍부해보였다. 그렇지만 여기에 로빈 반 페르시까지 추가되면서 공격 옵션은 너무나 막강해졌다.

 

지난시즌 아스날에서 반 페르시는 48경기에 출전하여 37골을 넣었다. 반 페르시가 몸이 멀쩡하고 지난시즌의 경기력을 유지한다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게 엄청난 영입이 될 것이 분명하다.

 

불안한 요소가 있다면, 반 페르시는 지금까지 줄곧 부상에 시달려왔었던 선수였으며 이제 반 페르시는 수많은 공격수들이 폼을 잃어가던 30대에 들어간다는 것이다.

 

수비수, 미드필더들과는 달리 공격수들이 30대에 들어가기 시작하면 20대처럼 경기력을 펼치기 어려워진다. 아직까지 반 페르시가 그런 조짐을 보이진 않으나 29살인 반 페르시를 영입하기 위해 £22m을 투자한 것은 돈을 과도하게 지출한 것이다.

 

물론 반 페르시가 지난시즌 아스날에서 엄청난 활약을 바탕으로 올해의 선수에 선정되었다는 것을 부인할 순 없다. 또한 웨인 루니와 파트너쉽을 이루면서 더 좋은 기회들을 만들어낼 것이라는 것도 부정하기 힘들 것이다. 로빈 반 페르시가 부상을 당하지 않는다면, 유나이티드는 막을 수 없는 공격력을 지니게 될 것이다.

 

반 페르시가 영입되었지만 나는 여전히 맨체스터 시티가 프리미어리그에서 우승할 것이라 생각한다.

 

이번시즌에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우승이 어렵다고 생각한다. 물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최근 6시즌 동안 4번 우승했다고 말하면서 반박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더욱 폭을 좁힌다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최근 3시즌 중에 단 1번 우승하는데 그쳤다. 그들의 기준에서는 분명히 최근 성적이 좋지 않은 것이다.

 

퍼거슨 감독은 최소한의 시도는 해봤겠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중앙 미드필더진에 변화가 있어야한다고 말한다. 물론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에서 공격형 미드필더인 카가와 신지를 데려오긴 했다. 카가와 신지는 분데스리가에서 아주 좋은 활약을 펼쳤던 선수다.

 

카가와 신지 영입에 만족하는 목소리도 있다. 그렇지만 독일에서 맹활약한 것과 프리미어리그에 적응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따라서 카가와 신지에게는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유나이티드에게는 15년전의 폴 스콜스 같이 득점력도 갖추고 경기를 지배할 수 있는 선수가 필요하다.

 

만약에 야야 투레가 맨체스터 시티가 아니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소속이라면, 사람들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우승할 것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야야 투레는 맨체스터 시티에 있고 로베르토 만치니의 팀이 우승에 더 유리한 위치에 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빅네임 2명을 영입했지만 여전히 맨체스터 시티가 유리한 건 사실이다.

 

현재 맨체스터 시티는 잭 로드웰 영입에만 그치고 있다. 정상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언제나 팀을 강하게 만들도록 투자를 해야한다. 알렉스 경은 시티의 영입이 원활하지 않기 때문에 다시 정상으로 복귀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려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시티는 야야 투레와 빈센트 콤파니에 대한 의존도가 상당히 크다. 따라서 추가 영입이 없는 상황에서 이들이 부상이라도 당한다면 시티의 대처방식에서 우승이 갈릴 수도 있다. 그러나 시티가 여기서 보강을 멈출리가 없다. 따라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도 이제부터라도 부족한 포지션에 대한 보강이 절실하다.

 

2012/2013시즌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게 중요한만큼 맨체스터 시티에게도 중요한 시즌이다. 만약에 시티가 또 다시 우승에 성공한다면 앞으로 시티가 계속해서 우위를 점할지도 모른다.

 

반 페르시를 데려온 퍼거슨 감독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다시 트로피를 들어올리길 희망할 것이다. 그러나 미드필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이상 프리미어리그 우승은 힘들 것이다.

 

 

 

 

 

 

출처 : http://www.telegraph.co.uk/sport/football/teams/manchester-united/9486141/Manchester-United-manager-Sir-Alex-Ferguson-must-buy-a-midfielder-to-fill-the-boots-of-Paul-Scholes.html